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최전선 너머-1
인간이란 종족은 우주로 진출하기 전에도 그랬듯, 당최 합심이라는 것이 힘든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다른 가치를 억누르고 그릇된 기준으로 세뇌를 하는 방식의 독재를 하지 않는 한, 개개인이 너무나 개인중심적이며 정치나 경제 등 여러 부문에 걸친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모든 힘을 투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집이 힘든 만큼 온갖 문제를 딛고 합심했을 때는 그 어떤 종족보다 무시무시했다.
당장 통합전쟁을 견뎌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현재.
여러 요소들이 최적의 조건으로 맞물리고 종족 전체의 공적이 지정된 지금, 인간이 모두 힘을 합칠 기회가 모처럼 다시 찾아왔다.
[전진하라. 그리고 저 사악한 외계인을 모조리 말살시켜라! 인류를 위하여! 지구의 복수를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제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드디어 만리장성처럼 기능했던 최전선을 벗어날 수 있었다.
마치 파도가 해안선을 따라 균일하게 철썩이는 것처럼 온 전선에서 출격이 시작되었다.
각 함선에 탄 이들은 외부 화면으로 흡사 은하수를 보는 것만 같은 빛무리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다 인간의 군세였다.
후방에까지 배치했던 함선까지 끌고 나온 이번 공세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라 기록될 대공세라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마저도 로치 전선에 배치된 건 제외한 것이니, 그동안 이룩해온 인류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엿보였다.
“적 함대 포착!”
“사격 개시!”
“공세를 늦추지 마라!”
작정하고 침공을 개시한 인류의 함대는 매일같이, 아니 매 시간마다 계속 전투를 벌였다.
드로칸 역시 전선에 상당한 전력을 배치해 놓았으니 초반부터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버텨! 어떻게든 버텨! 구축함은 사격 안하고 뭐하냐!”
녹색 광선에 얻어맞느라 정신없이 흔들리는 함교에서 목이 쉬어져라 고함을 치는 한 장군의 명령에 따라, 조준점을 잡은 구축함들의 개별적인 사격이 행해졌다.
예전의 레일건 탄자였다면 몇 발은 쏴야 겨우 구멍이 조그맣게 뚫렸을 테지만, 새로 보급된 대(對) 드로칸 탄자는 제국의 앞을 가로막은 녹색의 초대형 방어막을 손쉽게 벌집으로 만들었다.
시험부대에서 극찬했던 대로, 신무기가 만든 구멍은 기존의 전자기 교란 탄환이 만든 구멍보다 확연히 컸다.
“뚫렸다! 모조리 쏴버려!”
일선의 함대는 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증폭시키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구멍을 통해, 샤워기의 물줄기에 오색 빛깔을 비춘 것처럼 갖가지 색깔을 가진 레이저 기둥과 어뢰 등의 온갖 공격이 날아들었다.
수많은 빛기둥 사이사이에 섞인 탄자들은 가히 전장의 저격수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단번에 적함의 방어막을 박살내는 것도 모자라 드로칸 함선들의 빛을 꺼뜨렸다.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렇게 쉽게 뚫리는 거야!”
“방어막 크기를 축소해라!”
“뒤로 물러나!”
드로칸들은 크게 놀라면서 허둥거렸다.
인류에 비해 함선 수가 적은 걸 기술적 우위로 버티고 있었는데 그게 사라진 것이다.
인해전술, 아니 함해전술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막대한 숫자에 발전한 군사기술까지 더해지니, 나약한 촉수들이 택해야 할 선택지는 패주뿐이었다.
각 전역마다 수백의 초록색 빛과 수천의 흑백 색깔이 맞부딪혔다.
지구의 복수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눈을 시뻘겋게 뜬 제국군은 오늘만 살겠다는 것처럼 아군 피해에도 아랑곳 않고 드로칸을 밀어붙였다.
“놈들이 후퇴합니다!”
“기동력이 빠른 부대 몇 개만 추격으로 붙이고 피해 집계 및 재정비한다!”
피해 집계 수치는 놀라웠다.
이전이었다면 훨씬 많은 피해가 발생했었을 테지만,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신무기를 이용해 빠르게 적을 제압하니 그만큼 피해가 줄어든 것이다.
