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0)
[나약한 쓰레기 몸]천마는 자신이 만든 참상을 슥 둘러봤다.
주변은 온통 피와 시체뿐이었다.
자신의 마지막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오직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니 죽을 장소로 이보다 어울리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슬슬 갈 때가 되었구나.”
천마는 자신이 이제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익힌 마공, 증혼마공의 부작용이었다.
천마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마공이었다.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은 마공이 빨아들이는 힘을 견디지 못해 몸이 터져 죽게 되는 것이다.
역대 모든 천마가 자신은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우웅!
단전에서 막대한 힘이 끓어올랐다. 그 힘은 사지백해를 치달리며 온몸에 어마어마한 기운을 불어넣고 압축시켰다.
의식이 흐려졌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니었다.
혼백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타인의 혼백을 흡수해 쌓은 힘이니 자신의 혼백이 망가지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죽음의 순간, 바닥에서 그림자로 만들어진 듯한 검은 사슬이 촤르륵 솟아났다.
수백 개의 사슬이 천마의 몸을 꽁꽁 감쌌다.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건가?”
그냥 순순히 끌려갈 수도 있지만, 자신은 천마였다.
“누가 감히 날 강제하는가!”
온몸에 끓어 넘치는 힘으로 자신을 칭칭 감은 그림자 사슬을 모조리 쓸어 쥐었다.
“크아아압!”
꽈르르릉!
그림자 사슬을 당기자, 굉음과 함께 사슬이 밖으로 끌려나왔다.
사슬 끝에 매달린 건 새까만 그림자로 이루어진 존재였다.
저승사자가 있다면 아마 꼭 저렇게 생겼으리라.
“으하하하! 차라리 내 발로 직접 가겠다! 그곳이 지옥이건 유황불이건!”
천마의 몸에서 힘이 폭발했다. 그리고 주변을 포위하다시피 한 저승사자들을 휩쓸어버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천마의 혼백이 갈기갈기 찢어지며 흩어졌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 마지막 고통의 순간, 천마는 희미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 그게 아니었구나. 증혼마공은 그저 타인의 혼백을 탐하기만 하는 마공이 아니었어!’
증혼마공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지만, 너무 늦었다.
천마의 의식이 흩어졌다.
‘다음 생에는 반대로 살아보고 싶구나. 평화롭고 조용하게······.’
그 생각을 끝으로 천마의 혼백이 소멸했다.
* * *
“공자님! 또 여기 계셨어요?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천마는 연못가에 앉아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중이었다.
벌써 열흘 째 여기 와서 이러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도 채 안 걸렸으니까.
자신은 세상을 피와 공포로 적셨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수라장을 헤쳐 왔는지 모른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건 파악하고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데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천마에게도 이번 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마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살폈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어딜 봐도 사내다움이라고는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저게 나라니.’
분명히 죽었다고 여겼는데, 깨어나 보니 저 얼굴로 누워 있었다.
“공자님, 음식 다 식어요. 얼른 가셔야 한다니까요?”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말하는 저 시비가 곁에서 자신을 깨우고 있었다.
감히 시비가 저런 말투를 주인에게 쓴다는 생각에 단숨에 목을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더럽게 약한 쓰레기 같은 몸이야.”
천마의 중얼거림에 시비가 얼른 말했다.
“공자님, 그런 말씀 마세요! 이제 곧 좋아질 거라니까요? 최고의 의원이 곧 오실 거예요. 천추신의라고 들어보셨죠? 이번에 그분이 오시기로 하셨대요.”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이름도 못 들어본 의원이 고치긴 뭘 고쳐?”
“공자님,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다니까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해야 좋은 일이 생기는 법이에요.”
천마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얘기는 나이를 스무 살쯤 더 먹고 와서 다시 하면 좋겠구나.”
“아이, 정말 계속 이러실 거예요?”
천마는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지난 열흘 동안 천마가 한 일은 이 몸의 주인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름은 벽태산. 무한에서 첫 손에 꼽히는 상단인 금벽상단에 살고 있다.
부모는 없었고, 형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금벽상단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벽태산은 몸이 정말로 좋지 않았다.
