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37)
37화 고발-8
[사고로 잃은 선원들을 복구 회사에서 복구하느라 돈을 많이 쓰고 있는 모양이지?]황제의 날카로운 분석력에 진은 기가 조금 죽었다.
이리 자세히 아는 걸 보면 자신에 대한 정보를 그동안 꼬박꼬박 보고받은 모양이었다.
황제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좋아해야 하나?
그는 물정 모르는 풋내기를 타이르듯 말했다.
[그런 자네가, 전투도 아니고 기술로 전쟁을 도와준다고? 기술은 시설과 인원이 있어야 제 힘을 발휘하는 것이야. 그리고 전쟁이란 건 상상 이상으로 물자를 내버리는 행위일세. 자네가 제국에 기술을 넘긴다는 방법 이외에는 자네 개인이 그걸 실현하기엔 어려워 보이네만.]황제의 눈은 분노를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눈앞의 진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크레딧은 있는 대로 퍼먹고 세금은 한 푼도 안 내는 인플레이션 방지용 복구회사 놈들한테 돈이 빨리는 상황인데 자네가 막힘없이 생산이 가능하겠나? 재투자도 힘들 텐데?]복구회사 운운 하자마자 눈이 번뜩이는 것이 꽤 오랫동안 쌓아온 원한임이 분명했다.
황제는 뭔 복구하는데 크레딧이 많이 드냐면서 복구회사의 수전노 사상을 욕했다.
“기술을 통한 생산으로 지원을 하겠단 얘기가 맞습니다.”
[그래? 자네가 군납 경험이 이미 있다는 것에서 제법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기반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네만, 지금 그게 다 날아간 빈털터리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설과 자재를 제공해주는 건 곤란해. 그건 정경유착이야.]“어, 가까스로 설비 몇은 건져서 말입니다……”
계속 언급되는 빈털터리란 낱말이 진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현재 황제와 진의 구도도 한쪽은 내려다보고 있고 한쪽은 거지처럼 앉아있으니 더욱 부각되었다.
[그런데 굳이 나한테 그걸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나? 경쟁입찰로 납품하면 그만인걸. 아무리 그래도 질 떨어지는 물건에 특혜를 봐줄 순 없어.]“질적 문제는 아닙니다. 그게, 세금관리청에서 트집을 잡을 수 있습니다.”
황제의 시퍼런 얼굴이 찌그러졌다. 신병 기를 죽이려는 훈련소 조교 같은 사나운 표정이 된 황제가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설마 내 앞에서 탈세를 용인해달라는 건 아니겠지?]“그럴 리가요.”
떼먹을 세금이 없는데 어떻게 포탈을 하겠습니까. 진은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양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내저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릴 만큼 바보가 아닙니다.”
[그래. 여태껏 편법 없이 우직하게 세금 잘 냈으니까. 그럴 일은 없으리라 믿네.]“그럼요.”
성실하게 세금 납부해서 다행이다. 그게 다 신뢰도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만들어서 납품할 제품들은 원자재값이 거의 안 들기 때문입니다.”
허공에서 뿅하고 만들거든요.
시간도 안 들고요. 라고 진은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그 말에 황제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슬쩍 뒷걸음질쳤다.
저기, 왜 물러서세요.
[자네가 재산과 동료를 잃어서 심히 안타깝다고 생각하네. 내가 좋은 병원을 알고 있으니까 소개를……]“누굴 정신병자로 생각하십니까?”
서로의 계급장이 순간 떨어졌다가 붙었다.
“큼. 아무튼 정말로 그런 기술입니다. 그만큼 훨씬 싸게, 그렇다고 질도 안 떨어지게 공급해드리죠.”
[개소리라는 소리를 들을 건 각오하고 꺼낸 거지? 여긴 사기꾼이 사람들 모아놓고 그럴듯한 말로 미혹하는 자리가 아니네. 자네가 무슨 연금술사인가? 아니, 연금술사는 적어도 이미 있는 걸 바꾸겠다고 했지.]안 믿을 건 알고 있었다. 당장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건 그저 밑밥일 뿐이다.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건, 그때 세금관리청이 절 밀수범으로 의심할 때 폐하의 옹호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절대! 범죄를 안 저지릅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진을 황제는 의심 가득한 눈매로 내려다보았다.
