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2)
벽태산은 일행이 싸우고 있는 연무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벽태산이 일행을 아까 그 연무장에 모아둔 것은 진법 때문이었다.
진법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뛰어난 감각 때문에 진법이 어떤 식으로 발동하고 어디에 빈틈이 있는지 정도는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설사 진법을 발동하지 않아도 기의 흐름을 통해 유추가 가능했다.
벽태산은 흑철방에 자리를 잡고 적의 습격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자마자 흑철방을 면밀히 살폈다.
그래서 진법의 존재를 파악했다.
적들이 반드시 흑철방으로 올 거라고 확신한 이유도 진법 때문이었다.
진법의 효능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빈틈은 파악했다.
그 빈틈이 바로 일행을 몰아넣은 연무장이었다.
그곳은 여러 기의 흐름이 얽혀서 결과적으로 모든 효과가 상쇄된, 기의 공백지 같은 장소였다.
아까 마진관과 싸울 때도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버텨야 했다.
그저 압력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한을 가하는 진법이었는데, 벽태산은 그 모든 걸 몸으로 견뎌내며 마진관과 싸웠다.
진법이 아니었다면 그런 번거로운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이 그냥 단숨에 박살 내버렸을 것이다.
아무튼 진법의 힘을 헤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연무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아직도 싸우는 중이었다.
그래도 대부분 처리하고 남은 적의 수는 고작 열 명에 불과했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벌써 지친 건가? 이거······ 수련 방향을 좀 바꿔야겠어.”
벽태산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갑자기 일침괴와 천추신의가 괴성을 지르며 남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천경완과 유서연이 빠르게 움직여 그들의 뒤를 쳤다.
나머지 사람들도 갑자기 죽을힘을 다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몰아치니 순식간에 나머지 놈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벽태산은 싸움이 끝난 뒤에야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친 사람이 없는지 면밀히 살폈다.
개량한 증혈단을 먹은 놈들이 무려 예순 명이었다. 그런 놈들과 싸우면서 아무 부상도 안 입을 수는 없었다.
일단 시비들의 팔과 다리, 옆구리 쪽을 물들인 피가 보였다.
벽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오문도들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하지만 죽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천경완과 유서연의 상처가 제일 심했다.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고, 상처 하나하나가 제법 깊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 초서란은 상처가 많긴 했는데, 다들 생채기에 불과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구나.”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을 들은 일행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고, 공자님. 그래도 우리 제법 잘 하지 않았습니까? 그놈들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니까요? 흑주도 안 통하고, 힘도 무지막지하게 세고······.”
천추신의가 거기까지 말하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외쳤다.
“그리고 진법! 진법까지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잘 버텨내지 않았습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 진법이 너희한테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고?”
천추신의가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모르니까.
눈알을 슬그머니 굴리면서 천추신의가 한 발 물러났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게 낫겠군.”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진법의 효과가 제법 괜찮다. 수련에 한정한다면 말이다.
이걸 잘 개량하면 외부 침입을 막을 때도 용이할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진법가가 필요하다. 아직 벽태산 밑에는 진법가가 없다.
‘그러고 보니 향화루에 진법가가 몇 명 있었지?’
물론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들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하오문에 지시하면 실력 있는 진법가를 찾아줄 것이다.
그들이 영입하지 못하면 벽태산이 직접 가면 된다.
“다들 따라와라.”
생각을 정리한 벽태산이 일행을 이끌고 연무장 밖으로 향했다.
다들 피곤한 얼굴로 벽태산을 따라갔다.
오늘 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내내 수련을 통해 지옥에 들어가 있다가 잠깐 쉬고 적을 맞이해 싸워야 했으니까.
그렇게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고 연무장에서 나온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갑자기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 때문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효과가 그거 하나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감각도 흐려졌고, 압력을 버티려고 내공을 쓸 때, 기의 흐름도 원활하지 않다는 걸 알아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아까 그놈들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섬뜩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이것 때문에 저희를 연무장에 몰아넣으신 겁니까?”
