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46)
장중산은 속으로 감탄했다. 솔직히 자신은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한데 자득철은 거대한 두려움에 짓눌린 채 그걸 이겨내고 말을 한 것이다.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잠재력은 최고라더니.’
냉정히 따지면 무공은 자득철이 관후승보다 약간 아래였다.
청무방이 상천문보다 한 수 위라고는 해도 관후승은 상천문의 문주였으니까.
장중산은 관후승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벽태산이 약간의 흥미가 깃든 눈으로 자득철을 보고 있었다.
자득철은 벽태산의 눈빛을 보고는 얼른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라. 날 보내주기만 하면,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다 대답해줄 테니까.”
“필요 없다.”
벽태산의 말에 자득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조에 담긴 단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이 없다면 대체 왜 사로잡아서 심문을 했단 말인가.
자득철은 심문하는 내내 하오문도들이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가 금벽을 왜 찾으려고 했는지 정말로 안 궁금하단 말이냐?”
벽태산은 말없이 자득철을 가만히 쳐다봤다.
자득철은 그걸 보고 벽태산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여겨 얼른 말을 이었다.
“금벽에는 천마의 무공에 대한 비밀이 들어있다.”
벽태산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건 내가 아는 거랑은 좀 다른데?”
벽태산의 말은 세 사람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 사람은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금벽에 대해······ 알고 있구나?”
자득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벽태산이 피식 웃자, 자득철이 얼른 물었다.
“대체, 대체 정체가 뭐냐? 넌 뭔데 그런 걸 알고 있단 말이냐!”
벽태산이 빙긋 웃었다.
“내가 천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천마는 죽었어!”
자득철이 발악하듯 외치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지.”
자득철이 입을 다물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지.”
세 사람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지금까지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가 아니라 실질적인 공포가 그들을 장악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세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아차렸다. 저 말을 들었는데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벽태산이 손을 슬쩍 들어 팔뚝에 찬 금토시를 보여줬다.
“금벽을 보고서 만든 거다. 뭐······ 그럭저럭 괜찮더군.”
벽태산이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너희가 어떻게 금벽에 대해서 아느냐는 거다. 솔직히 천마인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말이야.”
세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자신들이 가진 정보의 가치가 결코 낮지 않다고 믿었다.
이걸 이용해 어떻게든 살 길을 열어보고 싶었다.
그 눈빛을 본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어설픈 것들. 내가 진짜 너희 입으로 그걸 말하라고 물어본 줄 아느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일단 관후승의 정수리에 손을 올려 혼백을 쑥 뽑아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라. 그래야 내가 들을 수 있는 사념들이 많아질 테니까.”
관후승의 혼백이 화르륵 타올랐다.
물론 그 광경을 남은 두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저 들을 수만 있을 뿐이었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악!”
폐부를 모조리 드러내는 듯한 고통이 담긴 처절한 비명 소리를.
남은 두 사람의 눈에 더욱 짙은 공포가 어렸다.
* * *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소문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금월상단에 관한 소문이었다.
그들이 소유한 무림방파 중에서 두 군데가 움직여 금벽상단의 보물을 강탈했다는 소문이었다.
그 보물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보물의 가치가 수백 개의 야명주에 황금 백 관을 합한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한다.
소문은 주로 무림문파나 거대 상단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여럿 등장했다.
그들 중 비교적 강한 힘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직접 금벽상단에 방문해서 진위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들은 금벽상단에 방문해서 내린 결론을 공개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금방 다른 소문이 되어 퍼졌다.
진짜라고.
금벽상단은 되도록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금월상단의 방문이 있었고, 청무방의 무사들이 금벽상단의 호위무사들을 공격하고 도주했다는 것까지는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 일을 무려 다섯 단체가 지켜봤으니, 아무리 금월상단이라도 진실을 왜곡하거나 묻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 진실에 소문이 얹혀 그야 말로 폭발적으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금월상단은 유래 없는 곤란을 겪고 있었다.
