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최전선 너머-3
도주하는 것 같은 함선을 보고 저거 잡으라고 다급하게 외친 진이 뒤이어 말했다.
“엔진만 무력화해. 잡아서 심문 좀 하자.”
뉴 렉싱턴 전선은 다른 전선에 비해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외계인을 잡아서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냥 맨땅에 있는 드로칸보다는 함선을 나포하는 게 나을 것이다.
엔터프라이즈 호가 최대 속력을 냈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함선 크기 대비 엔진실이 꽤나 컸다. 연속 워프에 쓰기 위해 연료탱크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투 시의 급가속을 위해 엔진을 여러 대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호는 체급이 꽤 되는 구축함임에도 그 순간적인 가속은 레이싱용 우주선 이상이었다.
기뢰 주변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폭발에 선체가 살짝 흔들렸다. 빽빽한 기뢰지대에 일직선 통로가 생겨났다.
[중력 갈고리 발사. 속박 완료. 사격!]전투함이 아니라 수송선인지 지금껏 상대해온 드로칸 함선과 형태가 조금 달랐으며 포대도 없고 방어막도 훨씬 쉽게 파괴되었다.
[무력화 완료했어요!]“깔끔하네. 잘했어 앤젤라. 그럼 이제 수색 준비하자. 앤젤라는 화물선으로 행성 간략하게 훑어보고.”
앤젤라와 함교에 있던 팀원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팀원들은 여전히 저마다 개성 있는 무장이었지만 모두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슬라임이 나노머신으로 외부를 코팅했기 때문이었다.
블랙 파워 아머를 갖춰 입은 진이 합세하자 영락없이 새까만 색깔로 통일한 특수부대처럼 보였다.
“이제 진입한다. 나노머신 방어력 테스트는 완벽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걱정 마. 싸움 한두 번 해봐? 우리도 엄연히 베테랑이라고!”
네브라가 대표로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다녀오세요.”
-잘 갔다 와라!
에나와 슬라임의 배웅을 받으며 팀은 드로칸 수송선으로 진입했다.
***
엔진만을 깔끔하게 관통했는지라 수송선으로 보이는 함선의 안은 그렇게 어지럽지 않았다.
인간의 기준에서는 질척하고 어두침침해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말이다.
“히익!”
“적이다!”
장갑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자마자 날아오는 초록 광선들.
진에겐 당연히 소용이 없었고 팀원들도 나노머신 덕에 거뜬히 버텨냈다. 애초에 드로칸이 나노머신을 제거할 기술이 있었다면 금기로 지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르릉!
수송선 내부에 꽉 찬 드로칸 가스가 거친 엔진음에 가볍게 떨렸다. 진의 상징인 체인소드가 드로칸 보병의 방어막과 몸체를 단번에 갈랐다.
몸이 절단 나고 진녹색 피를 흩뿌린 드로칸들이 쓰러지며 붉은 안광을 하나씩 꺼뜨렸다.
진 말고 다른 팀원들도 한층 업그레이드한 무장들로 손쉽게 광선을 쏴대는 병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항복해! 저항하지 않으면 죽이진 않겠다!”
“하, 항복! 항복이오! 저항하지 않을 테니 부디 쏘지 말아 주시오.”
항복선언을 한 장본인은 기계화가 상당수 된, 주름살이 가득한 늙은 드로칸이었다.
주변에는 기계화가 거의 되지 않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딱 봐도 평민과 귀족 구도였다.
진은 위협삼아 체인소드를 부릉거렸다.
“너희는 누구지?”
“……우리는 고위 군관의 가족이오. 저항하지 않을 테니 합당한 포로 대우를 요청하오.”
턱촉수를 바르르 떨며 말하는 드로칸에게 진은 코웃음쳤다. 포로 대우는 무슨!
지금껏 인간이나 드로칸이나 서로를 대우했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종족 간 국제법 따위는 통합전쟁 이후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코웃음친 것과는 달리 진의 머리는 쌩쌩 돌아갔다.
‘군관이라.’
거짓말은 아니다. 정보창에서의 신분이 무슨 가문의 가주라 되어 있었으니.
“고위 군관?”
“땡잡았네.”
“함장은 운도 좋지.”
혹시나 해서 나포한 건데 예상 밖의 성과였다. 마침 앤젤라가 행성 정찰 결과를 알려주었다.
[함장님. 한번 쭉 돌아봤는데요. 화물선을 향한 대공포 사격이 거의 없어요.]‘군관 가족이 있는 행성인데 방어시설도 변변찮고 기뢰밖에 없다?’
