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검역-2
함내전투용 갑옷으로 갈아입은 첼빈이 육중한 발구름 소리와 함께 조종실에서 뛰쳐나갈 무렵.
채굴용 크레인으로 첼빈의 배(위장용)를 붙잡은 진의 발걸음은 느릿했다.
[함장님. 얼른 안 가세요?]“알아서 도킹 지점까지 오겠지.”
도킹 지점에서 딱 만나서 한 판 벌이고 끝내는 게 훨씬 편하다.
-우익!
“넌 왜 따라오냐. 네브라한테 가.
-황송!
에나야. 대체 왜 이상한 걸 가르치니.
입버릇 이상해졌잖아.
“워이, 저리가 아저씨 일해야 돼 일.”
-황송?
진은 슬라임에게 저리 가라고 손짓했지만 말을 안 들어먹었다.
“씁, 알콜 뿌린다?”
진이 템창에서 에탄올이 든 병을 꺼내 찰랑이자 그제야 뚱한 표정(대충 그런 느낌이 들었다)을 짓더니 슬슬 물러갔다.
“앤젤라, 네브라한테 애 관리 좀 하라 그래. 잘못해서 어디 틈으로 빠져서 우주로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진에게 쫓겨난 슬라임은 선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불 꺼진 선원 숙소를 괜히 기웃거리기도 하고, 도로 화물칸으로 내려와 에나가 기술 개발을 한다며 가득 쌓아놓은 전자기기와 공구를 툭툭 건드리다가 흥미를 잃고 떠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카락 오베이크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유골이 에탄올과 함께 든 컨테이너를 발견했다.
-시르, 다!
슬라임은 컨테이너에서 발생하는 코를 찌르는 독극물 냄새에 멀리 돌아가려 했지만, 그 속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우이? 우이!
액체가 채워져 있는 상황이라 원래 옆으로 눕혀져야 하는 컨테이너는 입구를 위로 하고 있었다.
-우익?
그 입구 주변에는, 뭔가 검은 물방울이 맺힌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익!
그 물방울은 그대로 슬라임에게 집어삼켜졌다.
뼈의 안쪽에 숨어 있다가 에탄올을 견뎌내며 겨우 빠져나온 약화된 나노머신은 자신과 달리 가공을 거치지 않은 개체에게 먹혀 그 정보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 익!
촉수를 뻗어 만세를 부른 슬라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금 슬슬 기어다녔다.
***
조종실.
[……말씀 감사합니다. 좋지 않은 기억을 들춰서 정말 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 수 없겠네요.]네브라에게 나노머신과 관련하여 주피터 제약에 관한 정보를 청취한 발러가 사과를 했다.
“아니에요. 나노머신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 상황인데 최대한 협조해야죠.”
[그림자 우물의 비밀이 그거였다니….. 에파바르 건이 일단락되면 우물도 조사를 해봐야겠네요. 거기, 에나 양?]모직 모자를 푹 눌러쓴 에나가 안경의 반사광을 번득이며 답했다.
“네.”
[나노머신을 스캔할 수 있는 스캐너를 개발했다고요?]“아직은 크기와 상관없이 점만으로 표시되지만 일단 표시는 돼요. 추후 개량의 여지가 있단 얘기죠.”
[그러면 해당 스캐너 개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물 탐사와 후에 에파바르와의 교전 때 쓰고 싶습니다.]에나의 얼굴에 기회를 잡았단 표정이 떠올랐다.
“값은 바르게 쳐주겠지요?”
[당연하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 테일러 함장님의 선원이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다른 일이 많고 원리도 어려워서 금방은 안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두 분 모두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국이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겁니다.]발러의 예의바른 인사에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으헤, 함장님한테 도움……”
“씁. 아, 그럼 수고하세요.”
특히 에나의 표정이 무슨 부적절한 방식을 통해 환상을 경험한 것 같이 너무나도 환해진 탓에, 네브라가 얼른 에나를 밀어내며 통신화면을 꺼야 했다.
***
“야, 이거 왜 안 떼지냐?”
“그러게…..?”
한편, 첼빈의 배의 선원들은 강제 도킹한 우주선 통로를 떼어내려 애썼으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 통로도 엄연히 우주선의 일부라 타일 보호 기능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똑
“들어가도 됩니까?”
통로 문짝 너머에서 침입자(?)가 예의바르게 문을 두드렸다.
“열어야 되나?”
“미쳤냐.”
“그래도 차관급이라고 하던데.”
“히엑, 차관?”
“열어야 돼 말아야 돼?”
진은 문 너머의 선원들의 말을 듣고 고민을 해결해줄 말을 외쳤다.
