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27)
그곳에 있던 금월상단 무사의 수는 모두 서른 명이었다. 그들이 다시 천약방을 습격하는 무리에 합류하는 것이다.
칠 조장은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약방도 슬슬 끝이로군.”
오늘 천약방은 중요한 의원들을 대거 잃어버릴 것이다.
금월상단은 그 의원들을 납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마 평생 어딘가에 갇혀서 약만 만들다 죽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들의 수레는 전부 불타 없어질 것이다.
남은 자들도 극심한 부상을 입을 테고.
이래저래 천약방의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적어도 칠 조장이 보기에는 그랬다.
* * *
반 시진쯤 지나고 다시 원래 천약방이 있던 곳으로 향하던 칠 조장은 최대한 서두르는 척을 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것이 아니었는지라 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한데 도착해서 보니, 자신이 예상하던 광경이 아니었다.
일단 수레가 전부 멀쩡했다.
‘전부 불태운다고 했는데?’
곳곳에 시체가 보였다.
칠 조장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천약방 의원들은 대부분 멀쩡했다. 그리고 부상자들을 치료 중이었다.
‘낭인들이 남았네?’
솔직히 낭인들은 전부 죽었을 줄 알았다. 한데 곳곳에 낭인들이 보였다.
‘그런데 숫자가······.’
낭인의 수는 원래 백 명쯤이었다. 한데 지금 보니 수가 그리 많이 줄어든 것 같지가 않았다.
“조장님! 다시 오셨군요! 걱정 많이 했습니다!”
천약방의 총관인 노주강이 칠 조장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달려왔다.
“조장님, 도망친 놈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쉽지만 놓쳤습니다. 정말 재빠르더군요. 한데 여기는······.”
노주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말도 마십시오. 조장님이 그놈들을 쫓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지 뭡니까. 아주 살벌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큰 피해 없이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방주님의 혜안 덕분이지요. 이런 고수분들을 보내주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고수라고요? 저 낭인들 말입니까?”
“예. 진짜 굉장하더군요. 적들도 수준이 상당했는데, 말 그대로 전부 박살을 내 버렸습니다.”
노주강은 그 뒤로 신이 나서 당시 벌어진 일을 마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설명해주었다.
복면을 쓴 적이 무려 쉰 명이 넘게 왔는데, 그걸 본 낭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막아냈다는 것이다.
일부는 수레로 가서 수레를 지키고, 일부는 의원들과 섞여서 적을 막아내고, 또 일부는 오직 적을 죽이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보아하니 미리 이런 식의 습격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고 정해두었던 모양이다.
칠 조장은 긴장한 눈으로 낭인들을 둘러봤다.
아까 자신이 보고 긴장했던 자들이 보였다.
“총관께서 말씀하신 고수가 저분들입니까?”
노주강은 칠 조장이 가리킨 쪽에 있는 낭인들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분들은 우리 의원들과 같이 적을 상대한 분들입니다. 사실 같이 상대했다기보다는 우리 의원들을 지켜주신 쪽에 더 가깝지요.”
“고수가 아니라고요?”
칠 조장이 놀라자, 노주강이 빙긋 웃었다.
“저분들도 고수이긴 합니다. 대단하신 분들이지요. 하지만 저분들보다 더 강한 분들이 저쪽에 계십니다.”
칠 조장은 노주강이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열 명 정도의 낭인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이 다른 낭인들에게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는 걸 보니 상급자이긴 한 모양이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기세가 너무 약했다. 고수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경지를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고수라고?’
그런 칠 조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주강이 입에 침을 튀며 자랑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쏟아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적을 쳐 죽이는데, 아주 그냥 입이 쩍 벌어지더군요. 솔직히 빠르게 움직일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검이 갑자기 셋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대단했습니다.”
칠 조장은 심각한 눈으로 고수라는 자들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아까 금월상단에서 동원한다는 무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들었다.
아까 자신이 고수라고 여겼던 자들만 있었다면 절대 그들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적을 쫓아가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어서 쉬십시오. 여긴 피 냄새가 너무 짙어서 잠시 쉬고 바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되도록 마을에서 쉬고자 하니 좀 오래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하면 저도 정리를 좀 돕겠습니다. 얼른 끝내고 출발해야 편히 쉴 수 있을 테니까요.”
