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70
치팅데이 70화
17. 메뉴 개발(1)
당장에라도 묵은지에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건너편에 앉아 있는 김용우 대리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혹시나 쿡쿡이가 이 광고를 포기하게 된다면 내게도 도시락 사업에도 큰 타격이다.
초조함을 애써 감추고 기다리니 곧 박석호 팀장이 돌아왔다.
“우선 한 달 동안 진행한다는 시간 제한이 마음에 걸립니다.”
역시 무리한 조건이었던 듯.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박석호 팀장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기 시작했다.
“단발성 홍보라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고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묵은지가 나섰다.
“영업의 기본은 고객에게 물건을 사용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다.
“CR1은 분명 효과가 입증된 양품이지만 출시된 지 얼마 안 되어 사용해 본 사람들이 적습니다. 저희의 도시락 사업은 다이어트를 원하는 대규모 집단에 CR1을 경험시키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으음.”
박석호 팀장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듣기에는 혹할 만한 내용인데 아무래도 광고비 단가 책정을 하는 자리라 신중하게 대응하는 듯 보인다.
“또 현재 제품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리뷰입니다. 실제로 제품을 사용한 사람들의 리뷰가 신뢰를 주니까요. 아마 쿡쿡이가 가장 바라는 요소도 고객의 경험담이리라 생각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석호와 김용우 모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자사 제품에 확신이 있으니, 사람들이 CR1의 밥맛만 보면 좋은 이야기가 퍼지는 버즈, 즉 입소문이 퍼지리라 믿는 것이다.
묵은지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저희는 도시락을 구매하신 분들에게 설문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밥맛은 어떠했냐는 질문도 포함할 겁니다. 그 내용을 업체 홍보에 사용하신다면 도움이 됩니다.”
“스토어 리뷰로 이어지지 않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김용우 대리가 딴지를 걸었다.
“저당밥솥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다이어트든 당뇨병이든 간절한 분들이 많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렇죠.”
“유튜브, 구글, 네이버, 다음 등 어디든 쉽게 접속해서 검색해 볼 수 있는 환경. 간절한 마음. 고객은 똑똑하고 합리적입니다. 효과가 확실하다는 내용이 유튜브 등지를 통해 입증된다면 반드시 알아볼 겁니다.”
김용우 대리가 입을 다물었다.
묵은지는 박석호 팀장을 보며 말했다.
“더군다나 짐꾼, 우지니, 반야식경, 반찬가게 채널의 구독자의 합은 500만 명입니다. 중복 구독자를 고려하더라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쿡쿡이 측에 우리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졌는지 다시금 확인시켰다.
고객은 멍청하지 않다.
합리적이고 정보력도 갖추었으니 굳이 스토어 리뷰가 달리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CR1으로 지은 밥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쿡쿡이가 만약 정말로 본인들의 제품에 자신이 있다면 흔쾌히 수락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또한 짐꾼, 반야식경, 반찬가게 모두 건강 정보를 다루는 채널입니다. 특히 우지니는 이런 일에 관해서는 국내 유튜버 중 손에 꼽힙니다. 이들 네 명이 진행하는 일에 함께하시는 데 투자하신다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보시게 됩니다.”
묵은지의 화법은 아주 효과적이다.
납득 가능한 내용과 그를 뒷받침해 주는 서류, 마지막으로 확신에 찬 단호한 태도 모두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 사람이 왜 홍당무에서 가장 많은 계약을 따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억 원은 결코 무리한 금액이 아닙니다.”
박석호 팀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허허 하고 웃었다.
“이거 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네요. 허허. 김 대리는 어때.”
“같은 생각입니다.”
박석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진행하지요.”
반찬가게 개인 채널 광고 건으로 3,000만 원.
도시락 사업 광고 건으로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 내게 각각 5,000만 원이 지급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 * *
계약을 마친 뒤 점심이라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내가 밖에서 뭘 먹을 처지가 아니고 묵은지도 괜히 식사자리에 함께하기 부담스러울 것 같아 양해를 구했다.
쿡쿡이 측에서도 이해해 주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석호, 김용우가 사무실을 나섰다.
잠시 눈치를 보다가 슬쩍 문을 열어 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돌아와 소리쳤다.
