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87
치팅데이 87화
19.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3)
백승용차 개업일이 밝았다.
오전 11시부터 장사를 시작할 계획이라 새벽부터 나왔다.
친구끼리 뭔가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설렜는데 그런 청춘 드라마 같은 분위기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궁예 코스프레를 한 주지승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계란말이와 미역국을 만들었고 차지찬은 도시락에 반찬을 담았으며 백우진은 재고를 파악했다.
“당장 오늘 장사하는데 내일 오시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원래 오늘 아침에 도착하기로 한 제로콜라가 여직 안 와서 알아본다더니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통화하던 백우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라 몇 번 더 얘기하더니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섰다.
“형, 나 콜라 모아볼게.”
백우진이 문을 잡은 채 주지승에게 말했다.
“왜. 못 보낸대?”
“직원이 우리 물건 누락했대. 근처 마트 돌면서 모아올게.”
“미치겠네. 음료 그냥 내일부터 드릴까?”
어차피 돈 남기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작은 캔 음료 하나씩 드리자고 했었다.
“영상으로 구성품 다 올렸는데 어떻게 그래. 다녀올게.”
백우진이 우지니어스 채널 직원들까지 대동해서 제로콜라를 수급하러 나섰다.
“상규야, 민철아, 손 씻고 와서 붙어. 비닐장갑 끼고 넌 도라지무침만 넣고 넌 방풍나물만 넣어.”
“방풍나물이 뭐예요?”
“이거잖아. 서둘러. 야, 옆에 뭍은 건 닦아. 깔끔하게. 어?”
차지찬은 반찬 맛이 섞이면 안 돼서 반찬을 하나씩 넣었는데, 오픈 시간이 30분 앞으로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다.
PD와 작가까지 대동해 도시락을 채우고 있다.
한편 나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계란말이를 너무 못 만들어서 밥과 돼지불고기를 담당했는데, 250인분이나 만들려니 차라리 헬스를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PD님 밥 좀 섞어 주세요.”
“네.”
묵은지가 밥솥을 열었다.
광고를 맡은 CR1, 제품명 쿡쿡이는 가정용이라 250인분이나 하려면 오늘 장사하는 내내 밥을 지어야 한다.
밥솥을 5개나 준비했지만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찬용아, 불고기 괜찮아?”
백승용차의 사장님 주지승이 돼지불고기 진행 상황을 물었다.
“응. 첫 번째 끝났어.”
업소용 대형 프라이팬에 어제 재워둔 돼지불고기를 가득 넣어 익혔다.
태우면 안 되니 센 불에서 조리할 수 없는데, 빨리 익혀야 하니 쉽지 않다.
“오케이. 새로 할 땐 새 프라이팬 써야 하는 거 알지?”
“넵. 근데 형.”
“어?”
“콘셉.”
“아, 지금부터 해야 해?”
고개를 끄덕이니 궁예가 계란말이를 부치며 근엄하게 말했다.
“금부장은 뭐하는가? 새 프라이팬을 가져오지 않고.”
“예, 폐하.”
사용한 프라이팬을 계속 사용하면 양념이 농축되어 간이 달라질 수 있고, 남은 양념이 타서 맛을 해칠 수 있다.
새 프라이팬에 돼지불고기를 넣고 재빨리 사용한 프라이팬을 씻었다.
찬물을 뿌리니 증기가 훅 하고 올라왔다.
서두른다고 서두르는데 일이 익숙지 않아 애만 태우던 차, 묵은지가 날 대신해 돼지불고기를 뒤적였다.
“와, 미쳤어.”
백우진과 우지니어스 직원들이 캔 콜라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밖에 사람들 봤어? 너무 많아.”
“더 있어?”
주지승이 고개를 살짝 내밀며 확인하려 했지만 조리실에서는 밖에 사람이 몇이나 모였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쪽 길 다 찼어.”
“많이 오면 좋지. 9시부터 서 있던데.”
차지찬이 반찬을 담으며 말했다.
“너무 많아. 생각해 봐. 우리 도시락이 2시간이나 기다려서 먹을 만해?”
백우진의 질문에 나도 주지승도 차지찬도 모두 고개를 살짝 들어 고민에 빠졌다.
시중 도시락보다 저렴하고 좋은 재료를 사용했지만 2~3시간이나 기다려서 먹을 만큼 맛있다고는 장담 못 한다.
“또 저렇게 기다리다 못 사는 사람 있으면 어떡해.”
확실히 그건 문제가 커진다.
“내일은 순번표 준비해야겠어요.”
최미카엘 PD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게.”
주지승이 시계를 확인했다.
“미카엘, 나가서 손님들 안내하고 우진아, 콜라 아이스박스에 얼음하고 물 받은 다음에 담가 놔.”
“맞다.”
백우진이 곧장 아이스박스에 물을 받으며 얼음 봉투를 뜯었다.
“지찬이는 얼마나 걸릴 것 같아?”
“50개 맞춰 놨어. 이젠 놓을 곳도 없어.”
“오케이. 나가는 대로 바로바로 채우고. 찬용이는?”
“한 통 했으니까 50인분 됐어.”
“좋아. 다들 자기 자리 지키고 5분 뒤에 손님 받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계란말이를 말던 궁예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제장들은 들으라. 저 밖에 굶주린 중생들이 가득하니 이 미륵의 세계에 맞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예, 폐하.”
* * *
백승용차 도시락은 개업 첫날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도합 52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대형 유튜버 넷이 한 달 전부터 홍보를 한 덕이었다.
운동과 건강을 다루는 짐꾼이 건강한 다이어트 도시락이니 마음 놓고 먹어도 된다고 알렸고.
