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0)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당했다고? 누구한테 말이냐. 하오문 놈들을 확실히 감시하고 있긴 했느냐?”
“제가 아는 바로는 하오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눈과 귀를 벗어난 하오문도들도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움직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제가 상황을 포착했을 것입니다.”
흑의 여인이 얼마나 유능한지 알기에 혁련균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로 확신을 갖고 얘기한다면 하오문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하오문이 경백준 그놈을 찾기 위해 움직인 건 맞지 않느냐.”
“예. 맞습니다. 높은 확률로 위치를 찾아냈을 것입니다.”
혁련균의 뇌리를 금벽상단이 스쳐 지나갔다.
“하면 금벽상단인가?”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만······ 그곳 역시 저희 감시 아래에 있습니다.”
“그럼 대체 누구란 말이냐!”
혁련균이 살짝 역정을 냈다.
흑의 여인은 그걸 보며 표정이 안 좋아졌다. 혁련균이 저러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아마 일이 너무 안 풀려서 정신적으로 쫓기는 듯했다.
흑의 여인은 혁련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 밖에서 신호가 왔다.
흑의 여인이 표정이 굳은 채 혁련균을 바라봤다.
“주군, 일이 생겼습니다.”
“뭐? 또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이냐.”
“혈령대의 근거지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뭐?”
혈령대는 혁련균이 이번에 데려온 조직이다. 혁련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무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하나의 실력이 정말 대단했다.
그들을 무한에 데려오면서 많은 근거지를 만들고 혈령대를 각 근거지에 나눠서 배치했다.
각 근거지마다 최소 두 개 조의 혈령대를 배치했다.
한 개 조가 조장 한 명에 스무 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경백준을 지키던 자가 바로 혈령대의 일 조였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조장과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백준이 당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실력은 현재 무한에 들어와 있는 무림맹이나 흑련의 무사들로는 결코 당해낼 수 없었으니까.
한데 그런 혈령대 두 개 조가 머무는 근거지가 사라졌다니.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어찌 할까요?”
흑의 여인이 묻자, 혁련균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어진 소식이 또 흑의 여인에게 도착한 것이다.
“아······!”
“왜 그러느냐?”
“근거지 하나가 또 사라졌다고 합니다.”
혁련균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흑의 여인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근거지 하나가 사라졌다기에 모든 근거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지금 그 보고가 차례대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후우우. 그래, 알았다. 나머지 소식도 들어오는 즉시 바로바로 보고해라.”
혁련균이 그렇게 말하고 흑의 여인을 바라봤는데, 갑자기 그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많이 당했구나.”
“예. 벌써 네 군데가 당했다고 합니다.”
“그럼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얼른 소집 신호를 보내지 않고!”
그제야 흑의 여인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예. 바로 소집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흑의 여인은 내공을 목에 집중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저 입만 벌리고 아무 소리도 안 내는 것처럼 보였다.
내공을 이용해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 것이다.
그녀가 가진 대부분의 내공을 쏟았기에 그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그녀를 중심으로 아주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그것이 바로 혈령대에 보내는 소집 신호였다.
소집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혁련균이 말했다.
“설마 전부 이리로 부른 건 아니겠지?”
흑의 여인이 당황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 멍청한! 어떤 놈들이 감시하다가 따라올 줄 알고 이리로 불러! 다른 곳으로 돌렸어야지!”
그 말에 흑의 여인이 다시 입을 벌렸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다시 쫘악 퍼져 나갔다.
어찌나 다급히 했는지 진원지기에 손상이 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혁련균의 말이 백 번 옳았으니까.
흑의 여인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무 과한 힘을 쓴 후유증이었다.
혁련균은 그런 흑의 여인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쉬고는 그녀를 슬쩍 당겨 안았다.
흑의 여인은 혁련균의 품에 안긴 채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창백해졌던 얼굴에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철저히 감시해. 그래서 어떤 놈이 감히 이따위 짓을 하는지 알아내.”
“예.”
흑의 여인은 조용히 대답하며 고개를 들어 혁련균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 열망이 어렸다.
혁련균은 그녀의 뺨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이 다음은 일을 마무리한 뒤에 해야지?”
