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2
스틸웰 가문이 자리한 행성, 아이언핸드.
우리가 그 행성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거참. 별난 행성이네.”
나는 공항 건물의 유리창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유리그릇으로 덮은 것 같이 투명한 돔으로 둘러싸인 구역들이 대지 이곳저곳에 솟아나 있었다.
그 안으로는 고층 건물이 즐비했으며, 표면을 흘러내리는 빗물에 내부의 불빛들이 일그러지며 몽환적이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겨댔다.
“끔찍하네. 원래는 이런 곳이 아니었겠지?”
네브라는 바깥에 내리는 비를 보고 얼굴을 구겼다. 왜냐면 지금 내리는 비는 물이 아니라 황산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금성도 아니고.’
아이언핸드 행성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오염이 쌓이고 쌓여, 사시사철 시커먼 구름이 가득하고 황산비가 내리는 곳이다.
[으으, 자존심 상해.]한편 앤젤라는 주먹을 꼭 쥐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연상되는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죄송해요. 그렇게 자신했는데 환경이 이렇게나 안 좋을 줄이야.]‘괜찮아. 행성 상태가 이 정도로 안 좋은지 어떻게 알았겠니.’
도착하기 전에 얼마든지 비밀을 캐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던 앤젤라는, 행성 우주 정거장에 있던 정보부 요원에게서 행성 정보를 받아보고는 조용히 쪼그라졌다.
여긴 행성에 내려가지도 않고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아쉽네. 구축함은 냅두고 바로 다시 화물선 생활이라니.”
옆에서 니베아가 큼직한 가방을 등에 진 채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이. 그거언 눈에 너무 띄잖아아.”
파비안도 두툼한 더플백을 허리춤에 끼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파비안, 저기 각 돔 구역이 고작 길 하나로만 이어져 있는 거 어떻게 생각해?”
니베아의 보직은 저격수. 그래서인지 진입 및 퇴각로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에 민감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 가문의 본업이 공업인 이상 원재료와의 접근성을 높이는 게 정상인데 그러기는커녕 그 반대라니.”
이 행성의 도시들은 정말 폐쇄적이었다.
구슬을 줄에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것처럼, 단 하나의 도로가 각 돔 도시를 관통하는 형태였다.
그렇지 않은 유일한 도시는 가장 정중앙인 스틸웰 가문의 본가가 위치한 중앙구역뿐. 모든 도로가 거기에서부터 불가사리처럼 방사형으로 내뻗어지는 구조였다.
“귀족 본가 근처에 정식 우주 공항이 없는 행성은 정말 처음이야. 혹시 진짜로 뭔가 있어서 접근성을 일부러 개판으로 만든 거 아닌가 싶은데.”
니베아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보통 이런 대화에 끼어들 법한 에나는 조용했다. 왜냐면 행성으로 내려가기를 거부해서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얼굴과 머리색은 그대로기에 발각될 위험이 높다는 이유였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언핸드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파리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돌리는 에나의 모습을 본 이상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에나뿐 아니라 이나시스도 자리에 없었다.
본가에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직은 정탐이었으니 무장이 눈에 띄는 이나시스는 에나를 위로할 겸 내려오지 않았다.
띵!
어디선가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공항 밖으로 나가는 버스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얘들아 가자, 버스 왔다.”
***
창문이 없어 마치 달리는 컨테이너 같은 버스는 황산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길을 달렸다.
타닥 탁
버스 밖에서 계속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중금속 가루.”
네브라의 말에 니베아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손에는 행성 아이언핸드 안내 책자가 들려 있었다.
대기오염이 워낙 심각해 아예 중금속이 뭉쳐서 강한 바람을 타고 다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어이. 이 행성은 처음인 모양이야?”
버스가 공항을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탄 승객들 중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다 같은 일행인지 후줄근한 녹색 전신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예. 여기에 일거리가 있다고 해서 와봤습니다만……”
우리는 정탐을 위해 평소 입고 다니는 복장이 아니라 흔한 공장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일거리? 여기서 일하겠단 타 행성 놈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만.”
“다른 항성계에서 왔냐?”
