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57
치팅데이 57화
13. 신호(2)
2023년 3월 8일 수요일.
오전에 묵은지에게 프리미어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평소보다 일찍 짐꾼 헬스장으로 향했다.
“여.”
안으로 들어서니 차지찬이 사무실에서 손짓했다.
“안녕하세요, PD님.”
“어서 오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
보통 커피라든가 차 같은 걸 내주지 않나?
안상규 PD가 나와 차지찬, 본인 앞에 단백질 쉐이크를 가져다 주었다.
떨떠름하게 쉐이크를 마시는데 차지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 뚱할 거야?’ 조회 수 때문이다.
30만 회 정도를 기록하던 초창기에 비해서 현재는 15만 회를 기록하기도 빡빡하다.
짐꾼TV에서 가장 조회 수가 저조하고 오늘 일찍 모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유가 뭘까?”
차지찬이 물꼬를 텄다.
“과정이 긴 게 문제 같아요.”
안상규 PD가 답했다.
“저희야 찬용 씨가 얼마나 노력하고 변했는지 알지만, 외적인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으니까요.”
안상규 PD의 말도 일리가 있다.
‘언제까지 뚱할 거야?’ 같은 콘텐츠를 보는 목적은 before&after에 있다.
다이어트를 다뤘던 여러 TV 프로그램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에 달하는 다이어트 과정을 짧게 편집했다.
그 긴 시간을 30분 정도로 압축하고 나머지 30분은 다이어트를 하기 전과 달라진 모습 그리고 패널들의 반응으로 채우는 거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새로운 도전자를 내세운다.
프로그램 수명을 늘리기 위한 선택이고,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방법이다.
씁쓸하지만.
콘텐츠가 범람하는 현재, 시청자들이 느긋한 마음으로 과정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다음부터는 아예 인바디를 체크해서 보여주면 어떨까요?”
“주마다?”
“네.”
차지찬이 잠시 고민하다가 나를 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괜찮은 방법 같은데? 달리 뾰족한 수도 없고.”
“너 몸무게 공개되는데 괜찮냐고.”
상냥한 사람이다.
“상관 없어. 내가 변하지 않는 게 문제지.”
몸무게 공개야 종종 했다.
시청자들 앞에서 138㎏인 사실을 알렸을 때야 당황했지만, 이후에는 몸무게가 줄어드는 재미가 붙어 스스럼없이 알려왔다.
처음 10주 정도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빠졌으니까.
2월 중순에는 103㎏을 기록하며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10주 만에 35㎏을 감량해냈다.
나 자신도 너무나 대견스럽고 주변에서도 살이 빠졌다, 인상이 달라졌다 같은 말을 해왔기에 자존감이 차올랐다.
다만 최근 3주간 몸무게 변화가 없다.
조회 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도 그 즈음이고.
영상에 운동 제대로 하는 거 맞냐, 촬영할 때만 하는 거 아니냐, 뒤에서는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는 거 아니냐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흠.”
차지찬이 턱을 쓸었다.
“정체기란 말이지.”
“그치. 지금 의심하는 사람도 있던데 정체기 왔다는 게 알려지면 더 안 좋아지지 않을까.”
“식단은 계속 하고 있지?”
“응.”
“사실 정체기가 나쁜 건 아닌데.”
“왜?”
“디폴트 값을 재설정 하는 거니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사람 몸이 원래 몸무게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했잖아? 그걸 항상성이라고 하고.”
“응.”
“예전 네 몸의 디폴트 값이 138㎏이었으면 지금은 103㎏로 인식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야. 이 시기를 잘 넘기면 103㎏ 이상 잘 안 찐다는 말이지.”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운동 안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 다시 살 찌지 않을까? 난 평생 이러고 지내야 하나?
그런 생각을 아직 버리지 못했는데 원래 몸무게를 재설정한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근데 지금 네가 정말 정체기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야지.”
“몸무게가 안 빠져.”
“찌지도 않고?”
“응.”
“거울 볼 땐 어때? 좀 달라지는 것 같아?”
“모르겠어.”
“흠.”
차지찬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하다가 책상을 내려쳤다.
“좋아.”
뭔가 마음 먹은 모양이다.
“이대로 가자.”
“이대로 하자고? 조회 수 잘 안 나오는데?”
“다이어트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싶으니까. 좀 안 되더라도 이대로 이어가자.”
“…….”
“왜?”
“아니. 갑자기 형이 달라 보여서.”
