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오퍼레이션 컷이어-8
빛 한 점 없는 어두침침한 공간.
그곳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검은 악마, 검은 악마, 검은 악마, 진 테일러어어어어어! 네 이노오오오옴!!!”
경전을 읽듯 조그맣던 목소리는 단어를 내뱉을수록 점점 커져 급기야는 비명 수준으로 진화했다.
얼굴은 물론이요, 긴 귀의 끝까지 붉게 물들고 창백한 금발과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양 손발 역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진동을 내뿜어 흡사 발작처럼 보였다.
아니, 어떤 면에선 발작이 맞았다.
그 어떤 지도자가, 기껏 그러모은 세력이 모조리 증발했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것도 종족의 원대한 목표를 방해한 원수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인 이에게 당했는데!
에파바르 제국의 건설을 꿈꾸었던 황태자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분노와 증오라는 용암을 한껏 빨아올린 주사기가 된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을 어디론가 배출해야 되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더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단말기가 빛났다.
누군가의 연락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황태자는 곧바로 토해내던 감정을 수납했지만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은 막지 못했다.
[오, 신이시여. 목소리가 말이 아니로군.]황태자는 얼굴을 보고 하는 통신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다. 지금 그의 꼴은 산발에 핏발 선 눈 등 말이 아니었으니까.
[참 안 되었어. 지금까지 키워온 세력을 다 잃다니 말이야.]“……뭐라 할 말이 없군요.”
[우리는 그저 지원만 해줬을 뿐, 성과도 실책도 모두 그대의 것이니 우리에게 미안할 필요는 없네.]인자한 성직자처럼 말한 단말기 너머의 인물은 뒤이어 말했다.
[지금은 잠시 욕망을 접어두라는 신들의 계시가 아닐까 하네. 위장이 간파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에파바르가 믿는 종교와 단말기 너머의 인물이 말하는 신은 다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여러 용병 기업과 선이 닿아 있어 중앙정부의 부처가 움직일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진 테일러가 위장을 알아채다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참으로 신기하단 말이야. 나름 자신하던 기술인데 그걸 알아챌 방법이 있었다니……]“놈은 바르닥 전쟁 참전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희에게 원한을 갖고 저희를 감지할 수 있는 관련 기술을 개발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긴 그렇겠어. 그래서, 아직도 제국을 꿈꾸나?]목소리의 밑에는 웃음기가 미미하게 깔려 있었다. 만약 그런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택도 없으니 관두라며 타이르는 것만 같았다.
“……돌아가지요.”
[너무 풀죽을 필요 없다네. 자네는 유능해. 고작 몇 년 만에 박살난 에파바르 세력을 일부나마 규합하고 제국 곳곳에 침투시켰잖나? 발각되지만 않았어도 후에 인간을 결딴내는데 매우 큰 도움이었을 걸세. 신께서 가라사대, 인재는 실패를 통해 단련된다고 했네. 너무 기죽지 마시게.]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내용과는 달리 목소리는 아이를 타이르는 인자한 선생님 같았다.
“데이터센터는 어떡합니까?”
황태자가 제국에 침투할 수 있게 해준 귀중한 기술들이 있는 데이터센터 말이다.
[챙길 인력은 있나? 아니, 거기까지 갈수는 있나?]둘 다 없다.
황태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꼬집는 것 같아 이를 악물어야 했다.
[걱정 말게나. 허가되지 않은 이들이 접근하려 들면 알아서 내부 데이터가 모두 삭제될 걸세. 자네 부하들이 썼던 복구 불가능한 방식으로 말이야.]“알겠습니다.”
[제국 내부가 떠들썩하니 이 틈을 타서 얼른 이쪽으로 오게나. 자네가 할 일이 많네.]“예에……”
[힘내게나. 신께서 가라사대,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그 순간이 오리라고 했다네.]자신들 종족의 경전 한 구절을 또 인용하는(인용인지 신의 이름만 갖다 붙인 건지 모를) 상대편의 말에 황태자는 한숨으로만 답해야 했다.
