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 day RAW novel - Chapter 95
치팅데이 95화
21. 열등감(1)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부먹이냐. 찍먹이냐.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맛만 봅니다. 백반토론의 반찬용.”
“백우진입니다.”
목요일.
반찬가게를 성장시켰고 지금도 가장 많은 조회 수를 차지하는 백반토론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이디어가 금방 고갈되어 오래할 콘텐츠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보니 벌써 19번째에 이르렀다.
이만큼 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13,000명 앞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게 여간한 일은 아니다.
침을 삼키고 멘트를 이어갔다.
“오늘은 정말 큰 거 왔죠?”
“큰 겁니다.”
시청자들이 맨날 큰 거냐는 채팅을 올렸다.
“외식계의 쌍두마차, 배달 야식계의 라이벌 보쌈 VS 족발입니다.”
└오
└이거 언제 하나 했다ㅋㅋ
└야식은 치킨 아님?
└족발 너무 비싸
└보쌈도
└진짜 요즘 음식값 너무 비싸서 부담스러움
└족발 먹고 싶다
“이것은 사람인가? 돼지인가? 비계와 살코기의 적절한 만남. 삼겹 백우진 위원 함께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백우진을 소개하며 녀석의 뱃살을 잡아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
“백우진 위원님?”
오늘도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뱃살을 잡힌 백우진이 단단히 토라졌다.
“넌 어떻게 소개하나 볼 거야.”
험상궂은 첫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은 얼굴로 노려본다.
“반찬용이 꿈에 돼지가 된 것인가, 돼지가 꿈에 반찬용이 된 것인가. 동물 농장,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꼬마 돼지 베이브, 옥자 등 다수의 영화에서 손 모델로 출연한 족발 반찬용입니다.”
검지와 중지, 약지와 소지를 붙여 족발 모양을 만들어 보이니 백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럼 시작해 보죠. 백우진 위원, 보쌈의 장점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반찬용 위원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논리로 설명해 드리죠.”
백우진이 인터넷창에 원할머니보쌈족발을 검색했다.
“2023년 현재 원할머니보쌈족발에서는 족발 대 자를 43,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사이즈의 맛보쌈은 55,000원이죠. 가격 차이가 무려 12,000원이나 납니다.”
“12,000원이나 더 비싸니까 당연히 더 맛있다?”
“설마 부정하실 생각이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못 하짘ㅋㅋㅋ 지가 저거 부정하면 자본주의 부정하는 거라고 했으닠ㅋㅋㅋㅋ
└자본주의 부정 > 대한민국 부정 > 무정부주의자 노근본 테크트리 가동하나요?
└당한 거 고대로 돌려주네
└시작부터 끝났어
“너 정말 너무한다.”
“뭘?”
“그래. 보쌈이 더 비싸. 자그마치 12,000원이나.”
“그래. 그러니까.”
“아직도 모르겠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하니 백우진이 눈만 깜빡인다.
“요즘 경기 어려운 거 몰라? 한 끼에 55,000원이 말이 돼?”
“아니. 이거 대 자잖아. 세네 명 먹는 거야.”
“대 자를 누가 나눠 먹어!”
백우진이 당황해서 흠칫했다.
빈틈을 보였으니 후벼 파주는 것이 예의다.
“당연히 일인분이잖아! 대 자가 왜 대 자인데! 소 자는 소인! 어린이! 대 자는 대인! 성인!”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반찬용한테는 일인분이라고요
└백우진 얼타는 거 졸 귀엽넼ㅋㅋ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보쌈 대 자를 어떻게 혼자 먹엌ㅋㅋㅋㅋ
└이 아저씬 먹어요
“형이나 그렇게 먹지 누가 그렇게 많이 먹어?”
“그래. 내가 백번 양보해서 4명이 먹는다고 쳐 줄게.”
“줄게?”
“55,000원을 4명이서 나누면 얼마야?”
“13,750원.”
“그래. 보쌈 대신 족발을 먹으면 5명이 먹을 수 있어. 그러고도 무려 1,750원이 남아. 이렇게나 차이가 큰데 족발 대신 보쌈을 먹는다고?”
“그 정도는 더 낼 수 있지. 더 맛있으니까.”
“너 정말 나쁜 돼지구나?”
“뭐?”
아직도 모르는 듯해 유튜브에서 유니세프 캠페인을 검색해 재생했다.
-이 아이가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알까요?
└아 ㅠㅠ
└아, 이건…….
└백우진 개나빴다
└ㅠㅠㅠㅠㅠㅠ
“너 왜 그렇게 사치가 심해? 지금도 12,000원이 간절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아니.”
