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48)
48화 검역-6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귀는 멍멍한 것이 물속에 처박힌 것 같았다. 주위에서 온갖 소리들이 일그러져 들려왔다.
“모두 비켜!”
익숙한 여성의 날카로운 목소리.
-끼에에엑!
형용하기 힘든 기괴한 괴성.
“떨어져라 이 새끼야아아아!”
누군가의 비명에 가까운 기합.
코 안쪽의 센서가 공기 중의 입자를 인식해 폭발물의 성분을 분석했다. 에나의 지식 속에서, 그 어떤 폭발물과도 일치하지 않은 성분과 조합이었다.
그러나 위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것이라는 건 알았다.
폭발 직전, 에나가 가까스로 발동한 고출력 에너지 실드에 가로막혀 위력이 감소했음에도, 결국엔 실드를 찢어버리고 이렇게 되었으니까.
몸에 감각이 없었다. 팔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날아갔나? 아니면 재수 없게 목 부분이 충격을 받았나?
그녀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아, 도와야, 하는데……’
도움을 주러 나왔는데 부상을 입었다.
몸 부서지면 수리비가 든다. 그만큼 함장님을 도울 수단이 사라진다.
‘이런 멍청이 같은.’
완전히 무력화되지 않은 적을 뒤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예전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에나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무능했다.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칭찬을 받을 수 없다. 그분이 내 존재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한없는 기쁨을 느끼도록 해주는 영광스런 시간이 뒤로 미뤄졌다.
그녀에겐 다친 것보다 그게 더 중대한 문제였다.
‘함장님, 제 은인, 제 새로운 삶을 이끌어 주신 빛.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다 욕심을 부린 업보일 것이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함장님의 손을 잡고, 함장님을 껴안았고, 함장님을 독점하고자 했던 순간적이지만 발칙한 생각들에 대한 죗값이 분명했다.
“—-!”
뭔가 우렁우렁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주위의 소란은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나!”
뒷부분의 발음이 청각 센서에 입력되자마자 에나의 뇌는 바로 누구의 목소리인지 깨달았다.
“에나!”
육중한 발울림이 바닥을 타고 온몸에서 느껴졌다.
“에나!”
“하, 함, 장니……”
흐릿한 시야가 조금 어두워졌다. 무언가 등을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그런데…… 아.”
때맞춰 안구의 초점이 재조정되었다. 명암만을 구별할 수 있던 전자신경이 복구되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자신의 구세주의 광자정보를 뇌로 보냈다.
에나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꼴이 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흉하게 튀어나온 금속 뼈대와 철 성분을 머금은 액체를 흘리는 인공근육, 물먹은 가죽조각처럼 쳐진 단백질 피부와 피복이 벗겨진 미세전선, 푸른 냉각수가 분출되는 내부 인공장기들.
“아, 그게. 이, 이건……”
에나는 흉한 모습을 감추고 싶었지만 팔다리가 부서진 지금은 의미가 없는 발버둥이었다.
“괜찮아.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요?
이런 흉한 몸을, 지금까지 사실을 숨겨온 이 죄를……
진이 에나의 등을 무릎에 받친 채 어디선가 작은 금속 용기를 꺼냈다. 큰 출혈에 쓰는 특수 스프레이였다.
“아플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참아.”
치이이익
스프레이가 분사되자 붉은 액체들이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출혈이 멈추었다. 출혈부에 돌덩이처럼 매달린 결정들은 그대로 고무처럼 검게 변해 굳어졌다.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뭐가 죄송해.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나쁜 건 외계인이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아니요. 전, 멍청해요. 적을 뒤에 두고 한눈을……”
“아니야.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깜빡할 수도 있어. 나도 실수 많이 하는데. 지금은 치료를 받고 회복될 때까지 쉬는 게 더 중요해. 그게 더 중요한 거야. 알았어?”
에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메었다.
이 상황에서도 잘못을 자비롭게 받아들여주시다니. 점점 갚아드려야 할 것만 많아졌다.
“넌 내가 고용한 선원을 넘어서 가족이야. 너뿐 아니라 우리 팀 모두. 가족한테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 하는 거 아니야. 알겠어?”
가족.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은 단어.
검댕이 묻은 군청색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살짝 흔들렸다.
“여기는 의료시설 좋으니까 괜찮을 거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기계로 몸 바꾼 사람이 우주에 얼마나 많은데.”
“바꾼, 게, 아니에요……”
“뭐?”
“제가, 원한 게, 아, 니……”
“……그래. 푹 자.”
에나의 숨소리가 평온해졌다.
진은 몸무게의 절반이 사라진 에나를 들고 일어났다.
주위에는 에파바르의 자폭에서 비롯된 자욱한 연기가 아직도 일렁였다.
