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82
치팅데이 82화
18. 백승용차(5)
유튜브 활동과 백반따라, 도시락 사업을 하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5월이 되었다.
외주 계약을 맺은 편집자 두 명이 제 몫을 다해준 덕에 최근에는 잠이라도 푹 이루고 있다.
일이 잘 풀리고 여유도 생기니 더 바랄 것이 없는데 다만 날씨가 문제다.
올 여름은 기록적으로 덥다고 하더니 햇빛이 얼마나 따가운지 모른다.
5월에 이렇게 더우니 올 7~8월이 아마 내 삶의 마지막인 듯하다.
지금 당장에라도 몸이 타버릴 것 같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실화냐.”
아스팔트 차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힘겨운 여정을 마치고 넝마가 된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묵은지가 먼저 출근해 있었다.
믿고 여분 열쇠를 주었더니 출근 시간을 지키는 법이 없다.
“…….”
사무실조차 후덥지근하다.
“왜 그러십니까?”
멍하니 서 있으니 묵은지가 물었다.
“더워서요. 에어컨 좀 켤까요?”
“네.”
묵은지가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작동시켰다. 이제 좀 살겠다 싶어서 천장 에어컨에 가까이 갔는데 바람이 미적지근하다.
리모컨을 확인해 보니 28도로 맞춰져 있다.
“덥지 않아요?”
“네. 세무사에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대표님께 연락 달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종합소득세를 내는 달이다.
“고마워요. 근데 정말 안 더워요?”
“더우시면 온도 낮추셔도 됩니다.”
안심하고 에어컨 온도를 18도로 맞추니 묵은지가 에어컨을 빤히 본다.
불안해진다.
“대표님.”
“네.”
“에어컨 적정 온도는 26도에서 28도입니다.”
“그럼 켜는 의미가 있어요?”
“많이 더울 때는 25도 정도로 설정해도 충분히 시원합니다.”
“25도는 절대 충분히 시원한 온도가 아니에요. 18도가 충분히 시원한 온도예요.”
“실내와 실내 온도 차이가 10도 이상 나면 냉방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컨디션에 이상이 생기면 방송에 지장이 갈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까워지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PD님, 전 이 문제의 답을 알고 있어요.”
묵은지가 날 빤히 바라본다.
“사람마다 쾌적한 온도가 다르죠. 인정합니다. 하지만 더운 사람은 옷을 벗을 수 없어요. 그러니 에어컨을 세게 틀고 추운 사람이 옷을 입는 게 합리적이에요.”
에어컨 온도 설정 갈등은 일상에서나 인터넷상에서나 여러 번 논쟁이 되었던 문제다.
그리고 추운 사람이 옷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박이 불가능한 완벽한 논리다.
“벗으셔도 됩니다.”
“네?”
“신경 쓰지 않으니 벗으셔도 됩니다.”
“제가 신경 쓰여요.”
“제겐 겉옷이 없습니다. 그러니 덧입을 수 없고, 대표님은 벗으실 수 있으니 지금은 이쪽이 더 합리적입니다.”
“…….”
“내일부터는 겉옷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묵은지가 자리로 돌아갔다.
입심으로는 져본 적이 없어 조금 당혹스럽다.
그렇다고 내 몸을 드러낼 마음은 추호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세무사에서 보내온 메일을 보니 이번에 낼 세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수익이 크게 변화한 시점이 올해부터라 작년 수입은 예년과 비슷하다.
내년에는 법인명의로 세금을 내야 할 텐데, 세율은 낮지만 수입 자체가 원체 커져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일단 구비할 서류부터 준비해야겠다.
주민등록등본, 임차료 지급 내역, 경조사비 내역, 지방세세목별과세증명, 기부금 영수증 등 종합소득세 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메모한 뒤 세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대표님도 아주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하하.”
뭔가 반갑게 전화를 했는데 더 할 말이 없다.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전화 달라고 하셔서요. 무슨 일이신지.”
-아, 다름이 아니라. 대표님 돈 좀 쓰셔야겠더라고요.
“네?”
-반찬가게가 돈을 써야 비용처리를 할 텐데 지금 인건비랑 임차료, 식비 정도만 나가고 있잖아요?
“그걸로는 안 돼요?”
-허허.
웃으시는 걸 보니 택도 안 되나 보다.
“그거 말고는 나갈 돈이 없는데.”
-왜 없어요. 법인 리스 차량 한 대만 뽑아도 큰 도움 되는데.
“아.”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정 없으면 그냥 계셔도 괜찮습니다.
“네. 일단 감사합니다. 서류는 말씀하신 시간까지 보내드릴게요.”
통화를 마쳤다.
한두 달 전에는 회사를 막 설립했고 여기저기 나갈 돈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모아 둔 돈이 많지 않았다.
“음.”
유튜브 예상수익을 조회한 뒤, 슈퍼챗, 광고료, 방송출연료 등 저번 달 수익을 합산해 보니 약 1억 1,600만 원이 책정되었다.
이번 달은 쿡쿡이 광고료로 8,000만 원이 들어왔기에 다른 달보다 훨씬 많이 벌었는데.
사무실 월세가 200만 원, 인건비가 달에 700만 원, 식비가 포함된 영상 콘텐츠 제작비가 280만 원 정도다.
세무사에서 돈을 쓰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차라.”
자동차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난감하던 차, 오늘 출근길을 떠올리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살을 태워버릴 듯한 고열과 조금만 있으면 찾아올 습기를 생각하면 자동차가 있는 편이 좋겠다.
