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36)
긴장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화옥을 바라봤다. 화옥도 자신과 비슷한 표정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화옥은 담담했다.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어요. 제가 아래로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방금 싸우던 자들, 그리고 위로 올라왔던 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모든 적이 사라진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한 동료들도 챙겨야 하고.
화옥이 아래로 내려가자, 백화루주는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억지로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은 하오문주다. 여기서 이렇게 앉아 있기만 해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 * *
벽태산은 백화루의 중심부를 모조리 날려 버린 다음, 그곳을 벗어났다.
백화루에 침입했던 적은 전부 죽여 버렸다.
중심부를 날려버린 것은 사실 화풀이에 더 가까웠다. 그렇게 하지 않고도 거기 있던 놈들을 전부 죽일 수 있었는데, 일부러 다 부숴버렸다.
그러고 나니까 기분이 약간 풀렸다.
“몇 놈은 살려둘걸 그랬나?”
뭔가 심문을 통해 빼먹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벽태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적은 많다. 저쪽에 있는 놈들 중에 두어 놈 살려서 데려가면 되겠지.
벽태산은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 실타래에서 실을 풀어내듯 기세를 흘렸다.
수백 명이나 되는 적이 저쪽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있는 놈들은 수준이 제법이었다.
그 중 한 놈은 예전 혁련비광인지 뭔지 하는 놈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벽태산은 토시에 깃든 증혼마공을 점검하면서 걸었다.
그 안에 충분히 증혼마공이 있어야 공명할 테니까.
점검이 끝난 뒤에는 천천히 공명을 시작했다.
그즈음, 적들이 벽태산을 발견했다.
등에 단창을 교차해서 멘 사내가 앞으로 나서서 벽태산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정말 위험한 느낌이었는데······.”
사내는 벽태산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리 봐도 별 거 아닌 놈인데? 어떻게 생각해?”
사내가 뒤에 있던 흑의복면인에게 물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유언은 다 했느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공명을 통해 증폭된 증혼마공의 기운이 거대한 폭풍이 되어 쏟아져나갔다.
콰우우!
소리도 크지 않았다. 그저 다들 오싹한 공포를 느꼈을 뿐이다.
그리고 수백의 무사들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연습을 몇 번 더 해야겠군.”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단창을 멘 사내와 흑의복면인을 쳐다봤다.
원래 두 사람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증폭된 증혼마공의 힘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해서 약간 닿아 버렸다.
단창을 멘 사내의 오른팔이 날아갔고, 그가 메고 있던 두 자루 단창 중 한 자루가 사라졌다.
그리고 흑의복면인의 양 다리가 깔끔하게 녹아버렸다.
단창을 멘 사내는 팔이 날아갔음에도 거기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남은 유언이 있느냐?”
어차피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저 둘을 데려가 배후를 캐야 하니까.
사내가 털썩 주저앉았다. 바로 옆에 다리가 사라진 흑의복면인이 쓰러져 뒹굴고 있었다.
“소주군, 도망치셔야 합니다.”
흑의복면인의 말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소용없다. 방금 봐서 알잖아. 천마를 만난 줄 알았다.”
그 말에 벽태산의 눈빛이 달라졌다.
“너, 천마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왜? 알면 어쩌려고? 소개라도 해줄까?”
“그냥 아는 게 아니라 천마가 제대로 힘을 쓰는 걸 본 모양인데······.”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갑자기 입을 꾹 다문 사내를 보며 벽태산이 슬쩍 웃었다.
“아무래도 한 번 뽑아야겠구나.”
그 말에 사내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흑의복면인과 갑자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단전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벽태산이 그걸 알아차리고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두 사람의 몸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꽈아아아앙!
강력한 기운이 깃든 육편과 핏방울이 폭발의 힘을 통해 사방을 휩쓸었다.
당연히 벽태산이 있던 곳도 폭발이 휩쓸고 지나갔다.
후두두둑!
피의 비가 내렸다.
그 아래에 벽태산이 서 있었다.