백우진이 뭐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회 취약 계층과 대학생, 취준생을 상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을 좋게 봐 주셔서 덕을 보고 있으니 반박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 그러니까 우리 가격 이야기는 빼놓고 그냥 맛으로만 얘기하자.”
백우진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무정부주의자로 몰릴 뻔했는데 잘 넘어갔다.
“이번엔 형부터 말해 봐.”
백우진이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족발. 세계적으로도 정말 사랑받는 부위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스페인, 태국, 아일랜드 등 정말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죠.”
“그래서 맛있다?”
그래서 맛있다고 했다간 문화 사대주의자라느니 공격할 게 뻔하다.
“아직 얘기가 좀 더 있습니다. 족발은 앞서 말씀드린 나라 외에도 프랑스에서도 사랑받았습니다. 혹시 생트메누에란 곳을 아십니까?”
“아.”
백우진이 아차 싶은지 눈썹을 움찔했다.
온갖 잡지식을 쑤셔넣는 녀석이 이 유명한 일화를 모를 리 없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뜨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렌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습니다.”
└갑지가 뭔 소리야
└족발 얘기하다가 루이 16세 이야기가 왜 나왘ㅋㅋㅋㅋ
└또 빌드업하네
“생트메누에에 이른 루이 16세는 배가 고팠고 그곳에서 유명한 족발찜을 먹자고 합니다. 신하들이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했지만 루이 16세는 반드시 생트메누에의 족발찜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만드는 데 너무 오래 걸려서 붙잡혔어.”
“그렇습니다. 족발찜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입니다. 신하들도 루이 16세도 알고 있었죠. 뒤에서 혁명군이 뒤쫓아오는데도 차마 도망갈 수 없었던 요리. 단두대에 목이 달아날 위기에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던 요리가 바로 족발입니다.”
└실화야?
└미쳤나곸ㅋㅋㅋㅋㅋ어떤 또라이가 도망치는 와중에 족발을 시켜 먹엌ㅋㅋㅋㅋ
└죽기 전에 족발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아ㅋㅋㅋㅋ 족발은 못 참짘ㅋㅋ
이 정도면 족발의 우월함을 잘 전달했다고 생각하던 차, 백우진이 씩 웃었다.
“그 이야기 출처 알아봤어?”
“출처?”
고개를 저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프랑스 요리 대사전에 나온 이야기야. 그리고 알렉상드르 뒤마는 장르 소설을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즉,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이지. 루이 16세의 족발찜 이야기도 일전에 루이 16세가 생트메누에에서 족발찜을 맛있게 먹은 사실을 각색했다는 주장도 있어.”1)
백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사실도 아닌 걸 들먹일 정도로 근거가 없었나 봐?”
그 부분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 내 차례지?”
“잠깐. 하나 더 남았어.”
백우진이 얼마든지 해보라는 듯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였다.
“옛날 옛적에 형제가 살았어.”
“또 옛날 이야기야?”
“형은 욕심이 그득했고 동생은 마음이 유약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결국 형이 모든 재산을 가져갔고 동생은 빈털터리가 되었어.”
백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픈 동생이 형을 찾아가 쌀 좀 달라고 부탁했더니, 형수가 나와 주걱으로 뺨을 때리는 거야.”
“흥부와 놀부 이야기 아니야?”
“그래. 동생은 주걱으로 얻어 맞는 와중에도 뺨에 밥이 붙는 걸 보고 더 때려 달라고 애원했어. 그거라도 가져가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었거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흥부가 더 때려 달라고 하니까 형수는 더욱 신을 냈어. 흥부는 맞으면서도 기뻐했지. 드디어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도 먹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그런데.”
백우진이 시큰둥한 얼굴로 날 보고 있다.
“놀부가 눈치를 챈 거야. 후다닥 다가가서 뺨에 붙은 밥조차 다 떼어갔지. 흥부는 너무 서러워서 형한테 물었어.”
감정을 실어야 할 때다.
“형!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요! 아버지 재산 다 가져간 것으로도 모자라 이것까지 빼앗는 이유가 대체 뭐요! 그렇게까지 해서 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잔인하게 구냔 말이오!”
백우진과 카메라를 번갈아 보고 말했다.
“보쌈집 하려고.”
└?
└뭔 말이야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만 이해 못 함?
└놀부보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산도 가져가. 뺨 맞아서 얻은 밥톨조차 뺏어가. 그런 놀부가 만든 보쌈을 어떻게 먹겠다는 거야! 넌 흥부가 불쌍하지도 않아?”