“와아아아아!”
묵은지가 화들짝 놀라 움찔했지만 너무나 기뻐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목을 잡고 들어올리며 방방 뛰는데 결국 묵은지도 씩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진짜. 진짜 대단했어요. 다 PD님 덕분이에요. 어떻게 거기서 그런.”
가슴이 벅차올라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대표님과 친구분들 덕입니다.”
오늘의 MVP는 정작 차분했다.
“아니에요. 오늘 협상만큼은 PD님 덕분이에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거기서 2억을 불러요? 전 생각도 못 했어요.”
“찾아 보니 저당밥솥 제품을 오래 전부터 개발해 왔는데 시장 반응이 없었습니다. 해서 이번 CR1 개발에 사운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사 제품에 자신이 있고 공을 들였으니 홍보도 신경 쓰리라 판단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 재무상태를 확인했는데 깨끗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재정이 튼튼하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싶은 만큼 홍보비용을 넉넉히 책정했을 겁니다.”
재무상태까지 확인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연락하진 않을 테고 고르고 골라 대표님께 연락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또 홍보비용이 대체로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가 MCN이나 매니지먼트를 통한 단가표입니다.”
“아.”
“짐꾼 정도의 규모라면 이런 광고를 진행할 시 기본 1억 원은 듭니다. 우지니어스 채널은 5,000만 원 이상으로 책정되고 반야식경과 반찬가게는 3,000 정도로 평가 받습니다.”
어디까지나 홍당무 엔터테인먼트 기준이다.
“근데 지승이 형하고 전 왜 차이가 없어요?”
“구독자는 40만 명 이상 차이가 나지만 평균 영상 조회 수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구독자 수로 광고비를 책정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중요한 건 조회 수라는 사실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2억 원이라는 광고비는 애초에 쿡쿡이 측에서도 예상하던 액수입니다. 1억 원으로 부른 것은 어디까지나 협상의 여지를 두기 위함이었습니다.”
“아.”
“박석호 팀장은 제가 쿡쿡이의 예상치를 알고 있다고 이해했을 겁니다.”
“바로 2억을 불렀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 큰 문제 없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모두 대표님과 친구분들이 함께 진행하는 일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사실을 언급했을 뿐입니다.”
“전혀요. 너무 대단했어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묵은지가 고개를 숙이고는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계약을 훌륭히 이끌어냈음에도 어떻게 저리 차분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좀 더 기뻐하고 싶지만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게 우선이다.
방으로 들어와 디스코드를 켜 초대하니 차지찬만 들어왔다.
주지승과 백우진은 방송 중인 듯하다.
-어~ 용용.
차지찬이 늘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형, 우리 PD님 진짜 대박이야.”
-왜?
묵은지의 활약상을 설명하니 차지찬도 감탄했다.
-야, 너 사람 잘 구했다.
“그니까. 아무튼 다음달 10일에 입금될 거래.”
-갑자기 목돈이 생기네. 고맙다야. 네 덕을 다 보네.
“나도 얼떨떨해. 근데 진짜 5,000으로 되겠어? PD님이 그러던데 형 이런 일 보통 1억 정도 받는다던데?”
-내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너 다 가져도 돼.
“진짜?”
-아니.
“…….”
-…….
“일단 지승이 형이랑 우진이한테 톡 보냈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무슨 얘기?
“이 광고료 조금 써서 도시락 퀄리티 높이고 싶거든.”
-음. 받은 게 있으니까. 구독자분들한테 돌려주는 느낌 괜찮네.
“응. 계약 내용은 단톡방에 올려둘게. 그거 확인만 해줘.”
-확인은 무슨. 니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안 돼. 꼭 봐. 읽어.”
-알았어. 이따 봐.
통화를 마치자 주지승, 백우진에게 차례로 연락이 와서 PD님 자랑을 실컷했다.
* * *
30분 정도 실컷 떠들다 보니 뒤늦게 피로가 찾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피곤했는데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치니 긴장의 끈이 풀어진 듯하다.
오늘은 한 업체에서 판매하는 당뇨 도시락을 리뷰하는 방송이 예정되어 있고 밤에는 ‘언제까지 뚱할 거야?’도 예정되어 있다.