“이곳 행성계에 살면 그런 말 못할 텐데.”
방호복을 입은 이들은 킬킬거리면서 계속 우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보아하니 개조 같은 건 안한 모양인데, 여기선 그런 걸 안 하면 못 버틸 걸.”
보호복 안으로 보이는 저들의 얼굴과 목에 이음새가 엿보였다.
싸구려 신체개조를 받은 사람들이다.
신체개조는 개조 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일수록 비싸다. 그만큼 시술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소재가 더 들어가므로.
특히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신경을 쓸수록 추가 요금이 붙는다.
각각 UBI와 군대에서 신체강화를 최고급으로 받은 네브라와 니베아는 티가 전혀 안 났다.
‘앤젤라, 애들한테 이것저것 은근하게 물어보라 그래.’
정탐을 위해 왔으면 이것저것 질문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을 전해들은 팀원들이 조금씩 말을 건넸다.
“그런데 어딜 가시는데 그런 옷을 입고 있나요?”
“신체개조라. 돈도 없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할지……”
“어디이 좋은 돈 벌 곳으은, 없나요오?”
이미 아는 정보도 교차검증을 통해 다시 물어보았다.
그들은 기분 나쁘게 비웃음을 흘리면서도 대답은 잘 해주었다.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었지만.
심보 고약한 놈들 같으니.
***
“거, 어디까지 가는 거여?”
덜컥하고 작은 창이 열리며, 철망과 방탄유리 너머로 버스 기사의 말이 선명해진 엔진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다른 이들이 다 내렸는데도 우리만 끝까지 내리지 않고 있었다.
“듣자하니 최대한 중앙구역이랑 가까울수록 돈 많이 주는 일자리가 있다던데요?”
나는 최대한 어리숙한 일꾼처럼 답했다.
“어서 그런 말을 들은진 모르겠지만 그건 거짓말이여. 거, 행성 책자 봤어?”
“봤습니다만……”
“이 행성이 참말로 좆같은 행성이여. 그니께 저 밖에 비랑 가루랑 맞아 가면서 수리하는 사람들이 제일 수당이 세. 아까 맨 처음에 보호복 입은 것들이 그치들이고.”
“그 사람들은 중앙구역이 가장 좋다 했는데요?”
물론 거짓말인 걸 안다.
“거짓말이여. 제 일자리 뺏길까봐 초짜들 속여먹는 짓거리지. 돈 벌려면 허구한 날 구멍 뻥뻥 뚫려대는 최외곽으로 가야 뎌.”
몸 상태랑 장비는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는 말은 덤이었다.
“그런 거 말고, 어디 안에서 일하는 건 없습니까? 공장이라거나요.”
그 말에 버스 기사는 혀를 찼다.
“내 장담하는데 공장 일은 안하는 게 더 나을 거여. 너무 다치기 쉽거든. 팔다리 멀쩡하고 싶으면 공장은 가지 않는 게 좋을겨.”
아까 외부 수리 노동자들의 속내를 엿봤을 때도 하나같이 ‘공장 일이나 해라 요것들아’하는 심보가 가득했다.
—–
독심 : 쯧쯧쯧,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들이구만. 어디 행성 녀석들인진 몰라도 노예 신세는 못 면하겠어.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됐어. 그보다 이건 공장구역 전까지가 종점이여. 거기서부턴 알아서 혀 봐.”
그렇게 우리는 한 돔 도시에 떨궈졌다.
도시의 투명벽 너머. 이 도시와 연결된 ‘공장구역’이 보였다. 지도상으로 바로 그 뒤에 있어야 할 ‘중앙구역’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온통 까만 벽뿐이었다.
폭우 치는 날 하수구가 역류하는 것처럼, 위에서부터 뭉클거리는 새카만 연기가 폭포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흉험한 광경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더불어 중앙구역과 가까이 연결된 공장구역에서도 적잖이 연기가 분출되고 있어 중앙구역이 있어야 하는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딱 하나.
연기 가운데를 뚫고 솟아난, 하늘의 검은 구름 너머로까지 이어진 거대한 첨탑을 빼고.
