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6)
고민해 보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 벽태산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승도흥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을 데리고 뇌옥에서 나갔다.
그 뒤로 당양에서 의창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이동했고, 이렇게 흑철방에 도착했다.
흑철방에 들어서며 승도흥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설치한 진법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반사적으로 동료들을 확인했다. 다들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 때문에 힘들어 했다.
이곳에서 괜찮은 사람은 오직 승도흥뿐이었다.
승도흥은 이곳으로 끌려왔고, 동료들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아마 다들 따로따로 흩어졌을 것이다.
작은 방이었다.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있었다. 승도흥은 그 중 하나에 앉았고.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너 배신자라며?”
다짜고짜 그런 말을 던지니 승도흥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배신자는 누가 배신자란 말입니까!”
승도흥은 발끈하고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에서 나오신 분입니까?”
“뭐······ 글쎄?”
승도흥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너 천추신의라고 들어봤어?”
“그럼······ 어르신이 천추신의란 말씀입니까?”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그래. 어때? 이제 좀 존경심이 생겨?”
승도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듣던 것과 좀 다른 듯해서였다.
“굉장히······ 진중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천추신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잘 알고 있구나. 진중이라는 단어만큼 나와 어울리는 게 별로 없긴 하지.”
승도흥은 할 말이 몇 가지 있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자신은 아직 약자니까.
“그나저나 환천회라니,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거냐?”
승도흥의 표정이 확 굳었다. 미친 짓이라니.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천마신교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부당한 차별대우가 너무 만연해 있습니다.”
“부당한 차별대우?”
천추신의의 입매가 비틀렸다.
“맞습니다. 특히 우리 진법가들이 받는 멸시가 너무 심합니다.”
“뭐······ 무사들이 좀 더 대우받는 건 사실이긴 하지.”
“그뿐이 아닙니다. 비천단 중에서도 차별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그래? 그건 또 금시초문이네?”
“확실합니다. 제가 환천회에서 맡은 일이 바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천단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는 거였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천추신의의 입가가 위로 쭉 올라갔다.
“그래? 천하에 흩어진 비천단원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용케 그걸 했네? 생각보다 환천회, 대단한가봐?”
“맞습니다. 진법의 힘을 이용하면 아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힘만 아는 멍청이들이 그걸 모른다는 게 문제지요.”
“힘만 아는 멍청이라······ 그거 우리 교주님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
승도흥이 화들짝 놀라며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지존께 진법의 유용함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영명하신 지존이라면 반드시 저희의 의도를 꿰뚫어 보실 거라 확신했습니다.”
천추신의가 씨익 웃으며 손을 휙 내저었다.
“알았다, 알았어. 뭘 그리 열을 내?”
승도흥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천추신의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그나저나 비천단에 대한 정보를 아직도 갖고 있겠네?”
승도흥이 당황한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천추신의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마침 내가 그 정보를 아주 애타게 찾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좀 내놔봐라. 아주 우리 공자님 모시려니 내 뼈가 삭으려고 그런다.”
“그, 그럴 수 없습니다.”
“그, 그럴 수 없긴 뭐가 없어. 아, 맞다. 그럼 네 동료들도 전부 진법가야?”
“아닙니다. 포섭한 비천단원들도 섞여 있습니다.”
천추신의가 황당한 눈으로 승도흥을 바라봤다.
“거기 넘어간 놈들이 있다고?”
“대의를 아는 분들이지요.”
“대의 같은 소리한다. 그래도 환마를 지존으로 올릴 생각을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니 좀 낫긴 하다만······.”
천추신의가 보기에 이건 명백한 권력욕이었다.
진법가에 대한 대우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또 자업자득인 면도 좀 있었고.
승도흥이 불안한 표정으로 천추신의에게 물었다.
“저······ 저는 이제 어찌 되는 겁니까?”
천추신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는 걸 전부 불면 공자님 밑에서 일하겠지? 뭐, 못 믿을 놈이니 금제야 걸겠지만. 속이다가 걸리면 그때는 손 좀 보면 되고. 참고로 공자님 손에 들어가면 너 자다가 똥 쏟는다. 이건 내가 직접 본 거니까 믿어도 돼.”
