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바이오해저드-2
“찝찝해……”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그 찝찝함이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중심부의 엔진실까지 오는 데 모든 문짝이 열려 있었다. 곳곳에는 오래되어 굳은 피가 튀겨 있었으나 정작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문이 그냥 열려 있기만 하면 그렇다 치는데, 억지로 뜯어낸 것들이 있었다. 그것도 적나라한 흔적을 남긴 채로.
[에파바르가 외계 동물이라도 반입한 걸까요?]앤젤라는 문짝 하나에 있던 길고 큼직한 네 줄의 발톱 자국을 보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 두꺼운 문짝이 잘린 걸 보면 힘도 발톱 강도도 대단할 텐데, 그런 동물이 있나…..?]“상황을 모르니 잘은 모르겠네. 동력 복구하고 감시카메라 화면이라도 확보해서 봐야 자세히 알 거 같다.”
내 눈앞에는 천장까지 닿는 우주 정거장 엔진이 죽은 거인처럼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발밑으로는 훨씬 거대한 중력 조절 장치의 기둥형 본체가 곤히 잠을 자고 있으리라.
[동력 장치도 진짜 옛날 모델이네요. 발전기랑 중력 장치랑 합쳐놓은 건데, 구조적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난다고 판매 금지된 거거든요. 고작해야 5년 정도만 판매되고 제조가 중단되었어요.]“그 정도면 골동품으로 수집해도 되겠다. 어지간히도 낙후된 데네.”
나는 옆에 붙은 연료탱크를 열고 연료를 아이템 스폰으로 주입했다.
작동 레버를 내리자.
덜컹!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굉음 직후, 텅텅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리며 드디어 어둠이 흩어졌다.
지하철 운행하는 소리를 닮은 소음과 함께 엔진이 되살아났다. 다만 쇳소리가 많이 포함된 게 역시나 영 불안했다.
“그런데 중력이 안 돌아온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떠 있었다.
앤젤라는 전력이 돌아온 시스템에 접속해 상태를 보더니만, 몇 초 뒤 짜증 섞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고장났어요. 그것도 기둥 부분이 아예 파손되었어요.]“그래? 상관은 없어. 우린 지금 요원들이 남겼을지도 모를 메시지만 확인하려고 온 거니까.”
[그럼 얼른 통신 기록만 확인할게요.]몇 초 뒤.
[통신 기록 띄워드릴게요.]앤젤라의 목소리는 딱딱해져 있었다.
-응답하라! 응답하라! 여기 괴물이! 으아악!
-제발, 누가 응답 좀! 구조대를 보내줘! 부상자가 있어!
-대체 저게 뭐야!
-팀장님,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놈이 저 너머에.(끊김)
-으아아아악!
-여기는 광산 제 52팀. 팀원들이 실종되고 있다. 빨리 지원팀이 필요하다!
-놈들이 환풍통로에서 튀어나온다!
-여기는 광산 3팀! 괴물이다! 괴물이야!
-무기가 안 통해!
-대체 무슨 일이야? 아는 사람 있어!
-탈출해! 함선으로! 어서!
-관제탑! 관제탑! 관제타아아아압!
-으아, 으아아아악!
-15팀 제 A4통로로 집결! 아니, 왜 자꾸 잘못 눌.(끊김)
괴물? 에파바르 짓이 아니란 건가?
글로 읽는데도 생생하게 상황이 연상되는, 경악과 비명이 가득 찬 글귀들이 수두룩했다.
수많은 하얀 글씨로 이뤄진 절망으로 가득 찬 글줄을 쭉 내렸다.
“통신 기록에는 딱히 뭐가 없네. 정거장 서버 자체에 올려놨나?”
[네. 어디…… 아. 찾았어요.]“앤젤라. 해석해 줘.”
정보부 첩보팀이 정거장 서버의 문의 게시판에 올려놓은 암호문의 해석 결과는 이러했다.
-여기는 페이다트 항성계의 정보부 제 15팀. 에파바르로 의심되는 인물을 쫓아 이 행성까지 왔다.
-우리는 놈들을 습격해 여기 정거장으로 몰아넣었다.
-몇 놈이 갑자기 몸에서 빛을 내더니 자폭했다. 대부분의 팀원이 그 폭발에 휩쓸려 전사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놈들이…… 괴물이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검은 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그 모습은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팀원과 에파바르를 잡아먹고 기괴한 형상으로 변모했다.
