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27)
27화 그림자 우물-3
일정 공간 내에 그 어떤 천체도 존재하지 않는 지역, 우물.
그런데 그림자 우물은 그 안에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 무언가의 첫 목격자는, 우물을 지나던 함대 하나가 실종되자 그걸 찾으러 들어갔던 수색대에서 생환한 유일한 생존자였다.
전함을 한입에 삼킬 수준의 거대하고 시커먼 생명체가 저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무인함선을 보내고 광년 단위의 거리를 관통하는 스캐닝 방식으로 우물을 탐색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후로도 길을 잘못 든 소규모 함대가 증발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극소수의 생존자가 똑같은 증언을 하자, 인류는 그곳을 절대 접근 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
제국은 그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이르러 ‘그림자 괴수’라 불렀다.
아무것도 스캐닝되지 않아 존재를 확인할 순 없으나, 목격담이 동일하고 우주 곳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으니 존재를 인정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 놀라운 발견이야.”
아직도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한 초거대 우주 생명체의 존재를 이렇게 사고를 통해 확인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놈의 뱃속으로 워프를 했다니 행운인지 불행인지.
“함장님. 당장 조사하죠!”
“그냥 워프하지? 당장 에파바르가 급하잖아. 어차피 여기는 다시 올 일도 없고.”
탐구심에 열광하는 에나와 고개를 저으면서 얼른 튀자 재촉하는 네브라.
나는 네브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림자 우물로 들어올 일은 앞으로 없을 테니까. 여기서 뭐 건질 것도 없……
[제국이 여기 정보에 대한 현상금을 걸긴 했네요.]잠시 천사와 악마가 머릿속에서 치열한 레슬링을 벌이는 시간이 있었다.
“됐어. 그냥 가자.”
귀쟁이부터 조지자는 의견의 천사가, 돈이나 벌자는 악마에게 길로틴 초크를 먹이며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여긴 나중에 또 올 수 있지만 에파바르가 완벽하게 튀어버리면 언제 또 그 꼬리를 잡을지 알 수 없어.’
내가 총회의에서 발언한 지 사흘이 지났다. 귀쟁이들이 제이슨 회장을 암살하며 내게 선전포고를 한 지는 한 시간도 안 되었고.
곳곳에 퍼진 에파바르의 정보망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깊숙이 침투하고 있을수록 바로 발을 빼기는 힘들 터.
제국도 기업들에게서 말을 듣고 움직이고 있긴 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쥔 정보가 가미되면 심각성을 격상시켜 더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에파바르가 입을 피해는 더 커지는 거지. 꼬리 끝만 잘릴 걸 중간까지 자르는 효과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 아깝기는 했다.
만약 채굴용 탐사 드론이 멀쩡했다면 한번 훑는 시도 정도는 했겠지만, 하필 직전에 들렀던 데가 항성 중심이라 다 녹아서 못쓰게 되었다.
더구나 드론은 게임 내에 구현되지 않은 거라 아이템 코드가 없어 스폰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외부 카메라 영상은 다 찍어놔. 그림자 괴수로 추정되는 정보로 푼돈이나 받아먹자고.”
[알겠어요.]“으으으…… 에파바르 놈들 용서 못해! 마음 놓고 조사도 못하고……”
엉뚱하게도 에나가 에파바르에 대한 증오를 불태웠다. 저거너트의 두꺼운 손이 꾸드득하고 쥐어지는 게 꽤나 무서웠다.
“얼른 워프하자.”
[엇, 함장님. 발전기 상태가 조금 좋지 않아요.]성능 좋은 대형 화물선이긴 하지만 군용으로 쓰이는 워프엔진의 엄청난 전력 소비를 버티긴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래? 발전기 확인하고 다시 올게. 그동안 조금이라도 조사 해봐봐.”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만 도의 고열에 찬란하게 빛났던 복도는 회색빛의 거무튀튀한 본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같은 복도는 육교처럼 공중에 위치했다.
복도 좌우측으로는 선원들이 지낼 수 있는 숙소가, 밑으로는 화물을 수용하는 텅텅 빈 공간이 고스란히 보였다.
‘언젠가는 저 화물칸이 광물로 꽉 차겠지.’
그렇게 희망찬 생각을 하면서, 행운의 동전이라도 던지는 것처럼 아이템 스폰으로 조그만 광석 조각을 만들어 저 밑으로 툭 던졌다.