* * *
“그래. 하나 뽑는 게 낫지.”
저녁에 짐꾼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을 하다가 법인 차량을 뽑을 거라고 말하니 차지찬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업체를 운영하면 비용처리 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되나 보다.
“그래서? 뭐 사게?”
“고민 중이야.”
“그래도 뭔가 찾아보긴 했을 거 아니야.”
“캐스퍼랑 레이 중에 뭐가 나은지 모르겠더라고.”
차지찬이 눈썹을 이상하게 들어올렸다.
“둘 다 연비는 같은데 캐스퍼는 귀여운데 레이는 좀 더 크더라고?”
“야, 네 몸뚱이로 경차를 어떻게 타.”
“내 몸뚱이가 어때서.”
“네가 어떻게 그 차를 타.”
“백반따라 찍을 땐 잘만 탔어.”
“하. 넌 차가 불쌍하지도 않냐?”
“…….”
몰랐다.
내가 타고 싶다는 마음이 경차에겐 상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
“어차피 비용 처리 할 거면 좀 큰 거 사.”
“음.”
“그리고 얘기하는 척하지 말고 빨리 한 세트 더 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 * *
다음 날.
백반토론을 하는 날인데 백우진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자동차 이야기를 꺼냈다.
“좋지. 비용처리할 때 제일 깔끔한 게 차니까.”
이 녀석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세무사에서 전해 들은 말이긴 하나 차지찬과 백우진도 동조하니 확실히 구매하긴 해야 하나 보다.
“그래서? 뭐 보고 있어?”
“아반떼랑 K3 보고 있는데 하이브리드가 좋겠지?”
“엥?”
“왜.”
“형은 차가 불쌍하지도 않아?”
“나 그 말 벌써 들었어. 들어서 원래 캐스퍼랑 레이 보다가 준중형 보는 거야.”
“아니. 어차피 법인 차량이잖아. 비용처리도 겸할 거면 더 비싼 거 사야지.”
“그런가?”
“그래. 그리고 요즘 아반떼 하이브리드 얼마야?”
“인스퍼레이션으로 보니까 3,200 정도더라.”
“와. 형, 그 돈이면 차라리 쏘나타를 사야지. 이번에 페이스리프트된 거 보니까 예쁘던데.”
“그래?”
“그래. K5도 이쁘고. 왜 굳이 아반떼야?”
“그런가?”
* * *
토요일.
반찬을 만들어주지용 때문에 부천으로 갔다.
방송을 마치고 잡담을 떨다가 최근 자동차 때문에 고민이 있어 주지승에게 상담했다.
“그치. 확실히 법인 차량 있으면 도움이 되지. 그래서? 뭐 사려고?”
뭔가 시작부터 불안하다.
쏘나타랑 K5를 보고 있다고 말하면 그 돈이면 그랜저랑 K8 사야 한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미리 선수를 쳤다.
“그랜저랑 K8 중에 고민 중이야.”
“어?”
“네?”
주지승과 최미카엘이 동시에 반응했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이라도 들은 눈치다.
“왜. 왜들 그래요?”
당황해서 말도 더듬었다.
“찬용아, 차는 무조건 큰 게 좋은 거야.”
“그래요. SUV 사시지.”
이건 예상 못한 반응이다.
“SUV가 좋아요?”
“너 나중에 방송 장비 싣고 어디 갈 일 분명히 생겨. 그때 승용차에 짐 실을 수 있을 것 같아?”
“안 되죠. 안 돼.”
“그리고 나중에 너 결혼하면 가족도 생기잖아.”
“무조건 SUV죠.”
주지승과 최미카엘이 장단에 맞춰 말하니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다.
“……연애도 못 해본 내가 결혼할 일은 없는데.”
“사람 일 모르는 법이야.”
“짐 싣고 다니는 건 생각해 봐야겠네.”
“그래. 내가 조리 도구 가지고 다녀서 아는데 무조건 큰 게 나아.”
“차라리 트럭은 어떠세요?”
“그래. 차라리 트럭이 낫다. 픽업트럭.”
“그건 아닌 것 같아.”
야외 방송도 하는 이 두 사람에겐 트럭도 좋은 선택지가 맞지만, 내 방송이 장비를 엄청나게 많이 필요로 하진 않는다.
다만 카메라를 몇 개만 들고 가도 큰 짐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앞으로 직원이 늘어난다면 확실히 승용차보다는 SUV가 좋을 듯싶다.
“그럼 카니발이랑 싼타페?”
“쏘렌토도 있고.”
“투싼도 괜찮지.”
난 분명 고민을 상담했는데 어떻게 선택지가 자꾸 늘기만 한다.
* * *
“어? 찬용이 차 사게?”
월요일.
백반따라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박상철에게 자동차를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 SUV 보고 있는데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서요.”
“어? 승용차 사려던 거 아니었어?”
옆에 있던 백우진이 물었다.
“지승이 형하고 얘기하다 보니 방송 장비 싣고 지방 갈 때 무조건 큰 게 좋다고 하더라고.”
“아, 그건 맞지.”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좀 반대야.”
박상철이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방송 장비 가지고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 SUV라고 해도 카메라 같은 거 실을 각이 잘 안 나오긴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방송국 PD 말이니 그럴듯하다.
“그럼요?”
“트럭 사자. 포터가 최고야.”
“…….”
“우리 촬영할 때 네 차에 짐도 실을 수 있고.”
어찌된 게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 한 명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