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59
치팅데이 59화
14. 찍먹(1)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 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목요일.
방송 시청자가 가장 많은 날이다.
평소에는 2~3,000명 정도 기록하지만 백반 토론을 진행하는 날 만큼은 평균 시청자가 1만 명이나 된다.
지금도 방송을 시작한 지 10분 밖에 안 되었는데 4,000명이 넘게 접속해 있다.
정말이지 효자가 따로 없다.
“오늘 주제는 오징어 VS 문어입니다. 토론의 전문성을 위해 오늘은 오징어께서 직접 방문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징어 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백우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내가 오징어라고?”
“네.”
“내가 왜 오징어야?”
“어, 왜 화를 내시죠? 오징어가 좋기 때문에 오징어 입장에 서신 것 아닌가요?”
백우진이 눈만 크게 뜨고 입을 닫았다.
└시작부터 가불기 들어가죸ㅋㅋㅋ
└아, 오징어 좋다매! 왜 말이 없어?
└ㅋ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
└토론 끝난 거 아님?
“맞습니다.”
채팅창 여론을 확인한 백우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다고요?”
“네.”
“그럼 본인이 오징어란 사실을 인정하시는 거죠?”
“네.”
“확실히 말씀해 주세요. 오징어임을 인정하십니까?”
“…….”
“역시 속으로는 오징어가 별로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아닌데?”
“그럼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오징어라고.”
백우진이 날 노려보다가 카메라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녕하세요. 오징어입니다.”
“흐흫흨흫.”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말을 잇지 못하자 백우진이 나를 째려보곤 입을 열었다.
“오징어가 어때서요? 사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오징어 좋아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자료 보여주세요.”
백우진이 가져온 사진 자료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패널나우에서 제작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튀김’인데 1위가 오징어 튀김이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 중 24.7%가 오징어 튀김을 선택했고, 2위는 19.1%가 선택한 새우 튀김, 3위 17%가 선택한 고구마 튀김이다.
“보시다시피 오징어 튀김이 압도적으로 1위죠. 여기서 더 설명을 해야 할까요?”
백우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죠. 이 설문에는 큰 맹점이 있습니다.”
“뭔데요?”
“후보군에 문어 튀김이 있었냐는 겁니다. 사실 문어는 워낙 고급 식재료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습니다. 특히나 보통 회나 무침으로 먹기 때문에 튀김 순위로 오징어가 더 맛있다고 주장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지네요.”
백우진이 눈을 깜빡였다.
“왜?”
“웬일로 정상적으로 말하나 싶어서. 어디 아파?”
└ㄹㅇㅋㅋ
└상식적으로 말하니까 이상하긴 함ㅋㅋㅋ
└저럴 사람이 아닌뎈ㅋㅋㅋ
“제가 언제는 이상한 말을 꺼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백우진과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못하다.
말꼬리 잡히기 전에 빨리 이야기를 풀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문어는 고급 식재료입니다. 한 마리에 몇 만 원은 줘야 먹을 수 있죠. 하지만 오징어는 어떻습니까? 한 마리에 몇 천 원 수준입니다.”
“아.”
눈치 챈 모양이지만 이미 늦었다.
“자본 시장에서 비싼 건 당연히 더 좋은 것을 뜻하죠. 설마 이번에도 부정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또ㅋㅋㅋㅋㅋㅋㅋㅋ
└뭐만 하면 북쪽으로 넘기려고 하넼ㅋㅋㅋㅋㅋ
└이건 부정 못 하짘ㅋㅋㅋㅋ
“……가격이 맛을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백우진이 잠깐 간격을 두었다가 반론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면 당황했는데, 그동안의 경험이 누적되었는지 제법 침착하다.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럿입니다. 희소성이나 환경적 요인도 있죠 반드시 더 맛있어서 비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더 맛있지도 않은데 비싼 돈을 주고 먹는 이유가 뭐죠?”
“그건 문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맛알못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아닠ㅋㅋㅋㅋ
└나 맛알못임?
└백우진 왤케 뻔뻔해ㅋㅋㅋㅋ
└저 정도로 뻔뻔하게 말하니가 얼척없네
└반찬용한테 얻어 맞다 보니까 자연스레 터득한듯ㅋㅋㅋ
“아니힛. 맛알못이라고요?”
“네. 반찬용 위원은 특히 그렇고요.”
뭔가 준비한 말이 있나 보다.
들어볼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징어는 사실 다이어트하는 사람, 당뇨병 환자에게 정말 좋은 음식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한데 피로회복을 돕는 타우린도 많이 포함되어 있죠. 혈당지수도 낮고요. 무엇보다 닭가슴살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진짜?”