천추신의의 물음에 벽태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진법이지 않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걸 과연 재미있다고 표현해야 할까?
“진법의 발동을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축을 찾아 부수면 될 겁니다.”
천추신의의 말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의창에 언제까지 머물게 될지 모르지만, 여기 있는 동안은 계속 흑철방을 쓸 텐데, 이런 진법이 작동하고 있으면 정말 불편할 테니까.
아니, 불편한 것을 넘어서 위험할 수도 있었다.
“진법은 계속 유지한다.”
“예?”
“이렇게 수련하기 좋은 환경을 왜 부순단 말이냐.”
“아······!”
다들 입을 쩍 벌리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걸 수련에 연결시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천추신의가 간절함을 담아 물었다.
돌아온 것은 벽태산의 비웃음이었다.
“없으면 안 위험하고? 차라리 수련을 통해 강해지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겠느냐?”
할 말이 없었다.
다들 입을 다물자, 침묵이 찾아왔다. 한동안 그저 벽태산을 따라 걷기만 했다.
잠시 후, 그들이 숙소로 쓰는 전각에 도착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각에는 진법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
흑철방 전체에서 진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일행이 싸웠던 연무장뿐이었다.
“오늘은 들어가서 상처부터 치료하고 푹 쉬어라. 그리고 자면서 진법의 힘에 적응해라.”
다들 벽태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벽태산은 얼른 들어가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다들 힘없이 전각으로 들어갔다.
치료는 문제없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에 초서란까지 있었으니까.
벽태산은 일행이 전부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시작하자, 몸을 돌려 흑철방에서 나갔다.
* * *
밤이 깊었지만, 흑철방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하오문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흑철방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정리할 일이 많았다.
흑철방 내부 곳곳에 흩어진 시체도 치워야 했고, 흑철방 밖을 포위하다가 흑주에 당해 폭주한 놈들의 시체와 흔적도 치워야 했으니까.
수가 워낙 많아서 하오문도들이 대거 나섰는데도 정리하는 데 제법 오래 걸렸다.
하오문도들은 벽태산이 직접 불러왔다.
다들 다쳐서 부상을 치료 중이니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하오문 의창지부인 금옥루에 가서 지시만 내리면 되는 일이니 힘들 건 없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 일을 하는 내내 깊은 고찰에 빠졌다.
이 역시 예전에는 전혀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부하가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어도 부하를 대신해 자신이 이런 귀찮은 일을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어도 부하가 일을 처리하거나, 아니면 치료를 하고서 부하가 처리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한데 오늘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는데, 그러니까 죽기 일보직전의 상처를 입은 놈이 아무도 없는데도 벽태산이 직접 움직인 것이다.
벽태산은 빈 전각 꼭대기에 서서 하오문도들이 움직이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훌쩍 몸을 날렸다.
이제 남은 건 저들에게 맡기고 잠을 잘 시간이다.
내일부터 당분간 부하들은 수련의 늪에 처박아둘 계획이었다.
그리고 벽태산 자신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 * *
흑철방이 습격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호무련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니 씁쓸하군.”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그놈들이 밑밥을 워낙 잘 깔았습니다.”
“아니지, 우리가 성급했어. 그리고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고. 충분히 양쪽을 다 살필 방법이 있었어.”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리고 훌륭하게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합니다.”
“그건 그렇지.”
호무련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총관을 바라봤다.
“무한 쪽은 별 일 없지?”
“순찰당주가 워낙 유능하지 않습니까. 착착 진행 중이라는 연락을 바로 어제 받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전 그보다는 무림맹과 흑련, 그리고 오대세가 쪽이 더 신경 쓰입니다.”
“그쪽은 왜? 무한 진출 때문에 그러나?”