승도흥이 멍하니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자다가 똥을 쏟다니. 대체 뭘 어떻게 당하면 그 지경이 된단 말인가.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절로 괄약근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대, 대체, 대체 공자님의 정체가 뭡니까?”
천추신의가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였다.
“이건 나도 아직 확실히 아는 건 아닌데······ 일단 나는 교주님이 숨겨두셨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에?”
승도흥의 눈이 경악으로 커다래졌다. 하마터면 눈가가 찢어질 뻔했다.
천추신의가 씨익 웃으며 승도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때, 이제 줄 제대로 잡았다는 거 실감 나지? 그러니까 잘해. 괜히 속이다 똥 지리지 말고. 아는 거 그냥 솔직히 다 불어. 그리고 납작 엎드려서 공자님이 죽으라면 스스로 심장을 찌를 정도로 충성해. 그러다보면 좋은 날 오지 않겠냐? 난 그럴 거 같은데, 넌 어때?”
천추신의는 오랜만에 말을 많이 쏟아냈더니 체증이 확 내려가는 듯 시원했다.
기분 좋은 얼굴로 승도흥을 바라보니, 이미 혼이 반쯤 나간 표정이었다.
천추신의는 그런 승도흥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기분도 풀렸으니 형님이나 보러갈까?”
* * *
벽태산은 자신의 방에서 화옥의 보고를 듣는 중이었다.
“하오문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바로 파악한 장소에 대한 감시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잡은 환천회 놈들로부터 뽑아낸 정보를 이용해 아직 파악하지 못했던 비천단과 남은 환천회의 인명록을 만들었다.
“말을 잘 들은 모양이군.”
벽태산의 말에 화옥이 감탄스러운 눈으로 대답했다.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이었습니다.”
대체 벽태산이 그들에게 뭘 어떻게 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다만 그들이 가진 정보가 한정적이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대부분의 정보가 호북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예. 다른 지역 정보에 대해 물어보니, 환천회 자체가 각 지역별로 구분해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총괄하는 사람은 환마 한 명이었습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아주 작정을 했구나.”
천마신교 내에서 뭘 하지 못하니 외부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놓으려 했던 모양이다.
비천단에 대한 정보는 환마가 천마신교 내에서 얻어 환천회로 흘린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월영단주도 한패일지 모른다.
천마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 천마신교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일이었으니 누가 거기에 끼어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지저분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젠 뭘 하고 싶어도 못할 것이다.
현천진에 갇혀 있는데 뭘 하겠는가.
“뭐······ 지저분한 짓을 하려던 놈들이 싹 사라졌으니 오히려 더 잘 하려나?”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그런 상황을 만들어준 것은 자신 아닌가.
“좀 더 죽였어야 했나?”
벽태산의 혼잣말에 화옥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긴장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너한테 하는 말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화옥을 가만히 쳐다봤다.
긴장하지 말란다고 바로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화옥은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벽태산이 빤히 쳐다보니 더 긴장했다.
“열심히 한 모양이구나.”
그제야 화옥은 벽태산이 자신의 무공 성취를 확인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공자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실제로 그랬다. 최근 흑철방의 진법을 이용해서 강도 높은 수련을 이어갔는데, 실력이 쭉쭉 늘었다.
물론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긴 했지만.
“일단 하나씩 접수를 해야겠다. 머릿수를 좀 더 늘려야겠어.”
“알겠습니다.”
벽태산은 무명이라는 놈들을 먼저 정리하고 천마신교에 대한 일은 그 다음에 고민하기로 했다.
어차피 그쪽은 현천진 때문에 당분간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고준광이라는 놈에게 빼앗은 것들은 확인했느냐?”
“예. 대부분 그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정리였는데, 그걸 토대로 현재 무한과 의창 쪽에 있던 하부조직 몇 군데를 파악했습니다.”
“향화루 같은 것들?”
“향화루와는 조금 다릅니다.”
고준광과 서도군은 그들만의 하부조직을 구축했다.
그 하부조직은 오롯이 그들만이 제어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들은 암어로 이루어진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우리가 이용해도 될 듯합니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든가.”
“향화루는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추가로 향화루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 몇 군데를 파악했습니다. 그곳도 차례대로 정리하겠습니다.”