너무 혹하는 말이라 되물었다.
오징어는 질리도록 먹었지만 닭가슴살보다야 천 배, 만 배 낫다.
“이렇게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걸 모르시니까 맛알못이라고 하는 거죠.”
└ㅇㅈ
└와 반찬용 배신감 든다. 저 몸을 해서 어떻게 오징어 좋은 줄 모르지?
└ㄹㅇ 먹방할 때마다 맛있다고 해도 살집 보고 믿었는데.
└맛알못이었네
“그리고 혹시 IMF를 아십니까?”
“알기야 하죠. 그때는 너무 어려서 잘은 모르지만.”
“원래 뜻은 국제통화기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외환 위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그건 왜.”
“외환 위기 사태 직전까지 우리나라 기업은 무분별하게 빚을 내 과잉 투자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문어발 경영이라고 하죠.”
“아.”
“문어발. 문어. 수많은 국민에게 상처를 준 문어를 어떻게 그리 뻔뻔하게 지지할 수 있으시죠?”
└미친 문어발ㅋㅋㅋㅋㅋㅋㅋㅋ
└반찬용 죽어
└우리 아버지도 그때 실직했음
└지금 문어발 경영 옹호하는 거임?
└와 반찬용 몰랐는데 진짜 악독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틈만 나면 지랄ㅋㅋㅋㅋㅋㅋㅋ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데 백우진이 한 번 더 공격해 왔다.
“가정이 무너지고. 기업이 무너지고. 국가가 무너진 IMF 사태. 무너진다는 말의 어원이 어디서 나온 줄 아십니까?”
“설마.”
“그렇습니다. 무너지다. 문어진다. 문어. 모두가 문어 때문입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어진닼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백우진 미쳤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대체 뭔 소리얔ㅋㅋㅋㅋㅋ
└와. 나 처음 알았음. 문어가 무너지다의 어원이었구나.
└ㅇㅇ 동사형임.
“너.”
“이래도 문어를 지지해?”
“아니. 너 왜 이렇게 망가졌어. 원래 안 이랬잖아. 이건, 내 방식이잖아.”
이렇게 더러운 음해 공갈 협박은 내 방식이다.
심지어 내가 오징어 입장이었을 때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이 돋는다.
“형 때문이야.”
백우진이 다부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
“마지막으로 오늘 토론을 마칠게.”
백우진이 오징어 해부도를 화면에 띄웠다.
“잘 모르시는 분이 많겠지만, 오징어는 놀랍게도 심장이 3개입니다.”
“갑자기 무슨.”
“여기서 잠시. 여러분, 영국 잉글랜드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 EPL 최고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무려 7년간 활약한 우리나라 선수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백우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2002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환상적인 골을 넣었던 그분을 기억하십니까?”
백우진이 해버지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보고 침을 삼켰다.
“그렇습니다. 박지성.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기에 대한민국에도 해외축구 중계가 활발해졌습니다. 해외 축구의 아버지. 해버지. 그의 선수시절 또다른 별명이 있었죠.”
백우진이 날 보며 말했다.
“두 개의 심장.”
“…….”
“마치 심장이 두 개나 있는 것처럼 뛰었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활동량과 체력을 칭송하기 위한 별명이었죠. 그렇게 심장은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이상하다.
“지금 혹시 오징어는 심장이 세 개니까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그럼 두 개밖에 없는 박지성 선수는 오징어보다 못하다는.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백우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게 아니라.”
걸렸다.
“말씀하시는 게 그렇잖아요! 지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인 박지성 님이 오징어보다 못하다는 말이잖아요!”
“아니야!”
“와. 진짜 난 아니야. 여러분, 저 이 사람 몰라요. 그동안은 계약 관계. 그치. 계약 관계였어요. 저는 이 사람이 하는 말하고는 전혀 관련 없으니까 전 여기서 빠질게요. 백우진 씨만 욕하세요. 저는 정말 해버지님. 박지성 님 존경합니다.”
“미쳤어? 내가 언제!”
“어? 어? 왜 만져요? 만지지 마세요.”
백우진이 의자에서 일어나 깍듯히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저 진짜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명해! 해명해!
└심하다 좀.
└그러게 해버지 건드는 건 선 넘었지
└백우진 그렇게 안 봤는데
└이것들아 그만 놀렼ㅋㅋㅋ 울겠닼ㅋㅋㅋ
“잘못했습니다. 오해가 있었는데 저 정말 아니에요. 오징어로서 말씀드리는데 오징어는 인간보다 하등합니다. 진짜 아니에요.”
