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3)
하오문도가 읊는 정보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벽태산이 문으로 다가가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하오문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다. 한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상한데? 승도흥이 문단속 하나만큼은 정말 철저히 하는데?’
하오문도는 다급히 벽태산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러니 일단 안에 기별을 하시고······.”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집에 들어온 순간 느껴지는 싸늘함이 그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이다.
무수한 집을 몰래 들어가 본 경험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 집에서 인적을 찾기 정말 어려울 거라고.
“이 집, 비어있다.”
벽태산의 말에 하오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벽태산은 성큼성큼 정원을 지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도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 집기를 훔쳐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건을 건드린 흔적은 없었으니까.
아마 집기는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밖으로 빼돌리거나 안에서 부수면 주변에 드러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벽태산은 안으로 들어가서 슥 둘러보고는 하오문도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하오문도가 얼른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너 추적 좀 하나?”
“할 수는 있습니다만, 추적 쪽으로는 저보다 더 뛰어난 자들이 있습니다. 불러드릴까요?”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오문도가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가더니 잠시 후 다시 들어왔다.
근처에 있는 하오문도에게 벽태산의 지시를 전달한 것이다.
이내 세 명의 하오문도가 다급히 들어왔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안에 있는 흔적을 조사해라. 여기 있던 놈들 어디로 갔는지 찾아.”
“예.”
하오문도들이 빠르게 흩어져 흔적을 살피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그들에게만 모든 걸 맡겨 놓을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집안을 돌아보며 유심히 흔적이나 기의 흐름을 파악했다.
“진법가라고 하더니 자기 집에도 진법을 깔아뒀구나.”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옆에 서 있던 하오문도가 깜짝 놀랐다.
“이 집에 진법이 깔려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물론 무슨 진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법 규모가 작지 않은 진법이 깔려 있었다.
“흐음.”
벽태산은 기의 흐름을 차분히 살폈다. 그리고 그걸 통해 구조를 파악했다.
“피 냄새도 살짝 나는 것 같고.”
피 냄새가 난다는 것은 이곳에서 피를 쏟을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집이 빈 지 얼마나 된 것 같으냐?”
“적어도 한 달은 넘었을 것입니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희미한 피 냄새가 남아 있다는 것은 피를 엄청나게 쏟았다는 뜻이다.
뭔가 일이 있긴 있었다.
벽태산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기다려주었다.
일단 하오문도들이 추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여기가 부서지면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질 테니까.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오문도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흔적을 찾았습니다.”
“그래?”
벽태산이 씨익 웃더니 발을 들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발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쿵!
거대한 울림이 벽태산의 발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오문도들은 벽태산 옆에 있다가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들을 밀어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결국 뒤로 주춤주춤 밀려났다.
꽈드드득!
집안 곳곳에서 뭔가 비틀리고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벽태산은 가만히 서 있다가 한 쪽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하여튼 진법가라는 것들이 음흉한 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질 않는구나.”
하오문도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벽태산을 따라갔다.
벽태산이 향하는 곳은 건물 뒤쪽에 조성된 후원 쪽이었다.
후원에 도착한 이들은 아까와 달라진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후원 구석에 구덩이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마치 아래에 있던 무언가가 빠지면서 흙이 말려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이 집에 설치된 진법은 바로 저 구덩이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벽태산이 진법을 박살 내면서 진법으로 가려져 있던 구덩이가 나타난 것이다.
벽태산은 구덩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오문도들이 어느새 전부 벽태산 뒤에 붙어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구덩이 안에는 묵철로 만든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벽태산이 턱짓을 하자, 하오문도 한 명이 얼른 구덩이로 내려가 상자를 꺼내왔다.
그리고 상자에 묻은 흙을 잘 털어낸 다음, 벽태산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벽태산은 상자를 받았다.
한데 상자에 이음새가 없었다. 마치 통짜로 상자모양의 틀에 묵철을 녹여 굳혀 만든 듯했다.
하지만 이건 상자가 분명했다. 속이 비어 있었으니까.
하오문도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벽태산이 들고 있는 상자를 바라봤다.
저 정도 상자라면 힘으로 뜯어내면 될 듯했다. 사실 자신들은 자신 없지만, 벽태산 정도라면 손가락만으로 툭툭 뜯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벽태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묘한 눈으로 상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볼 뿐이었다.
“이것 봐라?”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하오문도들이 흠칫 놀랐다. 어조가 너무나 차가웠다. 은은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달칵.
하오문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태산이 뭘 어떻게 했는지 상자가 열린 것이다. 분명히 이음새도 없는 상자였는데, 뚜껑만 딱 떨어졌다.
상자 안에는 푸르스름한 약병 하나, 그리고 묵철로 만들어진 바늘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약병은 입구가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는데, 벽태산은 바늘로 약병 입구를 뚫었다.
그리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살짝 맡았다.
벽태산은 냄새를 확인한 다음 손가락으로 구멍 뚫은 부분을 슥 문질렀다.
그러자 바늘로 뚫었던 구멍이 감쪽같이 메워졌다.
“가자.”
벽태산이 몸을 휙 돌리더니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오문도들이 당황해서 그 뒤를 얼른 따라갔다.
* * *
고준광은 참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 허탈하구나.”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 계획이 실패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계획에서 고준광이 세운 목표는 딱 하나였다.
바로 벽태산을 죽이거나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다 동원했다.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어렵게 마진관까지 끌어들였다.
사실 마진관은 이렇게 끌어들여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른 임무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자신 있었다. 마진관이 도와주면 확실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마진관은 곡양두보다 더 강했다. 거기에 사혈마검까지 더해지면 벽태산 하나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게다가 증혈단을 먹인 자들을 싹 모아서 흑철방으로 보냈다. 개량한 증혈단도 대부분 썼고.