표정 분석 결과로 봤을 때 정신이 나간 건 아니고,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봤을 때 허풍을 떨어댈 인물은 아닌데……
황제는 진에 대한 각종 정보를 취합하며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설명.]“죄송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원천기술이라, 그 기술의 이름만 들어도 폐하께서 제게 욕심을 부리실 것 같거든요.”
진은 실험실에 갇힌 채 아이템코드만 읊는 신세가 되고 싶진 않았다.
“나름 싸게 원자재를 수급 받는 루트를 만들어놔서 가능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증거는 제시 못하면서 해달라고만 하나?]“추후 증명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럼 증명부터 해야지. 어떤 품목이건 간에 입찰경쟁에서 승리부터 해보게.]“그럼 옹호해주실 수 있는 겁니까?”
[그래그래. 알겠네 알겠어. 약속하지. 공수표에는 공수표가 제격이니까.]손을 휘휘 젓으며 대충대충 말하는 걸 보니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진은 미소를 지었다. 공수표가 아니라 진짜 수표를 주셔야 할 겁니다.
진은 아이템 스폰을 눈치 볼 것 없이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싱긋 웃었다.
***
얘기를 더 나눈 뒤, 황제의 집무실에서 나온 나는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삐걱대는 계단을 내려오는 두 선원을 볼 수 있었다.
둘의 표정은 상반되어 있었다.
네브라는 심드렁했고 에나는 연구원답게 새로운 문물을 접해 표정이 해처럼 밝았다.
“함장님함장님! 여기가 지어진 지 6백년이 넘었대요! 관리도 안 된 나무와 벽돌 재질이 그런 세월을 버티다니, 통합전쟁 이전 사람들의 기술도 제법 뛰어났나봐요!”
전쟁만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3천 5백년 된 콜로세움과 6천 년 다 되어가는 피라미드를 보고 있었을 거야.
“함장. 얘기는 어떻게 됐어? 진짜 황제 폐하가 여기 사는 거야?”
“아. 맞긴 해. 홀로그램이지만.”
“아하. 이해했어. 여기 가짜 안가(安家)구나?”
네브라는 그럼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아무런 경비병력도 없고 지각 변동으로 위험한 곳에 전자두뇌만 달랑 있는데.’
어쩌면 황제의 ‘진짜 전자두뇌’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그럼 이제 돌아가자고. 루이스 요원님, 부탁드립니다.”
“예.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다시 달로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으응…… 그냥, 멀미야 멀미……”
[살려줘요…….]홀로그램 장벽을 넘느라 재발한 멀미와 함께.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함장님.”
달에서는 발러가 다시 따라붙었다. 정보부를 통해 황제의 명을 들었는지 전보다 좀 더 깍듯해져 있었다.
달에는 온갖 화려한 놀이시설과 숙박업소가 가득했지만 관광을 할 여유는 없었다. 황제를 알현한 딱 그 당일만 잠시 명소를 구경한 게 다였다.
나머지는 시간을 꽉꽉 채워 무언가를 준비해야만 했다.
기존의 1/3의 길이가 되어버린 달 궤도가 지구를 반의 반 바퀴 돌았을 즈음.
“출발하자.”
우리는 달 정거장을 떠났다.
‘느리네.’
태양계 주변은 초광속 항행 및 워프 금지구역이며 물동량도 많다. 최고 속도 제한을 준수하는 것과 겹쳐 화물선의 속도는 거북이걸음이었다.
“힘들어요오……”
조종실 한쪽에 마련된 탁자 위에 축 쳐진 에나가 신음을 흘렸다.
달에 있을 때, 에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자신의 방에 차려놓았던 실험기구와 약품들이 항성 핵에 들어갔을 때 모조리 못쓰게 되어 그걸 조달하느라 온 거래소를 뛰어다닌 탓이었다.
“나도오……”
네브라 역시 쉬지 못했다.