“힘에 부칠 거 같으면 미리 말해라.”
“이미 조사했습니다. 충분히 저희 선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육태구가 거느린 낭인시장과 장각우가 거느린 흑도를 동원한다면 웬만한 작은 조직은 거의 피해 없이 접수가 가능했다.
“저······ 그리고 승도흥을 고준광이 끌어들였던 상황을 조사하다가 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부분이라는 말에 벽태산이 화옥을 쳐다봤다.
“고준광도 위에서 명령을 받아 승도흥을 찾아냈을 뿐입니다. 한데 승도흥에 대한 지시가 너무 자세합니다.”
“지시가 자세하다고?”
“예. 승도흥의 실력이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현재 어디에 있고,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그밖에 승도흥을 끌어들이는 데 필요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지시 사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벽태산은 그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화옥을 쳐다봤다.
어차피 화옥은 월영마공을 익혔다. 그것이 마공이라는 걸 알고도 익혔으니 천마신교와 벽태산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보고를 끼워 넣은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네 생각은 천마신교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 이거구나?”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이긴 하지만 굉장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쨌든 천마신교는 고립되어 있다.
그러니 정보를 넘긴 건 현천진이 발동하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리라.
‘그렇다는 건······ 승도흥처럼 잡힌 놈들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환천회의 세력 자체가 천마신교 내부보다는 외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일이 좀 복잡해질 것 같다.
* * *
승도흥은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다. 좀 쉬어도 시간 안에 전부 끝낼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진법가들이 열심히 진을 해체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벽태산에게 잡힌 사람 중, 진법가가 여덟 명이었다. 물론 승도흥까지 포함한 수였다.
그들은 지금 흑철방에 설치해 놓은 진법을 해체하고 거기에 들어간 재료를 따로 모으는 중이었다.
흑철방의 진법에는 귀한 재료가 많이 들어갔는데, 그 중에는 돈이 있어도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제법 있었다.
벽태산은 승도흥에게 흑철방에 설치한 진법을 해체하고 그것과 비슷한 진법을 다른 곳에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그 지시를 군소리 없이 이행했다.
승도흥을 비롯한 환천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공포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건 고준광 때문이었다. 아니, 고준광의 비명 때문이었다.
마침 그들이 고준광 근처에 있을 때, 벽태산이 고준광을 방문했다.
그리고 무려 한 시진에 걸친 처절한 비명을 들어야 했다.
그냥 비명이 아니라 비명을 질러서 자신의 혼백을 쏟아내려는 것처럼 들렸다.
그 비명을 듣고 있으니 정말 무서웠다. 원초적인 공포가 마음을 잠식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이후로 벽태산만 보면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눈이라도 마주쳤다가 잘못 보이면 고준광 꼴이 날지 모른다는 공포가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게 앉아서 쉬던 승도흥의 눈에 벽태산이 저 멀리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승도흥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얼른 다시 일을 시작했다.
벽태산이 걸어가다 말고 잠시 멈춰서 승도흥을 쳐다봤다.
승도흥은 벽태산의 시선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쉬면 안 될 듯했다.
벽태산은 승도흥이 열심히 일을 하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흑철방을 나섰다.
벽태산은 고준광의 혼백을 태우다가 재미있는 정보 하나를 알아냈다.
지금 그 정보 속에 있는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고준광을 부리던 놈이 있는 바로 그곳 말이다.
끝
“여기로군.”
벽태산은 제법 높은 언덕 위에서 거대한 장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의창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세워진 장원이었다.
언덕에서 장원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진법인가.”
저렇게 큰 장원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관리를 어찌나 철저히 했는지 더러운 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장원이었다.
저곳의 실체는 진법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저 보이는 모습만으로 유추한 게 아니었다. 진법 특유의 힘이 은은히 느껴졌다.
아마 가까이 다가가면 더 확실해지리라.
장원의 구조는 굉장히 단순했다. 높은 전각도 없었고, 넓은 연무장이나 연못도 없었다.
그저 장원 안쪽에 담장이 쳐져 내원을 가르고 있었고, 그 내원에 작은 건물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저 장원의 진면목은 아닐 것이다.
벽태산은 언덕에서 내려가 장원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벽태산의 감각이 장원 주변으로 서서히 뻗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