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34)
34화 고발-5
관광지 밑의 차가운 군사기지, 그 군사기지 한복판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하고 삭막한 궤도 엘리베이터, 얼굴에 방독면까지 뒤집어써 공포 분위기를 풍기는 병사들.
고위 공직자들과 귀족들이 거쳐 온 길이라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살벌했다.
“이게 행성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라니. 너무 이상한데요.”
에나의 목소리 크기는 주변 병사들에게 들릴 새라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 수준이었다.
“그러게. 아무리 황제가 있는 곳이라지만 이렇게나 과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
네브라 역시 짙게 의혹을 품었다.
‘황제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니까 내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우주 시대 사람들 기준으로도 좀 과하긴 하나보다 하고 진은 생각했다.
“AI단말기는 두고 가셔야 합니다.”
병사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일행은 손목에 낀 단말기를 제출했다.
[메롱~ 소용없지롱!]앤젤라는 단말기와 연결된 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적인 영향으로 진에게 장착된 거라 그에 한해선 단말기가 없어도 소통 가능했다.
덜컹거리며 검은 구조물의 입구가 열리자 병사들은 말없이 총구를 까딱였다.
도대체 방문인지 연행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설마 황제 보러 오는 귀한 신분의 사람들도 이런 대접을 받는 건가 하는 의문이 일행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엘리베이터 안쪽은 달에서 지구를 오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제법 걸려서 그런지 멋들어진 응접실 형태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천장의 네 귀퉁이에서는 감시카메라가 붉은 안광을 빛내고 있는지라 마음 편히 있을 곳은 아니었다.
그 살벌한 네 개의 눈망울이 발하는 분위기에 일행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내 덜컹 하면서 궤도 엘리베이터가 지구를 향해 낙하를 시작했다.
‘……뭐지?’
이런 우주 구조물의 내부 기압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라 이런 비행기가 이륙할 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진은 속이 울렁거리면서 귀가 멍멍해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지구를 향해 추락할수록, 그는 짙디짙은 심해로 끌려 들어가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이 뒤섞여 머리를 헤집어댔다.
[으으으 뭐야 이거! 어지러워요! 아파요! 살려줘요 함장님!]기이하게도, 통증을 느낄 수가 없는 인공지능인 앤젤라도 고통을 호소했다. 난생 처음 겪는 생소한 감각에 앤젤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반면 나머지 두 선원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함장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냥 두통이 좀 와서.”
진은 통증과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어떻게든 생각을 다른 곳으로 쏘아냈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 사이에 모든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렬로 정렬이 될 정도다.
하지만 이곳의 도시화된 달과 지구의 거리는 그 3분의 1에 불과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왜 굳이 달과 지구를 연결하는 일을 한 걸까?
더구나 초광속 항행으로 항성계 간의 여행도 순식간에 이뤄지는 세상에 대기권에서의 직접 진입을 금지하는 법률이 소용이 있을까?
은하 최고의 함대가 항시 순찰을 하는(바르닥 전쟁 때는 한 번 뚫렸지만) 중앙군구인데 뭐가 그리 두렵다고 이러는 걸까?
무수한 물음표로 탑을 쌓으며, 진 일행은 인류의 요람과 가까워져갔다.
***
[도착했습니다. 승객 분들은 대기해 주십시오.]엘리베이터의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성능은 좋네.”
“그러게요. 벌써 도착했어요.”
쓸모의 유무와는 별개로 성능은 뛰어난지 가속과 감속을 느낄 수 없었다.
‘으음……’
[으으으, 살려줘요.]진과 앤젤라는 아니었지만.
내려오면서 느꼈던 어지러운 감정들과 몽둥이로 머리를 후려친 것 같은 격한 감각은, 지금은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진의 귀와 머리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으으, 아깐 정말 전파가 너무 셌어요.]‘전파? 전파방해 같은 건가?’
[비슷한 느낌이에요. 뭔진 모르겠는데 EMP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어요. 흐으윽, 아직도 지끈거리네…..! 왜 단말기를 제출하랬는지 알 거 같아요. 어지간한 AI는 다 망가졌겠네.]덜컹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감옥 같았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문 너머로 하얀 원통 구조물의 복도가 일행을 반겼다.
“가자.”
셋이 조심스럽게 복도에 난 화살표 위로 올라서자 바닥이 무빙워크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아서자, 건물의 끝임을 의미하는 큰 철문과 그 앞의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반갑습니다. 진 테일러 함장님. 루이스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
성명 : 루이스
종족 : 안드로이드
직업 : 정보부 소속 정보원 및 지구 경비병
감정 : 평온
상태 : 정상
독심 : 명령 이행중
—–
그는 안드로이드였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귀 부분의 보청기처럼 생긴 안테나 장치가 달린 다른 모델과는 달리 그런 게 없어 영락없이 사람처럼 보였다.
“발러가 준 봉투, 보셨습니까?”
“아직이요. 지구에 도착하면 열어보라 했는데, 아직 건물 안 아닙니까?”
“지금 열어보시면 됩니다.”
바스락
지구 밖에서 지구에서 본 내용을 발설하지 말라는 동의서였다. 발설 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단 경고문이 붉게 인쇄된 게 꽤 섬뜩했다.
진은 동의를 안 할 생각은 아니지만 너무나 이상하여 질문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정말 있는 겁니까?”
동의서에 지구 대신 황궁이 들어가 있다면 이해한다. 근데 아예 행성에 대한 정보 자체를 발설하지 말라니?
루이스는 눈을 감고 침묵하여, 그건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라는 답변을 대신했다.
