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64
치팅데이 64화
15. 진주(1)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았지?”
“몰라. 자기네 밥줄 달린 일인데 뭔들 못 하겠어.”
백우진이 어깨와 엉덩이를 씰룩이며 좋아했다.
묵은지는 백우진을 보며 피식 웃고는 내게 핸드폰을 넘겼다.
박상철 PD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니 묵은지가 전달한 그대로 적혀 있었다.
“아마 정확한 시청률은 알지 못할 겁니다.”
묵은지가 말을 꺼냈다.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TV 시청률 집계는 표본 조사로 이루어집니다. 각 가구의 동의를 얻어서 조사 기기를 설치하고 이를 정해진 시간에 추합하여 집계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알기로 닐슨코리아는 새벽 2시로 알고 있습니다.”
새벽 2시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그럼 어떻게 알아요?”
“최근 방송국에서 시청률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화제성입니다. SNS나 포털 사이트, 커뮤니티 등지에 관련 내용이 얼마나 올라오는지 확인합니다.”
고개를 돌리니 마침 백우진도 날 보았다.
우리 글이 올라 오지 않아서 난감해하던 차였다.
“8시 45분부터 관련 키워드가 얼마나 검색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강릉 맛집, 강릉 칼국수, 장칼국수, 짬뽕빵 등 여러 키워드의 검색량이 급격히 상승했고 이를 통해 시청률이 잘 나왔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사라져서 깜빡했는데.
키워드 검색량을 확인할 방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네이버 데이터랩이라든가 네이버 검색 광고를 활용하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방법이 분명 또 있을 거다.
“우리가 아니라 음식 쪽으로 어필되었구나.”
백우진이 스마트폰을 보다가 내게도 보여주었다.
과연 백우진, 우지니, 반찬가게, 반찬용으로 검색하면 얼마 나오지 않던 글이 강릉과 장칼국수, 짬뽕빵 등으로 검색하니 많이 떴다.
“시간대를 보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시청하셨을 겁니다. 두 분 보다는 가족과 함께 여행할 장소,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는 게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기쁨을 표현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두 손을 번쩍 들자 백우진도 따라 했고, 묵은지를 가운데 두고 사무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 * *
월요일 아침 6시에 WTV 사옥으로 향했다.
배고프고 졸립고 온몸이 쑤셨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백반따라 2회, 전주편이 방영되니 여행지, 맛집뿐만 아니라 나와 백우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회와 2회 시청률은 각각 9.1%, 9.2%로 뉴스와 드라마 사이라는 황금시간대의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1시간 편성을 했다면 이렇게 좋은 시간을 배정받지 못했을 텐데.
유튜브 콘셉트로 짧은 영상을 만들어 활용하겠다는 박상철 PD의 발상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이다.
다음주에는 유튜브에도 업로드된다고 하니 조회 수가 얼마나 나올지 기대된다.
“안녕하세요.”
방송국 앞에 도착하니 박상철 PD와 제작진이 미리 세팅을 마쳐놓고 있었다.
이른 시간부터 일하느라 힘들 텐데 나도 그들도 표정이 밝다.
“이거 드세요.”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박상철 PD에게 권했다.
“이게 뭐예요?”
“아침부터 식사도 못 하셨잖아요. 이거라도 드시라고요. 작가님도, 감독님도. 아, 하나 더 드릴까요? 괜찮아요. 많이 사 왔어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굶지는 말아야 한다.
나도 아침부터 일찍 나와 허기가 져 한 줄 먹으려는데 박상철 PD가 막아섰다.
“잠깐만요.”
“네?”
“찬용 씨는 드시지 마세요.”
“……네?”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드셔야 하니까. 배고플 때 드시는 게 그림도 잘 나올 거고요.”
“아니. PD님, 저 어제 6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12시간 동안 기아 상태라고요.”
“좋네요. 이건 저희가 먹을게요.”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제작진이 인사부터 했다. 내가 사 온 김밥을 입에 잔뜩 쑤셔넣은 채 말이다.
“……이거 제가 사 온 건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저들끼리 먹는다.
마요네즈랑 섞은 참치를 깻잎으로 두르고. 계란, 당근, 단무지와 함께 김과 밥으로 만 참치김밥을 맛있게도 먹는다.
“좋은 아침!”
백우진이 도착했다.
“어? 김밥이네? 형은 안 먹어?”
백우진이 내게 물으며 참치김밥에 손을 뻗자 박상철이 막아섰다.
“안 돼. 안 돼.”
“왜? 나도 배고파.”
“오늘 많이 먹어야 하니까 참아. 이건 찬용 씨가 우리 먹으라고 사 주신 거야.”
“형, 나는? 내 건 없어?”
“내 것도 없어…….”
황망히 참치김밥을 바라보고 있자 박상철 PD가 입 주변을 닦았다.
“시작하죠.”
나도 백우진도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으니 박상철 PD가 자기 멋대로 방송을 시작했다.
“백반따라가 드디어 정규편성이 되었습니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김밥을 뺏어 갔어요.”
“김밥도 못 먹게 하더라고요.”
백우진과 박상철 PD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런. 큰일이네요. 그럼 다음 여행지부터 말씀드릴게요. 두 분 혹시 냉면 좋아하시나요?”
“김밥 좋아해요.”