“아닙니다. 사실 무한 진출이야 시기가 좀 이르긴 해도 결국은 이렇게 될 일이었습니다.”
“그야 그렇지.”
“그래서 그건 별 거 아닌데······ 아무래도 그들의 움직임이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인가?”
“무한진출이 목적이 아니라,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감춘 것 같습니다.”
호무련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골치 아프군. 안 그래도 의창을 뒤흔드는 그 미친놈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 미친놈들이 아무래도 무림맹이나 흑련, 오대세가 쪽도 건드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라고?”
“아직은 의심일 뿐입니다. 명확한 증거도 없고, 그들의 의견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총관이 그렇게 말했다는 건 가능성이 칠 할을 넘었다는 뜻 아닌가?”
총관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허어. 설마 그 무명이라는 미친놈들 모임이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벌이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체 그놈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잡히는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말해보게.”
“벽태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심이 어떻습니까?”
“벽태산을?”
“예. 그래서 좀 더 호의를 쌓은 다음 확실히 포섭했으면 합니다.”
“포섭, 좋지. 그야말로 딱 내가 바라는 바일세. 안 그래도 그놈들이 대놓고 노리고 있으니 우리가 확실히 도움을 주면 벽태산 그놈도 계속 모른척하지는 않겠지.”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가 가서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겠네.”
호무련주가 벌떡 일어나 집무실에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그의 옷깃을 꽉 잡은 총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이러는 건가?”
“꼭 하셔야 할 일을 미루시고 가시면 곤란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
호무련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총관의 손에서 옷깃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총관은 옷깃을 쥔 손에 가진 바 내공을 다 몰아넣었다.
그러자, 집무실 밖에서 서류를 잔뜩 든 문사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호무련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초, 총관. 왜 이러시나?”
총관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동안 처리하지 않고 미뤄두신 일입니다. 반드시 오늘 중으로 처리하셔야 합니다.”
총관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서탁에 서류가 착착 쌓이고 있었다.
서류를 쌓은 문사들은 각자 자신이 쓸 서탁까지 가져와 호무련주의 집무실 안에 자리를 만들었다.
“련주님을 도와줄 사람들입니다.”
호무련주가 멍하니 총관과 문사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돕는 게 아니라 감시할 거 같은데?”
“오해십니다. 그럼 전 공무가 바빠서, 이만.”
총관이 정중히 인사하고 물러갔다.
호무련주는 그 뒤로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총관이 있던 자리만 바라봤다.
* * *
아침이 되자, 벽태산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시비들의 시중을 받으며 몸을 씻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수련을 지시하고 흑철방을 나섰다.
오늘은 홀가분하게 혼자서 나왔다. 화옥을 데려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오늘처럼 수련하기 좋은 기회를 버리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혼자 나왔다.
오늘 할 일은 딱 하나였다.
벽태산이 흑철방 밖으로 나오자, 하오문도 한 명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오늘 벽태산을 안내할 사람이자, 의창에서 하오문과의 연락책이었다.
벽태산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자, 하오문도가 얼른 입을 열었다.
“현재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수준의 진법가는 의창에 딱 세 명입니다. 그 중 두 명은 의창에서 산 지 십 년이 넘었고, 한 명은 세 달 전에 의창에 들어왔습니다.”
“그놈부터 시작하지.”
“모시겠습니다.”
하오문도가 얼른 벽태산을 안내했다.
벽태산은 그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살아있으려나······.”
끝
“이곳입니다.”
하오문도와 함께 도착한 곳은 제법 큰 집이었다.
근처에 비슷한 크기의 집이 모여 있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모양이었다.
높은 담장이 쭉 이어져 있고, 그 중간에 굳게 닫힌 커다란 문이 있었다.
벽태산은 문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이름은 승도흥. 상당한 실력의 진법가입니다. 다만 이름이 잘 알려진 자는 아닙니다. 세 달 전에 의창에 들어왔고, 그때부터 계속 이 집에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