“여기 회복캡슐입, 이런……”
구급팀이 에나의 상태를 보고 당황했다. 끌고 온 장치는 생체용이라 이렇게 몸 대부분을 기계로 바꾼 사람에겐 소용이 없었다.
“제가 의무실로 가겠습니다. 안내를.”
“의무실이 아니라 기술실로 가야 합니다. 절 따라오시죠.”
구급팀이 아니라 기술팀 소속 요원이 앞으로 나섰다.
셋이 떠난 자리.
“이게 대체 뭐야?”
“귀쟁이 새끼들, 진짜 가지가지하네.”
“자폭도 모자라서 나 원 참……”
진의 화물선 주변에는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요원들이 바닥을 보고 있었다.
거기엔 크고 시커멓고 점성 있는 액체가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덮여 점차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에탄올 샤워를 한 첼빈 요원이 대체 저 까만 게 뭐냐고 투덜거리면서 크게 다친 팔에 응급치료를 받았다.
주변에선 갑작스러운 소란에 선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다가 요원들의 총구에 떠밀려 도로 들어가곤 했다.
발러가 바싹 마른 입술을 핥았다.
“방송은 해놨으니 추가적인 테러는 섣불리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의 시선은 나노머신 괴물을 실제로 보고는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영상자료는 봤지만, 이렇게 흉악할 줄은……’
네브라는 발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며 나노머신 괴물이었던 잔해를 계속 응시했다.
‘괴물이 되는 조건……’
그녀는 문득 앤젤라의 혼잣말이 떠올랐다.
[근데 코앞의 얘랑 또 하나는 감지가 안 되네. 개량한 슈트라도 입었나?]‘개량이라……’
설마 이놈들의 상부가 이 부작용을 노린 거라면……?
‘안식을 취해야 할 사람들을…..!’
네브라의 증오가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
경고음이 그쳤다. 사방이 잠잠해졌다.
끝났나?
그러나 요원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들이 서로를 경계한 건 방송 때문이다. 그러니 뒤이은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검사관 진 테일러입니다.]방송을 듣는 순간, 요원들은 오한이 들었다.
‘저게 사람 목소리야?’
얼음을 깎아 만든 성대와 톱날을 이빨삼은 존재의 목구멍에서 나온 듯한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1동 요원 분들부터 검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검사가 끝날 때까지 요원 분들은 경계를 유지해 주십시오. 이건 황제 폐하와 정보부 장관님께 권한을 위임받아 내리는, 제국을 위한 명령입니다. 만일 이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생기는 불이익은 오로지 요원 분 본인 책임임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그 다음 말은 이전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서늘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혹시나 내부에 있을 귀쟁이 새끼는 들어라.]얼음 성대가 붉게 끓어오르며 살기를 머금었다.
[부디 가만히 있어라. 허튼 짓을 할 생각이라면 내가 찾아갔을 때 해라. 받아줄 테니.]방송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제 1동 강당 안으로 발소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진에게 인간 검증을 받은 요원들이었다.
외계인의 침투를 허용했다는 사실에, 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살벌해진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편에는 검은 갑옷을 차려입은 채 체인소드를 꽉 잡은 키 큰 누군가가 서 있었다.
진 테일러가 들어오자마자 강당의 분위기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진의 뒤에서 갑옷 색을 닮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진의 살벌한 목소리가 모든 요원의 귀에 폭력적으로 꽂혔다.
“검사 시작합니다.”
***
2동.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누군가의 팔이 가볍게 뜯겨져 나갔다.
부르르르릉!
외계인의 피를 머금은 칼날이 기분 좋게 그르렁댔다.
“젠장, 캡슐! 캡슐 가져와!”
다급한 외침은 외계인을 위한 게 아니었다.
진이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발사된 강력한 레이저가 진의 갑옷에 맞고 튕겨나가 다른 요원의 에너지 실드를 깨고 몸을 관통한 것이다.
“잡아!”
양팔이 잘려나간 채 바닥을 버르적거리는 귀쟁이에게 요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놈은 사지가 꽁꽁 묶여 도롱이벌레처럼 되었다. 지혈을 고의로 고통스럽게 해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검은 악마아아아아! 죽어서도 저주할, 케헥!”
놈의 입에 구둣발이 틀어박혔다.
“이새끼 재갈 물려!”
“귀쟁이 새끼야 닥쳐!”
놈이 끌려 나가자 강당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검사 재개합니다.”
숨소리마저 제대로 못 내는 분위기가 된 2동 강당엔 삑삑거리는 검사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진은 에파바르가 떨어뜨린 총을 주워들었다.
묘하게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디자인의 총이었다. 손잡이에는 문어 다리 같은 형상의 문양이 양각되어 그립감을 높여 주었다.
‘똑같아.’
당연하겠지만 격납고 습격을 일으킨 놈들의 것과 같았다. 듣자하니 정보부가 곳곳에서 교전을 하면서 노획한 것들도 다 같았다던가.
