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0)
벽태산은 흐뭇한 눈으로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천약방을 떠났다.
천추신의와 일침괴, 초서란은 멀어져가는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아까 어땠어?”
“뭐 말이오?”
“우리 공자님 새 무기.”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오, 무서워 뒈지는 줄 알았소.”
“그렇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었지? 넌 어땠느냐?”
초서란은 자신에게 묻는 일침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도 정말 무서웠어요. 그거······ 대체 뭐였을까요?”
아까 벽태산이 증혼마공의 힘을 쏟아낼 때, 이들은 굉장히 원초적인 공포를 느꼈다.
보통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까의 기억을 떠올린 세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과연 우리 공자님, 얼마나 강한 걸까요?”
초서란이 문득 떠오른 질문을 하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게. 정말 궁금하구나.”
대놓고 벽태산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다.
* * *
천약방에서 할 일을 마친 벽태산은 백화루로 향했다.
화옥은 먼저 그곳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얼마 전에 잡은 놈들의 심문이 끝났다기에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백화루에 도착하니, 기녀들이 우르르 나와 벽태산을 맞이했다.
언제나 기루에 올 때마다 겪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기녀들은 벽태산이 예전 무한의 기루를 돌아다니면서 야왕의 이름을 날리던 일을 기억했다.
그래서 이럴 때마다 벽태산을 바라보는 기녀들의 눈에는 묘한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당시 벽태산이 기루를 열심히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녀와 하룻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아직 벽태산을 겪지 못한 기녀의 수가 수두룩했다.
그녀들이 벽태산에 대한 전설 같은 일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더구나 벽태산의 시비로 들어간 전직 기녀들이 무공까지 배우고 있다는 소문이 무한의 기루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니 열망이 안 생길 수 있겠는가.
벽태산은 기녀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지나가니, 백화루주가 빠르게 달려와 공손히 인사하고 직접 벽태산을 안내했다.
백화루의 꼭대기 층, 백화루주의 방이자, 하오문주의 집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자리에 벽태산이 앉았고, 그 앞에 마련된 자리들 중 하나에 백화루주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앉았다.
백화루주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공자님, 혹시 마음에 드는 아이는 없으셨는지요. 요즘 공자님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언제든 원하실 때 말씀만 해주시길.”
“됐다. 보고나 해라.”
벽태산이 칼 같이 잘라 내자, 백화루주는 얼른 미소를 지우고 담담한 얼굴로 돌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무림맹 천검단주가 금월상단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관계이고, 여천강도 같이 엮여 있는 관계입니다.”
백화루주는 벽태산의 안색을 살피고는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천약방이 무한으로 올 때 함께 했던 천검단의 조장도 그들과 한패입니다. 조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쪽은 합류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아직 신뢰가 구축되기 전입니다.”
낭인시장의 낭인들을 보내 천약방을 도왔는데, 그때 습격한 놈들 중 몇 명도 잡아 놓았다.
그들로부터 뽑아낸 정보를 통해 칠 조장이 어떤 놈인지 어느 정도는 파악해 두었다.
“천약방을 완벽하게 휘하에 두고 부리는 것이 금월상단의 목표였습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한데 그 목표를 지금 벽태산이 채간 상황이다.
“뭔가 수작을 부리겠군.”
“예. 그리고 향화루를 비롯한 무명의 조직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가 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화루주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금벽상단도 노리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는 파악했고?”
“금벽상단과 접촉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는 정도가 알아낸 전부입니다. 애초에 그들이 가진 정보 자체가 많지 않은지라······ 그래서 따로 인원을 편성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주변만 살펴라.”
백화루주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죽고 싶어서 온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있겠느냐? 그냥 내버려 두고, 어떤 놈이 왔는지만 알아내서 보고해라.”
“그리 하겠습니다.”
백화루주는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일을 계획한 놈들이 오히려 불쌍해지는 상황이긴 하다.
“의창 쪽은 이제 안정되었습니다. 호무련이 다시 그쪽을 장악한 뒤, 철저히 잔당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약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백화루주가 거기까지 말하고는 망설였다.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해라. 머뭇거리는 거 딱 질색이니까.”
