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괴짜와의 만남-3
“그렇소이다. 사령관도 알고 있겠지만 폐하를 영생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이오!”
슈타이너가 기계로 의식을 옮긴 데에는, 황제에게 행할 수법의 시험 단계의 의미도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비록 기계에 의존한 것이라고는 하나, 영생을 구현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렇소이다. 당연한 사실에 겸허함을 표하지는 않겠소. 다만, 나의 재능은 어디까지나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에 기반한 것이며 나 또한 시야에는 한계가 있소. 그렇기에 인류와는 너무나 다른 계통의 드로칸 기술 연구에는 성과가 없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오.”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아마도 ‘아차’하는 행동이리라.)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구 때문에 내가 사령관의 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라오.”
여러 외계 종족이 연합하여 작정하고 꽂아 넣은 말뚝을 뽑아내고, 그걸 가린 홀로그램 위장을 그대로 유지한 사건.
건국 원년 멤버인 그가 그 소식을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매우 부끄럽지만 그건 어떻게 손쓸 수 있는 기한이 지난 탓에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소. 헌데 그걸 짧은 기한 내에 성공했다니! 이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겠소?”
진은 침음성을 살짝 흘렸다.
‘거기서 어느 정도 들켰구나.’
지구를 가린 홀로그램 함대를 찾아간 슈타이너는 홀로그램이 유지되는 방식을 알아버렸다.
“세상에. 그런 획기적인 신기술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소! 그리고 그렇게 거친 충격파에도 금 하나 가지 않고 멀쩡한 선체라니! 분명 방어막 말고도 드로칸의 포화를 막아내는 데에는 그 기술을 쓴 게 맞소?”
“일단 비슷하긴 합니다만……”
“역시! 정말 내 눈이 한층 더 넓어질 수 있게 된 고마운 계기였소.”
그가 지구에 들린 순간부터, 사실상 팀 엔터프라이즈와 슈타이너가 만나는 건 예정된 운명이었던 셈.
함선에 적용된 기술력에 경도된 그는, 팀 엔터프라이즈가 출원한 특허까지 모조리 찾아보고 난 뒤 확신했다.
“나는 기뻤소이다. 드디어 나와 말이 통할 천재가 태어났구나.”
그는 천재지만 늘 외로웠다.
오랜 시간을 살며 다수의 천재들을 봐왔지만, 그의 전공과는 먼 부문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팀 엔터프라이즈의 특허 대부분은 슈타이너의 관심사에 딱 들어맞았다.
즉, 그와 말이 통할 사람을 찾았다는 것!
그가 감정 조절을 못하고 민폐 수준으로 들이대는 실수를 저지른 이유가 바로 그 기쁨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것이외다. 참으로 기뻤다만, 결과적으로 무례로 인식되어버렸구려. 내가 사람을 이렇게 사적으로 대한 지 오래되었던 터라 실례를 저질렀소. 참으로 미안하오.”
시무룩해진 그의 어깨가 살짝 처지자 관이 서로 부딪히면서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
어느새 진의 등 뒤에서 에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저 기계 몸체를 보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트라우마가 에나의 정신을 자극하고 있었으나, 에나도 결국에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
역사에 한 획을 크게 그은 위인에게 어찌 호기심이 없을까.
“괜찮아?”
“조, 조금은요. 무섭긴 하지만, 그런 분이라면……”
지금까지의 슈타이너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그는 대단하고 또한 선량한 인물이었다.
—–
독심 : 으으으, 정말 궁금하구나! 제발 내가 모르는 비밀을 알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선체 외벽에 달라붙어서라도 따라가고 싶지만 그건 도리어 악수겠지.
—–
……관심사 앞에선 막무가내라 그렇지.
아쉽지만 진은 그를 승선시킬 생각은 여전히 없었다.
‘절대 들키면 안 되는 게 있으니까.’