***
[정보부 자리를 거절했다고? 그거 아쉽군.]정보부 장관과의 화상 통신을 하는 황제가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의 얼굴은 초대가 아닌 현재 매체를 통해 드러난 6대 황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 아무래도 애들한테서 정보부가 힘들다는 말을 듣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복구비가 5조라고?]황제는 복구회사가 진 테일러에게 제시한 천문학적인 복구비용에 관심을 가졌다.
“예. 절로 욕이 튀어나올 정도였다니까요. 어떻게 없는 표본 그러모아가면서 만든 복구비 평균인데 함장 덕에 다 깨지게 생겼어요.”
[허허, 역시 평균 박살내는 데는 뭐 있는 사람이라니까.]둘 다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였지만, 둘의 표정은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이 둘에게 복구회사라는 존재는 참으로 껄끄러운 집단이기 때문이었다.
어디 있는지 소재파악도 안 되며 현재 기술로 불가능한 걸 현실화시키는 비밀집단.
이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봤을 때 국가에 굉장히 위협되는 존재라고 간주될 수밖에 없다.
더욱 문제인 것은, 쓸데없이 공평하게도 인간뿐 아니라 다른 종족도 등록을 해준단 거다.
로치 종족의 총사령관을 기껏 암살했는데 며칠 뒤에 ‘난 살아있다! 난 살아있다고 네다리 시부럴 것들아!’ 하고 제국을 조롱하는데 어찌나 열이 뻗치던지 장관은 물론이고 장군 몇이 고혈압으로 회복캡슐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부활기술은 그렇다쳐도, 순간이동 기술이라도 조금 공여해준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어떻게든 복구회사와 접촉하기 위해서, 제국은 등록자를 통해 시험관에 편지도 써서 보내보고, 대대적으로 복구회사 관계자 좀 만나보자고 광고를 때리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지금껏 묵묵부답이었다.
황제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그 복구비 과다청구가 어떤 메시지일 가능성은 있나? 참모진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장관은 고개를 저었다.
“복구회사의 성향이나 그런 걸 안다면 모를까, 현재로썬 신빙성 있는 추측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종족과 신분, 재산에 구애받지 않고 어지간하면 일정한 범위의 금액만을 요구하는 회사가 유독 진 테일러 함장에게만 그런다는 건, 현재로서는 복구회사에 미움을 샀다라는 추론 외에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미움이라……]하지만 그가 칭송을 받았다면 받았지 미움 받을 구석은 없을 텐데?
에파바르와 범죄자들에게 원한을 많이 쌓았지만 그들이 복구회사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혹시, 중앙군구와 관련된 대귀족들과 복구회사가 선이 있는 게 아닐까?]남은 이유는 중앙군구와 연관된 정치싸움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지금껏 암살한 귀족들은 모두 되살아났거나, 진작 귀족들이 여분의 목숨과 순간이동 기술을 믿고 반란을 일으켰겠지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제대로 된 한 방을 위해 힘을 숨기도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혹 의심되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나?]“의심이라면……. 중앙 귀족 중에 요 수십 년 동안 갑자기 여러 신기술을 내놓은 가문이 하나 있긴 합니다. 인공신체 쪽인데, 몇 단계 뛰어넘은 기술들을 우르르 내놔서 경제적으로 귀족파의 큰 축을 맡게 되었지요. 그쪽이 조금 의심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술투자를 해야 할 법한 기술들을 갑자기 무더기로 내놓아 업계 1위를 순식간에 달성했으니까.
[그럼 한번 조사해 봐. 최전선에 집중하느라 귀족 견제는 힘들 테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 주게.]“알겠습니다.”
황제는 한숨을 쉬었다.
[인류를 위해 일해야 할 자네들이 인력 낭비되게 내부 권력 다툼에 쓰이다니 참 미안해.]“아닙니다. 이것도 다 인류의 결집을 위해서 아닙니까.”
[외적이 있으면 더욱 단결을 해야지 뻗대면서 권리를 요구하다니 발칙한 대공 놈들.]바르닥 전쟁 때도 관련 정치적 이슈 때문에 진 테일러의 전공 묻어버리기를 용인해야 했다.
“그래도 건수가 잡혔으니 찔러볼 구석이 생겨서 다행이지요.”
[그러게. 이거 테일러 함장이 더 고마워지는걸.]만일 복구회사의 미움 운운한 것이 오판이더라도 상관없었다.
