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80
치팅데이 80화
18. 백승용차(3)
금요일 점심.
오늘은 아침부터 출근해 포트폴리오 합격자들이 보낸 편집 영상을 쭉 살폈다.
네 명 중 셋은 평소 내 방송을 보는지 스타일을 잘 소화했다.
실력이 다들 좋아서 키를 섬세하게 잡았는데, 아쉬운 건 컷 편집에서 드러났다.
백반토론은 허무맹랑한 논리가 이어지고 사이마다 추임새가 적절히 들어가야 하는데, 컷을 잘게 쪼개 맥락을 챙기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PD님은 어때요?”
편집을 공부 중인 묵은지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의견을 물었다.
“연속성이 떨어집니다. 아마 20분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부담을 느낀 것 같습니다.”
시간과 사건의 연속성을 유지해 관객, 시청자가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게 구성하는 편집 방식을 Continuity Editing, 한국말로 연속 편집이라고 한다.
편집자가 가장 고려해야 하는 부분인데, 신을 어떻게 연결시켜 시퀀스를 구성할지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감각이 없다면 편집자로 활동하기 어렵다.
“맞아요. 이 사람은 아직 실무를 많이 안 해봤거나 제 방송을 많이 안 본 것 같아요.”
“그런 느낌입니다.”
“이 두 사람으로 하죠. 계약서 쓰고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검수하고 수정하려면 시간 필요하니, 업로드 3일 전에는 초안 받을 수 있게 얘기해 주세요.”
“네. 그리고.”
무슨 말을 꺼낼지 감이 안 잡혀 멀뚱멀뚱 바라보니 묵은지가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게 뭐예요?”
“50만 축하드립니다.”
“아.”
오늘이나 내일 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편집 영상을 확인하던 도중에 달성한 모양이다.
종이봉투를 열어 보니 저당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M업체의 제품이 여럿 들어 있었다.
하얀색 원통을 꺼냈다.
“스테비아입니다. 음식 해드실 때 설탕 대신 넣어 드시면 좋다고 합니다.”
“이런 게 있었구나. 고마워요. 이건요? 빵 같은데.”
“저당 생크림롤입니다. 상품 후기가 좋아서 샀는데, 해동해 드시면 된다고 합니다.”
“생크림.”
예전에 최미카엘이 저당 케이크를 선물해 준 적 있는데 그런 느낌으로 만든 저당 간식인 모양이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마음 같아서는 같이 먹고 싶지만, 불편할 테니 인사만 했다.
“그럼.”
묵은지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50만 명이 되었는지 직접 확인하고자 유튜브 채널에 접속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미쳤다.”
반찬가게
@bancahn2
구독자 50만 명
이런 날이 오긴 하구나.
감회가 새롭다.
사실 2~3주 전만 하더라도 50만 구독자를 달성하기 시간이 꽤 걸리리라 생각했다.
백반토론이 여전히 사랑받고 조회 수도 늘고 있으나 성장 추세가 다소 완만해진 것만은 사실이었으니까.
취향에 맞는 사람은 대부분 시청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당분간은 마음을 비웠거늘.
5회 차 방영된 백반따라가 활력을 불어넣어 준 듯싶다.
처음에는 나와 백우진보다는 지역, 음식에 관련된 반응이 나왔고 9% 언저리란 높은 시청률도 뉴스와 드라마 사이의 황금 시간대의 덕을 보았던 것인데.
점차 나와 백우진을 향한 관심이 늘어났다.
└ㅁㅊ 벌써 50만이야?
└ㅊㅊ
└당뇨 아저씨 왤케 잘 나가;;
└지상파 효과가 아직 있긴 하네
└ㅋㅋㅋㅋ죽었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몇인데
└50대 당뇨 있는 아저씨입니다. 테레비 보고 찬용 씨 유튜브 들어왔는데 열심히네요. 저도 매일 식후에 1시간씩 걷습니다. 당뇨인들 파이팅.
└월클 ㄷㄷ
└백반토론만 봐서 몰랐는데 이 아저씨 사기꾼 아니라 먹방 유튜버였구나
└사기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근 영상에 댓글이 속속들이 달리고 있다.
익숙한 닉네임이 간혹 보이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축하해 주어서 일일이 찾아볼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본을 들었다.
오늘 방송 중간에 다이어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다루기 위함이다.
“실제로 45㎏이 아니라고 밝힌 연예인도 많아요. 그런데 원래보다 부하게 나오는 화면에서도 너무 예쁘게 나오잖아? 그러니까 애초부터 45㎏이 날씬함의 기준이 되는 건 잘못되었단 거야.”
평소대로 얘기를 하다가 문득 말투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를 전달하니 단어를 신중히 선택하고 어조도 정중히 해야겠다.
“프로필 상의 몸무게와 다르다고 밝힌 사례가 있습니다. TV 화면으로도 아름답고 실제로 보면 훨씬 말랐음에도 45㎏은 아니라는 뜻이죠. 45㎏이 날씬함의 기준처럼 된 현상은 처음부터 거짓이었습니다. 정상, 건강한 체중은 BMI 기준으로 18.5~22.9입니다. 즉, 키가 160㎝인 여성의 정상 체중은 48㎏부터 58㎏입니다. 그리고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는 체중보다 근육량을 신경 써야 합니다.”
조금 딱딱한가?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가볍게 보이지 않을 거다.
설득력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긴 원고를 두세 번 반복해 숙지한 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방송을 켰다.
