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68
치팅데이 68화
16. 첫 광고(2)
영상 업로드 시간을 겨우 맞춘 뒤.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과 디스코드를 통해서 내일 광고를 어떻게 진행할지 의논했다.
개인방송까지 소화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아침이 밝았다.
한숨 더 자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은데 오늘 점심에는 저당밥솥 업체 쿡쿡이와 미팅이 잡혀 있고, 저녁에는 ‘언제까지 뚱할 거야?’ 방송을 해야 한다.
지금 말고는 편집할 시간이 없다.
사무실을 낸 뒤로 ‘일은 사무실, 집에서는 휴식만’이라는 원칙을 두었기에 대강 준비하고 밖으로 나섰다.
버스에 자리가 있는 덕에 잠시나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곧장 컴퓨터를 켰다.
11시까지는 마쳐야 미팅 시작하기 전에 준비한 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건물 1층 카페에서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켜고 일을 시작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헹군 컵에 받은 물까지 다 마실 즈음 영상이 완성되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13분이다.
잠시 숨 좀 돌리고 광고 진행 방식과 협상 목표를 확인할 생각이다.
의자에 등을 파묻으니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지 싶어서 일어나니 묵은지가 서 있다.
“어?”
“안녕하십니까.”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미팅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어서 조금 일찍 왔습니다.”
“말씀을 하시지. 키도 없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했어요.”
“1층에서 하려고 했는데 카페 직원이 대표님 다녀가셨다고 해서 올라왔습니다.”
“아.”
오전에 출근을 못 하게 하니까 1층에서 일하다가 올라왔던 모양이다.
묘하게 출근 시간이 잘 맞아서 신기해했는데 인제 보니 1층에서 날 보고 따라 올라오는 모양이다.
정말 지독한 워커홀릭이다.
“PD님.”
“네.”
“제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아실 거라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이제 키를 넘겨주십시오. 불편합니다.”
“그래요.”
너무나 당연히 말하기에 무심코 키를 넘겨줄 뻔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오전에 출근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추가근무수당 때문이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해야죠.”
오늘이야말로 확실히 말해야겠다.
“당연히 드려야 할 돈이에요.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5인 미만 사업장이니 추가 임금 없이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해도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말씀드렸잖아요. 법이 그래도 우리 마음만은 대기업처럼 생각하자고.”
“…….”
잠시 말이 없어졌다.
서로 해야 할 말이 바뀐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근데 저 지금 돈이 없어요. 그러니까 추가 근무할 생각 절대 절대 하지 마세요.”
“제가 괜찮습니다.”
“제가 안 괜찮아요. PD님처럼 유능한 사람 데려다가 무리한 일 시킬 생각 추호도 없어요. PD님은 거위라고요.”
묵은지의 동공이 흔들렸다.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 아시죠? 그냥 건강히 키우면 매일매일 황금알을 낳을 텐데 욕심 내서 배 가른 멍청한 사람 이야기잖아요. 전 그런 사람 되기 싫어요.”
“저는.”
“그러니까 PD님이 일찍 나오고 오래 근무하는 게 절 못되고 멍청하고 흉악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예요.”
“…….”
“우리, 이 회사 오랫동안 건강히 운영해야 하잖아요. 이건 우리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묵은지가 날 빤히 바라본다.
어떻게 반박할지 고민하는 듯싶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더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요?”
“12시까지 시간을 떼우고 오려고 합니다.”
“어디서요?”
“카페가 있습니다.”
카페에서 뭘 먹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괜한 질문인 것 같아서 멍하니 바라보니 묵은지가 알아서 답해주었다.
“생수를 취급하는 곳이라 애용 중입니다.”
“세상에.”
자바칩 프라푸치노나 돌체라떼를 두고 생수 따위를 누가 사 먹냐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여기 있었다.
“돈 아깝잖아요.”
묵은지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처음으로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지 명확히 얘기해 주십시오.”
“일단 이쪽에 앉으시고요. 목이 마르시면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마시세요. 그런 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유튜브라도 보세요. 아주 편한 자세로.”
묵은지가 본인 책상 앞에 앉아서 유튜브를 틀었다.
반찬가게다.
“이건 제 채널이잖아요.”
묵은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쉬고 싶으니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이건 일인데…….”
묵은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보길래 머쓱해졌다.
* * *
쉬고 싶다고 말하자 대표님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영상 조회 수 추이를 확인했다.
콘텐츠마다 조회 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평균 조회 수가 1~2만에 그쳤던 반찬가게는 불과 4달 만에 평균 조회 수 30만을 넘기는 대형 채널로 성장했다.
특히 박상철 PD, 백우진과 함께하는 백반따라가 방영하면서 그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조회 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구독까지 이어지는 비율도 양호하여 이 추세를 이어간다면 100만 구독자를 기대해 볼 수 있을 듯싶다.
꾸준히 성장해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하기도 하지만.
어느 시점을 계기로 성장세가 가속해 달성하는 부류도 있다.
반찬가게가 그런 경우다.
작년 12월과 1월 즈음 차지찬, 백우진, 주지승에게 빌붙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잠시 올라오긴 했으나.