“이 수치라면…… 이 전쟁, 이길 수 있어!”
모든 전선의 모든 지휘관들은 첫 싸움에서의 전과를 보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행성 점령은 이제 저희가 맡지요.]“행운을 빕니다. 인류를 위하여.”
[인류를 위해.]드로칸 함대를 처리한 선두 함대는 파손되거나 침몰한 군함을 대체하고 보급을 받곤, 근방의 다른 행성계로 바삐 초광속 항해를 시작했다.
“자, 상륙함 모두 하강하라! 호위함들은 궤도 폭격 시행하고!”
점령 함대가 행성에 접근하자 지표면에서부터 대공 사격이 가해졌다. 소름끼치는 진녹색 광선이 대기를 가로지르며 은은히 빛을 퍼뜨렸다.
이에 제국의 함대는 무자비한 포격으로 답했다.
대공포의 사격이 줄어들자 그 틈을 타 내려앉은 수송선들이 막대한 병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반중력 전투차량은 물론이고 온갖 다양한 미사일과 자주포 등이 그르릉거리며 드로칸 가스가 가득한 대기에 입성했다.
“외계인을 죽여라!”
“끼얏호!”
물론 지상군에는 해적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납고 단순무식한 배양인간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행성 방어에 할당되던 부대들도 모조리 끌어온 탓에 그 숫자는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수송선 내에서 밀도 높게 살을 비벼댄 탓에 그들은 평소보다 훨씬 기분이 더러워져 있었고 그걸 외계인을 향해 아낌없이 쏟아냈다.
“하하하하! 저 까만 돌덩이가 저렇게 무너지다니!”
투하된 병력들 틈바구니에는 예사롭지 않게 생긴 작은 장갑차량들이 있었다.
무한궤도 위에 각진 몸체를 짊어진 작은 차량의 무장은 단 하나. 그러나 다른 병기들보다 월등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이단아기도 했다.
브주우우웅!
그 정체는 끝에서 발사되는 굵은 레이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병 중화기의 끝판왕, 어나힐레이션이었다.
어나힐레이션 차량은 몸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전력을 쭉 빨아먹으며 드로칸의 대형 병기들을 하나하나 저격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공장구역에서 생산 설비가 부지런히 돌아간 이유가 바로 이 어나힐레이션을 개조하느라 그런 것이었다.
“캬! 시원시원한 거 봐라!”
“그래, 더 쏴라 더 쏴! 으하하하!”
병사들은 이 호쾌하고 간지나는 빛기둥을 쏴대는 무장에 호의적이었다.
맘에 안 들면 아군이라도 해하는 배양인간 성격에 맞지 않게, 이들은 이 차량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알아서 잘 관리했다.
이 차량의 시험사격 영상을 보고 반해버린 것이다.
멋지잖아! 강하잖아!
그럼 아껴줘야지!
기존 대전차 병기들보다 훨씬 강력한 화력으로 드로칸 지상 병력을 휩쓰는 어나힐레이션 빛기둥에 모두가 환호를 질렀다. 전투지속력을 늘리기 위해 전력소모량을 감소시켜 위력이 다소 줄었음에도 그 성능은 여전히 탁월했다.
“뚫린다!”
“하하! 모두 밀어버려라!”
전방의 드로칸 행성들에는 살벌한 지상 병기들이 가득했지만 수많은 상륙병력과 제공권의 소실을 견디지는 못했다.
“드로칸에게 오염된 행성이다. 모조리 뒤집어버려!”
“단 하나의 드로칸 병기도 남기지 마라!”
전면전 개전 144시간.
기나긴 전선 중 70%에 달하는 곳이 인류에게 패퇴하여 밀려났으며 전방 행성 수백여 개가 인류에게 쓸려나갔다.
제국의 진행 과정을 표시한 전략 상황판에서는 함대를 의미하는 수많은 화살표들이 드로칸 영역 내부로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곳곳에서 드로칸 함대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인류 함대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은 탓에 뒤편까지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박살내라!”
“이 지점에서 적을 축출해 포위진을 만들어야 한다!”
최전선 근방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후방 행성계의 방어 함대는 속수무책으로 함해전술에 밀려나야 했다.