아주 특이한 절맥이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 병명도 제대로 알아낸 의원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일단 절맥이기 때문에 무공을 익히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유일한 가능성이 바로 증혼마공이었다.
천마는 걸어가는 내내 속으로 자신의 이름인 벽태산을 되뇌었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정말로 입에 쫙쫙 붙었다.
마치 진짜 자신의 이름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자신의 원래 이름을 떠올리려고 했는데, 황당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거의 모든 일이 다 기억나는데, 오직 하나 자신의 원래 이름만 기억나지 않았다.
‘제법 오랫동안 이름 불릴 일이 없긴 했지만······.’
정말로 이름 들을 일이 없었다. 부하들은 주군이나 교주님이라 불렀고, 적은 천마라고 불렀으며, 자신은 본좌라 칭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름을 잊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한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로 벌어졌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원래 이름이 벽태산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와중에 원래 이름이 뭐 중요하겠어.’
중요한 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고, 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다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일단 살아야지.’
그리고 그러려면 증혼마공이 답이었다.
끊어진 기맥을 혼백의 힘으로 이어버리는 임시방편을 통해 무공을 익히면 된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맥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려면 혼백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좋은 건 살아있는 사람의 혼백이었다.
과거에는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자마자 바로 혼백을 뽑아내서 썼는데, 죽음과 동시에 얻은 깨달음을 통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아냈다.
‘일단 쉬운 길로 가자.’
몸 상태가 좋았다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소소야, 오늘 외출을 하고 싶구나.”
“예? 정말요? 어디 가시게요?”
“그건 알 거 없고. 너 말고 길 안내를 해줄 하인이나 하나 데려와라.”
소소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길은 잘 알아요. 어디로 가실 건데요? 제가 모르는 장소는 이 무한 땅에 없다고 보시면 된다니까요? 자, 어디로 모실까요? 아, 아예 오늘 식사를 밖에서 하시겠어요? 제가 최근 찾아낸 아주 끝내주는 반점이 있는데.”
겸사겸사 저도 맛 좀 보고요, 하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소소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상관없나? 그럼 괜찮은 기루에 가려고 하니까 준비해라.”
소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예? 기, 기, 기루요?”
그녀는 그제야 벽태산이 왜 굳이 하인을 따로 불러달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아, 그, 그러시면 저보다는······ 아! 밖에 나가시면 호위로 천 무사님이 따라가실 테니 두 분이 가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대답한 소소의 입술이 쭉 튀어나왔다.
“고, 공자님 한 번도 이러신 적 없으셨는데······.”
“억울하면 같이 가든가.”
“같이 안 갈 거거든요! 헹! 연 소저께 다 이를 거예요!”
“뭐, 그러든가.”
소소가 말한 연 소저는 연하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벽태산의 정혼녀였다.
태중 정혼을 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천마 입장에서는 시큰둥했다.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 몸의 주인도 정혼녀에게 굉장히 차갑고 냉소적으로 대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소소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무한에서 제일가는 미녀라고 하는데, 천마는 그 정보를 신뢰하지 않았다.
자고로 여자가 예쁘다고 한 여자치고 진짜 예쁜 여자는 굉장히 드문 법이니까.
소소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자신을 너무 학대하지 마세요. 최소한 천추신의가 제대로 진맥을 할 때까지만이라도 희망을 가지시면 안 될까요?”
천마, 벽태산은 그런 소소를 신기한 눈으로 힐끗 쳐다봤다.
지금 소소가 보여주는 말과 태도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가면을 쓰고 자신을 대하는 놈들을 숱하게 만나봤다. 그러니 그들의 말과 태도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것에는 이골이 났다.
그런 천마의 안목을 고작 순진한 시비가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거 복 받은 놈이었네. 짜증나게.’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 * *
해가 질 무렵, 벽태산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소소는 벽태산의 옷매무새를 바로잡아주었다.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고작 기루에 가는 건데 옷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
“과하긴요. 원래 그런 곳에는 이렇게 나 돈 많은 사람이라고 드러내고 가야 대접을 받는 법이에요.”
“가보지도 않고서 말은 잘 하는구나.”
