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60
치팅데이 60화
14. 찍먹(2)
백반토론을 승리로 마무리하고 집 근처 보리밥 식당을 찾았다.
양푼에 온갖 나물을 넣고 볶음쌈장으로 쓱쓱 비벼 먹으니 꿀맛이다.
“여기 괜찮다.”
대답이 없어 고개를 드니 백우진이 아직도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안 먹어?”
“……더럽고 야비한 사람하고 겸상하기 싫어.”
“그치. 더러운 사람하고 밥 먹고 싶은 사람 없지.”
백우진 앞에 놓인 양푼을 내 쪽으로 가져오려 하니, 녀석이 냅다 뺏어갔다.
신경질적으로 나물과 볶음쌈장을 넣고 비빈다.
배는 고픈가 보다.
“우진아.”
“왜.”
“어제 지찬이 형이랑 얘기하다가 요즘 사람들이 밥 차려 먹기 힘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래서?”
“건강해지기 힘든 환경이라고. 사 먹으려 해도 밥값도 비싸고.”
백우진이 벽에 걸린 메뉴판을 확인했다.
불과 작년에만 해도 7,000원이었던 보리밥 정식이 지금은 10,000원이나 한다.
이곳은 제육볶음도 주니까 크게 비싸단 생각은 안 드는데 국밥이고 김밥이고 전체적으로 인상된 것만은 사실이다.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만 원으로 점심 먹기 힘들대.”
“그러니까. 비싸기도 하고 솔직히 식당 밥이 건강에 그리 좋진 않잖아.”
“그래야 사 먹으니까. 그래도 여긴 괜찮은데?”
“찾아보면 있기야 하지. 나도 알아보니까 키토제닉 도시락을 팔더라고? 그거 먹는 중인데 지찬이 형이 건강에 안 좋다고 하더라?”
“그럼. 영양소가 불균형을 이루는데 좋을 리가. 형처럼 뚱뚱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역시 백우진이다.
굳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는 모양이다.
“일반인이 다이어트 목적으로 키토제닉 식단을 하면 지방이 산화돼서 두통, 탈수 증상, 어지럼증 등 부작용이 심해. 게다가 탄수화물이 부족하니 영양 불균형이 오고 결국 다이어트 효과도 없다고 봐야지.”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괜찮은 도시락 파는 곳이 있으면 어떨까 싶더라고. 가격도 적당하고 영양소도 균형을 이루고.”
“흐응.”
백우진이 제육볶음을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건 야채가 너무 없잖아. 대부분 가공육이고.”
“그렇지?”
“지금 있는 도시락 업체들도 야채 챙겨주는 곳은 거의 없고.”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
“영양학적 지식이 있고, 요리 잘하고, 돈 있고, 장사도 잘 아는 사람에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다 싶었지.”
백우진이 눈을 굴렸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는 모양이다.
“그 사람이 누군데?”
“여기 있잖아.”
백우진이 눈을 깜빡인다.
아직 눈치 못 챈 듯하다.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키니 미간을 모으고 되묻는다.
“나?”
“응. 너 장사 잘 알잖아. 예전에 몇 번 했잖아.”
“팝업 스토어 두 번 한 건데?”
“그래도 경험이 있으니까 나랑은 다를 거 아니야.”
“배운 게 있긴 해도…….”
“솔직히 말해 봐. 내 말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거 없었어? 걱정되는 부분이라든가.”
백우진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고민했다.
“한다고 치면. 배달도 해?”
“하면 좋지?”
“대행 업체 쓰면 수수료 장난 아니야. 배달료도 있어서 합리적인 가격 설정하기 힘들걸?”
“그럼 포장 전문으로 하면 되지. 회사 많은 곳에. 이 근처도 괜찮고.”
구로디지털단지라면 직장인도 많고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기는 싼 구내식당 많잖아. 굳이 도시락 사서 먹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 헬스장 근처는 어때?”
“헬스장?”
“몸 관리하려는 사람이 찾을 거 아니야. 그 사람들 상대로 장사하면 되지.”
“그렇게 사람 많은 곳이 있어?”
“왜 없어. 짐꾼.”
백우진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내가 알기로 짐꾼 헬스장 회원만 500명이다.
그들 중 20%인 100명만 확보해도 하루에 도시락 100개를 팔 수 있는 거다.
“근데 지찬이 형이 한대?”
“그 사람이 돈 많은 사람.”
“에이. 뭐야.”
백우진이 실망한 듯 다시 보리밥을 먹었다.
“왜? 괜찮잖아.”