같은 이유로 녹아버린 채굴용 드론 구입 건을 내가 일임한 까닭에 발품을 팔아야 했으니까.
‘첫 임무라……’
내 경우는 앞으로의 계획을 짜느라 바빴다.
황제 알현이 끝나고, 달에 있을 때 정보부 장관이 연락을 해왔었다.
***
[에파바르를 색출하기 위해 자네에게 검사를 받기로 의결했네.]장관의 말투는 변해 있었다. 황제의 인가 하에 내가 임시지만 정보부 소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부에서 내 직위는 ‘대 에파바르 작전 외부 초빙 검사관 및 수색가(임시)’라는, 딱 봐도 급조한 티가 나는 자리였다.
‘공무원 조직이 다 그렇지 뭐.’
이름은 좀 허술했으나 권한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자리냐면……]장관의 설명으로는, 놀랍게도 이 직위가 차관 수준의 권한을 갖는단 것이었다.
다만 온전한 권한은 아니었다.
칼질이 꽤나 가해져 내가 담당하는 영역에서만 해당 수준의 권한을 가지는 반쪽짜리였다.
그런데 그 영역이란 것이 외계인 검사라, 정보부 내의 어떤 신분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검사에 협력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만들 수 있다. 외부 전문가라 이론상으론 장관조차도 협력을 강제할 수 있다.
‘과연 우주 시대. 한 번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구나.’
외계인 혐오자 황제 폐하시여 영원하라!
어찌 보면 이 자리는 내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내가 전달한 정보들 덕이니 내 노력으로 성취한 자리라고도 할 수 있…… 으려나?
“잘 알아들었습니다. 장관님.”
[단! 조건이 있네.]장관은 단호히 말했다.
[검사에 대한 신뢰성을 먼저 검증해야 할 걸세. 그 이후에 자네의 직위에 따른 권한이 인정될 거야.]“어떻게 하면 될까요?”
띠리릭 하는 알림음과 함께 장관에게서 전자문서 하나가 전송되었다.
[지도 보이나?]문서에 첨부된 지도는 한 외딴 행성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예.”
[정보부에서 내리는 첫 임무일세. 거기서 자네의 방식으로 외계인을 색출하는 영상을 촬영하게나.]“여기에 위장한 걸로 의심되는 에파바르가 있습니까?”
[그래.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자네 제보 덕분에 확실해진 곳이지. 원래는 다른 정보부 요원이 맡고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아마도 뒤가 밟혀 당한 게 아닐까 해.]“그럼 서둘러야겠군요. 놈들이 도망치기 전에.”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자네를 바로 정보부 본부로 부를 생각이었어.]대화가 끝나나 싶었지만 장관은 계속해서 말을 했다.
[하지만 차관들 대부분이 자네의 임용을 좋아하진 않았네. 정보부가 조금 권력이 센 데인가? 타성에 젖은 사람이 없진 않거든.]감히 네가? 우리를?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있단 얘기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검증 절차를 만든 거지. 지금까지의 공적을 생각하면 이미 자네의 신뢰도는 충분해. 내 권한으로 검증 절차 정도는 건너뛸 수도 있고. 하지만 자네도 사회생활 해봤으면 알겠지만, 굳이 이 자리가 아니더라도 책임자로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단 건 잘 알 거야.]“이해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죠.”
[행운을 비네. 아, 모험가니까 바위가 있기를. 그리고 당한 이들의 복수를.]“알겠습니다.”
통신이 꺼지고, 나는 날숨을 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달을 떠나기 전에 보고 가라며 발러가 소개한 좋은 관광명소, 전망대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VIP전용 발코니의 난간 너머로 휘황찬란한 환락의 도시의 밤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첫 임무……’
그것도 메인 시나리오처럼 곁에서 돌다가 얼떨결에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방식이 아닌, 자신이 직접 뛰어든 사건 한가운데에서의 임무.
장갑 낀 주먹을 쥐었다.
자신감과 책임감이 뒤섞여 팔을 타고 어깨를 넘어 목에까지 닿았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내가 알던 회색 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상을 눈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