여러 채널을 통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어 논란을 불식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계해야 할 일은 둘뿐이다.
하나는 과거 행적, 말실수, 범죄 행위 같은 대표님의 언행이고 둘은 피로다.
현재 반찬가게는 일주일에 다섯 개의 영상을 업로드한다.
꾸준한 업로드 주기 덕에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단 한 명의 편집자가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기도 하다.
하물며 그것이 방송을 진행하는 본인이니 지난 몇 달간 쌓인 피로가 상당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체력이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버텼지만 언제 체력과 정신이 무너질지는 대표님 본인도 모른다.
이러다 어느 시점에 번아웃이 오면 반찬가게에서 진행되던 모든 콘텐츠가 멈추게 된다.
대표님의 평소 모습을 보면 언행보다는 이쪽이 더 우려된다.
그런 상황을 반드시 막아야 하기에 어떻게든 역할을 대신하려 하는데, 대표님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
슬쩍 일어나 유리벽 너머 대표님을 살폈다. 서류를 검토하는 퀭한 얼굴과 책상 근처에 놓인 커피 잔들이 확신을 준다.
내일이고 모레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미팅도 혼자 처리하고 싶으나.
궤변 같으면서도 묘하게 논리적인 주장과 완고한 성격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다.
‘우리, 이 회사 오랫동안 건강히 운영해야 하잖아요. 이건 우리 회사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오랫동안 건강히 운영하자고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본인은 챙기지 않다니.
정말 답답한 사람이다.
“……우리 회사.”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차, 대표님이 기지개를 켜다가 이쪽을 향해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고 있어요?”
대표님이 문을 열고 나와 물었다.
“약물을 불법이고 최면 같은 건 해본 적 없습니다. 목 뒤를 치는 기술도 없어서 난감해하던 차였습니다.”
“무슨 소리에요?”
“대표님을 재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다.
“농담입니다.”
“아. 하핳. 놀랐잖아요. 그런 표정으로 말하면 농담처럼 안 들려요.”
“들켰군요.”
장난이 과했는지 대표님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날 경계한다.
‘이 회사가 네 거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말이 많아?’
홍당무를 나오기 전 팀장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불합리한 말로 여겼지만 퇴사 후 자꾸만 곱씹게 되었다.
어쩌면 팀장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따지고 보면 내가 홍당무의 대표는 아니니까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걷는 것을 알면서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인데 그 결과 첫 직장, 5년 동안 충실했던 그곳을 나와야 했다.
내가 틀렸던 걸까.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걸까.
그 고민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님.”
“잠깐.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말해요.”
“우리 회사.”
“네?”
“……우리 회사 오랫동안 건강히 운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잡이를 잡으니 단단히 고정되어 열리지 않는다.
“왜 잡고 계십니까?”
“PD님이 이상하니까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우리 회사를 위한 일입니다.”
“그게 뭔데요!”
아까 한 농담 때문에 놀란 모양이다.
“농담입니다. 해치지 않으니 힘 푸십시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가 농담이라는 거예요.”
“제 힘으로는 대표님을 때려눕힐 수 없습니다.”
“재운다는 건요? 그건 무슨 말인데요.”
“말 그대로 재운다는 뜻입니다.”
대표님의 얼굴이 기이하게 구겨졌다. 내 눈치를 보면서 책상을 힐끔 바라보는데 핸드폰을 찾는 듯하다.
“일단 거기서 얘기해도 다 들려요. 할 말 있으면 그냥 해요.”
손잡이를 놓았다.
“대표님이 쓰러지면 반찬가게의 모든 일이 멈춥니다. 제가 대본을 쓰는 일도 자료를 찾고 채널 관리를 하는 일도, 대표님 대신 외부와 연락하고 편집 공부를 하고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잡무를 보는 일 모두 대표님이 방송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그렇죠?”
“그러니 회사를 건강하고 오래 운영하시려면 오늘 미팅은 제게 맡겨주시고 귀가하셔서 쉬십시오. 미팅 끝나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그건.”
“맡겨주십시오.”
대표님이 손잡이를 놓았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어차피 오늘 오후 방송도 해야 하잖아요.”
“오늘은 쉬셔야 합니다. 저번 주 내내 일하셨고 일요일과 어제는 잠도 거의 못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대표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그렇게 마음처럼 쉽게 안 돼요. 방송 주기 틀어지면 시청자 주는 거 아시잖아요.”
“꼭 방송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저 말고 할 사람 없잖아요.”
“…….”
“제가 해야 해요. 잠깐이라도.”
한 회사를 짊어진 책임감일까.
이 이상 얘기해도 소용없을 듯싶다.
“슬슬 시간 됐네요. 저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시계를 확인하니 12시 10분 전이다.
대표님 피로를 최대한 줄이고자 쿡쿡이 측에 방문을 청했는데, 이런 미봉책으로는 부족하다.
“대표님.”
“흐아아.”
수건을 챙겨 손을 뻗으니 대표님이 팔을 휘적이며 얼굴을 가렸다.
조금 재밌다.
“아, 수건. 고마워요.”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리액션을 연구하니 방송에서 재밌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