조각은 다리 밑의 강화유리 천장에 막혀 딱따그르하는 소리를 냈다.
간간이 켜진 불빛에 긴 그림자가 생겨나 숙소와 화물칸에 드리워졌다.
문이 활짝 열린 선원 숙소에는 법률상 선원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강화유리로 된 작은 창문이 나 있었다.
지나가면서 무심코 안을 흘끔거린 그 때.
그 어떤 것도 없는 태초의 어둠이 드리워진 창문 너머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턱에 힘이 꾹 들어갔다. 손은 어느새 허리춤의 무기에 가 있었다.
무적상태인 한 어떤 것도 날 해할 순 없지만, 이건 미지의 것을 마주친 생명체의 반사작용이었다.
‘방금 뭐였지?’
상대적으로 밝은 안쪽에서 움직이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거울처럼 비쳐서 잘못 본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겉은 평상복이지만 게임 시스템 상으로는 속에 스위칭용 갑옷을 장착하고 있어 오감강화 시스템이 항시 적용되어 있는 상태다.
날아오는 총알의 궤적조차도 파악할 수 있을 수준의 감각 강화가 잘못되었을 확률은 낮다.
“앤젤라. 지금 밖에 뭐 보여?”
[계속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어요.]“스캔 다시 한 번 해봐.”
[그냥 우주공간에 있다고 봐야 한다니까요? 어떤 결과도 안 나와요. 스텔스 성능 하나는 기막힌 괴물이라니깐.]“전방향 카메라 확인해봐.”
[특이한 건 없어요. 혹시 제가 못 본 거라도 보신 건가요?]눈 뜬 장님이 된 앤젤라의 도움을 받기엔 무리였다.
“……아무것도 아냐.”
나는 창문 가까이 가는 걸 포기하고 궁금증을 억눌렀다. 공포영화 같은 데 보면 이런 데 호기심 가졌다간 무슨 일 생긴다고.
타일 보호 상태라 저게 유리창 깨고 들어올 일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나는 다시 다리를 펴고 걷기 시작했다. 한쪽 손은 허리의 권총집에 가져다 댄 채로.
엔진실에 도착한 내 표정은 구겨진 비닐봉지처럼 되었다.
‘다 탔네.’
화물선의 발전기는 두 번의 연속적인 워프에 필요한 전류를 대느라 무리해서 내부가 완전히 녹아 있었다. 앤젤라야. 이건 조금 안 좋은 게 아니잖아.
‘어드민도 기능적인 문제는 해결 못하는구나.’
게임에서는 무언가 고장이 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타일 보존 기능도 외력에 의한 파손은 방지해도 자체적인 문제에 의한 손상은 보호해 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애초에 그 게임 어드민 기능이 제한적이기도 하니까.’
나는 템창에서 공구를 꺼냈다. 전선을 차근차근 분리해내는 와중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화물선에 최고 티어 발전기를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
순간적으로 소형차량 프레임에 제트엔진을 붙여놓은 인터넷 짤이 생각났다.
“/itemspawn quantumpowergenerator.”
그렇게 선체는 화물선인데 최종 티어 발전기를 가진 키메라가 탄생해 버렸다. 워프엔진까지 설치한 마당에 뭘 가리겠냐마는.
‘근데 이러면 기존 엔진도 교체해야 하는데.’
워프엔진 말고 기존의 초광속 엔진 말이다. 엔진이랑 발전기랑 서로 급이 맞지 않으면 낮은 쪽이 고장 나기 딱 좋다. 이번에 타버린 발전기처럼.
‘그래. 빠르면 좋지.’
우주전을 감안하면 단단하다는 것 외의 수단도 구비해둬야 했다.
“앤젤라, 엔진도 바꾼다.”
[엔진요?]“뭘로 할까?”
[……뭘 설치하실 생각인데요?]대답까지의 짧은 공백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엔진 기능 드라이버 뭐까지 있어?”
[당연히 저희 원래 함선 엔진까지 있….. 설마 중순양함용 엔진을 다시려고요? 화물선에?]중순까지인가. 아쉽네.
가능하다면 전함용 달려고 했는데. 전파가 닿지 않는 이곳에서는 드라이버 다운로드가 불가능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앤젤라도 재차 묻진 않았다. 그렇게 침묵으로 서로 합의를 이루었다.
[엔진 불 끌게요.]앤젤라는 끼어있던 걸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가동하고 있던 엔진을 멈추었다.