“꼭 가봐야 아나요? 제가 들은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나저나 온다던 호위무사는 왜 아직 소식이 없지?”
“시간 딱 맞춰 오실 거예요. 공자님 호위 말고는 수련밖에 안 하시는 분이잖아요.”
벽태산의 호위를 맡은 천경완은 검룡단이라는 무사조직에 속한 무사였다.
검룡단은 금벽상단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만 나설 목적으로 키우는 조직이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오직 수련뿐이었다.
검룡단에서 천경완만 따로 벽태산의 호위를 맡고 있을 뿐이었다.
금벽상단에는 검룡단 말고도 무수한 무사 조직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실력은 명문세가의 무사와 비교하면 제법 손색이 있었지만, 여타의 상단이 보유한 무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왔나보구나.”
벽태산의 말에 소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밖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깜짝 놀랐다.
“공자님, 이제 나가셔도 됩니다.”
소소가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벽태산은 대답대신 피식 웃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기세를 풀풀 날리고 있는데 어떻게 몰라?’
벽태산은 밖에 선 천경완을 힐끗 쳐다봤다.
마치 한 자루 검 같은 사내였다.
기세가 딱 그랬다. 날카롭게 벼려지고 벼려져 무엇이든 갈라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제법인데?’
벽태산의 눈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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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기루에서……
천경완은 벽태산의 기준, 그러니까 천마의 기준으로 봐도 제법 쓸 만한 무인이었다.
‘검룡단이라고 했던가?’
천경완은 검룡단의 단주나 부단주, 혹은 조장도 아닌 그저 일개 단원에 불과한 무인이었다.
한데 저 정도 수준이라면 과연 검룡단주는 어느 정도일까?
벽태산이 보기에 천경완 정도라면 예전에 숱하게 상대했던 명문세가의 단주 정도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절맥 때문에 내공을 쌓지도 운용하지도 못하지만, 또 감각도 많이 둔해졌지만, 증혼마공을 통해 혼백에 새겨진 흔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천경완의 수준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금벽상단이라고 했지? 이거 보통 놈들이 아닐 수도 있겠어.’
더구나 벽태산은 상단주의 동생이긴 하지만, 상단의 주요인물은 아니었다.
상단의 주요인물에 순위를 매겨 줄을 세우면 일흔 번째나 간신히 들까말까 할 정도였다.
게다가 벽태산과 형인 벽태수의 관계는 굉장히 소원했다.
벽태수의 부인과 처가 쪽에서 벽태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기도 하고.
그런 벽태산을 호위하는 데 저 정도 무사를 동원했다면 금벽상단이 소유한 무력이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쁠 것 없었다.
“가자.”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경완이 앞장섰다.
이미 오늘 어디에 간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천경완은 속마음이 어떤지 전혀 드러나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벽태산이 그런 천경완을 묘한 눈으로 지켜보며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리고 소소는 걱정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두 사람을 끝까지 바라봤다.
* * *
천경완은 벽태산을 향화루로 안내했다.
무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루이기도 하지만, 금벽상단이 소유하지 않은 기루이기도 했다.
애초에 벽태산이 요구했던 사항 중 하나였기에 천경완은 그 뜻에 충실히 따랐다.
기루에 들어가자 기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미리 기별을 받았는지 다들 눈이 반짝반짝했다.
적어도 무한에서 금벽상단이 가지는 위상은 웬만한 명문세가 이상이었다.
“공자님, 그럼 전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왜?”
“예?”
“여긴 기루 밖인데? 왜 굳이 여기서 대기하느냐고.”
“그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그러니까 그 무슨 일이 끝나기 전에 내가 있는 곳까지 올 자신 있어?”
천경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무한 안에서 감히 금벽상단의 사람을 건드릴 간 큰 놈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에 확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같이 즐기고 싶지만, 그건 좀 곤란하니까 내 옆방에서 너도 즐겨.”
“그럴 수는 없습니다.”
천경완이 무감정한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뭘 못하는데? 내 옆방으로 오는 거? 아니면 즐기는 거? 그것도 아니면 내 명령을 듣는 거?”
천경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확 굳었다가 다시 펴졌다.
지금까지 잘 해오던 표정관리에 처음으로 실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