대놓고 힘을 드러내 금월상단을 압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물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금월상단을 견제하고 진실을 들춰내려고 애쓰는 자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금월상단은 그런 짓을 아주 철저히 막아내야만 했다.
진짜 밝히기 어려운 비밀을 여럿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금월상단은 최근 살얼음판을 밟는 듯한 분위기가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금월상단의 본단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각에 상단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라고 한 지가 벌써 닷새인데, 아무도 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군.”
상단주의 말에 다들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평소라면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해결하는 데까지 사흘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 사안에 따라서는 이틀 만에 처리할 수도 있다.
금월상단이 가진 힘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일단 견제하려는 세력이 너무 많았다.
웬만한 어중이떠중이까지 전부 달려드는 통에 아무리 금월상단이라도 학을 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상황이 조금 진정되면 그런 놈들을 철저히 응징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중 일이었다.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네. 단 한 명도.”
상단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모인 사람들을 슥 둘러봤다.
“생사 확인은 했나?”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이 나서서 대답했다.
“일단 무림맹, 흑련, 호무련, 남궁세가, 제갈세가 쪽에는 협조를 구해 청무방 애들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액수의 돈이 들어갔다는 건 굳이 보고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오리무중입니다.”
상단주가 보고한 사람을 가만히 노려봤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군. 거기 소마륵도 끼어들지 않았나?”
“맞습니다. 억지로 우겨서 따라갔습니다.”
“그놈도 안 돌아왔지?”
“예.”
“흔적도 못 찾았고?”
“예.”
대답하는 자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당금 무림에 소마륵을 상대할 수 있을만한 자가 몇이나 있지?”
“제가 알기로 스물을 넘지 않습니다.”
“소마륵이 작정하고 도망쳤을 때, 과연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놈을 척살하는 게 가능할까?”
“구룡문이라면 가능합니다.”
상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 얘기는 상천문이나 청무방은 불가능하다는 거지. 그리고 웬만한 문파나 조직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들 수긍하는 눈빛으로 상단주를 바라봤다.
“금벽상단이 이 모든 일을 꾸몄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상단주의 물음에 다들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상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금벽상단은 일방적인 피해자였다.
한데 왠지 그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냥 아무 논리나 추론도 없이 떠오른 감이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정보의 고리 몇 개가 뚝뚝 끊어진 느낌이었다.
“아무튼······ 당분간 시끄럽겠어.”
상단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무명을 떠올렸다.
이제 슬슬 그놈들에게 연락을 한 번쯤 할 때가 되었다.
끝
벽태산은 자신의 방, 침상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서 오늘 있었던 일을 가만히 떠올렸다.
장중산과 관후승, 자득철로부터 원하던 정보를 뽑아냈다.
혼백을 태우기 전에 정신을 좀 흔들어 놓아서 그런지 뿜어져 나온 사념의 양이 상당했다.
그때 읽은 사념들을 지금 차분히 떠올리며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단 천마인 자신조차 모르는 금벽에 대한 비밀을 저들이 알고 있는 이유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의뢰라기보다는 협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금월상단은 무명이라는 조직과 손을 잡은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까지 알고 있으려면 아마 상단주나 그에 버금가는 직위를 가진 자여야 하리라.
분명한 건, 무명과 금월상단의 관계가 상당히 깊다는 점이었다.
금벽에 대한 비밀을 아는 자는 금월상단 내에서도 제법 많았다.
물론 많다고 해도 기껏해야 상단 휘하 각 문파의 문주를 중심으로 하는 핵심 인사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 잡힌 세 사람은 전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각자 아는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덕분에 벽태산은 좀 더 폭넓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들이 금벽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자득철이 주절주절 떠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마가 남긴 심득이 담겨 있고, 그걸 이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으로 천마의 무공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정도가 다였다.
듣고 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건 역대 천마 중 한 명이 남긴 증혼마공에 대한 해결책이었으니까.