연료 공급관의 압력 눈금이 0으로 떨어졌다. 관 안쪽의 유체가 흐르는 걸 보여주는 투명한 부분에서 일렁이던 보라색 액체도 사라졌다.
웅웅거리던 소음이 뚝 끊기자 방음부스에 들어온 것만 같은 고요가 차디찬 금속 방을 짓눌렀다.
바깥에서 괴물의 심장소리라든가 그런 건 들려오지 않았다.
들려왔으면 꽤 공포게임 분위기가 되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난 공포게임이 싫거든. 내가 왜 샌드박스 게임을 좋아하겠어.
‘어디보자.’
중순양함용 엔진이 FTL(초광속)엔진 중에 무슨 버전이더라?
투두둑
‘응?’
뭔가 돌 부스러기가 철판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눈동자는 빠르게 머리는 천천히. 그렇게 엔진실을 쭉 훑었지만, 천장의 백색 등이 여기저기 녹슨 엔진실을 창백하게 비추고 있는 장면 외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
그렇게 한참을 석상처럼 있어도 더 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냥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진 건가?’
그러고 보니 이거 구입할 때 엔진 노즐 쪽에 녹이 조금 슬긴 했던데.
“/itemspawn…… ftlenginever5.”
버전 파이브였나?
나는 게임에서 어드민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아서 아이템코드를 모두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코드 명칭이 보통은 아이템명칭을 그대로 붙여놓은 거라 어지간하면 간단한 추론으로 해결되었다.
내 눈앞에 큼지막한 덩어리 하나가 뿅 생겨났다.
‘아니네.’
이보다 더 커야 돼.
아이템 삭제를 한 뒤 Ver.6를 스폰시켰다.
“아. 그래 이거지.”
예전 함선에서 자주 봤던 든든한 덩치를 보니 절로 감탄이 튀어나왔다.
원래 있던 엔진에서 전선을 떼어내고 연료 탱크와의 연결도 끊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destroyitem.”
현재 배가 타일 보존 상태라 완전히 바닥에서 떼어내는 건 불가능해 아이템 삭제 기능으로 오래된 엔진과 녹아버린 발전기를 제거했다.
연식이 수십 년은 되어 곳곳에 땜질 자국이라는 영광의 흉터를 지니고 있던 화물선의 엔진과 과로사한 발전기가 안식에 들었다.
“어디보자…… 어느 세월에 다 하지.”
2층 건물만한 엔진과 그 옆에 짚단처럼 비죽비죽 튀어나온 선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임이면 그냥 툭하고 설치할 수 있는데.
엔지니어 파비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복잡한 기기의 설치는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
워프엔진이야 전자기기의 비율이 높고 설치과정이 어렵지 않아 에나도 가능하지만 초광속 엔진은 아니다.
‘파비안 복구하기 전까지는 어차피 기기점검은 내가 맡아야 하니까 공부라 생각하고……’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너무 조급하게 굴면 손이 꼬이고 생각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는 법.
나는 조급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공구를 들었다.
파비안을 영입하기 전에 직접 시설물을 설치했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이것저것 만져 보고 같이 동봉된 설명서를 꼼꼼히 읽기도 하며 엔진을 결합해갔다.
차디찬 엔진실에서 잘그락거리는 쇳소리와 치지직하는 용접 소리 등의 작업하는 소리는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대략 두 시간이 흘렀다.
에나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스캐너와 씨름을 해댔고, 앤젤라는 부지런히 주위를 촬영하면서 어떻게든 바깥 신호를 잡으려고 애썼고, 네브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하염없이 바깥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으으 허리야.”
분명 무적 상태라 피로건 통증이건 없을 텐데. 정신적인 문제인가. 오늘따라 고생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니 피곤한 모양이다.
참 다이나믹한 하루, 아니 한 시간이었어.
도주, 항성 다이빙, 괴물 뱃속 골인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겪다니. 이거 자서전으로 써도 아무도 안 믿어 주겠지?
‘그래도 용케 다 되어가네.’
난생처음 조립식 컴퓨터를 스스로 완성했을 때와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그 컴퓨터는 수냉이라 한 달도 못 돼서 터졌지만.
나는 힘껏 기지개를 폈다. 뻐근한 뒷목을 풀면서 절로 고개가 천장으로 향했다.
“응?”
-우익?
천장 한복판에 붙은 새까만 낯선 무언가와 내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