진에게는 그 점이 다른 군사시설에 집중하느라 여기에 할당할 여력이 없단 걸로 보였다. 침공 받고 있는 다른 전역으로 지원이라도 간 건가?
그럼 남는 의문은 하나.
드로칸 정찰 함대는 대체 왜 여기로 적을 유인한 것인가?
“포로 대우라. 못해줄 거 없지. 그러면 넌 내게 뭘 줄 수 있지?”
“으음…… 최대한 은빛 촉수의 교리대로 우리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소.”
누가 종교 종족 아니랄까봐 말을 꼬아서 하고 있었다.
—–
독심 : 은빛 촉수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그러나 성국은 신민을 버리고 교리를 더럽혔습니다. 네 주변만 본다고 촉수를 자르셔도 달게 받겠습니다만, 제 결심은 엄연히 타인을 위한 것이며……
—–
항복이 진심인 거 같긴 하지만 화법이 두루뭉술해서 애매했다. 진은 좀 더 질문을 통해 진의를 알아내기로 했다.
“노력? 쓸모 있는 정보를 알려주겠단 건가?”
“그쪽이 목숨을 보장해준다면 그리하리다. 모든 건 은빛 촉수의 뜻대로 흘러가리니.”
“그럼 하나 묻지.”
진은 이곳에 함정이라도 있을까봐 우선 정찰 함대의 의도를 물었다.
“내가 여기 온 건 한 정찰 함대가 대놓고 유인을 해서거든? 그런데 보아하니 여긴 기뢰 말곤 딱히 군사시설도 없는 거 같은데, 그것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아나?”
그 말에 늙은 드로칸의 속마음이 복잡해졌다. 혹시와 설마가 교차하며 촉수가 경직되었다.
“그 정찰함들의 외부 형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오? 선수 부근의 장식 말이오.”
앤젤라가 곧바로 기록된 드로칸 정찰 함대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역시 그랬나.”
늙은 드로칸이 촉수를 축 늘어뜨리며 세 다리를 휘청였다. 주변의 드로칸들이 그를 급히 부축했다.
“당신의 궁금증은 한 마디로 요약 가능하오. 그 함선들의 소속은 우리 가문과 적대적인 가문의 것이오.”
***
늙은 드로칸에게서 들은 뒷사정은 별거 아니었다. 그냥 두 드로칸 군관 가문 간의 갈등이 깊다 못해 어느 한쪽이 이 전쟁으로 차도살인을 행하려 한 것이다.
‘드로칸도 인간이랑 별 다를 바는 없네.’
종족은 다르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데다 이건가. 상대방이 분열된다면 어쨌건 좋은 일이었다.
“대피 허가도 계속 미뤄졌는데, 이제 보면 그것도 그들의 술수였던 모양이오.”
그래서 대피 준비만 계속 해놓고 있다가, 행성 근처에서 적함이 나타났다는 관측소의 보고를 듣고 더 이상 늦으면 큰일나겠단 생각에 급하게 탈출하던 것이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정보창으로 진심이란 건 알지만 상부에 보고할 때는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그 정찰 함대는 어떻게 됐소?”
“격추했다.”
“잔해를 조사해 보시오. 모두 사람이 없을 거고 내부 상태도 낡고 엉망일 거요. 전략적인 유인작전도 아니고 단순히 악연을 몰락시키기 위해서인데 멀쩡한 유인함을 보낼 리가 없지.”
“인공지능인가?”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자동항법장치로 미리 짜여진 대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요.”
진은 앤젤라를 시켜 화물선으로 잔해를 살피라 지시했다. 그동안은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통신 채널로 팀원들이 작게 잡담을 하는 걸 듣던 진에게 늙은 드로칸이 선뜻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요.”
“포로 대우 해달라며?”
“그 뒤를 얘기하는 것이오.”
그는 정보만 뽑아내고 죽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나는 싸움꾼일 뿐이야. 당신들 처우는 위쪽이 결정하겠지.”
“글쎄……”
늙은 드로칸이 촉수들을 꼬물거렸다.
“아까 봤는데, 그 선체를 가로지르는 구조물, 월드 엔진을 패퇴시켰다는 함선과 닮았던데 말이오.”
드로칸 사이에서 월드 엔진을 패퇴시킨 적함에 대한 얘기는 유명했다.
월드 엔진이 무슨 물건인가.
작은 행성 수준의 물건이며 내부는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어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하기도 한 거대 이동 도시이자 요새다.