-그 뒤로는 생존하기 위해 싸웠다. 지금 남은 팀원은 고작 다섯. 괴물의 추격을 피해 지금 함선을 앞에 두고 있다.
-만약 우리 함선에도 괴물이 침입한 경우, 우리는 놈들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행성 표면을 향해 자폭할 생각이다. 내 생각으론 탈출한 채굴선에도 이미 놈들이 탔을 거 같다.
-통신 해킹으로 정거장에 있던 채굴선을 모두 카락 오베이크의 행성 우주 공항으로 향하게 했다.
-미안하지만 놈들을 우주에 풀어버릴 순 없었다.
-서론이 길었다. 놈들의 특징을 설명하겠다.
-미친 듯이 빠르고 미친 듯이 단단하고 미친 듯이 교활하다.
-그리고 사람을 먹는다. 뜯어먹을 수도 있고 검은 몸체를 통째로 펼쳐 집어삼키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물론이고 광부들의 공구까지 썼지만 물러나게 하는 게 고작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약점은 없다.
-희생을 크게 치를 거라 장담한다.
암호문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그들의 최후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침투당했군요.]“그래. 그리고 행성에도…..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
갑자기 이 밝은 공간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감시카메라 기록 확인해 봐.”
대부분이 파괴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파괴 이전까지의 영상은 저장되어 수 있었다.
“요원들이 말한 괴물이 생겨나는 부분부터 우선 확보해.”
[요원들이 임무 수행하느라 어느 정도 전파방해를 깔아놔서 영상이 흐릿해요. 복구를 좀 해볼…… 함장님. 뭔가 접근 중입니다.]나는 파워소드의 동력을 켰다. 파르스름한 역장이 날 위로 감돌며 모든 것을 잘라낼 준비를 마쳤다.
“위치는?”
홀로그램 지도가 떠올랐다. 작은 점 하나가 통로 하나를 타고 동력실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저게 괴물인가?”
[……에파바르가 베이스가 된 건 맞는 모양입니다. 특유의 페로몬이 소량 감지되었습니다. 너무 소량이라서 뿜어내는 거라기 보단 묻은 게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봐야합니다.]이 미친 귀쟁이 놈들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대체.
오감강화 장치에 의해 저 멀리, 불이 켜져 있음에도 음침한 복도 너머에서 들리는 잘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단단한 부위가 금속과 부딪히며 생기는 소리였다.
나는 통로의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동력실로 들어오면 나는 놈의 옆 내지 뒤를 잡을 수 있는 위치였다.
무적상태인데 뭔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이건 몸에 익은 거라 어쩔 수 없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구경 권총을 꺼내들었다.
달각 달각 덜걱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테지만 절로 숨을 죽였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구부정한 자세의 무언가가 안으로 쑥 들어왔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어드민의 무한탄창을 믿고 방아쇠를 꾹 눌렀다. 철갑유탄이 요란하게 터지면서 괴물의 까만 표면에서 불꽃을 피웠다.
중력이 없어서 반동에 뒤로 밀리는지라 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등 뒤에서 가스 뿜는 소리가 총성 밑에 얇게 깔렸다.
“끄위이이익!”
금속으로 칠판을 긁는 소름끼치는 고주파가 담긴 괴성이 고막을 찔렀다.
주춤거리는 대신 부스터를 발동시켰다.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파워소드가 서늘한 잔영을 만들어냈다.
당황한 놈의 목줄기를 향해 모든 걸 잘라내는 단분자 역장이 꽂혔다.
‘안 박혀?’
이 무기를 얻은 계기인 에파바르 호위병이 내 갑옷을 찌르고 보였던 표정이, 지금의 내 얼굴 위로 겹쳐지는 것이 상상되었다.
“그에에엑!”
괴물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났다. 무중력 때문에 버둥거리던 놈은 긴 팔로 바닥을 붙잡아 자세를 안정시켰다.
동력실의 힘없는 불빛 밑으로, 비로소 놈의 모습을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었다.
‘뭐냐 저건.’
금속성 광택이 돌아 흑요석을 펴바른 것만 같은 피부.
아사 직전의 짐승처럼 뼈가 도드라진 몸.
문짝에 나 있던 큼직한 발톱 자국에 꼭 맞게 기형적으로 큰 손.
이목구비는 없고 반으로 갈라져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난 정수리.
아니 잠깐만.
자세히 몸을 보니…… 저건 뼈대가 아니었다.