바로 아이템 스폰이나 템창 등의 게임 기능들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세상은 마음껏 치트를 내보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기득권 세력과 외계인에 대항하여 인류를 지키는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마치 곤충이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각종 의태를 하는 것처럼, 온갖 변명으로 포장을 하면서 차근차근 테두리에서부터 큰 그림을 그려왔다.
‘저 사람이라면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그럴만 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정밀한 계획과 변명, 팀원들의 노력 덕에 지금은 정보부 장관조차도 설득할 정도로 성공한 상태다.
‘그걸 이제 와서 들킬 수는 없어.’
슈타이너가 합류하여 에나와 파비안과 합작한다면 더욱 정교한 ‘변명’이 가능하게 되겠으나……
‘단순히 음성을 재생한다고 물질이 창조되는 걸 대체 어떻게 설명하냐고.’
아무리 발달한 기술은 마법 같다지만, 아이템 스폰은 포장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것도 수많은 지식을 섭렵한 인류의 기술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사람 앞에서는 더더욱.
“슈타이너 씨의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저로서는 다소 부담이 되는 바가 없진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선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슈타이너의 렌즈 안구가 왠지 슬픈 빛을 머금었다.
“알겠소이다. 신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형성되는 건 아니니 말이오. 더구나 내 실수로 선입견을 만든 바에야, 염치없이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소.”
그의 어깨가 한층 더 쳐지고 기계팔들이 힘없이 늘어졌다.
“그래도 나와 말이 통할 스틸웰 양의 존재를 알았으니 되었소.”
“저, 슈타이너 씨.”
에나가 살짝 등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저는 제가 원해서 기계화를 한 게 아닙니다. 가문에서 제 천재성을 독점하기 위해 강제로 이런 몸으로 만들었지요.”
“그런……”
“그래서 전 가문을 증오하고 제 이름과 성 모두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참으로 죄송하오이다.”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슈타이너의 기계팔과 이곳저곳의 부품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달그락거렸다.
왜 일가가 모조리 처형되어 공중에 붕 떠버린 스틸웰 가의 막대한 재산을 차지하지 않고, 가명을 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나 했더니만.
그런 참혹한 과거가 있었을 줄이야!
“그러니 저를 선원 명단에 등록된 대로 에나라고만 기억해주세요. 그냥 에나요.”
자신은 가문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이며 아픈 과거와 이별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알겠소. 에나 양. 정말로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결례를 끼쳤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오.”
슈타이너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괜찮아요. 알고 그런 것도 아닌걸……”
에나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실, 슈타이너 님과 대화도 많이 해보고, 같이 연구도 하고, 그러고 싶지만…… 저희도 할 일이 있어서요.”
“충분히 이해하오.”
슈타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비장의 한 수로 숨겨야 생존이 편하단 것. 그건 4백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기에. 진이 말한 ‘선’ 역시 그걸 의미한다.
“하지만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구려. 내 지식욕이 끓어 넘치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외다. 그러니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승선은 불가하더라도 추후 그대의 팀과 대화의 발판을 마련하는 건 용인해 주었으면 하오.”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되는 사람과 인연을 맺어두는 건 좋은 일이니까.
“사사로이 연락은 곤란하지만 나중에 만날 일이 있을 때 교류는 얼마든지 됩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오.”
슈타이너는 가슴팍에서 단말기 홀로그램을 띄우더니 기계팔로 무언가를 조작했다.
“이건 내가 승선이 허락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주려고 했던 선물이라오.”
진이 단말기에 전송된 파일을 확인하고 놀란 눈으로 슈타이너를 바라보았다.
“이건 드로칸 기술에 관한 연구잖습니까?”
그 소리를 들은 에나가 얼른 단말기 화면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손가락으로 쭉 목차를 확인해댔다.
“그렇소. 부족한 실력이지만, 드로칸 기술에 대한 비밀의 조각이 맞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꺼이 주는 것이외다.”