그게 고작 적함 하나 때문에 도망쳤다니. 그것도 모자라 다수의 아군을 잃으면서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헛소문이라 군 당국은 일축했지만, 늙은 드로칸은 고위 군관 가문이라 그게 헛소문이 아니란 걸 알았다. 또한 월드 엔진에서 포착한 요주의 함선의 사진을 접할 기회 역시 있었다.
때문에 개조로 인해 다소 달라지긴 했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인, 레일건을 떼어냈던 흔적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함선보다 발전한 물건을 혼자만 다룬다. 당연히 그 지위는 범상치 않다고 보오. 그러니……”
[함장님. 드로칸의 말대로 정찰함들은 모두 텅 비었고 선체 상태도 말이 아니에요.]때맞춰 앤젤라가 결과를 보고하자 진은 체인소드를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증거도 있겠다, 정황상 투항하고 제국에 협력할 명분도 충분하겠다. 그럼 일단 상부에 연락해서 상의를……’
대답 없이 생각만 하고 있는 진의 태도가 영 불안했는지, 늙은 드로칸은 선금처럼 정보 몇 가지를 말해 주었다.
“여기는 대공시설도 몇 없고 여기나 저 밑이나 다 힘없는 민간인뿐이오. 후방 민간행성이라 그 이단 같은 지역 사령관이 설치한 자폭장치도 없소이다.”
진이 그럼에도 가만히 있자, 늙은 드로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돌려 말하지 않고 명확히 의사를 밝혔다.
“망명을 하겠소.”
“망명? 고위 군관 가족이라며? 당신 가족이 군에 있는데 그래도 되나?”
“내 자식이자 가문의 가주는 얼마 전에 죽었소. 같은 동족의 손에.”
늙은 드로칸은 몇 달 전, 다른 전선의 지역 사령관으로 재직하던 가주가 인간들의 수작질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믿지 않았다.
나름 끗발 있는 가문이라 정보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죽음은 첩보원에서의 자작극이었다.
정황상 교리로 금지된 검고 사악한 물질을 사용하는 작전에 반대하다가 죽임당했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그는 첩보원의 독단행동이라 한들 은빛 성국에 막대한 배신감이 들었다.
종족에 대한 충성심은 꺼졌고 교리에 대한 헌신은 빛이 바랬다.
“……그래서 바로 항복을 한 거요.”
국가가 올바르단 가르침만을 받아온 군인 가문의 구성원이 그런 치부를 접한다는 건 정신세계에 일종의 핵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다.
한술 더 떠 적대 가문의 수작질까지 알아버렸으니 국가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질 수밖에.
“흥, 그래봤자 우리한테 총 겨누던 놈들 아니냐.”
니베아의 빈정거림에 드로칸이 반박했다.
“그건 인정하지만, 군인은 국가의 명을 따라야 하지 않겠소. 그대들도 군인이니 이해해주리라 믿소.”
그리고 뭔가 동정표를 사려는 것인지, 추가적으로 자신의 자식은 무단으로 인류와 몰래 평화협정을 맺은 지역의 사령관이라는 것도 언급했다.
“우리라고 전쟁이 좋아서 하겠소? 상부에서 정한 교리가 그러하니 따르는 것이지.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이들은 당신들에게 무기 하나 겨누지 않고 살던 평범한 이들이오. 그러니 내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이들에겐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길 청하오.”
가주가 죽어 영향력을 잃은 그의 가문은 이런 별거 없는 행성으로 내쫓기듯 몰려났다. 이들은 그때 같이 따라온 식솔과 하인들일 뿐이라며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해댔다.
‘그런 사정이었나.’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건 받아주는 게 좋다. 한때 권력층이었으니 쓸 만한 정보도 제법 많을 터.
물론 교차검증은 해야겠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한 팀 엔터프라이즈가 선두에 선다면 문제될 건 없다.
“나도 그리 높은 지위는 아니라서. 조금만 기다려 봐. 상부에 연락할 테니.”
[이런 건 선조치 후보고 해도 된다고 권한 받지 않았어요?]정보부가 진을 전선에 찔러 넣으면서 부여한 권한은 일선 야전 사령관 수준이었다.
그러나 진은 그동안 전혀 그걸 쓰지 않았다. 그는 헬멧 외부 스피커를 껐다.
“그렇긴 한데 정식 지위도 아니잖아. 나중에 무슨 말을 들으려고. 중요한 권한은 남발하면 힘이 떨어져. 그런 건 진짜 결정적일 때 쓰는 거야.”
사람은 겸손해야 하거든.
예전에 배운 처세술이라며 앤젤라에게 충고를 한 그는 곧바로 본대에 상주하는 정보부에게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