cheat day RAW novel - Chapter 4
치팅데이 4화
1. 하늘이 무너져도 먹을 순 있다(3)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주지승이 전화를 받았다.
-어, 찬용아.
“형, 지금 방송 중인데 목소리 나가도 돼?”
-어어. 괜찮아. 10분 정도?
스피커폰을 켰다.
“안녕하세요, 주지승 님. 저희 방 시청자분들께 인사 한번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반야식경의 주지승입니다.
└어? 반야식경?
└헐 진짜임?
└누구?
└대기업 ㄷㄷ
└이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아니 형이 궁예 아저씨를 어떻게 알아?
└당저씨 월클이었어?
“누가 당저씨야! 이상한 별명 만들지 마!”
당뇨 아저씨를 줄인 듯한 별명에 열받아 소리치니 시청자들이 웃는다.
그나저나 확실히 반야식경이 대형 채널이긴 하다. 모르는 사람도 보이지만 대부분 반야식경을 아는 눈치다.
“형, 내가 콩고기를 사서 불고기 해 먹었거든. 근데 이게 원래 이렇게 퍼석해?”
-물에 안 불렸어?
“응.”
-그걸 어떻게 먹었어?
“……그냥?”
-안 딱딱해? 그거 안 불리면 그냥 돌이야.
└ㅋㅋㅋㅋㅋㅋㅋ요리사 어리둥절
└우리와는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생각해 보니 그러넼ㅋㅋ 그 딱딱한 걸 어떻게 먹으려고 했짘ㅋㅋ
“원래 그런 줄 알았지. 간장이랑 뭐 이것저것 넣고 익히니까 좀 풀어지긴 하더라.”
-아이고. 이 화상아. 그게 먹는다고 먹어지니?
“그래서 물어봤지.”
-형. 방송.
전화기 너머로 반야식경의 PD 최미카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찬용아, 나 방송 들어가야 해서 이따 얘기하자.
“어. 형. 수고해.”
-아니면 아예 이번 주말에 이쪽으로 와. 내가 밥 한번 차려줄게.
“진짜?”
-어. 끊는다.
주지승이 전화를 급히 끊었다.
괜찮다고 하더니 바빴던 모양이다.
└반야식경하고 합방하는 거임?
└큰 거 온다
└나만 누군지 모르나?
└나도 모름.
└아니 궁예 아저씨 어떻게 아냐고.
“아. 반야식경에 손 부족하면 편집해 줬어요. 한 3년 됐는데 같이 일하다 보니까 친하게 지내죠. 아니, 반야식경을 모른다고요? 안 되겠네. 기다려 봐요.”
유튜브에 반야식경을 검색해서 가장 최근에 편집해 준 영상을 재생했다.
-옴마니반메홈. 반야식경의 주지승입니다.
생각할수록 이름이 찰떡이다.
반야심경에서 따온 채널명이나 탈모가 온 머리를 이용해 아예 궁예 콘셉트를 잡은 점이나 독특한 이름까지 고루 갖췄다.
└요새 절 사정이 안 좋나? 주지스님이 유튜브도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님 아니얔ㅋㅋㅋㅋㅋㅋ
└대머리에 법복 입고 안대까지 썼는데 스님이 아니라고?
주지승을 몰랐던 시청자들이 저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논다.
-요새 많이들 피곤하시죠? 자도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것 같고. 오늘은 그런 여러분이 아주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건가 보네. 사찰음식.
└채식이면 당저씨한테 딱이겠다
└건강식으로 용케 57만 명이나 모았네 ㄷㄷ
└그러게. 보통 자극적인 음식 만들지 않나?
-바로 소화 잘되고 영양도 좋은 삼겹살 수육입니다.
영상 속 주지승이 6㎏이나 나가는 삼겹살 덩어리를 도마 위에 턱 올려놓았다.
-오늘 재료는 이 삼겹살과 간장, 대파 그리고 이 마법의 음료 콜라만 있으면 됩니다. 콜라 수육이죠.
└뭐?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님이 삼겹살 요리하는 것도 이상한데 뭐라고?
