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0)
모두의 시선이 잠극천에게로 향했다.
잠극천의 실력은 십대 고수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다.
오늘은 저런 놈이 무려 여섯이나 나타나 마구 날뛰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남으려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할까?
다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왠지 앞날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끝
천추신의는 시체 하나를 샅샅이 확인한 다음 좀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었다.
“아, 이거 진짜 오랜만에 하려니 잘 안되네.”
예전에는 하루에도 수십 구의 시체를 해체하다시피 했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고작 하나 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런 천추신의를 일침괴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너 진짜 이런 쪽으로는 아주 끝내주는구나.”
일침괴의 칭찬에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내가 그동안 해체한 시체가 몇 구인데. 나보다는 경험도 별로 없으면서 그 정도까지 하는 형님이 더 대단하지.”
“나야 다른 의원들이랑은 방식이 좀 다르니까.”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며 창백한 얼굴로 근처에 앉아 있는 초서란을 쳐다봤다.
아무리 초서란이 뛰어난 의원이고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도 이렇게 시체를 조사할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고작 시체 하나를 확인했는데, 초서란은 몸도 정신도 지쳐버렸다. 이렇게 조금만 더 하면 정말 피폐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아직 시체를 다루기에는 자신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걸 깨달았다.
약을 연구하고 만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정말 자신 있는데, 이건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전 아무래도 이쪽으로는 재능이 없나 봐요.”
초서란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천추신의가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 시선을 느낀 초서란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또 뭘 시키시려고······.”
“아니, 재능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서.”
초서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천추신의의 시선이 불편해서 거기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한데 갑자기 일침괴까지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하긴, 재능을 얻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일침괴가 그렇게 말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천추신의도 눈을 빛냈다.
“형님도 눈치채셨소?”
“그럼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몇 번이나 반복되는데. 그리고 솔직히 너랑 나도 겪었다고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그렇지. 우리도 겪었지. 그래서 형님은 성과가 좀 있었소?”
“있었지. 솔직히 내가 얼마 전에 깨달음을 얻어서 벽을 깼잖아? 그 도움 아니었으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다. 의술도 최근 정체가 깨졌고.”
“나도 그렇소. 솔직히 무공 쪽은 내가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만, 의술 쪽은 아주 큰 도움을 받았소.”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더라. 너,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 이젠 슬슬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뭘 말이오? 내가 형님보다 위라는 거?”
일침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초서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번갈아 바라봤다.
“에이, 솔직히 형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의술은 내가 위였지. 형님은 침이나 좀 찌를 줄 알지 의술 쪽은 영 아니었잖소.”
일침괴가 인상을 팍 썼다.
“이게 또 잘 나가다가 왜 이래? 좀 우쭈쭈 해줬더니 아주 기어오르려고 하네?”
천추신의가 손바닥을 내밀어 일침괴의 말을 끊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니까 좀 조용히 하쇼.”
“뭐? 이 새끼가 진짜!”
천추신의는 고개를 휙 돌려 초서란을 바라봤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떠냐?”
“예? 뭐, 뭐가요?”
초서란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일침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거기에 슬며시 끼어들었다.
“뭐긴 뭐야. 달라지고 싶지 않느냐, 이거지.”
초서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도······ 가능한가요?”
천추신의가 씨익 웃었다. 초서란은 그 웃음이 왠지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만 딱 믿고 몸을 맡기면 돼.”
“예? 모, 몸이요?”
초서란이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천추신의가 인상을 팍 썼다.
“아이 씨, 진짜. 내가 널 어떻게 하겠다는 게 아니고! 형님! 뭐 하쇼?”
일침괴가 정색하며 말했다.
“난 모른다. 몸 노리는 네가 알아서 해라.”
초서란이 더 굳은 표정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 형님! 진짜!”
일침괴는 낄낄 웃었고.
* * *
벽태산은 화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화옥은 하오문도들을 통해 잠극천을 심문해 그의 기억을 싹싹 털어냈다.
한데 잠극천의 머릿속에 남은 기억 자체가 별로 없었다.
“마치 중요한 정보 몇 가지만 어거지로 머리에 넣어놓은 것 같았습니다.”
화옥의 말에 벽태산이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저 말이 진짜인지도 모른다.
“그럼 그 장보도는?”
“그건 그가 가진 마지막 기억이라서 좀 강했던 모양입니다.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대답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뒤죽박죽이던 걸 잘 자르고 조합해서 쓸 만한 내용으로 만들었다.
그 정도쯤,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이나 화옥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잠극천은 장보도를 통해 영약을 구했습니다.”
“영약?”
“자기 말로는 공청석유라고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누군가 인위적으로 그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기억인 걸 보면 그때 먹은 약이 뭔가 특별한 작용을 한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약이 있는 장소가 특별한 작용을 했거나.
무명이라는 조직을 가만히 보면 진법에 대한 조예가 뛰어나다.
그때도 진법을 이용해 무슨 짓을 하지 않았을까?
“네 생각은?”
“잠극천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죽었던 잠극천이 다른 몸으로 되살아난 원인이 그 약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아무리 장보도를 통해서 얻은 약이라고 해도 아무 의심 없이 먹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심지어 약을 발견하자마자 먹은 것 같았습니다.”
그랬다면 확실하다. 약을 얻은 바로 그 장소에 뭔가가 있었다.