“저희가 생색을 좀 내도 되겠습니까?”
“생색?”
“지금까지 호무련을 제법 많이 도와줬는데, 그걸 전부 묻어버리기가 좀 아깝습니다. 그래서 생색을 내고 호무련과 좀 더 괜찮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뭐, 그러든가.”
벽태산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백화루주의 얼굴은 더 할 나위 없이 밝아졌다.
그녀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벽태산은 뭐 저리 좋아할 일인가 싶었지만, 그냥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 말았다.
하오문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걸 운영하는 사람은 백화루주, 즉, 하오문주였다.
자기 문파를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자신이 시킨 일만 잘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흑련의 무인들이 조금씩 유입되고 있습니다.”
“다른 쪽은?”
“아직 미적지근합니다. 하지만 흑련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다른 쪽도 조만간 움직일 공산이 큽니다.”
“시끄러워지겠구나. 조용한 게 좋은데 말이야.”
백화루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조용한 게 좋다는 벽태산의 말에 반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는 방금 떠오른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묻었다.
끝
천검단 칠 조장은 진사홍을 만나고 있었다.
진사홍은 최근 무림맹 지부 문제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데 느닷없이 천검단의 조장이 찾아와 합류하는 바람에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사실 천검단은 이렇게 함부로 외부 활동을 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정보를 수집하거나 대외 활동을 주로 하는 조직이 아니라 싸우는 조직이었으니까.
뭔가 분쟁이 생겼을 때 무림맹의 칼이 되는 조직이 바로 천검단이었다.
천약방의 이주를 돕는다는 핑계가 있기에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사실 시끄러워질 소지가 있었다.
어쩌면 무림맹 내에서도 이미 이 문제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을지 모른다.
사실 무림맹으로 연락을 해서 확인을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칠 조장을 못 믿는다는 얘기가 되니 함부로 그러기가 좀 껄끄러웠다.
그러던 와중에 칠 조장이 독대를 요청한 것이다.
“요즘 지내기가 좀 어떻소?”
진사홍이 지나가듯 묻자, 칠 조장이 담담히 대답했다.
“진검대주께서 신경 써주신 덕에 아주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진사홍은 무림맹 진검대를 이끄는 자였다.
진검대는 무림맹에서 대외의 일에 신경을 쓰기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그래서 천검단의 조장이 무한에 온 상황이 더 신경 쓰였던 것이다.
이런 일은 진검대에서 해야 하는데, 거기에 천검단이 끼어든 셈이니까.
그 뒤로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사홍이었다.
“한데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소?”
“의견을 여쭐까 해서 뵙고자 했습니다.”
“의견? 무슨 의견 말이오?”
“제가 최근 주변을 좀 돌아봤습니다.”
진사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들었소.”
안 그래도 천검단 칠 조 전원이 무한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았다.
칠 조장도 굳이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대놓고 움직였다.
그러는 편이 금월상단에서 자신들에게 접근하기도 편할 테고 말이다.
“한데 무한에 생각보다 흑도 무리가 많더군요.”
“뭐······ 좀 그런 편이라고 들었소이다.”
“혹시······ 흑련에서 관리하는 흑도들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 쪽도 인원을 보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사홍이 고개를 저었다.
“흑련 쪽 놈들은 아니오. 그냥 흑도들이오. 사실 흑도라기보다는 뒷골목 왈패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소.”
칠 조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까?”
“왜 그러시오?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소?”
“아닙니다. 좀······ 험악해서 그랬습니다.”
“흑도들 험악한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 않소.”
칠 조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단순히 험악한 게 아니라 기세가 상당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웬만큼 이름 있는 흑도 방파에서 최소 오 년은 구른 것 같았습니다.”
“그럴 리가.”
진사홍은 그렇게 말했지만, 문득 불안해졌다.
자신이 너무 적결명을 만만히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일 무한에 있는 흑도 무리가 흑련이 보낸 놈들이라면 결국 세력 싸움에서 밀리게 된다.