└아니 뭔 짓이야;;;
-이 삼겹살 한 판이 6㎏입니다. 육 등분하면 하나에 1㎏이겠죠? 이걸 냄비에 넣고 대파를 대강 썰어서 넣어주면 됩니다. 파는 귀찮으면 안 넣어도 되지만 이 콜라 1.25ℓ는 꼭 넣어줍니다.
영상 속 주지승이 콜라를 냄비에 사정없이 부었다.
-이거 다 넣어도 상관없어요. 항상 말씀드리죠? 설탕이나 소금 같은 조미료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넣으셔야 맛있어집니다.
└구아아아아악
└그만해
└광기 ㄷㄷ
└미친 스님이닼ㅋㅋㅋㅋㅋ
└궁예 맞넼ㅋㅋㅋ
“자, 이 뒤에는 각자 알아서 보시고. 이런 형이야. 좀 이상하긴 한데 이거 맛있어.”
나도 처음에는 주지승이 콜라 수육을 권할 때 당황하긴 했다.
궁예 코스프레를 하다 보니 콘셉트에 잡아 먹힌 건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달짝지근한 맛이 감돌며 풍미가 느껴지는 아주 고급진 수육이었다.
“하. 근데 이제 이런 거 못 먹겠지?”
책상에 놓인 콩고기 찌끄레기나 먹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 * *
당뇨 판정을 받고 사흘째.
먹는 게 부실해서 힘이 없다.
외주 편집도 당장 받아놓은 일만 처리하고 새로 들어온 의뢰는 모두 거절하고 있다.
“배고프다.”
점심 먹은 지 고작 2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배고프다.
고슬고슬한 흰 밥에 돼지고기 김치찌개 한 그릇 마음 편히 먹으면 여한이 없겠다.
하지만 흰 밥을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데다가 김치찌개처럼 짠 음식을 먹으면 혈압이 높아진다.
“하아.”
이대로 있다간 식욕을 못 참을 것 같아 방송을 켰다. 일이라도 해야 밥 생각이 덜 날 것 같다.
멍하니 있으니 시청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라이브 방송 평균 시청자는 200명 정도 되는데, 당뇨 판정 받은 이후로 오히려 시청자가 조금 늘었다.
방송을 켠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벌써 180명이 모였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못해 시청자 수가 줄어들 거라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반하
└아니 얼굴 왜 그랰ㅋㅋㅋ
└죽어가는데?ㅋㅋㅋㅋ
└아저씨 왜 그래 또 뭔 일 있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롱차를 쭉 들이켰다.
당뇨에 좋다고 해서 어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데, 콜라보단 못하지만 차갑게 마시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1)
먹부림이라면 자신 있던 내가 지금은 이 우롱차 한 잔에 기대고 있다.
“나 정말 괜찮을까? 아니, 안 괜찮아. 진짜 너무 힘들어.”
그제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도 못하는 요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올린 방법은 구워 먹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도 아니라 쉽게 생각했건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부친 두부는 내가 좋아하던 두부부침 맛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두부를 그냥 부치는 게 아니라 밀가루를 입혀주고 식용유도 제법 두른 뒤 맛소금도 넣어줘야 식당에서 먹던 맛이 난다고 한다.
밀가루는 혈당이 많이 오르니까 피해야 하고 기름과 소금이 많은 음식도 절제해야 하니 맛있는 두부부침을 먹기는 글렀다.
그나마 샐러드 가게에서 사 온 닭가슴살 샐러드가 먹을 만해서 사흘 내내 먹었더니 그마저도 물렸다.
식사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했던 내가 밥 먹는 행위를 지겹다고 생각할 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
“나 이렇게는 못 살아.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야.”
└진짜 힘든가 보네.
└그럴 만하지. 맨날 똑같은 것만 먹었잖아.
└외식 안 하고 일반식 먹으면 안 됨?
└햇반 하나 먹었다가 혈당 300 찍었음. 예민하게 고를 만하지. 나 같아도 겁나서 못 먹겠다.
└솔직히 아저씨가 요리를 너무 못하는 게 문제임.
└샐러드 말고 사 먹을 만한 건 없음?