이 정도면 거기에 설사 호무련주가 있었다고 해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실패했다.
간 놈들이 전멸하는 바람에 소식을 듣는 것도 늦었다.
고준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거기 누가 있었기에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예전에는 벽태산에 대한 편견이 좀 있었다. 나이가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편견도 없었다. 그렇게 편견을 제거하고 파악한 바로는, 틀림없이 벽태산이 마진관 아래였다.
그러니 누군가 조력자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긴 했다.
한데 고준광은 왠지 조력자 보다는 벽태산의 힘을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하아,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자신은 이제 끝났는데.
이번 일에 대한 결과가 조만간 주군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아마 돌아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다만 고통스럽게 죽느냐, 깔끔하게 죽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깔끔하게 죽으려면 남은 것들을 잘 챙겨야지.”
고준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오 층짜리 전각의 꼭대기였다.
창밖으로 제법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정원에 반강시가 가득했다.
저 반강시들만 잘 지켜도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 그리고 그놈도 있었지.”
고준광이 한 사람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 전 뒤통수를 치려던 아주 발칙한 놈에 대한 처분도 슬슬 결정해야 한다.
물론 거의 마음은 정했다. 그놈은 주군이 있는 곳에 가서 자신의 재능을 탈탈 털릴 것이다.
늙거나 지쳐 죽을 때까지.
“뭐, 실력은 상당한 놈이었으니까.”
* * *
하오문도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불렀다.
“저······ 공자님.”
벽태산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만 슬쩍 돌려 말을 건 하오문도를 쳐다봤다.
“이쪽으로 가시면 의창을 벗어나게 됩니다.”
“나도 안다.”
하오문도가 흠칫 놀라더니 얼른 물었다.
“혹시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쪽 동료들에게 미리 연락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편의를 봐줄 수 있고,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미리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나도 모른다. 이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
벽태산의 말에 하오문도가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대답했다.
“일단 이쪽으로 계속 가시면 당양이 나오긴 합니다만······ 목적지가 당양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다.”
하지만 정확한 건 끝까지 가봐야 한다.
지금 벽태산은 추종향을 따라가고 있었다.
아까 승도흥의 집에서 찾아낸 묵철 상자는 천마신교에서 특별한 비법으로 만들어낸 상자였다.
그냥 단순한 상자가 아니라, 정해진 방법으로 열지 않으면 내용물이 모조리 녹아 버리는 특별한 상자였다.
그리고 상자 안에 있던 병에 담긴 건, 추종향을 추적할 때 쓰는 약품이었다.
그것 역시 천마신교에서 쓰는 추종향이었다.
기본이 되는 제조법에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줘서 추종향을 쓰는 사람마다 다른 향이 나게 되어 있었다.
그 추종향을 추적하려면 추종향을 배합할 때 함께 만든 특별한 약품을 써야만 한다.
그러니까 벽태산이 내린 결론은, 진법가인 승도흥이 천마신교 소속이었고, 자신에게 일이 생길 걸 예상하고 추종향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추종향의 냄새가 굉장히 희미했다.
아마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추적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거나 승도흥이 더 먼 곳으로 이동하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서두른다.”
벽태산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오문도들이 기겁해서 벽태산을 쫓아갔다.
하지만 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내 벽태산의 모습이 까만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어쩌지?”
하오문도 중 하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바라봤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당양으로 가야지. 넌 당양 쪽에 연통을 넣어. 넌 의창으로 돌아가서 보고하고. 당양은 내가 간다.”
하오문도들은 다급히 움직였다.
서두르면 아마 당양 쪽에 있던 하오문도들을 적절한 시기에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 * *
점점 추종향의 냄새가 짙어졌다.
벽태산은 당양에 들어선 뒤, 냄새를 따라 어느 정도 이동하다가 걸음을 살짝 늦췄다.
추종향의 원리는 몸에 향을 묻힌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 냄새를 남기게 되고, 그 냄새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당양까지 오는 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잡혀서 왔건 마차에 갇혀서 왔건 숨 쉴 구멍만 있으면 향이 계속 흘러나와 주변에 내려앉았을 테니까.
한데 당양에 들어오니 향으로 이루어진 길이 하나가 아니었다.
승도흥을 잡아간 놈은 여기서 그냥 바로 목적지까지 간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복잡하게 움직이면서 갔다.
곳곳에 볼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혹시 모를 추적에 대비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냄새가 사방에서 교차하고 있어, 여기서부터는 추적에 약간 시간이 걸릴 듯했다.
물론 결국은 찾기야 하겠지만.
벽태산이 그렇게 향을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 당양에 있던 하오문도들이 조용히 다가왔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할 일을 했다.
그리고 이내 승도흥이 잡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제법 큰 장원이었는데, 정확히 장원의 정문으로 추종향이 이어져 있었다.
장원을 가만히 쳐다보던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역시 좋은 일을 하면 보답을 받는 건 하늘의 이치인가?”
이 장원 안에서 굉장히 많은 영약의 느낌이 풀풀 풍기고 있었다.
끝
“저······ 공자님, 설마 저 장원에 혼자서 들어가시려는 것인지요.”
하오문도가 최대한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벽태산은 정문으로 이어진 추종향의 흔적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하오문도를 쳐다봤다.
“문제가 있느냐?”
“정황을 보면 저곳이 이번 일을 사주한 자들의 본거지일 가능성이 높은데, 혼자서 가시면 위험 요소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오문도의 걱정스런 표정과 말투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위험? 지금 내가 위험할 거라고 걱정하는 것이냐?”
“아······ 죄, 죄송합니다. 공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노파심에······.”
벽태산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