“다르게 보이긴. 원래는 어땠는데.”
“조회 수에 미친놈.”
옛날에는 문어랑 잠수 대결하고 원숭이랑 나무 타기 시합하고 강아지와 달리기하던 사람이다.
그때에 비하면 많이 얌전해진 지금도 런지 봉사라며 한강 산책로를 런지로 이동하며 쓰레기를 줍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
안상규 PD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 자식들이.”
차지찬이 인상을 쓰며 무섭지도 않은 위협을 하길래 웃었다.
“아무튼 오늘은 정체기부터 확인하자. 같은 고민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상한 댓글 다는 놈들 헛소리하지 말라는 얘기도 될 테고.”
* * *
“언제까지 뚱할 거야!”
방송을 시작하자 차지찬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매번 겪지만 당할 때마다 놀라서 움츠리게 된다.
“요즘 댓글 보니까 찬용이가 뭐 운동을 제대로 안 하는 거 아니냐, 마음대로 먹고 있는 거 아니냐 같은 헛소리가 올라오던데. 오늘 내가 딱 확인시켜 줄게요. 반찬용, 자리로.”
“자리로.”
인바디 기계에 올라섰다.
“생방송으로 편집 하나 없이 보여줄 테니 잘 봐요.”
인바디를 측정하는 사이, 차지찬이 멘트를 이어갔다.
“얘 일주일에 헬스장 4번 와. 그때마다 내가 반 죽여 놓고. 근데 왜 몸무게에 큰 변화가 없을까? 처음에는 잘 빠지다가 말이지?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볼 겁니다.”
“와아.”
인바디 측정기에서 내려와 영혼 없이 환호했다.
“먼저 오해 많은 부분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정체기가 다 안 좋은 건 아니에요. 좋은 정체기가 있다. 그건 체지방량은 주는데 근육량이 늘어서 체중 변화가 없는 거예요.”
지방은 줄고 근육은 느니까 몸무게 총량은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체형을 봐야 해. 몸무게는 똑같아도 몸 선이 드러나고 더 날렵해지니까.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너 거울 봐도 달라진 거 없다고 했지?”
“응.”
“그럼 이 상태는 아니란 거고.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마침 안상규 PD가 결과지 2장을 출력해 전달해 주었다.
“어디 보자. 현재 몸무게 103.3㎏에 골격근량은 39.1㎏ 체지방량 42㎏.”
골격근량은 더럽게 안 는다.
분명 석 달 간 근력 운동을 꾸준히 했는데 고작 2㎏ 증가했다.
“그리고 이건 저번 주 인바디 결과. 몸무게 103.4㎏에 골격근량 39.1㎏, 체지방량 42.1㎏.”
차지찬이 카메라에 두 장의 인바디 결과지를 보여주었다.
“큰 차이는 없지만 체지방량은 0.1㎏ 줄었어. 근육량은 변화가 없고. 이런데도 얘 마음 상태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어? 못 해. 엄청 잘하고 있는 거야.”
차지찬이 결과지를 내려놓았다.
“아까 말했죠? 체지방이 줄고 근육량이 늘어서 몸무게가 똑같은 건 아주 훌륭한 상태라고. 근데 지금 얘는 근육량은 변하지 않아도 체지방은 소량 줄었단 말이야. 이 상태는 괜찮아. 그럼 뭐가 원인일까?”
“항상성?”
조금 전 회의 때 들은 말이 있어서 대답했다.
“그렇지. 지금 찬용이 몸은 현재 몸무게에 적응한 상태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변화를 줘야 또 한 번 몸무게가 줄어든다는 뜻이지.”
“어떻게?”
“식단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운동량을 조절할 수도 있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에 달렸지.”
“어. 일단 운동 부족은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너무 힘들거든.”
“요즘 좀 쉽게 하던데?”
“아니? 전혀.”
“너 예전엔 여기 기어서 나갔어. 근데 이제 걸어서 나가잖아.”
└운동이 부족했네
└ㅋㅋㅋㅋㅋㅋㅋ몰아가는 것 봐랔ㅋㅋ
└헬스장을 걸어서 나간다고?
└제정신이야?
└헬스장에 엘리베이터가 왜 있는데? 못 걸으니까 타고 가라고 만든 거 아니야.
“아니. 여러분, 진짜 이거 모함이에요. 아니야. 나 진자 너무 열심히 해서 죽을 것 같아. 청소할 힘도 없어서 지금 집이 개판이라니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식단은 잘하고 있어?”