└그러게. 요리야 천천히 배운다 해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지.
└식당 음식들이 대부분 짜고 달아서 찾기 쉽진 않을 듯.
└맞아. 요샌 오만 데 다 설탕 들어가더라. 김치찜이나 김치찌개, 제육볶음 이런 데 설탕 어마어마하게 많이 넣던데.
└반찬가게 같은 곳에 가서 먹을 거 없나 찾아 봐.
└나물 같은 건 괜찮지 않아?
“오늘 아침에 고구마 샐러드 배달시켜서 먹었거든? 닭가슴살 너무 물려서. 근데 밥 먹고 2시간 뒤에 혈당 재니까 371까지 오르는 거야.”
며칠 동안 탄수화물과 당을 거의 배제한 식단이 효과를 보였는지 공복혈당이 380에서 260까지 떨어졌었다.
목표치가 100이니까 갈 길이 한참 남았는데 그러다 보니 뭐 먹기만 하면 치솟는 혈당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고구마랑 드레싱 때문인 것 같더라. 고구마는 괜찮은 줄 알았거든? 다이어트할 때 고구마 먹는단 소릴 어디서 들었단 말이야. 근데 아니야. 혈당 진짜 많이 올라. 또 드레싱 성분표 보니까 거기에도 당류가 엄청 많더라고.”
└드레싱이 몸에 안 좋구나
└요새 프랜차이즈에서 나오는 샐러드는 다이어트식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ㅇㅇ 당류가 많아서 야채 먹는 의미가 없더라.
“반찬가게 좀 찾아볼까.”
며칠 동안 혈당을 확인하면서 내가 무엇을 먹어도 되고 먹으면 안 되는지 조금씩 구분이 되었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반찬류 중에서 고구마맛탕이나 연근조림 같은 단 음식은 피해야 하고, 소시지야채볶음처럼 소스가 많이 들어간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
그래도 나물 반찬이면 괜찮겠다 싶어서 집 근처 반찬가게를 찾던 중 시청자 중 한 명이 날벼락 같은 말을 꺼냈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나물에도 설탕 들어가.
└ㄹㅇ?
└ㅇㅇ 안 그러면 그 맛이 안 나옴. 어지간하면 직접 해 먹는 게 답임.
“……아니. 그럼 당뇨 환자들은 어떻게 살아? 아니, 나야 집에서 일하니까 직접 차려 먹는다고 쳐도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밖에서 밥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다.
도대체 먹을 게 없다.
사람이 살려면 당연히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 먹는 음식은 하나 같이 당 덩어리다.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가 600만 명이 넘어. 그 사람들 다들 밥 어떻게 먹냐고.”2)
└우리 아빤 저녁 드시고 3시간씩 걸으심.
└600만 명이나 된다고??
└아예 안 먹을 순 없으니까 먹고 운동하는 쪽으로 생각해 봐
└근데 다 아저씨처럼 먹어? 너무 극단적으로 보이는데. 환자식도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죠? 지금 내가 이상하게 먹는 거죠?”
└그니까 운동하라고.
└ㅇㅇ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는 듯
“근데 밥 먹고 3시간씩 어떻게 걸어. 30분 걷는 것도 나한텐 큰 마음 먹어야 하는데. 내 몸무게 알잖아요.”
당연히 운동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 걷는 행위를 언제 했는지 잊을 만큼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지라.
하루 30분을 걷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땀이 쏟아지고 무릎이 아파왔다.
병원에서도 살을 어느 정도 빼기 전까지는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지금은 활동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다.
“의사가 지금 무리해서 걸으면 무릎 관절 다치니까 조심하래. 당장은 못 그래. 체력도 안 되고.”
└맞네. 130㎏가 넘는데 무리하면 관절 나가지.
└당분간은 참아야겠네.
난 그냥 밥만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는 현실이 억울해 미칠 지경이다.
“난 그냥 맛있는 것만 먹으면 되는데. 왜 난 행복할 수 없어?”
└[반야식경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행복하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금융치료는 못 참지
└반야식경: ㅋㅋㅋ조금만 참아. 내일 맛있는 거 먹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