“후퇴하라! 안타깝지만 이곳을 포기한다!”
“하지만 행성들은 어떡합니까?!”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맞서 싸워봤자 은빛 촉수께 돌아갈 뿐. 차라리 모두 모여서 결전을 할 수밖에 없어. 중앙 집결지로 이동하라!”
피 같은 안광을 뿌리며 후방 행성계의 드로칸 방어함대는 후퇴를 선택했다. 그들을 축출한 인류의 함대는 정찰대를 보내 곳곳을 이잡듯 뒤졌다.
[주변의 드로칸 함대 전무!]“바로 정비 후 전진한다! 드로칸의 주력 함대가 도망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대로 드로칸 주력의 뒤를 친다!”
인류가 상륙한 행성들에선 지옥이 펼쳐졌다.
“모조리 죽여라!”
“외계인에게 죽음을!”
점령군은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학살하고 파괴했다.
“싸워! 도망치지 마라!”
“으아아, 저, 저 숫자를 어떻게 이겨!”
몸체가 기계화가 거의 안 되어 있는, 일반 드로칸 주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해 봤지만 폭포를 한 손으로 막는 꼴이었다.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지역 수비대가 전멸하는 가운데, 지평선 너머의 하늘에서는 여전히 궤도 폭격의 살벌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수송대를 호위하던 함선들은 수송선들이 내려앉았음에도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궤도 폭격을 해대 아군이 없는 다른 곳의 지각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그 어떤 드로칸도 남기지 않겠단 의지였다.
이건 정복이 아니라 축출이자 말살이었다.
인류는 드로칸을 다스릴 생각이 없었다.
항복은 필요 없고 용납되지도 않는다.
지구가 불탄 이후로 놈들은 모조리 말살되어야 할 인류의 적이란 것이 모든 인간의 뇌리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졌으므로.
애초에 수백 년 동안 싸워왔는데 다스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최전선 군구 출신이 아닌 함대들이 전선을 밀고, 행성은 최전선의 썩어날 정도로 많은 배양인간들이 밀어버린다.
이렇게 하나하나 발을 맞추어 가며 인간은 파죽지세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
“이, 촉수를 뽑아버릴 놈들!!”
인류가 사방에서 쭉 밀고 들어오고 있단 말에 드로칸 사령관 나티하’트는 촉수를 뒤틀며 역정을 냈다.
점령당한 아군 행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뉴 렉싱턴 전선의 사악한 외계인은 고성을 지르며 부하들을 닦달했다.
“월드 엔진, 월드 엔진을 출격시켜라!”
“하지만 사령관님, 아직 수리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이란 시간은 월드 엔진의 손상을 모두 고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애초에 덜 수리가 된 걸 끌고 나가서 또 부숴먹은 것도 문제지만, 그 ‘드로칸 공격에 면역인 함선’이 저질러 놓은 피해가 너무나도 심대했기 때문이었다.
“크으윽, 일단은 모든 함대를 모으고 어떻게든 해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빈 공간을 뚫고 접근하기 전에!”
점령당한 행성을 통째로 파괴해가며 만들어놓은 안전 구간을 이쪽 전선의 인간이 넘어오기 전에 서둘러 함대 조직과 출격이 끝나야 했다.
나티하’트는 기계 몸을 쿵쿵거리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다급해 보이는군.]“당신 같으면 안 그러겠나?”
으슥한 곳으로 온 그가 연락한 인물은 바로 전직 첩보원장, 나케’르 바툴’라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그릇된 종족의 사악한 우(愚)물질로 생산기지를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며!”
나티하’트는 공업행성에 테러를 일으켰으니 보급에 차질이 빚어져 그와 맞닿은 적 지역(바이츠 군구)에서는 당분간 소극적으로 나올 거란 장담을 그에게 똑똑히 들었었다.
“그래서 함대 일부를 다른 전투지역으로 지원보내기까지 했는데 이런 꼴이라니!!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냐!”
나티하’트가 평소보다 안광을 미친 듯이 발광해대는 이유에는 비단 그릇된 종족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뉴 렉싱턴 전선 방향에 있는 전투함대는 평소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