핏물과 육편은 벽태산에게 단 하나도 닿지 않았다. 저절로 벽태산을 피해서 내린 것이다.
벽태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것들······ 정체가 더 궁금해지는구나.”
끝
백화루는 문을 닫기로 했다.
일 층부터 꼭대기 천장까지 거대한 구멍이 뻥 뚫렸는데, 그걸 어떻게 보수하겠는가.
아니, 설령 보수한다고 해도 튼튼할 리가 없었다.
결국 전각은 부수기로 하고, 백화루는 당분간 영업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백화루는 그냥 평범한 기루가 아니었다.
그곳은 기루이기도 하지만 하오문이기도 했다.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멈출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아니, 선택 당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백화루주는 긴장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지금 이곳은 금벽장 정문 근처에 있는 전각이었다.
원래 손님이 잠시 머무를 때 쓰는 곳이었는데, 여길 임시 하오문으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전각에는 살아남은 하오문도들이 쉬고 있었다.
그리고 전각 꼭대기 층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에 벽태산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상석에 벽태산이 앉아 있었고, 아래쪽에 마련된 자리에 백화루주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앉았다.
백화루주와 마주보는 자리에 화옥이 있었고, 화옥 옆자리에 승도흥이 자리했다.
그리고 백화루주 옆으로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앉아 있었다.
벽태산은 그 모두를 슥 훑어본 후, 담담한 눈으로 승도흥을 쳐다봤다.
승도흥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분석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승도흥이 신 나서 말을 이었다.
“일단 구조는 완벽하게 뽑아냈습니다. 금덩이들은 다시 가져가셔도 됩니다.”
금벽은 정말로 크고 거대했다. 그걸 부순 조각들이니 양이 얼마나 많겠는가.
아마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상단 몇 개는 통째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벽태산은 슬쩍 시선을 돌려 화옥을 쳐다봤다.
화옥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제가 받아서 잘 보관하다가 상황에 맞게 사용하겠습니다.”
상황을 그렇게 정리하고 나자, 승도흥이 안절부절못했다.
그걸 본 천추신의가 툭 말을 뱉었다.
“그렇게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있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설마 우리 공자님이 그런 걸로 괴롭힐까봐 그러는 거냐?”
승도흥이 화들짝 놀라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전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침괴가 인상을 쓰며 천추신의에게 눈을 부라렸다.
“왜 또 애들을 괴롭혀? 네놈의 썩은 생각을 저놈에게 미루지 마라.”
천추신의가 화들짝 놀라 뭐라고 하려는데, 벽태산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내버려두면 끝없이 말을 주고받을 테니, 미리 잘라내는 편이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벽태산은 장내가 조용해지자 승도흥을 쳐다봤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이.
“저······ 새로 짓는 장원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승도흥은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장원의 설계를 좀 변형하면 어떨까요?”
다들 의아한 눈으로 승도흥을 바라봤다.
벌써 장원의 공사는 진행 중이었다. 이제 와서 설계를 변형한다면 지금까지 들인 돈과 노력이 전부 사라진다.
“공사를 중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서 확인했는데, 조금만 수정하고 지금부터 다시 계획을 짜서 진행하면 충분합니다.”
화옥이 물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건물을 이용해서 거대한 진법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건 원래 계획되어 있는 일 아니었나요?”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진법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장원은 물론이고 장원 밖까지 이용해서 말입니다.”
“장원 밖까지 이용한다고요?”
“어차피 백화루도 다시 지어야 하지 않습니까. 장원에서 가까운 곳에 백화루를 짓고, 하는 김에 거리를 아예 다 조성해 버리는 겁니다.”
화옥이 어이없는 눈으로 승도흥을 바라봤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압니다. 하지만 일단 해 놓으면 누군가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에는 최고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금이야 어떻게든 조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금도 잔뜩 있으니 말이다.
일침괴가 거기 끼어들었다.
“그럼 천약방은? 지금 천약방이 있는 곳은 새로 짓는 장원이랑은 거리가 제법 떨어지지 않았나?”