“어우.”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냉장고에서 팩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꺼냈다.
커피를 쭉 들이키는데 뭔가 열심히 하는 묵은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PD님,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할 일이 남았습니다.”
“괜찮아요. 내일 해도 되잖아요.”
“일을 미루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 계약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잖아요. 쉬고 또 열심히 일하는 게 효율도 나올 거예요. 오늘은 진짜 일찍 퇴근하세요.”
묵은지가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6시까지만 있다 가겠습니다.”
내 방송까지는 확인하고 돌아가겠단 뜻이다.
더 얘기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그러라고 하고 방으로 돌아와 방송 준비를 마쳤다.
미리 주문했던 당뇨 도시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세팅하고 방송을 켰다.
└반하
└오 정시 방송
└요새 왤케 부지런함?
└당뇨 도시락은 뭐지
└ㅎㅇ
“안녕하세요. 반하. 피곤해 보인다고요? 전혀요. 오늘 진짜 좋은 일 있어가지고 피곤해도 피곤한 줄 모르겠어. 무슨 일이냐고요? 조만간 알려드릴게요. 혼자 알릴 일은 아니라서.”
시청자들이 적당히 들어올 때까지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일이라 축하해 달라는 사람, 어디 맛집을 갔는데 맛있었다는 사람, 졸려 보인다는 사람 등등 소통하다 보니 눈이 자꾸 감긴다.
“오늘은 리뷰 방송입니다. 리뷰. 당뇨병 환자를 위해서 판매되는 도시락인데 평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이거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시락을 가까이 보여주었다.
XXX밀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으로 하루에 2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주간 총 20개 도시락이 24만 원에 판매된다.
매일 아침 배달이 되는 제품이라 배송비를 제외하면 하나당 1만 원 정도 되는데.
“블랙두부크럼블세트라고 하네요.
밥은 늘보리쥐눈이콩밥. 이게 대체 뭐지? 아무튼 채소 스틱 샐러드에 드레싱도 있네요. 올리브유랑 발사믹을 섞은 것 같아요. 여기 두부랑 채소 있는 건 컬리플라워 스팀 샐러드라고 하고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게 블랙두부 크럼블이래요.”
유튜브 업로드 용으로 편집할 땐 영양성분표도 올려줘야겠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우선 막대 모양으로 잘린 채소에 드레싱을 뿌려 먹었다.
상콤하면서 진득한 드레싱과 오이, 당근 맛이다.
“이건 그냥 다들 아시는 맛이네요. 건강한 맛. 이게 궁금한데.”
블랙두부 크럼블이라는 게 대체 뭔지 궁금하다.
시청자들도 같은 반응이라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음.”
말린 두부가 꼬들꼬들한 식감을 주는데 짜장맛이 난다.
“맛있다. 이게 짜장이었어요. 간이 세지 않고 적당해. 슴슴하게 드시는 분들한테는 맛있게 느껴질 정도고 일단 짜장향이 대박이네. 두부 식감도 너무 좋고. 다음은 컬리플라워 샐러드.”
방금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컬리플라워 샐러드를 먹으니 침울해졌다.
“이건. 이건 진짜 그냥 건강한 맛. 근데 이 블랙두부 크럼블이 너무 맛있어서 번갈아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사실 이런 건강식을 매일 신선하게 매일 다른 메뉴로 먹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도시락 사업을 하고자 여러 건강 도시락을 먹어보고 있는데 여기도 참 괜찮다.
“어우.”
근데 너무 졸린데.
눈이 자꾸 감긴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졸고 있었다.
채팅창을 보니 키읔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먹던 거라도 다 먹고 방송을 끌 생각으로 손을 움직이는데, 눈은 감게 되고 음식을 씹는 행위도 점차 느려진다.
“……님.”
“…….”
“대표님.”
“어? 네?”
정신을 차리니 묵은지가 날 흔들고 있었다.
졸았던 모양이다.
“대표님!”
“네? 왜요?”
“주무셨습니다.”
“아닌데? 나 깨 있었는데.”
도시락이 아직 많이 남았다.
숟가락으로 블랙두부 크럼블을 떠 먹는데 맛이 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