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2)
승도흥은 그 말을 남기고 멀어져가는 벽태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켰다.
‘지켜보겠다고? 일단 봐준다는 말인가? 나중에 죽여 버리겠다는 건가? 아니면 앞으로 더 잘 하라는 건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든 그날이 의창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벽태산 일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길었던 일정을 끝내고 다시 무한으로 향했다.
끝
“우리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거요?”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조용히 해라. 헛소리하다가 공자님 마음 바뀌면, 넌 반드시 죽는다.”
“형님, 왜 자꾸 그렇게 살벌한 말을 하는 거요? 사람 좀 그만 죽이쇼.”
“내가 죽인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널 죽인다는 거다. 다들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천추신의는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봤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천추신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들은 배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벽태산은 의창에서 무한으로 돌아갈 때, 배를 이용하라고 지시했다.
돈이 많으니 크고 좋은 배를 구할 수 있었고, 다들 편안히 무한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인원이 많이 늘었으니 배가 커지는 건 당연했다.
선원은 따로 구하지 않았다. 함께 가는 사람들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편히 가고 있지만, 불안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무한에서 의창으로 갈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들 기억하기에 지금도 언제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더구나 의창에서도 정말 힘든 수련을 했기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아무튼 지금 이 시간을 최대한 즐겨라. 무한에 도착하면 우리가 거기서 뭘 하게 될 것 같으냐?”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아이 씨, 형님. 굳이 좋은 기분을 그렇게 망쳐야겠소?”
“정신 차리라는 말이다.”
두 사람이 갑판에서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선실에서 나왔다.
벽태산이 등장하자 바로 화옥이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벽태산의 물음에 화옥이 바로 대답했다.
“홍호 근처를 지나고 있습니다. 무한까지는 대략 이백 리 좀 넘게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화옥의 대답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 리라······ 딱 적당하군.”
그 말을 듣는 모두의 얼굴에 불길함이 감돌았다. 그들은 설마설마하는 눈으로 벽태산의 입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더없이 담담한 눈으로 갑판 위에 있는 사람들을 슥 둘러봤다.
“여기서부터는 배를 버리고 간다.”
“예?”
“배를 버리고 물을 따라 이동한다.”
천추신의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서, 설마······ 여기서 무한까지 헤엄을 쳐서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너희들 자유지. 헤엄을 치든 강바닥까지 내려가서 걸어가든, 아니면 물 위를 뛰어가든.”
다들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지금 저 말은 무한까지 헤엄을 쳐서 가라는 말 아닌가. 여기서 물 위를 뛰어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다들 속으로 말했다. 여기서 그걸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그저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힘들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천추신의에게 꽂혔다.
벽태산이 등장한 시점이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진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왠지 천추신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까지 미적거리려 하느냐.”
벽태산의 차가운 말이 떨어지자, 다들 황급히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배에 탄 사람들이 전부 뛰어내릴 때까지 갑판 위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모두 뛰어내리자, 선수 끝으로 가서 섰다.
물위에 뜬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열심히 헤엄을 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느리구나. 저래서야 수련이 안 되지.”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배를 발로 쿡 찍었다.
꽈드드드드드득!
선수에서 시작된 파동이 배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러더니 배의 모든 이음새가 툭툭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배가 산산이 조각나서 물위에 흩어졌다.
벽태산은 배의 잔해 사이로 천천히 걸어갔다.
물 위를 이렇게 느긋하게 걷는 것은 물을 뛰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한데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며 일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벽태산은 가장 뒤쳐져서 움직이는 자들에게 바짝 붙어서 말했다.
“나보다 뒤쳐지는 사람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벽태산의 목소리가 물위에 있는 모두의 귀에 마치 새겨지듯 파고들었다.
다들 고개를 돌려 벽태산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설마 물 위에 저렇게 서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벽태산이 걷기 시작하자 더 놀랐다.
가장 뒤에 있던 자들이 더 열심히 팔다리를 놀렸다. 그들은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헤엄쳤다.
벽태산은 그들을 따라서 또 걸었다.
다들 더 빠르게 헤엄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억울하면 강해져야지.’
더 강해져서 이런 일이 있을 때 물 위를 뛰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내가 어떻게든 해내고야 만다.’
다들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뭐······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보면 자연스럽게 강해지겠지.’
사람은 누구나 그러니까. 자신도 그랬고, 천마신교에서 수련하던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 * *
무림맹의 천검단주인 방두립은 부단주의 보고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 이사를 가?”
“예. 그래서 앞으로는 무림맹의 도움이 없어도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누구 맘대로?”
“예? 그야 애초에 계약이······.”
“천약방에 빚이 제법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빚쟁이들은 가만히 있고?”
“전부 갚았습니다.”
“뭐? 전부 갚았다고? 그놈들이 돈이 어디 있어서 그걸 다 갚아? 제대로 확인한 거 맞나?”
“확실합니다. 금월상단한테 들은 얘기입니다. 일이 꼬였다고.”
방두립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금월상단이 그렇게 말했다면 확실하다.
“대체 그놈들은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다른 얘기는 없었고?”
“예. 일단 이주 지역이 무한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습니다.”
“그놈들한테 돈을 지원해준 놈은 찾았나?”
“금월상단에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금방 조사가 마무리 될 거 같다고 했으니 조만간······.”
