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78
치팅데이 78화
18. 백승용차(1)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시작된 이유 중 하나는 연예인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의 몸무게를 45㎏으로 소개했기 때문으로 본다.
왜 하필 45㎏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과 매체의 영향력으로 인해 날씬한 몸무게는 45㎏이라는 인식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TV에 나오는 예쁜 연예인들이 45㎏이라고 하니 45㎏이 되어야 날씬해진다고 오해하게 되고.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은 실제보다 부해 보이니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본다.
애초에 성인 여성의 몸무게가 45㎏밖에 안 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말이다.
“바디프로필도 문제예요.”
묵은지가 조사한 기사 자료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1)
성인 남성의 정상 체지방률은 15~20%, 여성은 20~25%인데.
바디프로필을 찍을 때 남자는 체지방률 9%, 여자는 15%를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다.
“저도 확인했습니다.”
묵은지가 내 앞에 놓인 서류를 넘겨 주었다.
“바디프로필 촬영은 2~3개월 동안 나트륨, 지방, 탄수화물 섭취를 엄격히 제한한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섭식 장애, 요요현상, 생리중단, 두통, 근육수축, 면역력 저하 그리고 탈모가 올 수 있다고 합니다.”2)
“탈모.”
기사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이 다이어트를 끝낸 후 3~6개월 뒤에 자연히 회복된다고 말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1~2년이나 걸린다고 덧붙였다.
또 탈모 유전을 가진 사람에게는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탈모를 촉발한다고도 했다.
“모르겠습니다.”
묵은지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어떤 점이요?”
“이러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사회는 마른 사람을 선호합니다.”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꼈기에 묵은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살이 많이 쪘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던 거리가 무서워졌습니다.”
“…….”
“저를 보며 웃는 사람도 있었고 마주 보고 걸으면 저만 피하는 상황이 늘었습니다. 옷을 사러 가면 은근히 무시당했고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일이다.
“그것이 제 피해의식인지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살이 찌면서 그런 일을 겪기 시작했고, 다이어트를 하면서 줄어든 것만은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다.
138㎏이었을 때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나 역시 그것이 내 피해의식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를 보며 웃는 사람,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을 게으르게 봅니다. 하찮게 여깁니다. 저는 살을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묵은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저와 다른 입장이지만 연예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한 다이어트는 몸에 안 좋다는 걸 알지만, 정작 뚱뚱한 사람이 나오면 악플이 달립니다.”
실제로 보면 평범한데도 TV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그러지 않다.
그렇기에 연예인들은 가혹한 다이어트를 이어간다.
“그들이 본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식단을 철저히 제한해야 합니다.”
묵은지가 본인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풀어낸 적은 처음이기에 이따금 고개만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바디프로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예쁘고 멋진 몸을 갖기 위해 식욕을 억누르고 몸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만든 몸에 사람들은 관심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
“저는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맞추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친 묵은지가 물을 마셨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누가 갑자기 저를 때렸어요. 놀라고 아프고 수치스럽고 화나죠. 그런 일을 겪은 뒤에 운동을 한다든가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필 수 있어요. 하지만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길을 걷지 않는다면 인생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요.”
묵은지가 날 빤히 본다.
“잘못은 내가 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피하고 숨어서 살아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PD님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묵은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뚱뚱한 게 어때서요? 저처럼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무 문제 없어요. 오히려 뚱뚱한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인성이 문제죠.”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눈치지만 일단 내 이야기를 다 듣자고 마음먹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옷 사러 온 사람한테 무안이나 주는 사람이 잘못했죠. 장사 그따위로 하면 지금쯤 망했을걸요?”
묵은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면접에서 PD님을 떨어뜨린 사람도 잘못했어요. 이렇게 유능한 사람을 못 알아봤으니까요.”
“…….”
“그리고 몸이 이 지경이 되어서야 살을 빼기 시작한 저와 다르게 PD님은 일찍 시작했잖아요.”
“그건.”
“저는 현실을 직시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봐요.”
묵은지가 다시 입을 닫았다.
“뚱뚱했든 날씬했든 PD님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틀린 건 뚱뚱하거나 말랐다고 차별하는 그들이에요.”
“…….”
“그들의 기준에 PD님을 맞추려 했으니까.”
어려운 문제다.
연예인, 보디빌더 같은 이들은 그들의 선택과 노력으로 조각 같은 몸을 만든다.
내가 그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름아닌 본인들의 자의에 의한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게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지금도 미치도록 힘든데 만약 연예인이나 보디빌더 같은 몸을 만들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 상상도 안 된다.
“키가 작은 사람, 큰 사람이 있는데 모든 여성이 45㎏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마른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통통한 사람이 좋아요. 그렇게 취향도 여럿이잖아요.”