“혹시 장보도에 대한 소문이나 정보가 있다면 잘 모아둬라.”
“안 그래도 하오문에 지시를 전달했습니다. 조만간 결과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화옥과 있으니 편하긴 하다. 굳이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니까.
아마 지금도 장보도에 대한 얘기만 했으니 저 대답을 한 거지, 사실 저거 말고도 따로 하고 있는 일이 부지기수이리라.
“더 보고할 것이 남았느냐?”
벽태산의 물음에 화옥은 현재 진행 상황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진법 분석이 어느 정도 이뤄졌고, 승도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비천단의 위치를 얼마나 파악했으며, 그들을 어떻게 감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고준광과 서도군의 하부조직을 장악한 내용까지 차근차근 보고했다.
“마지막으로 고준광, 서도군과 연결된 무명의 조직들을 파악해 감시 중입니다. 공자님께서 허락만 해주시면 바로 정리 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해라.”
화옥이 정중히 고개를 숙인 후,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그녀가 벽태산의 방에서 나가려고 문을 열자,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초서란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화옥은 살짝 당황했지만 금세 표정을 수습하고는 그들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빠르게 물러갔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헤헤. 공자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천추신의의 말에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무슨 꿍꿍이냐.”
“아이고, 꿍꿍이라뇨. 공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섭섭합니다. 전 언제나 공자님에 대한 충심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사람 아닙니까. 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다아 공자님을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결과입니다.”
벽태산은 천추신의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시선을 살짝 돌려 일침괴와 초서란을 슥 훑었다.
“할 말 있으면 들어와서 해.”
“어이구, 제가 할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공자님께서 언제 주무시나······ 그게 궁금할 뿐이지요.”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러자 일침괴와 초서란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벽태산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셋 다 평소보다 더 긴장한 것이 확연히 눈에 보였다.
“또 무슨 사고를 쳤느냐.”
벽태산의 차가운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어이구, 사고라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아, 진짜라니까요? 저 좀 믿어주십시오.”
“그럼?”
벽태산이 다시 한 번 세 사람을 슥 훑었다.
잠시 망설이던 천추신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공자님. 혹시 우리 시비들······ 그거 공자님께서 하신 거 맞지요? 저희들에게 하신 것도 그런 거 맞습니까?”
“그런 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겠다.”
벽태산의 시선이 초서란에게 닿았다.
초서란이 벽태산을 보고 있다가 눈을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벽태산이 몸을 돌려 집무실과 연결된 침실로 향했다.
“따라와라.”
“예?”
초서란이 당황해 벽태산과 천추신의, 일침괴를 번갈아 바라봤다.
천추신의가 뭐 하냐는 듯 초서란에게 열심히 눈짓을 했다.
“얼른 안 따라가고 뭐해?”
“예? 저 혼자서요? 저기 공자님 침실인데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초서란의 등을 부드럽게 밀었다.
탁탁탁.
초서란은 불의의 습격에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코앞에 벽태산의 등이 있었다.
“아······!”
갑자기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재능을 일깨워주겠다는 말에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따라왔다.
벽태산이 그걸 할 수 있다는 말에 여기까지 들어왔고.
‘이게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초서란은 벽태산의 침실에 따라 들어가 침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코앞에 벽태산이 서 있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초서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벽태산의 얼굴이 보였다.
벽태산은 더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떨지 마라. 별 거 아니니까.”
그 말에 초서란은 속으로 외쳤다.
‘별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대체 뭐가 별 거란 말인가.
긴장으로 가득한 초서란의 눈에 벽태산이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손이 자신의 머리에 올라왔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신이 훅 나가 버렸다.
* * *
초서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몇 번 깜빡이니 천장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침상에 누워서 잔 모양이었다.
‘옷은······ 그대로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쉽기도 하고, 하여튼 복잡했다.
초서란은 기억을 더듬어봤다.
뭔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마치 약을 달이거나 단약을 제조할 때 참고 견디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행복했다.
일종의 성취감에 가까운 감정을 밤새 느꼈던 것 같다.
‘아······ 그럼 나 뭔가 하긴 한 건가?’
초서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벽태산이 집무실처럼 쓰는 곳이 나온다.
아무도 없었다.
안심이 되면서도 서운한 묘한 감정이 또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찾아 나서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
초서란은 조심스럽게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 * *
벽태산은 장원에 있는 유일한 연무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여기로 온 이유는 어젯밤 초서란의 혼백을 태워 얻은 영력을 정제하기 위함이었다.
“놀랍군.”
정말 놀라웠다.
사실 반강시를 접하게 된 이후, 사람의 혼백을 뽑아서 태우는 일은 거의 그만두다시피 했다.
반강시에 비해 효율이나 양이 너무 떨어졌으니까.
한데 그 생각이 어제 바뀌었다.
솔직히 초서란의 혼백을 뽑을 생각은 없었다. 한데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그렇게 애쓰는 걸 보니 마음이 살짝 동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천약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테고, 초서란도 계속 써먹어야 하는데, 혼백을 태워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면 두고두고 좋으니 한 번쯤 해도 괜찮겠다고 여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초서란의 혼백을 태워 뽑아낸 영력은 영약에 가까웠다.
약을 만들던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천약방이라······.”
나직이 중얼거리는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끝
“어? 공자님이다!”
소소는 저 멀리 지나가는 벽태산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