“어이구, 그럼 저희가 너무 미안해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저기 있는 고수분들이나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오.”
칠 조장은 물러가는 노주강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고수라는 자들을 바라봤다.
마침 그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데 느낌이 싸했다.
‘뭔가······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사나우면서도 난폭한 느낌이 드는 웃음이었다. 낭인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데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기분이 이럴 리가 없었다.
좀 답답하기도 하고 꺼림칙하기도 했다.
그가 갑자기 뭔가를 들어올렸다. 축 늘어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는 얼굴이었다.
아까 자신과 대화하던 금월상단의 무사였다.
칠 조장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끝
벽태산은 금원보 하나를 꺼내 그것을 찰흙처럼 주물렀다.
손 안에서 이리저리 모양이 바뀌던 금원보는 이내 길쭉한 모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금원보 하나를 더 꺼낸 벽태산은 그것도 길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두 개를 꽈배기처럼 꼬아서 이었다.
제법 그럴듯한 모양의 팔찌가 만들어졌다.
벽태산은 거기에 증혼마공을 밀어 넣었다.
“흐음. 이대로는 안 되는 모양이군.”
금에 들어갔던 증혼마공은 그대로 빠져나가 허공에 흩어졌다.
아무래도 이걸 이용하려면 금 안에 증혼마공을 가둬둘 방법이 필요할 듯했다.
금벽을 보고서 얻은 깨달음을 잠시 떠올려봤다.
그리고 다시 팔찌를 이리저리 매만졌다.
증혼마공을 세심히 움직여 팔찌 속을 파냈다.
그냥 파낸 것이 아니라 약간 복잡한 모양으로 파냈다. 증혼마공의 기운이 움직이기 가장 편한 길을 팔찌 속에 만든 것이다.
두 줄로 꼬인 금팔찌가 다시 완성되었다.
굳이 두 줄로 꼰 이유는 증혼마공이 움직이는 길이 되도록 길었으면 해서였다.
그래야 더 효율이 높을 테니까.
다시 증혼마공을 불어넣었다. 이번엔 흩어지지 않고 팔찌 안에 기운이 갇혔다.
벽태산은 그걸 유심히 관찰했다.
“그래도 미세하게 새 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군.”
좀 더 연구하면 완벽하게 안에 기운을 가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필요할 때마다 안에 넣어주면 되니까.
“어디 시험해볼까?”
벽태산은 팔찌를 손목에 차고 밖으로 나섰다.
이내 연무장에 도착한 벽태산은 증혼마공을 움직였다.
그리고 팔찌에 깃든 증혼마공과 공명을 시도했다.
후우웅!
공명을 통해 증혼마공이 더욱 강해졌다.
기운의 양이 늘어나진 않았지만, 기운이 움직이는 폭이 훨씬 커지면서 실질적으로 파괴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콰아아아아!
벽태산은 증혼마공의 기운을 하늘로 쏟아냈다.
하늘 높이 드리워져 있던 구름 일부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군.”
금벽에 깃든 증혼마공의 깨달음은 작은 힘으로 큰 파괴력을 뽑아내는 법이었다.
애초에 증혼마공의 기운을 조금만 쌓고 금에 깃든 기운과의 공명을 통해 위력을 증폭하면 증혼마공이 주는 부작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벽태산이 애초에 금벽에 깃든 증혼마공의 깨달음을 쓸모없다고 판단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건 증혼마공에 대한 근본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도망치기 위한 방법이다.
천마는 앞에 놓인 장애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장애물을 부숴버린다.
그게 천마다.
아무튼 이건 벽태산이 써먹기 제법 괜찮은 방법이었다.
아마 보통 천마였다면 몸에 쌓인 증혼마공도 제대로 감당하고 조절하지 못해서 이 방법을 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도 통제하지 못하는데, 그걸 억지로 증폭시켜 더 난폭하게 만든 영력을 어찌 다루겠는가.
시도하는 즉시 온몸이 찢어져 죽을 것이다.
하지만 벽태산은 다르다.
훨씬 순수한 영력을 쌓았기 때문에 증혼마공에 대한 부작용이 전혀 없다.
게다가 완벽하게 모든 상황과 기운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니 이 비법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 아니겠는가.
“연습이 좀 필요하겠어.”