요리 유튜버 반야식경이 직접 요리를 한다고 알려지니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서울 직장인의 점심값 평균이 12,285원인 고물가 시대에 4,000원짜리 건강 도시락을 찾는 직장인은 백승용차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1)
“앞에 몇 명이나 있는 거야?”
“몰라.”
“30분이나 기다렸는데 먹을 수 있긴 한가.”
“점심시간 다 끝나겠다.”
“헐. 차지찬이다.”
“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던 차지찬이 직장인 그룹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우실 텐데 음료수 하나씩 드세요.”
차지찬이 제로콜라를 꺼내 나눠 주었다.
“혹시 사진.”
“아, 네. 좋죠.”
차지찬이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고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더 감사하죠. 그리고 죄송하고요.”
“네?”
“저희가 오늘 딱 200개만 만들어서 여러분 앞까지만 음식이 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차지찬이 허리를 직각으로 만들며 사과하자 직장인 그룹이 당황했다.
아쉽긴 하지만 눈앞에서 유명인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니 뭐라 다그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니에요. 뭐 어쩔 수 없죠.”
“감사합니다. 점심 맛있게 드시고 오늘도 열정 꽉 잡고 파이팅하세요.”
차지찬이 씩 웃어 보이곤 다음 사람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한편.
“맛있게 드세요.”
“저…….”
도시락을 계산한 손님이 머뭇거리자 백우진이 눈을 깜빡였다.
“왜요? 젓가락 더 드려요?”
“아니요. 그게. 되게 무례한 거 아는데요.”
“알면 하지 마요.”
“볼 한 번만 만져봐도 돼요?”
황당한 요구에 백우진은 말문이 막혔다.
“안 돼요.”
“한 번만요. 저 손 씻었어요.”
“아니, 왜 보는 사람들마다 볼 만져도 되냐고 물어. 싫어요!”
“죄송해요.”
“됐어요! 가세요!”
“저 구독 34개월짼데.”
“34개월이 뭐! 340개월 해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죄송해요. 귀여워서.”
“그럼 어쩔 수 없지.”
백우진이 볼을 내밀자 손님이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누르곤 웃으며 돌아갔다.
“하. 진짜. 난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백우진이 너스레를 떨자 계산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너 진짜 어디 가서 그런 말 좀 하지 마. 창피해 죽겠어.”
밥솥에 밥을 안친 반찬용이 손을 씻으며 딴지를 걸었다.
“그래. 부럽겠지. 형도 귀엽고 싶은데 나만 귀여우니까.”
“흐하핳핫하핫핰.”
어이가 없는 나머지 웃음이 터졌다.
반찬용이 시원하게 웃으니 매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웃기 시작했는데, 백우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콧대를 높였다.
“밥만 푸면 되나?”
준비한 계란물을 모두 소진한 주지승이 손을 씻으며 반찬용에게 물었다.
“어. 지찬이 형 아직 안 왔어?”
반찬용이 주변을 둘러봤다.
반찬을 담아 놓은 도시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급한 대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 해도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거나 다른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사 드리고 있어요.”
짐꾼 채널의 김민철 작가가 차지찬의 행방을 알려주었다.
“됐어. 내가 하면 돼.”
주지승이 자리를 차지하고 도시락에 음식을 담았다.
손이 빨라 3시간 동안 도시락에 반찬만 담았던 김민철 작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30개 남았다!”
“30개!”
주지승이 도시락과 남은 반찬을 확인하고 외치자 반찬용과 백우진이 복창했다.
차지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반찬용이 묻자 차지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야, 말도 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경찰이 와서 묻더라. 무슨 일 있냐고. 설명하다가 늦었어. 형, 내가 할게.”
“아니야. 다 했어. 찬용이 일 좀 맡아 줘. 얘 찾는 사람 많았는데 음식 하느라 대응을 못 해주더라.”
“오케이. 반찬용, 교대하자.”
“이거 다 익었으니까 담기만 하면 돼. 한김 식히고.”
“오냐.”
* * *
오후 3시 40분.
장사는 한참 전에 끝났는데, 찾아온 구독자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늦었다.
도시락도 못 드렸는데 인사라도 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텼다만 이젠 더는 무리다.
양해를 구하고 문을 닫았다.
“아!”
“아이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나와 한 시도 앉아본 적 없이 일만 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나도 몸에 힘이 없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와. 진짜 죽겠다.”
“이짓을 한 달이나 한다고?”
“우리 주말은 쉴래?”
“흐흐흫흣.”
고작 하루 만에 모두 뻗어버렸다.
“다 팔았지?”
주지승이 물었다.
“어. 곱빼기 분량도 다 나갔어.”
“매출 좀 나왔겠는데? 얼마야?”
차지찬이 물었다.
“27만 원 적자.”
백우진이 바닥에 누운 채 답했다.
“뭐?”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되물었다.
차지찬도 어이가 없는지 동시에 물었다.
“콜라 나눠줬잖아. 우리 도시락 다 팔아도 10만 원 이득 보는데.”
캔 음료를 나누서 적자를 봤단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손해를 봤다고?”
“애초에 돈 보고 시작한 일 아니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와, 이거 똑같이 한다 치면 한 달에 얼마야? 810만 원 손해네?”
“810만 원 나눔했다고 해야지.”
“너 잘났다, 인마.”
웃음이 나왔다.
다들 지쳐서 더는 말할 기운도 없다.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가자.”
“그래야지.”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큼 지칠 대로 지쳤다는 뜻이다.
단 하루도 이렇게 힘든데 요식업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지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저녁 맛있는 거 먹자.”
“찬성.”
그분들이 어떻게 버티는지 몰라도 나는 맛있는 식사로 버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