“응. 형이 칼로리 생각하지 말고 잘 먹으라며.”
“…….”
“왜?”
“계속해 봐.”
“그래서 하루에 4,000칼로리 정도 먹어. 대신 탄수화물은 좀 적게 먹고 지방이랑 단백질 위주로. 키토제닉 식단이라고 좋더라.”
최근 두 달 동안 진행한 키토제닉 식단 덕분에 삶의 질이 말 못 할 정도로 상승했다.
살 찌는 근본 원인인 ‘당’ 즉, 포도당을 잔뜩 머금은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대신 단백질과 지방을 마음 놓고 먹는 방식인데.
덕분에 버터 넣고 구운 스테이크, 삼겹살, 방탄커피 같은 걸 마음껏 먹고 있다.
“아, 이거 봐. 문제가 있다니까.”
“왜?”
“야, 내가 저번에 뭐라고 말했어. 부족한 영양분이 있으면 안 된다니까?”
“근데 나 이걸로 살 많이 뺐는데? 나 말고도 경험자들 많고.”
“초반에는 효과가 있으니까. 저번에도 설명했지. 영양분이 부족하면 항상성 때문에 몸에서는 흡수율을 높인다고. 그래서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이 된다고.”
“근데 나 진짜 충분히 먹어. 고기도 600g씩 먹는데? 하루 섭취 칼로리 대충 계산하니까 4,000칼로리나 돼.”
“탄수화물은.”
“세 숟가락.”
“아이고 두야.”
차지찬이 이마를 짚었다.
“여러분, 이렇게 하면 망해요. 사람 몸은 칼로리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탄수화물이든 지방이든 단백질이든 어떤 영양소 하나가 부족하면, 흡수율을 올려요. 칼로리만 많이 섭취한다고 흡수율을 낮추지 않아요.”
몰랐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니까 몸에서는 흡수율을 자꾸 높이고. 그러니까 살이 잘 찌는 방향으로 몸이 바뀌지.”
“근데 그렇다고 탄수화물 먹으면 살이 도로 찌잖아. 살 찌기 쉬운 체질이 됐다며.”
“아니지. 먹으면 흡수율을 낮춘다니까?”
“그럼. 탄수화물 먹으라고? 그래도 살이 안 찐다고?”
“오히려 빠져. 그러기 위한 날이 치팅데이야.”
차지찬의 말이 머리를 때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먹는데 빠진다고?”
“내 말 들어. 먹으라고 또 미친 듯이 먹지 말고 비정제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어. 그럼 네 흡수율은 다시 낮아져서 다시 몸무게가 빠질 거야.”
“아니, 나 좀 이해가 안 돼.”
“뭐가?”
“하나. 내가 영양분을 충분히 먹어. 운동도 해. 그럼 섭취 칼로리랑 소모 칼로리가 똑같아지잖아?”
“그래.”
“근데 어떻게 살이 빠진다는 거야?”
“넌 매일 분열하니까.”
“……엉?”
“네 세포가 계속 분열해서 새 것으로 바뀌니까. 네 피부, 장기, 머리카락 이런 게 뭐 그냥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 같아?”
“아니지?”
“그래. 네 몸은 매 순간 세포 분열을 한단 말이야. 건강한 피부의 재생 주기는 28일이고 혈액은 3~4개월 뒤에는 전혀 다른 혈액으로 바뀌어. 그래서 네가 당화혈색소를 3~4개월에 한 번 검사 받는 거야.”
“…….”
“우리 몸은 1초에 380만 개의 세포를 교체해. 인체 전체 세포가 교체되는 시기는 평균 80일이고. 그 일이 일어나는 데 소모되는 거야. 지금까지 네가 축적해 온 살들이.”
“아.”
“평균 80일이라고 했지? 너 다이어트 시작한 지 지금 석 달 정도 됐나?”
“응.”
“석 달 전 너랑 지금 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또 석 달 뒤엔 또 달라지는 거지. 물론 연속적인 과정이지만 아무튼 뚱뚱한 몸을 교체하는 과정이라고.”
“그게 살 빠지는 과정이야?”
“그래. 야, 뭐 운동한다고 니 뱃살이 똥으로 나오냐?”
“아니지?”
“그래. 살을 뺀다는 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고 기존 세포가 죽어가는 결과물이야. 더 건강한 세포를 만들고, 세포가 분열할 때 몸에 축적된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래서 과밀집된 세포가 줄어드는 과정이라고.”
“오오오.”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