묵은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도 마찬가지예요. PD님은 어떤 체형을 좋아하세요?”
“마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요. 아니. 네?”
당연히 평범한 체형이나 건강한 체형을 말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황해서 하려던 말을 잊었다.
“갈비뼈가 드러나는 정도는 되었으면 합니다.”
“어. 그래요. 그것도 취향이니까?”
“네.”
“아무튼 복근이 선명히 나오려면 체지방률이 6~8% 정도는 되어야 한대요. 근데 체지방률이 적으면 골다공증, 노화, 난임이 생긴대요. BMI가 20 이하 사람은 정상 수치 남자보다 정자의 수, 밀도가 28.1%, 36.4%나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3)
“그렇습니까.”
“네.”
뭔가 얘기를 하다 보니 원래 논점에서 살짝 빗겨나간 것 같다.
“아무튼 정리하면 기준은 개개인이 세운다.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 잘못은 나나 PD님에게 있지 않다. 뚱뚱하다고 무안 주는 사람, 말랐다고 무시하는 사람에게 있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묵은지가 뭔가를 적더니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신 골조로 내일까지 대본 작성하겠습니다.”
“모레까지 해도 돼요.”
백반따라 촬영이 잡혀 있어서 시계 확인했다.
여유가 아직 있지만 늦기보단 서두르는 편이 낫다.
“그럼 저 가볼게요.”
“대표님.”
묵은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씀은 정론입니다.”
“그렇죠?”
“통통한 사람이 좋다는 말이 주장에 무게를 더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진심이죠.”
묵은지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물었다.
“날씬한 사람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않아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저는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걸 좋아해요. 만약에 제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제가 알고 있는 맛집에 꼭 데려가고 싶어요. 같이 새로운 맛집을 찾고 싶고요.”
“네.”
“날씬한 몸을 유지하려면 절대 불가능하죠. 정상 체중이라면 모를까.”
“…….”
“그리고 전 포근한 사람이 좋아요. 귀엽잖아요.”
“날씬해도 귀여울 수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으로 보노보노를 검색해 보여주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설명 됐죠?”
“이해했습니다.”
“가볼게요. 오늘 안 돌아오니까 퇴근할 때 문 부탁해요.”
묵은지에게 열쇠를 주곤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 * *
오늘 백반따라 지역은 서울 맛집이다.
나와 백우진이 좋아하는 식당 한 곳씩 들르기로 하여 지방 촬영 때와 달리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제작진과 백우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박상철 PD를 포함한 제작진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니 백우진이 입술을 내민 채 물었다.
“여기 맛집이 있어?”
내가 추천하는 맛집은 남영동에 위치한 쌀국수집 N식당이다.
숙대입구역에서 금방인데, 주변 경관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맛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럼. 어마어마한 곳이 있지.”
“뭐가 어마어마해?”
“쌀국수!”
나름 박력 있게 소리쳤는데 반응이 영 아니다.
헛기침을 하고 바로 발을 옮겼다.
“여기다.”
오래된 벽돌 건물에 걸린 하얀 바탕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봄 햇살을 내려받은 파란 글씨와 통유리를 감싼 나무 샤시, 풍성하게 잎을 드리운 이름 모를 식물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 대박이다. 줄 봐.”
백우진이 감탄했다.
점심시간을 살짝 비켜 오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이곳 쌀국수를 기다리고 있다.
“근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
“갑자기 그럴 때 있잖아. 뭔가가 미친 듯이 먹고 싶을 때.”
“응.”
“참다 참다 그 날은 도저히 못 참겠는 거야. 쌀국수를 먹어야만 했어.”
“아, 그래서 찾아봤구나.”
“아니. 쌀국수 먹는데 굳이 여기까지?”
“그럼?”
“회사 근처에 그때 당시 5,000원인가? 엄청 저렴한 쌀국수집이 있어서 퇴근길에 들렀지.”
“응.”
“맛은 그냥저냥 싼 맛에 먹고 있었는데 미친 젓가락 통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거야.”
“악.”
“와. 나 소름돋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바로 일어나서 계산하고 나왔지. 길에 서서 쌀국수 맛집 검색하다가 평이 좋아서 왔는데 그때부터 가끔씩 들러.”
“형 집 구디역이잖아.”
“응.”
“여기까지 쌀국수 먹으러 왔다고? 아깐 굳이라며.”
“며칠 동안 참다가 먹던 도중에 바선생님 만나 봐. 맛있는 데 찾아갈 수밖에 없지.”
“보통 식욕이 없어지지 않아?”
“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식욕이 없어지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