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77
치팅데이 77화
17. 메뉴 개발(8)
“있기야 하지. 궁예 코스프레할 때 입는 거라도 괜찮으면.”
주지승이 긴가민가하며 답했다.
“오히려 좋아. 스님이었는데 지금은 탈선한 느낌으로. 어차피 고기 반찬도 넣을 테니까 그쪽으로 진행하면 형 이미지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님 아니라니까.”
“부캐지. 대충 연기만 하면 돼.”
수상하게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인 호스트라든가 수상하게 진행을 잘하는 트로트 가수라든가.
부캐 활동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설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지승이 턱을 쓸며 고민했다.
“나도 좋아 보이는데? 형 콘셉트에도 영향 안 가고, 도시락 홍보도 되고.”
“어차피 방송에선 매일 하던 일이잖아요?”
백우진과 최미카엘이 나서서 설득하니 헛웃음 지었다.
“점점 하는 일이 느는 것 같은데.”
“대장은 원래 하는 일이 많잖아.”
“미치겠네. 알았다. 알았어.”
한 번 더 밀어붙이니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들였다.
“근데 메뉴는 어떡하지?”
백우진이 다시금 본론을 꺼냈다.
“닭가슴살 줘야 한다니까?”
“그건 형이나 그렇고. 형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은 진절머리 칠걸?”
차지찬이 의견을 내놓자 백우진이 구박했다.
“그건 그래. 기껏 맛있는 다이어트 도시락이라고 해서 샀는데 닭가슴살 들어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닭가슴살에 대해서는 악감정이 다분히 있다.
“망하기 딱 좋지.”
주지승마저 같은 생각임을 밝히자 차지찬이 입을 삐죽이며 돌아 앉았다.
“일단 반찬은 3개 하기로 했잖아? 재료가 어느 정도 중복되는 건 피할 수 없어.”
“코스트 때문에?”
“그치.”
주지승과 백우진이 의견을 모았다.
“예를 들어 버섯불고기를 하면 버섯볶음도 하는 거야. 불고기에 들어가는 버섯이나 양파, 당근을 버섯볶음에도 쓸 수 있으니까.”
듣고 보니 확실히 비용이 줄어든다.
같은 재료를 사더라도 많은 양을 사면 단가를 낮출 수 있으니 말이다.
“대신 남은 반찬은 다른 걸로 가야지.”
“김치 있으면 좋겠다. 버섯불고기랑 버섯볶음 있으면 매콤하고 시원한 반찬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치. 아무래도 그쪽이 밸런스가 맞지.”
“닭가슴살.”
기껏 회의가 진행되나 싶은데 차지찬이 또다시 닭가슴살 이야기를 꺼냈다.
다 같이 노려보니 차지찬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반대할 일이 아니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다이어트 도시락이 뭔데. 다이어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닭가슴살 아니야?”
“제일 싫어하기도 하지.”
“도시락이 팔리려면 이미지도 중요해. 아까 지승이 형 이미지 이야기가 왜 나왔는데.”
무작정 닭가슴살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나름 이유가 있는 듯하다.
“곤충 음식이 어떻게 팔리는지 알아?”
이야기를 계속 들어볼 생각으로 고개를 젓자 차지찬이 책상에 팔을 대고 설명을 시작했다.
“벌레 형태나 식감이 느껴지지 않게 아예 가루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쪽이 있었고. 곤충 모습이 그대로 보이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쪽이 있었어. 어느 쪽이 성공했을 것 같아?”
당연히 형태가 남아 있지 않는 쪽이 유리하다.
“아, 나 이거 알아.”
백우진이 나섰다.
주지승도 아는 이야기인지 신음 소리를 내며 턱을 쓸었다.
“충식 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벌레를 먹는 느낌을 원해서 오히려 곤충 형태가 남아 있는 걸 선호한다고 들었어.”
뜻밖의 일이지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애초에 다이어트 도시락을 찾는 사람은 닭가슴살이라든가 샐러드 먹을 생각이라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일반식이랑 비슷한 걸 주면 어떻겠어. 만족도가 떨어지지.”
“오~”
백우진과 동시에 감탄하자 차지찬이 조금 쑥스러워했다.
“그러네. 그 점을 생각 못 했네.”
“지찬이 형 말 일리 있어. 1992년에 크리스탈 펩시라는 제품이 나왔는데 말 그대로 크리스탈, 투명한 콜라였거든?”
설명하길 좋아하는 백우진이 시동을 걸었다.
“기존 콜라하고 차별된 상품을 개발한 건데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어.”
“왜?”
“콜라는 검은색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투명한 탄산음료는 사이다, 스프라이트를 생각하게 되잖아. 그러니 콜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크리스탈 펩시에는 눈길도 안 준 거지.”
“아.”
“그러니까 다이어트 도시락 찾는 사람들한테 일반식처럼 맛있는 도시락. 맛있는 반찬은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이지.”
“오.”
감탄하니 백우진이 턱을 들어올리며 잘난 척했다.
“우진이 말처럼 우리는 영양을 골고루 적당히 섭취해야 하는 걸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차지찬이 한마디 보탰다.
“영상을 올려볼까?”
주지승이 아이디어를 냈다.
단순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다이어트 식단이라든가. 우리 다 한 발씩 걸치고 있잖아.”
먹방 채널이었던 반찬가게는 다이어트와 썰방으로 전환한 지 오래다.
반야식경도 요리 채널이니 연관이 있고 짐꾼도 지금은 운동과 기행에 집중하고 있지만 태생은 건강한 몸 만들기 채널이었다.
우지니는 여러 잡다한 지식을 전달해 왔으니 기존 구독자들에게도 유용할 거다.
