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이야기값-5
지금은 자원이 풍부한 우주 시대다.
무게중심이 엉망일지언정, 재료 강도만 따진다면 허름한 빈민가라 하더라도 나름 잘 지어지고 튼튼한 건물이다.
거기다 조직 간 다툼이 일상인 갱단의 본거지쯤 되면 특별히 강하게 건물을 보강하기 마련이다.
그런 강화된 20cm짜리 철문이 고작 발길질 한 번에 찢겨지면서 바닥을 나뒹군 것이다.
“뭐긴 뭐야, 정의의 사도이시다!”
그렇게 일갈하며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검은 색의 단발을 찰랑이며 큼직한 선글라스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겨, 경찰?”
여인의 복장은 중무장한 경찰과 닮아있었다.
“정확히는 전직 경찰이지만 네놈 같은 치안을 어지럽히는 녀석 앞에서는 현직이다. 얌전히 포박당해라 식인종!”
허스키한 여인의 목소리가 갱단 두목 제리스를 비롯한 범죄자들의 귀를 꿰뚫었다. 껌을 쨕쨕 소리 내며 씹는 것이 경찰보다는 불량배에 좀 더 가까워 보였지만.
제리스는 여인의 상체에 둘러진 두툼한 방탄복을 직시할 수 있었다. 우주수사국 UBI라는 노란색 글자도 함께.
그 위에는 검은 유성펜으로 두 줄이 직직 그어져 있고 왼쪽 위에는 깨알같이 ‘전직!’이라는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써져 있었다.
‘저, 저 글자는 설마!’
우주에서 제법 유명인인 진 테일러 함장. 그 휘하 선원들 역시 유명한 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범죄자들에게 악명이 높은 여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제인 네브라 전직 경무관이었다.
범우주적 수사기관인 UBI의 지부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어째서 경무관이란 직위를 걷어차고 일개 선원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온 우주를 돌아다니는 함장을 뒤따라 범죄자를 박살내기로 유명했다.
진 테일러 함장이 유명해진 원인인 현상금 사냥 때도, 함장은 핀포인트로 조지는데 반해 네브라는 주변 범죄조직을 죄다 들쑤시고 다닌 터라 범죄자들에게만큼은 함장보다 그 선원의 이름과 특징이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혹자는 자유로운 범죄자 학살, 아니 체포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수군거리기도 했다.
“이익! 죽어라!”
“하하! 우리 함장이 무뚝뚝하긴 하지만 UBI와는 다르게 지원은 빠방하게 해준다고!”
제리스를 비롯한 에파바르 갱단원들이 날린 플라즈마 탄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에너지 실드를 두른 갑옷에 막혔다. 반대로 네브라의 총탄은 잘만 먹혀서, 갱단 간부들의 머리가 펑펑 터져나갔다.
“어디 한 군데 개조한 놈들한테는 전자탄이 최고지!”
그 말대로 그녀의 총구와 간부들에게 박힌 총탄에서는 번쩍이는 작은 스파크가 튀겼다.
“죽엇!”
제리스는 이판사판으로 자신의 자랑인 기계팔을 이용해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려 했다.
에너지 실드는 플라즈마나 레이저 같은 것을 방호하는 물건. 직접 중량이 있는 물건으로 타격하는 걸 막기엔 에너지 낭비가 심해 비효율적이다.
그의 기계팔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저 호리호리한 인간은 철근도 간단히 접어버리는 이 팔에 바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네브라는 자신이 어떻게 경무관에 UBI지부장 자리까지 올라갔는지를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대처로 증명했다.
증기 피스톤의 힘으로 가속한 회색 팔을 간단히 피한 그녀는 놀랍게도 기계팔을 겨드랑이에 껴 단단히 붙잡았다.
‘걸렸다!’
제리스는 당황했지만 이내 씩 웃었다. 기계팔은 단순히 팔의 기능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붙잡힌 팔의 손목이 꺾이며 그 안에서 칼날이 낫처럼 튀어나왔다. 팔꿈치를 접는 순간 네브라의 등을 날끝이 꿰뚫으리라.
그러나 제리스는 운이 없었다. 네브라는 팔을 잡았다고 행동을 끝내는 안일한 인물이 아니었다.
네브라는 쥐고 있던 권총을 입에 물곤 빈 손으로 품에서 칼을 꺼내 기계팔 관절 틈새에 팍 박아 넣었다.
“그어어어어억!”
칼에서 지직하는 새파란 스파크가 튀겼다. 기계팔이 기능고장을 일으킨 건 물론이고 제리스도 덩달아 감전이 되어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다음 수순은, 네브라의 완력에 기계팔이 어깨부터 통째로 뜯겨나가는 것이었다.