“형, 놀부보쌈한테 고소당하기 전에 빨리 사과해.”
“무리수였나?”
“어.”
“죄송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전신이 보이도록 뒤로 물러난 뒤 절을 올렸다.
└뭔 짓꺼리얔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태세전환ㅋㅋㅋㅋㅋ
└고소는 무섭짘ㅋㅋ
└뭔 말 하나 했넼ㅋㅋㅋㅋ
└아ㅋㅋㅋ 놀부보쌈 어쩔 거냐고~
“졌지?”
“아니. 하나 남았어.”
“해봐.”
백우진이 능글맞게 미소 지었다.
오늘로 19번째를 맞이한 백반토론의 스코어는 16승 2패다.
이대로 세 번째 패배를 추가할 순 없다.
“백우진 씨.”
“응?”
“얼마 전 차지찬 씨와 만둣국 때문에 갈등을 빚은 적 있으시죠?”
차지찬이 백우진의 만두를 하나 먹어서 둘이 티격태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응.”
“만둣국에 들어 있는 만두를 차지찬 씨가 하나 먹으면서 발생한 사건 맞습니까?”
“어. 지금 생각해도 분해.”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시작부터 장황햌ㅋㅋㅋㅋㅋ
└난 얘 이렇게 뻔뻔하게 빌드업하는 게 너무 웃기던뎈ㅋㅋㅋㅋ
└보쌈 vs 족발에 갑자기 만두는 왜 나와
“하지만 밥상은 그만큼 냉정하고 잔인한 공간입니다. 음식이 맛있을수록 식사할 때의 위험은 높아집니다. 그것을 노리는 차지찬 같은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동물들이 물을 마실 때 항상 주변을 경계하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백우진이 잠시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대화를 나눴듯이 보쌈은 혼자 먹는 음식입니다.”
“아니라니까.”
“좋습니다. 이번에도 양보해 드려서 둘이 먹는다고 칩시다. 저와 백우진 씨가 함께 먹는다고 하죠.”
백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는 대 자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보니 이 녀석도 훌륭한 돼지가 될 자질이 보인다.
“과연 저와 백우진 씨가 겸상을 할 때, 식사를 온전히 할 자신,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저보다 빨리 많은 보쌈을 확보할 자신이 있냐는 질문입니다.”
백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가 생각해도 안 된다 이거짘ㅋ
└반찬용 먹는 속도 생각하면 절대 못 당하짘ㅋㅋㅋㅋ
└방송 초기에 짜장면 한 그릇 30초에 비우고 그랬는데
└이젠 늙고 병들었어 ㅠ
“그렇습니다. 백우진 씨의 무른 마음가짐과 빈약한 피지컬로는 제게서 보쌈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족발은 다릅니다.”
“왜?”
인터넷창에 족발을 검색했다.
“족발을 주문하면 항상 이렇게 위에는 고기, 아래는 뼈가 옵니다. 별미죠.”
“맛있어.”
“하지만 이게 과연 먹기만을 위한 것일까요?”
“그럼?”
이래서 이 녀석은 훌륭한 자질을 갖췄음에도 아직 완벽한 돼지가 되지 못하는 거다.
“바로 상대로부터 족발을 지켜내기 위한 무기입니다.”
“어?”
검지와 중지, 약지와 소지를 붙여 백우진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당황한 얼굴을 확인하고 카메라에 대고 내 족발을 자랑했다.
“이 굵고 단단한 족발뼈야말로 피지컬이 부족한 사람이 저 같은 사람을 상대로 족발을 지켜낼 유일한 무기란 말입니다!”
└????????
└별ㅋㅋㅋㅋㅋㅋㅋㅋ
└족발뼈는 무기…… 메모…….
“그게 뭔 개소리야?”
“너, 족발뼈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몰라.”
“1981년, 혹은 82년 12월 31일. 장충동의 모 족발집에서 일어난 족발 투척 사건을 진짜 몰라?”2)
└최양락ㅋㅋㅋㅋㅋㅋㅋ
└뭔데? 뭔데?
└야자타임 하다가 최양락이 계속 깐죽거리니까 주병진이 열받아서 족발 던짐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최양락이 족발 맞고 아파서 울었다는 게 개웃기던뎈ㅋㅋㅋㅋㅋ
“족발이 그렇게 무섭고 유용하다고. 어? 너 나랑 이따가 밥 먹을 때, 보쌈 먹을 거야 족발 먹을 거야.”
백우진이 인상을 잔뜩 쓰더니 물었다.
“형이 족발뼈 들면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니야?”
“……오늘 잘 안 풀리네.”
패배를 시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