부단주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단주님, 저 칠 조장입니다.”
칠 조장도 방두립이나 부단주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에 깊이 발을 들인 자였다.
“들어와.”
방두립의 허락이 떨어지자, 칠 조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바로 보고부터 했다.
“금월상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천약방의 빚을 갚은 자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래? 어떤 놈이야?”
“벽태산이라는 자입니다.”
“벽태산?”
“무한에 있는 금벽상단의 둘째 공자인데······ 돈이 제법 많은 모양입니다.”
“무한? 거기 있는 놈이 왜 굳이 개봉에 손을 뻗치는 거지?”
“약왕이 벽태산과 함께 있다고 합니다.”
“아아, 약왕.”
방두립이 어금니를 꽉 물었다.
“초서란이 거기에 가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군. 어디 갔나 했더니 말이야.”
“그래서 벽태산인지 뭔지가 미인계에 넘어가서 자기 돈을 마구 풀었다 이건가?”
칠 조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한 사안이 아닌 듯합니다. 벽태산이라는 자 밑에 천추신의와 일침괴도 있다고 합니다.”
방두립은 그제야 표정이 달라졌다.
“가만, 예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무슨 상단에 몸을 의탁했다더니, 그게 금벽상단이었어.”
무림맹에서 진사홍을 무한에 파견 보낸 이유 중 하나도 금벽상단에 머물고 있는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포섭이었다. 물론 임무가 그거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거야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니 방두립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사실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 다른 일 중 하나가 바로 초서란이었다.
“가만, 그럼 지금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천약방까지 데려갔다는 말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서 금월상단에서도 상당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방두립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어쩌시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무한에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칠 조장의 말에 방두립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내가 그렇게 간단히 무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나? 무림맹 천검단이 움직이면 흑련이 가만히 있을까? 그걸 무림맹에서 허락하겠느냔 말이야.”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지금 분위기도 안 좋은데, 경거망동하면 곤란하지.”
칠 조장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방두립은 그런 칠 조장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움직이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너 하나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지.”
칠 조장이 살짝 놀란 눈으로 방두립을 바라봤다.
“금월상단에서 다른 의견을 주지는 않았느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했습니다.”
“흥, 능구렁이 같은 놈들. 꼭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뺀단 말이야.”
하지만 방두립은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금월상단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몰래 뭔가 수작을 부리리라.
“칠 조가 지금 몇 명이지?”
“저까지 열세 명입니다.”
방두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 애들 다 데리고 무한으로 가라.”
칠 조장의 눈이 번득였다.
“천약방이 무한으로 가는 걸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거기 붙어. 무림맹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천약방과 무림맹의 관계가 끊어진 건 아니니까 그놈들도 거절하진 못할 거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칠 조장은 진짜 명령을 기다렸다.
“가서 천약방의 일을 계속 도우면서 잘 살펴봐. 천약방과 금벽상단의 관계, 그리고 벽태산이라는 놈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전부 살펴봐.”
“예. 그것만 하면 되겠습니까?”
방두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가면 진사홍부터 만나서 협조를 요청해. 그리고 너도 진사홍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우리가 금월상단과 손잡았다는 건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거 알지?”
“그 부분은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아마 기다리다보면 분명히 금월상단이 뭔가 움직임을 취할 거다.”
“금월상단이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끝까지 버티고 기다리다가 금월상단을 도와. 우리도 슬슬 변두리에서 벗어나야지.”
“예. 알겠습니다.”
칠 조장이 물러가자, 방두립이 번득이는 눈으로 부단장을 바라봤다.
“자네도 따라가게.”
부단장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저도 말입니까?”
이렇게 따로 얘기한다는 건 칠 조장 몰래 따라가라는 뜻일 테니까.
“아직 칠 조장을 믿기에는 함께 한 시간이 짧지 않은가. 그리고 혹시라도 벽태산 쪽의 능력이 제법이라면 자네가 큰 도움이 될 테고.”
일침괴가 상당한 고수라고 했고, 천약방도 뭉치면 만만치 않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였다.
부단장은 방두립의 의도를 확실히 읽고 고개를 숙였다.
“저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부단장까지 사라지자, 방두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무림맹 쪽을 수습해야지. 보고할 거리가 많아서 귀찮아지겠군.”
* * *
“흐어어억. 흐어어억!”
천추신의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마찬가지였다.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바닥에 뻗어서 호흡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몇몇은 물을 토하기도 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 무려 이백 리가 넘는 물길을 헤엄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중간에 뭍에서 쉬지도 못했다. 그저 무작정 팔다리를 움직여야만 했다.
힘이 다해 물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벽태산이 물 위를 걸어가 손을 물속에 넣고 끄집어냈다.
그 다음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짜릿한 고통을 느낀 다음 다시 헤엄쳐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뇌기(雷氣) 계열의 무공을 쓴 것 같기도 한데, 당시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물에 빠져도 그걸 당하지만, 벽태산보다 뒤쳐지는 사람도 그걸 당했다. 그때는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한 번 뒤쳐진 사람은 다신 그러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그러니 다들 치를 떠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시 이런 수련을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벽태산이 시키면 또 하겠지.
서서히 호흡이 정돈되어갔다. 좀 정신이 드니 다들 벽태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벽태산은 더없이 담담한 시선으로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여상함에 다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하지 않은가.
“시발 이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