몇 배로 힘이 증폭하며 훨씬 난폭하고 폭발적으로 변하기에 통제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벽태산은 끊임없이 증혼마공을 공명시키며 그것을 통제하는 수련을 시작했다.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갔다.
* * *
천약방이 드디어 무한에 들어섰다.
천 리가 넘는 제법 긴 여정이었다. 게다가 중간에 위험한 일도 겪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거의 피해 없이 무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주강은 일단 무한에 들어서자마자 천검단 칠 조장에게 인사부터 했다.
“지금까지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무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조장님께선 무림맹 지부로 가십니까?”
“그래야지요.”
정확히는 지부가 아니라 지부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진사홍을 찾아가는 거지만, 어차피 생길 테니 그렇게 말한 것이다.
칠 조장은 노주강의 눈빛 깊은 곳에 있는 냉정함을 포착했다.
‘믿음이 깨졌구나.’
칠 조장의 시선이 낭인 중 한 명에게 힐끗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저 낭인 때문이었다.
그는 사로잡은 금월상단의 무사를 이용해 자신과 노주강 사이에 불신의 씨앗을 심었다.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틀어져서 짜증이 났다.
‘하여튼 이것들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이래서야 맡은 임무를 어찌 처리한단 말인가.
“예. 부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칠 조장도 그쯤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림맹 지부를 만들기 위해 무한에 머물고 있는 진사홍부터 찾아가서 비빌 구석을 만들어 봐야 한다.
그러고 있을 때, 천약방 일행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다가왔다.
초서란과 천추신의, 일침괴였다.
먼저 발견한 것은 노주강이었다.
“방주님!”
칠 조장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얼른 초서란에게 달려간 노주강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별 일은 없으셨죠?”
초서란의 인사에 노주강이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환하게 웃었다.
“방주님께서 보내주신 낭인분들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군요.”
“예. 있었습니다.”
노주강은 그렇게 말하며 저 쪽에 서서 아직 가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칠 조장을 힐끗 쳐다봤다.
“저 분은?”
초서란의 말에 칠 조장이 눈을 번득이며 얼른 다가와 포권을 취했다.
“무림맹 천검단 칠 조장입니다.”
“아아, 우리 천약방의 이주를 돕기 위해 동행해 주신 거로군요. 나중에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칠 조장은 그렇게 말하며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바라봤다. 얼른 소개를 받았으면 싶어서였다.
아직 천추신의나 일침괴를 만나본 적이 없어 얼굴은 모르지만, 저들이 그들이라는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너무 뻔했으니까.
그래서 초서란은 가만히 있었다. 굳이 소개해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미 천검단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에 그와 관계된 자들과 오랫동안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칠 조장은 이렇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단주님께서 방주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안부도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시면 단주님께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해주세요.”
칠 조장이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감사 인사는 직접 뵙고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초서란이 환하게 웃었다.
“아마 앞으로 개봉이나 정주에 갈 일이 없을 것 같네요.”
칠 조장이 빙긋 웃었다.
“사람 앞일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전 같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동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특히 이백 리 물길을 헤엄쳐서 온 일이 가장 컸다.
초서란은 그 말 같지도 않은 수련을 하면서 굉장한 인내를 배웠다.
“그건 그렇죠. 아무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초서란은 그렇게 말하고는 노주강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오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요. 가서 회포도 풀 겸, 술도 한 잔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쉬도록 하죠. 따라오세요.”
초서란은 그렇게 말하고 냉정히 몸을 돌려 사뿐사뿐 걸어갔다.
천약방 일행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칠 조장을 쳐다보고는 초서란 옆으로 따라붙었다.
칠 조장은 멀어져가는 초서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더 예뻐진 거 같지 않아?”
그의 말에 천검단원 중 하나가 대답했다.
“확실히 그런 거 같습니다. 가슴 떨려서 혼났습니다.”
“우리 단주님이 보시면 또 한 번 난리가 나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안 그래도 초서란 때문에 발정 나서 난리인데.”
“그런데 오늘 보니 가시가 더 날카로워진 거 같은데요?”
“그래봤자지. 우리 단주님이 어떤 분이신데. 부하들 수고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니 어쩌면 우리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다들 잘 해라.”
“예. 큭큭큭.”
다들 음흉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들은 초서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진사홍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