“왜 제국의 수도인 여기에 대한 내용이 세간에 별로 안 퍼졌는지 알겠네. 이게 감옥이지 무슨 행성이야.”
네브라가 서명을 하며 투덜거렸다.
아무리 지구가 사람들에게 성역처럼 취급된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다 하셨으면 주시지요.”
동의서를 받아들고 확인한 루이스는 등을 돌려 패널을 조작했다. 양편으로 열린 금속 문짝 밖에는 또 다른 방이 있었다.
일행은 저게 살균을 위한 소독실 혹은 우주선과 우주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밀폐실과 같은 용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면 벽에는 방호복이 가득한 유리 캐비닛이 있었으므로.
“입으시면 됩니다.”
진은 캐비닛을 훑다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이 새하얀 공간과 대비되는,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먼지가 캐비닛의 유리문 아래쪽에 침착되어 있었다.
‘재?’
단순히 청소에 미비해 생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것치고는 짙었다.
이런 깔끔한 곳에서 난데없이 불티가 흩날릴 이유는 없을 테니, 밖에서 왔단 말이다.
‘최근에 불이라도 났나.’
일행이 옷을 빈틈없이 껴입자, 루이스는 일행이 들어왔던 왼편 문을 닫고는 오른편 문을 열었다.
푸쉭하는 소리와 함께 바깥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세상에.”
“맙소사.”
일행은 왜 그토록 지구 방문이 이렇게까지 번거롭고 편집증 환자 같이 굴었는지 깨달았다.
우주에서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구슬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
전쟁의 참혹함을 주제로 한 영화들은 배경에 걸맞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선호한다.
흙이 고스란히 드러난 삭막한 땅이나, 이곳저곳 튀어나온 철골, 우울한 회색 하늘은 기본이요, 사람 하나 없는 길목 같은 배경요소 등도 자주 쓴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전장의 위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 진의 일행이 마주한 지구의 모습 역시 그러했다.
회색 콘크리트를 빻아 뿌린 듯한 메마른 대지, 나무 한 그루 없이 텅 빈 지평선, 방바닥을 한 번 훑은 걸레 같은 거무튀튀한 하늘.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서 상상했던 그 어떤 이미지도 거부하는 지표면의 모습에, 모두가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여기가 지구라고?
혹 궤도 엘리베이터를 탄 게 아니라 워프를 한 게 아닐까?
“루이스. 이게 뭡니까.”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이 지역에 특별히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지구 전체가 이렇습니다.”
“우주에서 본 건?”
해명 대신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의미의 침묵이 대신 돌아왔다.
[설마, 홀로그램?]앤젤라의 경악이 진의 귀에 흘러들었다.
행성 전역을 완벽하게 위장할 정도의 겹겹이 쌓인 홀로그램을 발생시키는 장치들이 지구 상공에 전자기파로 이뤄진 장벽을 형성한 것.
그게 진의 두통과 울렁거림의 원인이었다.
진과 감각이 연동된 갑옷과 전투시스템을 보정해주는 앤젤라가, 방해전파 수준의 두꺼운 장벽 때문에 이례적으로 영향을 받은 탓에 덩달아 진도 감각과 감정이 이상해진 것이다.
무적상태를 무시하고 몸에 변화가 오니 무슨 큰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간접적인 원인에 의한 멀미였다.
‘홀로그램……!’
대기권 진입 금지도, 궤도 엘리베이터에 창문 하나 없던 것도 그 이유였나!
옆의 두 선원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아직도 아연한 표정으로 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연구원인 에나가 제대로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아름다운 행성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진 탓이다.
“얼른 가죠. 서둘러 황제 폐하를 뵙고 여길 떠야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십니다.”
일행이 나온 엘리베이터 정거장 옆에는 바닥에서 약간 뜬 반중력 호버크래프트가 있었다. 그걸 타고 대략 두 시간을 이동하여 황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궁 역시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여깁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군데군데 나 있는 회색 허허벌판 한가운데.
폭격을 맞은 것처럼 검댕투성이에 다 쓰러져 가는, 회색 눈발 같은 잿가루가 소복이 덮인 채 서서히 종말을 향해 기어가는 건물이 있었다.
“이게, 황궁이라고요?”
“들어가시지요.”
지구에 들어오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겪은 걸 보상해주듯, 황궁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별 거 없었다.
여느 국가기관이라면 존재하는 경비병도, 바삐 돌아다니는 관료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요. 그 어떤 감시장비나 안전장치도 없어요.]숨겨진 터렛이나 감시카메라, 하다못해 황제를 호위하는 비상대기조 같은 것도 없었다.
‘여기에 황제 혼자 있다고?’
지금껏 본 광경들은 모조리 의문뿐이었다. 이 무수한 물음표들을, 황제는 풀어줄 수 있을까?
“들어가시지요. 두 분은 여기 계시고요.”
루이스가 방문을 열어주었다. 끼익하는 녹슨 경첩의 비명과 함께 금이 쩍쩍 간 곰팡이 핀 갈색 문짝이 열렸다.
방 안으로 들어온 진은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쓰지 않은 듯한 낡은 집무실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진 책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
진은 한쪽에서 빛나는 푸른빛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신가 진 테일러 함장.]흰 먼지가 두텁게 쌓인 탁자 위.
네모난 정육면체 큐브에서 나이든 남성의 전신 홀로그램이 띄워져 있었다.
진은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함장님. 저거……]‘그래. 나도 보고 있어.’
그 상자는 단순 홀로그램 장치가 아닌.
“지금 저랑 장난하는 건 아니겠죠?”
AI의 전자두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