황가 앞에서 자꾸 고개를 뻗대려 드는 귀족들을 조사해볼 명분이 생겼으니까.
***
진 테일러와 그의 팀은 정보부 장관의 기함에서 며칠 동안 화려한 파티를 대접받았다.
원래 작전이 끝나면 이렇게 며칠 놀고 먹으면서 재충전의 기한을 가진다는데, 그 수준이 귀족 저리가라였다.
덕분에 진의 팀은 오랜만에 혀를 잔뜩 호강할 수 있었다. 장관의 끊임없는 헤드헌팅을 거절해가면서.
휴식 기간이 지나고, 어느덧 떠날 때가 다가왔다.
기함의 크기가 큰 만큼, 격납고도 웬만한 도시 저리가라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 넓은 공간에 주차된 함선들 사이사이는 사람들로 잔뜩 차 있었다. 대회의장에 들어갈 때 봤던 인파보다도 많았다.
왜냐면 진이 작전 중에 도움을 준 행성이 많은 만큼, 휴식 기간 동안 진의 얼굴 한 번 보겠다며 온 정보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잘 가라고, 고마웠다고 온갖 외침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에서 진과 장관이 손을 맞잡았다.
“잘 가게. 자네의 노고를 잊지 못할 거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더 감사하지. 아 그리고……”
장관은 어차피 사방이 시끄러워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도 않을 상황이지만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감강화장치를 단 진조차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 날 때마다 추적은 계속해주게.”
진은 이제 외부인이 되지만 정보부와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에파바르 비밀조직의 우두머리인 황태자가 끝내 잡히지 않은 것이다.
그건 진도 예상하긴 했다.
혹시나 해서 진이 간부들을 포로로 잡기 전에 질문을 하면서 정보창으로 속마음을 읽었으나, 그들은 늘 황태자와 화상 통신만 해서 진짜로 위치를 몰랐다.
여러 곳을 공격해 통신기기를 압수하여 신호를 추적해 총단이라 불리는 위치를 알아내긴 했으나, 거긴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비밀조직의 뿌리는 뽑아냈으나, 언제 다시 싹틀지 모를 씨앗을 찾지 못한 상황.
그래서 에파바르 색출 기술도 공유하고 있겠다, 당분간 정보부 역량은 대부분 최전선으로 집중해야 해 여유도 없겠다, 해서 진에게 황태자 추적 임무를 공유한 것이다.
강요는 아니지만 발견에 그치지 않고 잡거나 사살하는 데 협력한다면 큰 포상이 주어질 건 당연한 수순.
덕분에 정보부와의 통신채널 접속 자격이 허락되었다. 그것도 쌍방으로.
제이슨 회장의 경우처럼 정보부가 먼저 연락해야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진이 먼저 연락이 가능하다.
사사로운 부탁 같은 걸 들어줄 순 없으나, 적어도 목표 추적이나 제국의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이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외부 협력자가 아니라 반쯤은 정보부 사람으로 인정해준단 의미와도 같았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제국의 안녕을 위해.”
“음. 그래. 함장도 하는 일 잘 되길 바라네. 제국의 안녕을 위해.”
진은 환호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하며 화물선에 올라탔다.
“히야, 현상금 사냥 한창일 때 생각나네. 그때도 인기가 대단했는데.”
“그러게요. 역시 함장님은 대단해……!”
-우익, 대단……!
진은 잠시 조종석에 앉아 모든 외부 카메라 화면에 꽉 찬 인파를 바라보았다.
‘역시. 올바르게 살길 잘했어.’
그의 입술에는 보람 가득한 미소가 한가득 떠올라 있었다.
“자, 이제 여기 일도 끝났고 돈도 벌었으니 이제 원래 계획으로 쭉 나가자고.”
군납 입찰 기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별장을 공장으로 리모델링하고 광산 들리고 데스페라도에 무기를 시험 납품해 입소문을 퍼뜨려 둬야 한다.
“자, 앤젤라 나가자!”
[네! 함장님!]정보부 기함에서 온갖 정보를 꿀꺽한 앤젤라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엔진을 발진시켰다.
여러모로 많은 걸 얻은 정보부와의 합작을 끝내고 떠나는 화물선의 뒷모습은 꽤나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