나중에 상황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때, 자신만 당하면 그 무슨 개망신인가. 아니, 개망신은 둘째 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진사홍은 칠 조장의 말에 집중했다. 아까 말한 의견이라는 것이 흑련과 관계된 모양이었다.
“그 흑도 무리를 제가 나서서 굴복시키면 어떻습니까?”
“흑도 무리를 끌어들이겠단 말이오?”
“끌어들인다기보다는 그저 굴복시켜서 이용하는 거지요. 확인도 할 겸 해서 말입니다.”
“확인이라······ 확실히 그게 필요하긴 하오.”
아까 그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진사홍의 마음속에 무한의 흑도무리에 흑련의 손길이 닿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흑도 무리는 강자에게 굴복하는 속성이 있으니, 잘 하면 제법 쓸 만한 놈들을 부릴 수 있게 될 겁니다.”
“흑도 무리를 모아서 뭘 하실 생각이시오?”
칠 조장이 빙긋 웃었다.
“당연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시켜야지요. 그놈들이야 흑도이니, 흑도들이 자주 하던 짓들이 있지 않습니까.”
진사홍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는 칠 조장을 보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졌다.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일단 해 보시오. 대신, 나중에 문제가 생겨선 안 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절대 문제 생길 일 없도록 잘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일 저희에겐 그리 드문 것도 아닙니다.”
너무 자신만만해서일까? 진사홍은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 * *
초서란은 불안한 표정으로 정문 앞을 서성였다.
그때, 저 멀리서 두 명의 의원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의원들도 초서란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달려왔다.
“방주님, 설마 저희들을 기다리신 겁니까?”
“걱정이 좀 되어서요. 별 일은······ 없었죠?”
의원들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뭐······ 눈을 뜨니 바닥에 누워 있어서 좀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런 것치고는 몸도 너무 개운하고 머리도 맑아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요?”
초서란이 살짝 놀란 눈으로 두 의원을 유심히 살폈다.
한데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멀쩡해 보였다.
“사실 기억이 없습니다. 가서 잠깐 얘기를 하다가 그대로 잠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좀 민망하긴 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벽태산은 없고 자신들만 바닥에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었으니까.
“아무 기억이 없다고요? 이상한 느낌도 없고요?”
의원들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묘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좀 어렵긴 한데······.”
초서란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오랫동안 인내와 노력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의 성취감?”
두 의원이 손뼉을 짝 쳤다.
“맞습니다! 딱 그겁니다! 아아,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좋았구나!”
초서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들도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게 전부였어요?”
“그럼 또 뭐가 있습니까?”
저걸 보면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다. 자신은 좀 아프고 힘들기도 했으니까.
초서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에요.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들어가서 좀 쉬도록 하세요.”
의원들이 씨익 웃었다.
“그럴 수 없지요. 이렇게 몸이 쌩쌩하고 의욕이 넘치는데. 오늘은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의원은 초서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장원으로 들어갔다.
초서란은 그런 두 사람을 묘한 눈으로 보다가 고개를 돌려 금벽장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 * *
벽태산은 연무장에서 오늘 얻은 영력을 차분히 갈무리했다.
두 의원의 혼백을 뽑아 태워서 얻은 영력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영약과 비슷했다.
한데 초서란에게서 얻은 것보다 질과 양이 많이 떨어졌다.
“이건 좀 아쉽군.”
어제 왔던 의원 스무 명 정도는 태워야 초서란에게 얻은 양과 비슷할 것이다.
거기에 영력의 질까지 하면 서른 명은 해야 비슷할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천약방에는 아직 수많은 의원들이 남아 있다.
그들의 혼백을 한 번씩 깨끗하게 태워 빨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천약방을 이쪽으로 부른 값으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다시 혼백에 때가 묻을 것이다. 다들 열심히 약만 만드니 영약이나 다름없을 테고.
처음보다야 효과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아무 혼백이나 막 태우고 다니는 것보다는 수십, 수백 배 더 효율적이리라.
시간이 오래 지나면 초서란에게 한 번 더 할 수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