“그것까지 전부 고려해야지요. 새 장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짓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지금 천약방은 나중에 방파가 더 커졌을 때를 고려하면 어차피 바꿔야 합니다.”
“그럼 돈이 더 들어가겠군요. 우리가 가진 금만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화옥의 말에 백화루주가 나섰다.
“하오문에 있는 자금을 바닥까지 긁으면 어찌어찌 시도는 할 수 있겠네요.”
백화루주는 그렇게 말한 다음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께서 맡기신 돈도 전부 투입해야 합니다.”
그동안 싸움을 통해 얻은 재화를 말하는 것이다. 수채를 털고, 무명과 싸울 때마다 얻은 재화를 다 하면 상당한 액수였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써도 좋다. 뭐, 이참에 거리 하나를 통째로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냥 거리가 아니라 무한 내에 벽태산만의 마을이 생겨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진법으로 뒤덮인 마을이 말이다.
벽태산이 잠시 생각하다가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남은 비천단 중에 돈이 많을 만한 곳은 없느냐?”
비천단은 전부 각자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천추신의처럼 의원인 경우도 있고, 장각우처럼 표국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각 비천단이 보유한 여유자금을 전부 끌어들인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그들도 전부 거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니 말이다.
“찾아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천추신의의 제자들이 정말 열심히 다른 비천단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 성과가 좀 있다고 하니, 적절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로도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 습격한 놈들의 정체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 벽태산이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여 버리는 바람에 얻은 정보가 거의 없었다.
사실 두 명은 남기려고 했는데, 그놈들이 자폭을 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린 벽태산의 표정이 살짝 가라앉았다.
회의는 해가 중천에 뜰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일이 터지고, 대충 수습을 한 다음에 다들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으니, 몇 시진 동안 쉬지도 않고 떠든 셈이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백화루주가 말했다.
“하오문의 상황은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피해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는지라······.”
벽태산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루주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회의가 끝났다.
회의가 끝나 다들 돌아간 집무실에 홀로 남은 벽태산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 두 놈이 자폭할 때의 일을 가만히 떠올려봤다.
분명히 뽑는다는 말에 반응했다. 그놈들은 그때까지 자폭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건 어떤 고문에도 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하오문의 특별한 심문법에도 입을 열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한데 뽑는다는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했다는 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 아닐까?
‘지나친 비약인가?’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놈들은 천마가 제대로 힘을 쓰는 광경을 분명히 목격했다. 아니면 최소한 그런 자에게 생생히 말을 전해 들었거나.
그건 확실했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뽑는다는 말에 반응했다면, 예전 천마가 혼백을 뽑아내는 걸 근처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예전 천마일 때는 지금처럼 순하게 혼백을 뽑지 않았다.
일단 다 죽이고 단숨에 혼백을 빨아들였다.
가릴 것이 없으니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일일이 정수리에서 직접 혼백을 뽑아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혼백을 뽑아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혼백을 통해 심문을 하고자 할 때였다.
혼백을 뽑아 태우면 혼백에 남은 상념이 스며들어온다.
당시 떠올린 가장 강한 기억 위주로 들어오는데, 심문과 병행하면 양질의 정보를 뽑아낼 수 있었다.
“그걸 본 놈이······ 누가 있지?”
벽태산은 차근차근 예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 * *
“아가씨, 여기서 뭐 하세요?”
소소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연하린은 퀭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소소를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 벽태산의 침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
소소의 질문에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여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벽태산을 기다렸다는 말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밤에 오라더니!
갑자기 눈물이 나려 했다.
그런 연하린의 모습에 소소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설마 공자님 기다리신 거예요? 언제부터요?”
연하린은 머뭇머뭇하다가 대답했다.
“어, 어젯밤?”
소소의 놀란 표정은 계속 이어졌다.
“아가씨, 소식 못 들으셨어요?”
“소식? 무슨 소식?”
“어젯밤에 나쁜 놈들이 백화루에 쳐들어왔다는 소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