뿌드득하고 기계장치와 연결된 생체조직이 쫙 뜯겨나가는 소리는 아직 살아 있는 조직원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얼굴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맨살이 드러난 네브라의 어깨 부분에서 동그란 형상의 틈새가 생기더니 피시식하고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험한 현장을 뛰는 경찰들이 흔히 하는 최고급 육체강화 임플란트의 흔적이었다.
“어딜 수작질이야.”
네브라는 바닥을 뒹구는 기계팔에서 튀어나온 칼날을 툭 걷어차며 피식 웃었다.
정신을 잃은 두목의 얼굴과 그녀의 검은 하이힐 굽이 뼈 부러지는 소리로 인사했다.
“하하하하! 오늘도 악은 정의에 짓밟혔도다!”
“형님이 당했다!”
“쏴! 쏴! 컥!”
기절한 두목의 안면을 신발 밑창으로 꾹꾹 밟으며 몰려오는 갱단원을 여유 넘치게 상대하는 그 모습은 확실한 5성급 선원다웠다.
“핫핫핫! 다 죽어라 애송이들아!”
온갖 장치로 개조한 범죄자를 죽이기 위해 특별히 개조한 그녀의 대구경 쌍권총이 다시금 화려한 불꽃을 토해냈다.
제인 네브라 전직 경무관은 자신이 좋아하는 범죄자 소탕으로 화려하게 새 삶의 첫 하루를 시작했다.
***
네브라가 갱단을 뒤집어엎고 있을 무렵, 도시의 경찰청장은 특별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허, 저런 무위라니. 역시 테일러 함장님의 팀원은 대단하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는 도시의 골칫거리인 것들을 간단히 쓸어 담는 네브라의 활약을 드론 카메라로 생생히 관찰하며 진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요즘 놈들이 골을 썩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함장님이 저희 행성에 찾아오다니 정말로 복에 겨운 날이군요 오늘은. 더군다나 경무관님의 무위도 저렇게 놀랍다니.”
경찰청장이 경무관님이라고 말을 높이는 것에 진은 가볍게 웃었다. 하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순경이건 경장이건 님자가 붙을 만도 했다.
“이야, 역시 돈 많으신 함장님답습니다. 저 플라즈마 포화를 모두 받아내는 개인장구라니.”
“하하하.”
“그런데 한 명이 더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 회색……”
“그나저나 현상금과 사례금 계산은 어떻게 됩니까?”
진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지금 그 멋대가리 없는 회색 갑옷은 네브라 부활 직후부터 앤젤라가 대신 조종하고 있다. 킬수 5백 찍었다면서 환호를 지르는 통에 귀가 아팠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차후 시체와 잡아들인 범죄자를 바로 계산해서 금액 쏴드리겠습니다.”
“놈들의 검은 돈 계좌는요?”
“당연히 드려야죠. 지금쯤 인출도 정지되어서 다른 녀석들이 빼내갈 걱정은 없을 겁니다. 이 도시에 있는 놈이 갱단의 머리이니 놈만 날린다면 수월하게 풀리겠지요. 앗, 비율은 당연히 함장님이 6입니다.”
아. 역시 센스가 있으셔.
그러나 진은 아직 배가 고팠다.
“거기서 하나만 더 계산해주시죠.”
“계산이요?”
“갱단한테서 장부를 하나 찾았는데……”
진이 등받이에 몸을 묻으면서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청장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인류가 지구에만 있을 적에 쓰이던 종이지폐는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지폐 세는 방식에서 파생된 두 손가락을 비비는 몸짓은 아직 살아남아 있었다.
청장은 그 의미가 뭔지 모를 리 없었다.
‘뇌물장부!’
청장 역시 뇌물을 받은 인원에 포함되었다.
갱단 세력들의 깽판 방지를 위해 일종의 사법 거래로 받은 거지만 사욕이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청장이 아까 굳이 빈민가로 진입하겠다고 떼를 쓴 이유가 이거였다.
‘벌써 그걸 챙겼을 줄이야!’
진이 빙긋 웃었다.
“싸게 넘겨드리죠. 어떠십니까?”
망할. 봤구나.
치안을 위해 범죄자에게서 뇌물을 받는 일은, 우습게도 제국 행정부에서 반쯤은 허용하고 있었다.
자세한 거래사항과 이후 경과를 꾸준히 보고해 위법행위를 방지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세금을 뗀다면,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목적 하에서라면 어쩔 수 없는 사법거래로 인정해 준다.
하지만 그건 정식 법률이 아니라 공무원들 사이에서만 도는 일종의 불문율일 뿐.