진은 보는 눈이 많아 템창 대신 가방에 권총을 넣었다.
한편으로는 템창을 띄워, 격납고에서 얻었던 권총을 확인했다. 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레이저면 레이저지 양자라.’
혹시 이게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함장님. 여긴 더 이상 에파바르가 없어요. 하. 페로몬 분석이 안 되는 사례가 있어서 제가 절 믿지를 못하겠네요.]‘걱정 마. 나도 확인하고 있으니까.’
“검사 끝났습니다! 없습니다!”
“이 줄도 없습니다!”
진의 정보창 확인 결과도 동일했다.
그는 인간 검증을 끝낸 일부 요원들에게 추가로 검사기를 나눠주었다.
“그걸로 2동 곳곳에 있는 사람들을 검사하면 됩니다. 5인1조로 움직이시고, 가까이 가져다 대서 붉은색이 나오면 체포하세요.”
요원들은 진에 대한 의심을 불식하고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에파바르에 대한 증오가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3동.
휴게실로 들어온 진은 다양한 자세로 사방을 경계하는 요원들을 쭉 훑었다.
—–
성명 : 나하르-칼리마르
종족 : 에파바르(귀쟁이)
직업 : 첩보원, 정보부 소속 요원(임시)
감정 : 불안, 공포, 긴장
상태 : 신분 위장 상태
독심 : 괜찮아. 위장은 완벽해. 테러를 일으킨 놈들이 멍청한 거야. 절대 날 발견 못해. 내가 얼마나 적합도가 높다고 했는데…… 이런 씨발씨발씨발…… 귀짤렸네 씨발……
—–
‘앤젤라, 성분 확인돼?’
[아니요. 설마 있어요? 환장하겠네.]진은 사격 자세를 잡은 채 굳어 있는 요원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독심 : 어어, 아니지? 아니겠지? 아닐 거야.
독심 : 시발 저 악마 새끼가 왜!
독심 : 이런 씨바아아알!
검은 갑옷이 가까워질수록 에파바르의 마음속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썅!”
결국 공포를 견디지 못한 에파바르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놈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자, 몸 주위가 번쩍하더니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네모난 폭발물이 덕지덕지 붙은 조끼가 몸 위에 생겨났다.
광산 행성의 우주 정거장 감시 카메라 영상과 똑같은 현상이었다.
그 영상은 화질이 좋지 않아 단순 광채로만 보였으나, 실제로 본 광경은 영상과는 조금 달랐다.
허공에서 빛의 입자가 번쩍이더니 한데 모여 물건의 형상을 이루는 모습.
‘양자전송!’
그건 복구회사가 양자전송을 통해 시험관을 보내는 방식과 같았다.
입자가 모여서 폭탄조끼의 형상을 갖추자마자, 진은 총을 뽑으려던 것을 멈추고 템창에 손을 가져가 무언가를 투척했다.
빛이 번쩍였다.
요원들이 놀라 총구를 돌렸다.
어떤 아이템이 던져졌다.
기폭장치가 눌렸다.
사격에 놈의 머리가 날아갔다.
아이템의 효과가 발동했다.
폭탄이 터졌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한순간에 벌어졌다.
쿠르르릉!
요원들이 서둘러 몸을 날렸다. 서로가 뒤엉켜 바닥을 나뒹굴고 파편과 연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 살았다.”
누군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널찍한 휴게실 바닥에는 직경 4m에 달하는 깊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희귀 금속 합금으로 이뤄진 철근조차도 흉하게 휘어진 모습은 이 폭발이 얼마나 강했는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으으으!”
“의무대! 의무대!”
“캡슐 여기 있어! 당장 실어!”
주변에 부상자들이 생겨났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투척형 실드 생성기를 던지길 천만다행이었다.
진은 템창에서 쪼개진 에탄올 병을 꺼내들 준비를 했지만 다행히도 놈이 나노머신 괴물이 되는 일은 없었다.
‘설마 확률인가? 아니면 놈들이 뒤집어쓴 인간 피부가 다른 제품?’
가정은 잠시 접어놓고, 진은 다른 면에 집중했다.
‘이게 찢긴다고?’
진은 대부분 최고 티어까지 올린 장비를 쓴다. 이 투척형 실드 생성기 역시 최고 티어인 7티어였다.
‘게임에서는 실드 체력이 대충 5천인가 6천이었어.’
그 정도면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계함~구축함에 쓰이는 부분 에너지 실드의 체력과 맞먹었다.
함선의 경우는 여러 실드의 범위가 서로 겹쳐서 정확히 비교하긴 무리지만 최고 티어이고 플레이어가 만드는 물건답게 상당히 성능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그게 박살났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더 중요한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여기에 폭발물을 반입했는지 알겠어.’
이놈들은 순간이동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워프엔진 같이 큰 장치가 필요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