[맙소사. 일반적인 생물체는 확실히 아니네요.]괴물의 몸체는 뼈무더기였다.
누군가의 손, 발, 갈비뼈, 두개골 등 온갖 부위의 뼈들이 아교처럼 꾸물거리는 검은 액체에 휘감긴 채로 어설프게 이족보행 생물체를 흉내 내고 있었다.
“퀘에에엑!”
놈의 몸통 중앙에서 검은 뼈로 된 작은 팔이 튀어나와 바닥을 잡고 몸을 튕겼다.
그 큼직한 손톱이 휘둘러지며 나를 쪼개려 시도했다.
‘흥!’
나는 놈의 다섯 손톱을 어깨 갑옷으로 가볍게 받아내며 도리어 파고들었다.
막힌다고? 그럼 뚫릴 때까지 찔러주마!
무중력 상태에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는 공격뿐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놈은 내 허리를 튀어나온 작은 팔로 꽉 붙잡은 상태에서, 큰 손의 손톱으로 베고 후려치며 정수리의 입으로 내 머리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나는 그딴 거 다 무시하고 놈의 어깨를 붙잡고는 칼을 역수로 잡아 목과 어깨 주변을 찔러댔다.
네가 단단해? 나는 더 단단해!
옆에서 보면 웬 짐승 둘이 서로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망할, 이 자식 체력이 얼마나 되는 거야!’
단분자 칼날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박히기는커녕 손가락으로 돌을 찌르는 감각만 느껴졌다.
아무리 이게 최고 티어인 7티어가 아니라 5티어 무기라지만 이 정도로 찔렀으면 어지간한 잡몹은 다 죽고도 남는데!
망할! 게임하고 현실은 역시 다르다 이거냐!
[함장님!(우이!) 알콜!(우이!) 알콜 있어요!?]에나의 목소리였다.
“무슨 소리야!”
[알코올이 약점일지도 몰라요!(우이이!)]에나의 목소리에 슬라임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스캔 결과 봤어요! 크기에(우이!) 비해 너무 조그맣게(우이!) 나오는 게(우이우이!) 슬라임하고 똑같아요!]‘뭐?’
나는 찌르는 걸 멈추고 몸을 비틀며 괴물을 걷어찼다.
“퀘에에에엑!”
놈의 정수리에 난 입에서 검은 줄기 같은 혓바닥이 튀어나와 벽에 붙었고, 순식간에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어나힐레이션을 꺼내들었지만 함부로 방아쇠를 당길 순 없었다. 정거장이 부서져 저 괴물이 빨려나가 엉뚱한 행성에 들러붙으면 큰일이니까.
“/tileprot…..!”
내가 타일 보호 기능으로 무기를 자유롭게 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지만, 놈의 행동이 더 빨랐다.
놈은 세 쌍의 팔다리로 바퀴벌레처럼 다다닥 천장을 가로질렀다. 놈의 전진방향은 천장까지 닿은 엔진이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엔진에서 흰 스파크가 쫘자작 퍼지더니 순식간에 사방이 암전되었다.
“끼르르르르르……”
비웃는 듯한 짐승의 목울림이 어둠 저편에서 들려왔다.
지능이 높은 새끼다. 발전기를 노려?
나는 헬멧의 불빛을 껐다.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놈을 상대로는 빛은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밝은 부분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어 시야가 좁아지는 효과가 발생하니까.
그보다는 차라리 스캔 화면을 보는 게 낫다.
“앤젤라 스캐닝.”
스캐닝 홀로그램 화면이 헬멧 안쪽에 떠올라 실제 시야를 대체했다. 조그만 점 하나가 주변을 서성이며 공격 기회를 노리는 게 보였다.
‘사람 크기인데도 슬라임처럼 점 수준의 스캔 크기…… 정말 그림자 우물에서 나온 건가?’
[우이이! (뭐하는 거야 너!) 우이! 우이!(떨어져 이 녀석아!) 우이이이! 우위이이!]갑자기 통신으로 슬라임의 소리가 메인으로 들려왔다. 통신 버튼을 눌렀나?
[우이이이!]근데 어째 평소의 울음소리와는 달랐다. 우익 하고 울음소리 끝을 쭉 밀어 올리는 고음이 아니었다.
우이? 우….. 위. 위(We)?
아니면 우리?
지금 앤젤라를 통해 내 시야가 함선에도 공유되고 있을 테니까…… 설마 정말 괴물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