“흐학핳핰항항.”
다들 알고 있다.
백우진이 평소대로 억지 논리를 펼쳤고, 내가 또 억지로 모함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청자들도 내 장단에 맞춰서 백우진을 놀릴 뿐인데 받아주는 사람이 이렇게 나와줘야 분위기가 즐겁게 흐른다.
백우진이 정색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이렇게 과장되게 반응해 준 덕에 다들 웃을 수 있다.
참 대단한 녀석이다.
“오징어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또 설득력이 있네요.”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싶어서 상황을 정리하니 백우진이 날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다.
“근데 그거 알아요?”
“뭐요.”
“문어도 심장 3개예요.”
“……아 진짜.”
백우진이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초반에 너무나 날카로워 조금 긴장했는데 토론 준비를 많이 못 한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강하게 나왔던 거고.
그러지 않아도 바빴는데 ‘백반따라’까지 시작해서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계속 이어가죠.”
백우진이 씨익씨익 숨을 몰아쉬며 날 노려본다.
“지금까지 제법 괜찮은 논리를 펴셨지만, 문어가 오징어보다 맛있다는 사실은 팩트입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물론 증거가 있죠. 백우진 위원은 혹시 술집에서 문어 안주를 시켜본 적 있습니까?”
“아니.”
시청자들 중에도 몇 없다.
“문어가 워낙 비싸다 보니까 술집에서는 보통 문어 대신 훔볼트오징어를 씁니다. 흔히 대왕오징어라고 하는데 다리가 문어랑 비슷해서 대체품으로 쓰고 있죠.”
아직도 씨익씨익거린다.
씨익 웃어주곤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즉, 오징어는 문어의 대체품이다. 하위호환이다. 이 말입니다.”
└근데 솔직히 맞긴 함ㅋㅋㅋ
└아니 내가 먹던 게 문어가 아니라 오징어였다고?
└진짜임?
└문어가 더 비싸니까 싼 거 쓰는 거지. 이건 진짜 문어가 이겼음.
└오늘 반찬용 논리 단단한데?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슬슬 쐐기를 박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백우진은 분이 안 풀렸는지 입술을 내밀고 뚱 하니 앉아 있는데, 녀석이 바빠서 오늘 토론을 깊게 준비 못 했단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철저하게 밟아줄 생각이다.
문어 사진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문어의 오른쪽 세 번째 다리가 생식기란 사실. 알고 계십니까?”
백우진이 미간을 찡그렸다.
채팅창에서도 물음표가 반복되어 올라온다.
“문어의 다리는 끝이 말려 있지만 생식기가 달린 다리 끝은 바로 뻗어 있습니다. 즉 문어의 고추는 다리만큼 길다는 뜻이죠.”
“……그게 뭐?”
“부럽지 않습니까?”
“뭔 소리야!”
“크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ㅋ
└쫌 부러운데?
└내가 살다살다 문어 생식기 사진을 보네
└아니 뭔 상관인뎈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부럽긴 함
“게다가 문어는 이 우람한 생식기를 아주 신사적이고 로맨틱하게 활용합니다. 이 생식기로 정자주머니를 떼 암컷 문어에게 주죠.”
채팅창에서 비명이 들리는 것 같다. 정자주머니를 떼어 준다는 말에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수컷이 마음에 들면 암컷은 정자주머니를 보관하다가 알을 낳기 전에 직접 수정합니다. 서로 합의된 아름다운 과정이죠.”
“그게 뭐.”
“하지만 오징어는 다릅니다. 일부 오징어는 암컷 몸통을 째서 그 상처에 정자를 쏩니다. 정말 야만적이지 않나요?”
“……아니 그건 말 그대로 일부잖아. 오징어 전체가 그러는 게 아니고.”
“혹시 그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옹호하시는 겁니까?”
└백우진 쓰레기네
└어떻게 그런 걸 옹호할 수 있지?
└그러는 거 아니야.
└우진아 오늘 실수 많이 한다.
└가만있어.
“게다가 문어는 다리가 8개뿐입니다.”
“그건 또 뭐! 어떻다고! 오징어는 10개야!”
“아니죠. 다리는 8개고 2개는 촉수입니다. 문어에게는 그런 변태적인 요소가 없죠.”
“뭐라고?”
“설마 촉수도 옹호하시는 겁니까? 본인에게 그런 이상성욕이 있다고 고백하시는 겁니깝.”
백우진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오늘 왜 이래?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