“부수고 들어갈까요?”
“……”
“그럼 들어갑니다. 물러서세요!”
템창에서 꺼낸 파워소드가 둥근 형태의 문짝을 균열을 따라 깔끔하게 반으로 갈랐다.
쿵!
“아, 수고하십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진은 활짝 웃으며 얼떨떨한 표정의 선원들에게 하나하나 손을 내밀었다.
“대대급이라고 하던데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아, 저희는 대대원이 아니라 첼빈 대대장님 직속 선원들입니다. 대대에 속한 요원 분들은 다른 배로 복귀 중입니다.”
“아 그런가요?”
제법 계급이 높아 보이는 선원이 진에게 물었다.
“어, 검사관님. 대대장님께 연락해도 됩니까? 일단 침입을….. 하셨으니까요?”
“아아, 하세요. 얼른 오게요.”
가볍게 웃는 진을 향해 얼떨떨하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한 선원이 중얼거렸다.
“대대장님. 검사관님이 쳐들어왔습니다.”
[붙잡고 있어!]“붙잡고 자시고 할 게, 아니 됐다. 그냥 오십쇼. ……오신답니다.”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라는 표정이었다.
‘다 인간이고.’
선원들의 종족을 확인한 진은 가만히 서서 첼빈을 기다렸다.
크기가 작은 모험가용 함선이지만, 요원들이 쓰는 함선들은 내부 침투를 고려해 복도가 구불구불하게 조성되어 있어 오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훅, 훅, 훅. 너!”
“어. 왔나.”
진이 뒷짐을 선 채 급히 달려온 첼빈을 반겼다.
“너 미쳤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뭐긴. 정보부의 일을 함부로 발설한 민간인을 심문하러 왔지.”
“뭐? 민간? 야! 나 정보부 소속이야!”
“아까 통신으로 알 거 없다며? 신분을 숨긴 수상쩍은 놈이 정보부 운운하는데 정보부 사람으로서 가만있어야 하나?”
첼빈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맞는 말에 약했다.
진은 품에서 정보부 신분증을 꺼내 들이밀었다.
‘대 에파바르 작전 외부 초빙 검사관 및 수색가’라는 길고 웃긴 이름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 밑으로는 정보부 장관의 증명을 받은 전자직인이 일렁였다.
“얌전히 무장해제하고 말로 하지.”
“워프 인사 따위의 말을 들을 거 같아?”
얌전히 무장해제할 거라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나.
“진 테일러, 권한이 높다고 모두가 널 환영할 거라 생각하진 마라. 이곳은 인류의 안위를 지키는 자리다. 자격 증명도 안 된 현상금 사냥꾼 따위가 나댈 곳이 아니야!”
첼빈이 성격 때문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그렇지,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언짢음과 적대감은 다른 요원들도 동일했다.
‘진짜 열혈바보네.’
거칠지만 나름 대단한 행동이라고 진은 생각했다.
비록 오해기는 하지만, 상대가 어떤 불이익을 줄줄 알고 불의에 정면으로 들이박냐.
‘나는 무서워서 못 저러겠다.’
뒤통수를 후리면 후렸지.
진이 목을 우둑 꺾었다.
“증명? 인정을 못 하겠다 이건가?”
“그래! 적어도 날 쓰러뜨릴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지!”
어유, 친밀도 상승 조건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다니 이런 고마울 데가!
“좋아. 인정하게 만들어주지.”
진은 말이 끝나자마자 첼빈을 향해 돌진했다.
‘이런 미친놈!’
침투할 때 무장을 하고 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진은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워프 인사라고는 하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다. 첼빈은 위협용으로 입고 온 갑옷의 출력을 껐다.
‘그래도 충분해!’
정보부의 무력부대는 은밀성을 위해 무기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덩치를 기반으로 한 첼빈의 근접전과 맨손격투 실력은 정보부 내에서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는 고작 장비에 의존해서 갱단을 박살내온 게 분명할 돈 많은 현상금 사냥꾼 정도는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흐압!”
“후!”
진과 첼빈의 손과 팔이 서로 얽혔다.
놀랍게도, 진은 아무리 출력을 껐다지만 육중한 갑옷을 입은 첼빈의 질량을 견디며 공격을 받아치고 있었다.
비록 게임에서는 체술이란 게 구현되지 않았지만, 진은 숱한 전투를 통해 무기에 의존하지 않고 싸우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있었다.
“좀, 하는구나!”
첼빈이 주먹을 날렸다. 진은 체구 차이를 이용해 겨드랑이 밑으로 빠지면서 오금을 걷어차려 들었다.