“좋아. 어차피 다음 주부터 다이어트 방법 올리려고 했거든.”
다음 주부터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을 새 콘텐츠로 삼으려 해서 얘기를 꺼냈더니 세 사람이 날 빤히 본다.
“왜?”
“말하는 사람도 중요하긴 하다. 그치.”
“그러게. 이 녀석이 말하면 뭔가 사기 같단 말이야.”
“찬용아, 넌 빠지는 게 좋지 않을까?”
백우진, 차지찬, 주지승이 차례로 구박을 주었다.
“왜들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
“너 말하는 거 들어보면 딱 사이비야.”
“헛소리인 건 아는데 뭔가 설득력 있어서 열받아.”
“지금 찬용이 몸으로는 다이어트 얘기하는 게 설득력이 좀 떨어지긴 해.”
“이 아저씨들이 진짜. 나처럼 진정성 있는 사람이 어딨는데. 당뇨 있는 사람이 다이어트로 거짓말하겠어?”
세 사람이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살짝 열받는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주지승이 물었다.
“처음에 내가 왜 실수가 많았는지 생각해 보니까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더라고?”
“그치. 형뿐만이 아니라 꽤 많이들 오해하니까. 나도 그랬고.”
“그래서 그 오해부터 풀어 볼 생각이야.”
“괜찮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차지찬이 든든하게 나서주었다.
다이어트에 관련한 지식으로는 우리 중에 가장 해박하니 어려움이 생기면 물어 봐야겠다.
“근데 우리 메뉴 언제 정해?”
백우진의 질문이 다들 말이 없어졌다.
“일단 버섯불고기 어때?”
더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 가만있는데, 차지찬과 백우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단 만들어 먹어보고 생각하지 뭐. 어차피 오늘 표고버섯불고기 만들려고 했으니까.”
표고버섯을 넣은 불고기라니.
오늘은 포식하겠다.
* * *
그동안 주지승, 차지찬, 백우진에게 배운 내용과 내 나름대로 다이어트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결과.
내가 그동안 다이어트를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새 콘텐츠를 준비해 왔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묵은지와 첫 회의를 진행했다.
“저번에 얘기했듯이 이번 콘텐츠는 3편에 나눠서 업로드할 거예요. 방송은 쭉 이어서 하고.”
“네.”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인식, 잘못 알려진 다이어트 상식, 마지막으로 바른 다이어트 방법으로 진행할 예정인데.”
묵은지가 넘긴 리서치 서류를 훑었다.
“다이어트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요?”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꼬집으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이어트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야 한다.
“날씬해지는 데 있습니다.”
“그렇죠. 그럼 날씬하다는 기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요?”
“BMI 기준으로 12~13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네?”
깜짝 놀라 되물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BMI(체질량지수) 18.5 이상 24.9 미만을 정상으로 분류한다.
18.5 미만부터는 저체중이란 뜻인데 묵은지가 말한 12~13이란 수치는 기아 수준이다.
“PD님 키가 어떻게 되요?”
“160㎝입니다.”
“그 키에 BMI가 13이 되려면 35㎏이어야 하는데요?”
묵은지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자부심이 느껴진다.
섭식 장애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 심각하다.
그동안 함부로 개인 문제를 건들진 않았지만, 이번 콘텐츠를 함께 준비하는 사람이 다이어트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져선 죽도 밥도 안 된다.
“PD님,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네.”
“BMI가 12에서 13이면 기아 상태예요. 위험한 거예요.”
묵은지가 날 빤히 본다.
똑 부러지게 말하는 평소 태도를 보아 불만이 있다기보다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싶다.
“제 기준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넘어가야 하나.
묵은지가 자료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일단 말을 삼켰다.
“일반적으로 날씬한 몸, 예쁜 몸의 기준은 45㎏에서 48㎏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때문에 많은 연예인이 프로필을 45㎏이나 48㎏으로 작성해 왔습니다.”
“그거예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35㎏ 정도는 되어야.”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다급히 말을 막아섰다.
“PD님 키 160㎝를 기준으로 적어도 50㎏는 되어야 그나마 정상 수치입니다. 58㎏까지는 정상이에요.”
묵은지가 입을 벌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다른 일은 합리적으로 잘 처리하면서 몸무게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지 모를 일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수치예요. 실제로 근육량에 따라 다르지만 160㎝에 50㎏이면 상당히 마른 축에 속합니다. 그런데도 45㎏을 기준으로 생각하죠. 왜 그럴까요?”
“대표님, 그전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이 콘텐츠도 혹시 백반 토론처럼 진행하실 예정입니까?”
“아니요? 왜요?”
묵은지가 드물게 망설인다.
“괜찮아요. 말해 봐요.”
“제 키의 정상 몸무게가 58㎏이라고 하시니 믿기 어렵습니다.”
“네?”
“방송에서 그러시니.”
“방송이요? 어떤데요?”
“음해, 협박, 모함, 선동, 사기, 모략, 간계 등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말문이 막힌다.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뭐라 반박하고 싶은데 저지른 일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맞는데. 그래요. 맞는데 이건 아니에요. 사실이에요.”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는 모습이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다.
태블릿에 WHO에서 발표한 BMI 기준을 찾아 보여주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우리는 왜 45㎏이 날씬함의 기준이 되었는지 알아야 해요. 추측으로는.”
“카메라 때문입니다.”
같은 생각이다.
“렌즈 초점 거리 변화에 따라 화각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방송용 카메라는 그 차이가 눈에 띌 정도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렇죠. 그래서 연예인을 직접 보면 훨씬 말랐다는 후기도 많죠. 실제로 평범한 사람도 방송용 카메라에 잡히면 부해 보이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카메라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방송에서 날씬해 보이려면 기아 수준까지 살을 빼야 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