증혼마공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거기 적용한 진법은 제법 도움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천하 어딘가에는 금벽과 비슷한 다른 것들이 존재했다.
금월상단은 그동안 무명의 의뢰에 따라 그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금벽 말고도 두 개나 되는 벽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나는 검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옥벽이었다.
각각 검벽채라는 산적의 산채와 옥벽문이라는 무림문파가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곳은 금월상단의 수작에 휘말려 상단 휘하에 있는 무림방파 중, 상천문과 구룡문에 흡수되었다.
금월상단에서는 벽을 찾아낸 조직에게 상으로 각각의 문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두 개의 벽은 무명에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금월상단은 검벽과 옥벽에 대해 면밀히 연구했지만, 결국 알아낸 것이 거의 없었다.
다만, 검벽에는 좀 특이한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걸 얻어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리고 옥벽에는 심득 자체가 고스란히 글로 새겨져 있었기에 그걸 필사해서 따로 보관했다.
물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은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벽태산이 혼백을 뽑은 세 사람이 알기로는 그랬다.
그들이 아는 건 그 정도였지만, 그걸 통해 벽태산이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좀 더 많았다.
일단 검벽이든 옥벽이든 역대 천마 중 누군가가 남긴 심득이라면, 그건 증혼마공에 대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시도가 분명했다.
‘대체 왜 그걸 천마신교에 안 남기고 그딴 식으로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천마인 자신도 모르는 심득이 천하 곳곳에 널려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물론 벽태산은 충분히 이해했다.
원래 천마는 그런 법이다. 제멋대로인데다가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천하에 오롯이 자기 혼자만 서 있는 존재가 바로 천마였다.
“하여튼 제대로 된 천마가 없다니까.”
벽태산은 고금을 통틀어 제대로 된 천마가 자기 혼자뿐이라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튼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가서 구경은 해줘야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벽태산은 조만간 검벽이나 옥벽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더불어 천하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벽도 겸사겸사 찾아볼 생각이었다.
검벽채와 옥벽문이 유명한 문파나 산채는 아니었지만, 하오문이 나서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검벽과 옥벽을 따로 떼어내서 무명이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각 벽이 있는 위치도 무언가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니 그 두 곳은 그냥 위치만 파악해서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벽태산은 그 얘기를 통해 무명이라는 놈들이 아직 검벽이나 옥벽을 통한 심득을 완벽하게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도 짐작했다.
그리고 무명이라는 조직이 어떤 식으로든 천마신교와 엮여 있다는 것도 확신했다.
어쩌면 역대 천마 중 한 명과 관계있을지도 모른다.
‘영약 때문에 관심을 가지던 일인데, 이런 식이면 제법 깊이 들어갈지도 모르겠어.’
벽태산은 좀 더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방향을 정했으니 이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 * *
채미령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의 뒤로 벽천일이 따라가고 있었다.
벽천일은 금벽상단 조서각 소속으로 차기 조서각주를 노리며 채미령과 손을 잡았다.
한데 최근 일이 계속 꼬이면서 미래가 점점 불투명해져갔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설마 금월상단이 그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금월상단이 무사들까지 동원해 금벽장주의 집무실 바닥을 뜯어내고 거기에 보관 중이던 보물을 강탈해 가는 바람에 채미령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그동안 온갖 짓을 다 해서 금벽상단의 거래처를 일부 바꿨는데, 그게 모조리 원래대로 돌아갔다.
더불어 알게 모르게 벽태수가 해주던 배려가 싹 사라져 버렸다.
채미령은 졸지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하던 벽천일의 입지도 위태로워졌고.
오늘 이렇게 채미령과 함께 움직이는 이유는 벽태산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벽천일은 이번 일을 따로 조사하면서 엄청난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벽태산이 있었다.
새로 바꾼 거래처의 뒤에 금월상단이 있다는 걸 알아내고, 그들을 금벽장으로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외부에서 호위무사를 들여 그들로부터 금벽장을 지켜낸 모든 일을 벽태산이 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