세간에 장부 내용이 뿌려지면 그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돌과 계란을 맞으며 옷을 벗어야 하리라.
“가, 감사드립니다.”
청장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AI에게 통장 잔고를 확인하라 시킬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뇌물 장부에 있는 경찰 간부들에게 연락하라 했다.
다 같이 나눠먹었으니 그 리스크도 다 같이 나눠져야 하는 법이다.
***
“유후! 공기 좋다!”
몸에 구멍이 뚫리거나 박살난 시체들과 주인을 알 수 없는 육편들이 뒹굴거리고 매캐한 화약 연기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골목길 한가운데였지만, 네브라에게는 범죄자의 역겨운 숨결이 존재하지 않는 공기이니 참으로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한껏 기지개를 펴며 소탕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던 그녀에게 앤젤라가 조종하는 깡통 갑옷(진이 붙인 별명이다)이 다가왔다.
[드론으로 잔당을 소탕하고 있으니 곧 끝날 거예요.]“좋아좋아. 오랜만에 몸 잘 풀었다. 흐흐흐.”
[기분 어때요?]“무슨 기분?”
[복구요.]“아아, 부활?”
네브라는 엇차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기분이고 자시고 난 잘 모르겠어. 폭발 사고는 샘플 보낸 지 일주일 뒤에 났대매?”
네브라의 입장에선 꽤 얼떨떨했다.
머리카락을 뽑아 시험관에 담고 그 시험관이 빛의 입자로 사라지는 걸 본 직후, 갑자기 세상이 바뀌면서 완전무장한 채 웬 구질구질한 뒷골목으로 이동한 셈이었으니까.
“첫 죽음이라지만 기억도 없으니 별 생각도 안 드네.”
시원시원한 성격대로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다른 선원의 복구 비용이었다.
“내가 수천억 크레딧이 들었다며?”
[정확히는 8290억 7740만 4437 크레딧이에요.]한 명당 수천억 크레딧이라는 비정상적인 현상금이 붙은 수상쩍은 에파바르 고위인물 여럿을 잡은 게 아니었더라면 언제 그 돈을 다 모았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이야, 가격 돌았네. 그 정도면 수송선단 하나 꾸리고도 남겠다. 복구 회사 놈들 양심도 없지. 내가 다른 애들에 비해 가장 싸다고?”
[지금 그게 불만인가요?]앤젤라는 한심하다는 듯 네브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네브라는 낄낄대면서 익살스럽게 아픈 시늉을 했다.
드론의 폭격과 둘의 난동으로 인해 반쯤 폐허가 된 갱단 소굴 곳곳에서는 아직까지도 총성과 비명이 들려왔다.
앤젤라가 조종하는 경찰 드론의 사격음과 탈출하려는 갱단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경찰 병력에게 사살되며 발생하는 별 의미 없는 소음이었다.
“이제 복귀하는 거지? 그나저나 너도 성능 업그레이드 좀 했나봐? 함선AI가 무슨 안드로이드처럼 갑옷 조종하는 건 처음 보네.”
[후후후후. 그런 일이 좀 있었죠.]“어우 웃음소리 음흉한 거 봐. 무슨 사악한 음모 꾸미는 안경에 흰 코트 입은 음험한 중년 아재 같네.”
[왜 묘사가 그렇게 기분 나쁘게 자세한 거죠?]사방에 즐비한 범죄자들의 시체 위에 두 여인의 웃음기 머금은 수다가 끼얹어졌다.
***
깊고 깊은 우주 어딘가.
새빨간 산화철로 점철된 조그만 암석 행성에서 귀 긴 금발 외계인들이 회동을 가졌다.
그 모임은 지금까지 음모를 꾸미면서 흐흐흐 웃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엘-문타시르 그 한심한 새끼!]그들은 홀로그램을 통해서 한 간부에 대해 욕을 하고 있었다.
[대체 몇 명이 죽은 거야!] [그놈이 구경하라고 충동질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우리 계획에 중요한 인물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어. 지금 정보망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고.]그들은 ‘검은 악마’를 죽일 수 있는 확실한 계획을 세웠으니 그걸 구경하라며 고위 간부들을 불러들인 엘-문타시르를 모두가 한마음으로 까댔다.
그 죗값으로 죽음을 맞이하긴 했지만 본디 욕이란 생자와 망자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너무 치명적인 유혹이긴 했어. 검은 악마를 언급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고.] [나도 일만 아니었으면 바로 자리 박차고 나갔지.]그러면서 검은 악마의 손에 죽은 인물들을 옹호했다. 그 철전지 원수놈을 죽인다는 말에 혹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할 일이 많아 그 최고의 광경이 벌어질 장소에 참석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