그러나 첼빈은 자신의 거구가 약점이 되는 경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진이 몸을 수그리기 무섭게 진의를 파악하고 몸을 틀어 뒤를 노출하지 않았다.
진이 팔을 접은 채 몸을 피며 팔꿈치로 얼굴을 노리자 첼빈은 고개를 까딱하며 머리를 피했다.
갑옷 입은 거구가 무게에 걸맞지 않게 짧게 끊어 치는 발차기를 날리자 진은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여 회피하면서 도리어 첼빈의 겨드랑이를 노렸다.
갑옷을 입고 있어 고작 장갑 한 장 낀 손 따위에 타격을 입는 일은 없겠지만 첼빈은 어쩐지 위협적이라 느껴져 진의 손길을 피해야 했다.
관절을 노리고, 뱀처럼 손아귀를 빠져 나가고, 복싱하듯 주먹을 내지르고, 몸을 양측으로 오뚝이처럼 흔들리며 피하고……
양측의 손발이 쉭쉭 움직이며 서로의 급소를 노리거나 공격을 걷어냈다.
‘제법인데?’
첼빈은 속으로 감탄했다.
선내전투용 갑옷이라 가볍다지만 나름 무게가 만만치 않은데 자신의 공격을 다 견디고 있다니!
‘이 정도란 말이지? 역시 정보부의 무력부대다워.’
진 역시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왜 성격이 괄괄한데도 용케 붙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와.”
“대대장님 상대로 저렇게 버티는 사람 처음 본다.”
“덩치 차이를 버티네?”
주변의 선원들이 예상치 못한 눈요기에 감탄했다.
“나는 대대장님한테 200크레딧.”
“검사관님한테 200크레딧하고 300트러스트.”
“지저분하게 숫자가 200.3이 뭐야. 나는 대대장님한테 300!”
“그럼 난 검사관님한테 500.”
“얘 나중에 대대장님한테 이르자.”
“뒤진다.”
당사자 둘한테 걸리면 경을 치기에 서로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첼빈의 실력을 충분히 확인한 진은 슬슬 지루한 공방을 끝내자고 마음먹었다.
‘맘에 들었어.’
대등한 선에서 끝내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인상적인 경험을 시켜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재밌게도 남자(남자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격언이 우주 시대에도 건재했다. 이런 마초 냄새 풀풀 풍기는 정의 사나이한테라면 꽤나 잘 먹히리라.
진의 손놀림이 갑자기 변했다.
가볍고 받아치는 위주의 방어적이었던 진이 공세로 나선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첼빈의 손발이 살짝 어지러워졌다. 그 틈을 타 진이 첼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퍽!
첼빈이 팔꿈치로 진의 등짝을 찍었으나 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첼빈의 허리를 잡고 몸을 틀었다.
“어?”
거구의 첼빈이 허공에 떴다.
쿵!
훌륭한 업어치기였다.
‘이 무슨!’
몸무게가 큰 체구에 근육질, 육체강화를 고려하면 200kg에 가깝고 갑옷을 합하면 그 이상이 되는 자신을 이렇게 가볍게 들어올리다니!
첼빈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진은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잠시 머리나 식히세요 첼빈 요원님.”
진의 웃음기 섞인 말과 함께 첼빈의 눈앞이 번쩍이나 싶더니, 그의 시야는 파이프 가득한 천장과 하얀 형광등으로 바뀌었다.
“깼습니까?”
“어, 어어?”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쥐가 난 것 같은 목덜미를 겨우 움직여 좌우를 살피니, 그는 선내 의무실 침대에 묶여 있었다.
“정보부 활동을 방해하길래 귀쟁이인 줄 알았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더군요. 축하합니다. 요원님은 첫 번째로 훌륭하게 인간 검증을 통과한 높은 직급 정보부 사람입니다.”
진 테일러가 축하한답시고 짝짝 손뼉을 두 번 쳤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제가 왜 기절을……”
“별 거 아닙니다.”
진은 장갑 낀 손을 들어 보였다. 손바닥에 부착된 패드에서 지직거리며 푸른 스파크가 튀었다.
스턴 글러브.
정보부에서도 자주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저런 건 지근거리에서 비무장 상대를 제압할 때나 효과적인 건데.
‘갑옷을 입은 상대로도 통하는 제품이 있다고?’
첼빈의 멍한 표정을 본 진이 기회를 잡았단 눈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부러워하는 눈인데요? 하나 드릴까요? 요원님한테는 특별히 세일해 드리죠.”
“어느, 회사 겁니까?”
“저요.”
장사꾼의 눈에서 서서히 돈독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