“참치김밥.”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잠깐! 이게 대체 무슨 대화야! 김밥 달라고요! 김밥! 배고파!”
박상철 PD가 끝끝내 우리를 무시하자 백우진이 폭발했다.
“자, 자.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을 거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얼마나요!”
“냉면 얘기하는 거 보니까 평양냉면?”
“평양을 간다고?”
백우진의 눈이 땡그랗게 됐다.
“평양 아니고. 함흥도 아닙니다. 냉면으로 유명한 곳이 또 있는데요.”
“진주!”
백우진과 동시에 외쳤다.
백반토론 ‘물냉 VS 비냉’ 편을 준비하면서 냉면에 대해서는 꽤 열심히 공부했는데 냉면이라고 하면 평양, 함흥, 진주가 유명하다.
“잘 아시네요. 오늘 여행지는 진주입니다.”
진주라면 가 보고 싶은 곳이 상당히 많다.
차지찬이 6월달에 국토대장정을 하자고 하면서 전국 각지의 맛집으로 날 유혹했는데.
그중 진주에 있는 맛집이 상당히 많았다.
“잠깐.”
순간 상상하기 싫은 일이 떠올랐다.
“설마 진주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고 가라는 건 아니죠?”
백우진이 내 말을 듣고는 입을 쩍 벌렸다.
“설마.”
“맞습니다. 가는 길에 주무셔도 괜찮아요. 금방 가요.”
“3시간이 넘어요! 8시 22분 KTX 타고 가도 12시야!”
백우진이 버럭 소리쳤다.
마음이야 백번 공감하지만 도대체 KTX 시간표를 왜 외우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아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 오늘 예산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멀리 가기도 하고 정규편성이 된 기념으로 넉넉히 넣었습니다.”
박상철 PD가 종이 봉투를 꺼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펄쩍펄쩍 뛰던 백우진도 얌전해질 만큼 두툼하다.
봉투를 받고 열어보자마자 아이 소리가 나왔다.
천원권이다.
“상철이 형! 진짜 이렇게 나올 거야? 이거 얼만데?”
“무려 20만 원입니다.”
무려라는 단어가 묘하게 열받는다.
“저번부터 왜 이래? 진주까지 가는 KTX가 인터넷 특가로 편도 57,200원이야! 둘이 왕복할 돈도 안 되잖아!”
백우진이 발을 구르며 앙탈을 부린다.
김밥 사태도 그렇고 이거 노조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박상철 PD가 얄밉게 받아쳤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따로 준비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정규 편성 기념으로 차량이 지원됩니다. 기름도 가득 채웠으니 운전해서 가시면 돼요.”
“톨비도 내주는 거죠?”
“하이패스 달려 있습니다.”
교통비가 들지 않으니 확실히 괜찮은 조건이다.
“차는 어디 있어요?”
“바로 저깁니다.”
박상철 PD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따라 옮기니 빨간색 캐스퍼가 뽈뽈뽈 다가왔다.
“귀엽다.”
백우진이 차 외관을 살피길래 조수석 문을 열었다.
“형, 왜 당연히 거기로 들어가? 가위바위보 해.”
“나 운전 못 해.”
“어?”
“못 해.”
“아니. 진짜로?”
“응.”
백우진이 입을 벌린 채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박상철 PD에게 제안했다.
“형, 우리 차 필요 없어. 기차 타고 가자. 10만 원만 더 주라. 응?”
“안 돼요.”
“제발. 응?”
“안 됩니다.”
“왜 다들 날 괴롭히기만 해?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 출발해야 점심 쯤에 도착할 수 있어요.”
“차로 가면 얼마나 걸리는데?”
“저희가 갈 때는 5시간 좀 덜 걸렸어요.”
“그때까지 굶으라는 소리잖아! 이거 나 폭로할 거야. 직장내 괴롭힘으로 폭로할 거라고!”
“좋아할걸?”
“형이 그러면 안 되지! 같이 싸워야지! 당장 내려! 내리라고!”
“난 불만 없어. 안전운전 부탁해.”
“아, 진짜!”
정규편성이 되면서 차량 지원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통지 받았고 심지어 저번 주에 렌트카 보험도 들었다.
알면서 분량을 뽑기 위해 저러는 거다.
나도 장단을 맞춰 주었지만 우진이 녀석 연기가 많이 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면안대를 챙기고 왔을 텐데 아쉽다.
* * *
“일어나.”
“끄응.”
“일어나. 돼지야.”
작가가 빌려준 수면안대를 벗으니 눈이 부시다.
정신을 차리자 백우진이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벌써 도착했어?”
“어떻게 한 번을 안 깨냐? 코는 또 얼마나 골고. 네비 한 번 안 봐주고.”
화가 잔뜩 난 모양이다.
“편집하느라 밤 샜어. 어우. 피곤해.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진주지.”
“바로 식당으로 가지. 배고픈데.”
표정을 보니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만 같다.
놀리는 건 이쯤하는 게 좋을 듯싶다.
“올라갈 땐 내가 할게.”
“어?”
“올라갈 땐 내가 한다고.”
“운전 못 한다며.”
“피곤해서 그랬지.”
“뭐?”
“나 아까 운전대 잡았으면 우리 둘 다 지금 천국에서 만났어. 고생했다. 고마워아아아악!”
백우진을 끌어안고 등을 툭툭 치니 녀석이 어깨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