* * *
“남이 정해준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말자.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자로 요약하겠습니다.”
└이거지 진짜 빡치는 건 지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임
└솔직히 건강하려고 하는 거지
└멸치, 돼지 다 멸칭임.
└ㄹㅇ. 멸치랑 돼지한테 사과해.
└너 핀트 잘못 잡음
└근데 오늘 방송 왤케 얌전함?
└노잼
└바프 찍어본 적 있는데 진짜 사람 사는 게 아님. 3개월 동안 식단 빡세게 해서 체지방 12% 찍었는데 이후에 식탐 터져서 요요 오더라
└ㅠㅠ 삼겹살에 마요네즈랑 간장 뿌려 먹던 반찬용이 다 컸네 ㅠㅠ
└남한테 제발 관심 좀 끄라곸ㅋㅋ
후원 기능도 꺼놓고 첫 번째 영상 원고를 쭉 소화했다.
중간중간 채팅은 눈으로 읽었는데 다행히 내 뜻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근데 그렇게 잘 아시는데 아저씨는 왜 뚱뚱해요?
“…….”
두 번째 영상을 준비하려던 차에 폭행을 당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잌ㅋㅋㅋㅋ넌 진짜 나빴닼ㅋ
└그러게요? 찬용 님은 왜 뚱뚱해요?
└아 뉴비들 진짜 귀엽네.
└반찬용 리즈 시절을 모르네
“일단 물어본 분, 저번에 11군번이라고 채팅친 거 나 기억합니다. 동년배끼리 아저씨 뭐, 이러면서 어린 척하지 맙시다.”
살짝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나 한창 잘나갈 때 이런 몸 아니었어요.”
└잘 나갈 때=몸무게가
└ㅋㅋㅋㅋㅋㅋ왜 자랑이얔ㅋㅋㅋ
└자부심ㅋㅋㅋㅋ
└돼지
“내가 어떻게 138㎏를 찍었는데. 그게 무슨 아무거나 먹고 찌운 살인 줄 알아요? 세포 하나 하나가 다 맛집 음식으로 채워져 있었어. 맛없는 건 쳐다도 안 봤어.”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송용으로 나쁘지 않은 느낌이라 적당히 이어갔다.
“뭐, 돼지? 여러분 돼지는요 똥이고 뭐고 다 먹어요. 난 돼지가 아니야. 왜? 맛있는 것만 먹었으니까! 아무리 배고파도 도라지, 오이, 당근, 가지, 브로콜리 같은 건 쳐다도 안 봤어!”
배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11군번 그리고 아까 돼지라고 채팅친 사람. 그래. 너요. 너희 한 끼에 얼마 먹어요? 난요 한 끼에 최소 5만 원은 먹던 사람이야. 너희 1인분 먹을 때 난 5인분 먹었어! 당신들보다 훨씬 고급 인간이라고! 5배의 고급 보디! 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1인 먹는 주제에 뭐라 하지 말라곸ㅋㅋㅋㅋ
└5인분 먹으니까 투표권도 5개 줘랔ㅋㅋㅋㅋㅋ
└급발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여러분 백두산이 지금 엄청 위험한 상태인 거 알아요? 100년 주기로 터지는데 2025년이 그 쯤이래. 그거 터지면 어? 화산재가 우리나라 전역에 1m 높이로 덮는대. 3~4년이나 태양빛을 가리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1)
다들 물음표만 올린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못 지을 거 아니야. 그때 누가 살아남을 것 같아? 삐쩍 마른 너요? 아니지. 넌 한 달도 못 버텨요. 나는 최소 5년은 버텨. 왜? 5인분을 먹어 왔으니까!”
└뭔 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얌전하다 했다
└그런 계산이면 5달이지 왜 5년이얔ㅋㅋㅋㅋ
└전성기 시절이면 ㄹㅇ 5년 버틸 수도?
└의외로 비타민 같은 무기질이나 수분만 잘 섭취하면 1년 이상 굶어도 된다.
└그거 의사가 계속 지켜봐줘야 한다고 하던데
└단식 콘텐츠 ㄱㄱ
“그건 아니야. 굶는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살이야 빠지겠지. 근데 몸이 다 망가진다니까?”
흐름이 딱 다음 영상 대본 이어가기에 좋아졌다.
“그런 여러분을 위해서 올바른 다이어트 방법도 얘기해 드릴게요. 녹화할 거니까 후원은 계속 닫아둘게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편집점을 마련한 뒤 입을 뗐다.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어서 다이어트, 운동을 하고 싶지만 정확한 방법을 몰라 항상 헤매셨다면 오늘 제가 그 의문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말하면서도 조금 딱딱한가 싶다.
이부분은 나중에 후시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대한 진정성 있고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진지하게 임했다.
“다이어트의 비밀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요. 이것만 지키신다면 누구나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대부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첫 번째 비법은 바로 골고루 먹기.”
채팅창을 슬쩍 보니 물음표가 올라온다.
“두 번째 비법은 적당히 먹기.”
물음표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마지막으로 아침 먹기입니다.”
└???
└넌 나가라
└PD 누나가 하는 게 낫겠다
└나락 나락 나락
└대본 쓰기 싫었냐?
└얼척없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50만 찍더니 초심 잃었네
└방송 준비 안 함?
“여러분, 방금 알려드린 비법 우습게 생각하면 안 돼요. 지금부터 왜 그런지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