슈타이너는 ‘그리고 또 하나 있소’하면서 화면을 두드렸다.
“나노머신 연구?”
진과 에나는 또 한 번 놀라야 했다.
“예전에 주피터 제약의 나노머신 사건이 터졌을 때 정보부의 인가 하에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잠시 손을 댔었소.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에릭 드렉슬러 교수와도 얘기를 했고 말이오.”
하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내 몇 발자국 나아가긴 했으나, 썩 만족할 만할 결과물은 아니었소.”
그런데 마침 나노머신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방법을 팀 엔터프라이즈가 알아냈단 말에, 드로칸 연구와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이걸 주기로 결정했단다.
“듣자하니 그림자 우물 쪽에 대량의 나노머신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들었소.”
“그렇습니다. 사고로 우연히 마주친 거긴 하지만요.”
“내 생각에는 과거 주피터 제약이 도주할 때 모종의 사유로 남은 시료를 거기다가 투기한 게 아닌가 싶소. 마침 주피터 제약 본사 자체가 그림자 우물 근방에 있었기도 하고 말이오.”
“예. 그랬지요.”
“내가 예상하기로는, 분명 사령관의 다음 행적은 거기가 될 것 같은데.”
슈타이너의 렌즈만 살짝 반짝였다. 왠지 진은 그가 다소 짓궂게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맞습니다. 어차피 정보부에게도 보고할 생각이었으니까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허헛. 역시 그렇구려. 중앙군구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물질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으니. 참으로 제국에 귀감이 되는 영웅이오. 어쨌건 거기에 내 연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
진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드립니다.”
“이 정도라면, 선입견을 해소하고 에나 양과 추후 교류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일종의 성의가 되었소이까?”
기름칠용으로의 의도도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음 세대의 천재와 제국에 큰 도움이 될 인물이 더 큰 경지와 입지를 이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이 보였다.
“차고 넘칩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오. 나노머신…… 개인적으로는 참 아까운 기술이라 생각하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했으나, 하필 첫 사례가 참으로 부정적인 결과물이었기에 영원히 인류사에서 묻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일 에나 양이 긍정적인 성과를 낸다면, 혹 후에 나라에서 나노머신에 대해 트집을 잡을 경우에 사령관의 팀을 힘껏 변호해주겠소이다.”
슈타이너의 마음을 읽은 진은 다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슈타이너는 기계팔들을 흥겹게 끼릭거렸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보겠소. 나는 지금 로치 전선에서 활동하고 있소이다. 음. 그러고 보니, 이미 거기서도 사령관의 도움을 받기는 했구려. 참 재밌는 세상이오.”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나중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며 훌쩍 떠났다.
중간에 뒤를 흘긋 본 렌즈에서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는 그 모습은 마치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 같았다.
“조금 아쉽네요.”
“그러게.”
첫인상이 좀 안 좋긴 했으나, 후에 대처와 대화로 봤을 때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다.
만약 진이 가진 기술들이 정말로 ‘남에게 설명 가능한 기술’이었다면 얼씨구나 하고 승선시켜 기술 교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팀 엔터프라이즈의 ‘신기한 기술’이 대부분 그럴싸한 변명인 마당인지라, 남을 마냥 같은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읽어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순 있다지만 그 순간만을 알아내는 것이다.
때문에 장기적인 면으로는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하여 성품을 이미 다 아는 기존 팀원에 비하면 다소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서 드로칸 쪽이 정리되고 로치 전선으로 가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개국공신이자 당대의 천재와 만나 대화하는 건 정말 값진 경험이 될 거에요.”
“그러려면 열심히 받은 자료 분석해야지.”
“당연하죠!”
철근조차 우그러뜨릴 수 있는 에나의 작은 두 손이 불끈 쥐어졌다.
‘옛 위인이자 많은 것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은 생각보다 빨리 슈타이너를 다시 만나게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