“지찬이 형 한다고 하면 생각해 볼게. 그 전에는 절대 안 해.”
장사 해본 사람 영입 성공이다.
* * *
“뭐?”
도시락 사업을 하자는 말에 차지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해 봐. 회원들 개개인한테 건강 식단 짜주기 얼마나 힘들어? 차라리 오늘은 이거 드세요~ 하고 주는 게 낫지 않아?”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은지 차지찬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회원들도 힘들게 차려 먹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편하잖아. 거기다 다이어트에도 도움되면 더 바랄 게 있어?”
“……계속해 봐.”
“어제 우리 얘기했잖아. 매일 밥 차려 먹는 게 보통 일 아니라고. 회원들은 짐꾼 헬스장 다니면 도시락도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어서 좋더라. 운동도 하고 식단도 할 수 있더라. 그런 말 돌지 않겠어? 다른 헬스장이랑 차별되고 좋잖아.”
“요새 헬스장 안에서 샐러드 파는 데 많아.”
“근데 그게 일류 요리사가 만든 거라면?”
“일류 요리사?”
스마트폰을 꺼내 반야식경 유튜브를 틀었다.
“뭐야. 지승이 형 한대?”
“나랑 형 하면 지승이 형도 하지.”
“에이. 난 또. 아직 얘기도 안 했지?”
“생각해 봐. 주지승. 반찬용. 차지찬. 승용차. 일 같이 하라고 지어준 이름 같지 않아?”
차지찬이 헛웃음 지었다.
“됐고. 왔으니까 운동이나 하고 가.”
“얘기 마무리하고.”
“뭘 또.”
“우진이 팝업 스토어 한 거 알지?”
“어. 우진이도 한대?”
“그럼. 우진이한테 제일 먼저 물었지.”
“걘 뭐라는데?”
“처음엔 고민하다가 헬스장이랑 붙어서 하면 괜찮다고 하더라. 고정 고객 확보하면 가격도 싸게 맞출 수 있고 재료 회전도 용이할 거라고. 굳이 배달 안 해도 유지할 수 있고.”
차지찬이 팔짱을 낀 채 입을 씰룩인다.
내가 하자고 할 때는 반대하더니 백우진이 괜찮게 생각한다고 하니 태도가 이리 바뀐다.
“아이. 난 모르겠다. 지승이 형 한다고 하면 생각해 볼게.”
돈 많은 인간 포섭 성공이다.
* * *
“도시락?”
토요일.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을 마치고 주지승에게 도시락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지찬이 형 헬스장 1층에 만들면 좋을 것 같지 않아? 회원이 500명인데. 그중에 일부만 확보해도 회전은 충분히 될 거고.”
“그건 괜찮긴 한데.”
주지승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요리하는 거랑 장사하는 건 완전 다르거든.”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자재 떼 오는 일부터 매출입 관리, 홍보, 매장 관리 등등 보통 일이 아니야.”
“그거 다 해결되면?”
“그걸 누가 해?”
“우진이.”
“우진이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아니, 그럴 시간이 있긴 해?”
“걔 뭐든 잘하잖아. 유튜브도 하고 TV도 나가고 강의도 하고 웹소설도 쓰고 별짓 다 하는데 뭐. 팝업 스토어도 몇 번 해봤어.”
“잠깐 해보는 거랑 다르긴 한데.”
주지승이 입술을 꾹 닫았다.
생각이 깊어지면 나오는 버릇 같다.
“일단 요리는 내가 해야 하잖아?”
“그치. 나도 배워서 돕고. 진짜 제대로 할게.”
“그래. 뭐. 보조 하나 있으면 점심 장사는 어떻게 되겠지. 근데 저녁은 나도 방송해야 하니까 힘들어.”
“점심만 하자.”
“흐음.”
주지승이 신음하며 고민하던 차 최미카엘 PD가 차를 내왔다.
“난 괜찮아 보이는데요?”
“그렇죠?”
“네. 지금 우리도 콘텐츠 때문에 고민이고. 매장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겠어요?”
최미카엘의 말에 주지승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니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생각 같은데, 내가 보기엔 최미카엘의 말이 백번 옳다.
‘반찬을 만들어 주지용’이 괜찮은 조회 수를 기록하곤 있다지만, 애초에 그것 역시 콘텐츠가 부족했기에 복습 차원에서 만든 시리즈다.
과거에 비슷한 요리를 만들었지만, 요리 초보에게 건강한 요리를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콘텐츠 고갈에 따른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지찬이가 자리 내준대?”