‘허. 저러니 행성이 개판이 나지.’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꺼림칙한데 아예 덩어리질 정도의 매연이라니.
[으으으! 저것 때문에 제 성능을 제대로 발휘를 못하는 거예요!]앤젤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 행성은 앤젤라의 성능을 저해하는 요소로 가득했다.
우선 대기 내 중금속 가루가 자연적인 전파 방해 영역처럼 기능하는 탓에, 다른 행성이라면 대기 중을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무선통신은 도시 내에서만 국한되었다.
그래서 유선 통신망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통신망은 도시를 관통하는 유일한 도로와 한 몸이다.
통신망 하나가 수십 개의 대도시를 관통하다 보니, 여러 도시의 모든 트래픽이 죄다 몰려들었다.
하늘을 날며 이것저것 촬영할 수 있는 정찰기가 난데없이 터널 안에서 비행하게 된 셈.
그렇기에 이처럼 최대한 중앙구역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던 것.
‘이젠 좀 나아졌어?’
앤젤라의 표현에 따르면,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해안도로가 온갖 차로 꽉 막힌 상태에서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일일이 돌아다녀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란다.
지금껏 활개치며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 참 운이 좋은 거라 느껴진다는 말과 함께 한숨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우주 공간이나 행성 상공처럼 뻥 뚫린 곳에서는 엄청나게 넓은 범위를 스캔 가능하고, 수천 수만 광년 떨어진 곳으로의 사이버 침투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심지어 유선망이 없는 인트라넷 및 무선 단말기까지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리는 괴물 같은 AI, 앤젤라.
그러나 일반적인 환경이 아닌 곳에서는 사소한 문제에도 이처럼 약한 모습을 간간이 보였다.
어째 어렸을 적에 어떤 동화책에서 읽었던, 쥐를 무서워하는 코끼리 일화가 생각났다.
코끼리 발뒤꿈치에 붙은 과일? 하여튼 뭔가를 쥐가 갉아먹는 소리에 코끼리가 놀라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 무서워한다는 요상한 얘기였다.
[함장님.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 안 되나요?]‘미안.’
아무래도 정상적인 업그레이드 과정이 아니라, 어드민에 게임 기능과 기술창 장착 효과 등이 이리저리 뒤섞여서 강제로 성능을 끌어올려 그런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도 아니면, 폭발 사고 당시 많은 정보가 날아갔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 때문일까?
교통사고가 난 직후에는 멀쩡하다가도 픽 쓰러져서 보니 사실 내부가 크게 다친 경우처럼 말이다.
그렇다기에는 에나가 멀쩡하다고 했는데……
[저것만 기능했더라면 더 편했을 텐데 참 아쉬워요.]저기 보이는 구름 너머로 솟아오른 첨탑이 바로 통신탑이었다. 보나마나 중앙구역의 스틸웰 가문 본가와 직통으로 이어져 있으리라.
물론 이렇게 지표면에 내려온 것에서 볼 수 있듯, 현재는 작동을 하고 있지 않았다.
‘힘들면 접근해 볼까? 더 가까이 침투는 할 수 있는데.’
[으음…… 아뇨. 무리하진 마세요. 일단은 살펴볼게요! 어쩌면 생각 외로 공장구역이나 중앙구역 안쪽은 통신망이 잘 구축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옆에서 팀원들이 거대한 연기의 폭포를 보며 몸서리쳤다.
“완전히 자연재해라 해도 믿겠어.”
“으으, 아무리 스톤나이트라도 저 안에서는 못 견딜 거 같아요오……”
“함장. 시선이 조금 끌리는데.”
공장구역과 맞닿은 도시라 그런지 직업소개소라 써진 간판이 도로가에 가득하고 그 주변에 줄을 선 추레한 복장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요원의 말을 듣고 이곳에서 흔한 복장으로 갈아입었지만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게 그럴 것이, 이곳은 신체개조를 한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신체개조를 한 티가 보이지 않으니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다.
더불어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불순한 눈빛들도 존재했다.
그건 오히려 바라던 거라 상관은 없었다.
“일단 직업소개소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