“형이 하면 한대요. 어차피 자기 건물이고 공실도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있을 리 없다.
주지승이 맨들맨들한 두피를 쓸어넘기더니 콧김을 내뿜었다.
“좋아. 근데 진짜 장사는 해본 사람이 해야 하거든. 우진이 한다고 하면 할게.”
요리 잘하는 사람 납치 성공했다.
* * *
-정말? 지찬이 형이 한대?
차지찬이 공간을 내주겠단 소식을 전하니 백우진이 반색했다.
“그렇다니까.”
-와. 어떻게 설득했어?
“회원들 식단 짜주기 힘들잖아. 도시락 그냥 사 먹으라 하면 편하고. 회원들도 귀찮게 차려 먹지 않아도 믿고 먹을 수 있으면 좋다고 했지.”
-맞네. 형 진짜 머리 잘 돌아간다.
“그럼. 그러니까 토론만 하면 이기지.”
-아. 진짜.
“어때? 할 거지?”
-으음. 그럴까?
“그래. 어차피 지찬이 형 건물이니까 임대료도 아낄 수 있고. 해서 나쁠 것 없잖아.”
-그렇긴 해.
“야, 근데 지승이 형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재료 떼 오는 것도 중요하다더라.”
-당연하지. 재료가 신선해야 맛도 좋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너 뭐 아는 사람 없나 싶어서.”
-내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
“없어?”
-아, 있다.
“있어?”
-농사 유튜버인데 경기도에서 채소 이것저것 키우시던데?
“크게 해야 할 텐데. 재료를 매일 사야 하잖아.”
-에이. 개인이 농사 지은 걸로 어떻게 장사를 계속 해. 그분이 아는 사람을 소개 받아야지.
“가능해?”
-물어볼게. 그 형 거래처 있으니까 대강 파악될 거야.
“오케이. 좋아. 좋아.”
-그럼 언제 모여?
“다음주 일요일 괜찮아?”
-응. 그때 봐.
통화를 마치자마자 차지찬에게 전화했다.
-여~
“형, 지승이 형 한대.”
-엥? 진짜로?
“그렇다니까.”
-그 형 방송은 어쩌고? 장사하면 방송할 시간 없잖아.
“안 그래도 방송 콘텐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매장 영업하면 할 것도 많이 생기고 좋을 것 같다고 하던데?”
-맞네. 그런 점은 확실히 있겠다. 나도 헬스장 열고 할 거 많아졌으니까.
“맞지. 맞지. 그래서 형 괜찮으면 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 이거 진짜 고민되게 하네.
“형, 생각해 봐. 그냥 요리사가 와도 괜찮은 조건이잖아. 어차피 남아 있는 방 활용할 수 있고. 회원들한테 70만 유튜버가 만들어 주는 도시락 먹으라고 하면, 헬스장 홍보도 되지 않겠어?”
-그렇기야 한데. 쓰읍. 그럼 뭐, 해볼까?
“그렇게 나와야지.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괜찮아?”
-어. 뭐.
“그럼 지승이 형, 우진이 다 모여서 얘기해 보자.”
-그래. 아니, 근데 진짜 한다고?
“천하의 차지찬이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됐어? 열정 딱 쥐고! 어? 싸나이답게! 어?”
-미친놈. 알았어, 인마. 장소 찍어서 보내.
“오케이~”
전화를 끊고 곧장 주지승을 검색했다.
-어, 찬용아.
“형, 우진이 한대.”
-그래? 아니, 바쁘지 않나? 백반따라 정규 편성되면 시간이 없을 텐데?
“걔 완전 일 중독이야. 재밌는 일 있다고 하면 무조건 얼굴부터 들이밀고.”
-하긴. 그래 보이긴 하더라.
궁금한 일은 못 참고, 신기한 일은 일단 시작부터 해보는 녀석의 성격은 굳이 오래 함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진이 발이 넓잖아. 팝업 스토어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대.”
-물건 떼 오는 게 제일 중요한데.
“우진이가 아는 사람 연결해 준대. 농사 유튜버인데 거래처가 있다네?”
-아, 그럼 완벽하지. 얼굴 내놓고 장사하는 유튜버면 뭐 신용도 있겠고.
“그럼 하는 거지?”
-와. 이거 진짜 이렇게 번개에 콩 볶아 먹는 게 맞나?
“모든 기회는 갑작스레 옵니다. 형님.”
-크핳핫하! 그래! 하자.
“그렇게 나와야지.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같이 볼 수 있어?”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