흑의 여인이 아쉬운 눈으로 살짝 물러났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흑의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혁련균은 들끓는 힘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흑의 여인 휘하에는 백 명의 무인이 있다. 그리고 그 백 명의 무인은 전부 잠입이나 암습, 추적, 미행 등의 정보 쪽 능력이 아주 뛰어난 자들이었다.
그들이 집결지 근처에 미리 숨어 있다가 혹시라도 혈령대를 추적하거나 감시하는 자들을 찾으면 그들을 역추적 하면 된다.
그놈들의 정체가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마 하오문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오문이라······.”
하오문의 힘이 갑자기 커졌다. 이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배후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하오문의 배후를 밝혀낼 수 있는 기회였다.
혁련균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잠시 힘을 다스리고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미리 준비해 놓은 다섯 명의 여인들이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녀들은 방에 들어오는 혁련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혁련균의 핏빛 눈동자에 끈적끈적한 욕망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 * *
혈령대가 무한 곳곳에서 빠르게 이동했다.
무한으로 들어온 혈령대의 수는 조장을 제외하고도 총 사백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였다.
한데 그 중 네 군데의 집결지, 즉, 여덟 개 조가 당한 것이다.
거기에 경백준을 지키다가 사라져 버린 일 조까지 더하면 거의 이백 명에 가까운 혈령대가 사라진 셈이었다.
그래도 남은 혈령대의 수는 이백 명이 넘는다. 그들을 한데 모으면 최소한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흑의 여인은 집결지 근처에 은밀히 숨어서 속속 도착하는 혈령대를 지켜봤다.
현재 그녀의 부하들이 이 근방에 넓게 감시망을 구성해서 혈령대뿐 아니라, 그들에게 따라붙었을지 모를 추적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수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아까처럼 넓은 범위에 신호를 퍼트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녀의 부하들 역시 그녀와 비슷한 수법을 익혔기에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통해 끊임없이 상황을 보고하는 중이었다.
‘없다고?’
평소보다 훨씬 집중해서 감시하고 있는데도 아직 걸려든 추적자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평소에는 자주 보이던 하오문도들조차 지금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혈령대는 기본적으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을 완벽하게 감출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혈령대를 감시하고 있거나, 무한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자들이라면 분명히 움직임을 포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혈령대에 붙은 꼬리가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흑의 여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고 나니, 갑자기 불안해졌다.
흑의 여인은 좀 더 감시망을 확장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이쪽을 감시하는 자들의 수준이 자신이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녀가 입을 벌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쏟아냈다.
모든 부하에게 보내야 하기에 약간 무리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시끄럽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흑의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검을 뽑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그대로 휘둘렀다.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손가락 두 개만으로 자신의 검을 잡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눈빛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게다가 혈령대를 추적하는 움직임은 하나도 없었다.
즉, 정확히 자신을 목표로 삼아 곧장 이리로 왔다는 뜻이다.
그 눈빛을 읽은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잡은 검을 뚝 부러뜨렸다.
“여기 있다고 아까부터 악을 바락바락 썼잖느냐.”
흑의 여인의 눈에 불신의 빛이 가득 들어찼다.
끝
벽태산은 흑의 여인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제법 높은 전각의 지붕이었는데, 주변에서 혈령대가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보였다.
전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장원에 혈령대가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장원은 텅 비어 있었는데, 미리 준비한 건지 아니면 장원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없애버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사람들을 다 죽여 버리지는 않은 듯했다.
이놈들은 가끔 말도 안 될 정도로 우악스럽게 일을 처리하곤 하지만, 무한에서 그렇게 했다면 하오문의 정보망에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걸려들었을 것이다.
“몇 놈 안 되는구나.”
남은 혈령대의 수가 무려 이백이십 명이었다. 거기에 각 조를 이끄는 조장들 열한 명이 추가된다.
한데 그걸 보고도 몇 명 안 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흑의 여인은 벽태산을 조용히 바라봤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은 도망치거나 얌전히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흑의 여인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갑자기 벽태산이 고개를 휙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흑의 여인은 흠칫 놀랐다.
“왜? 도망치려고?”
흑의 여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벽태산이 그녀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경백준인지 뭔지 하는 놈은 아는 게 너무 없더구나. 넌 어떠하냐?”
흑의 여인은 굳은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놈이 아는 거라고는 저기 열심히 모이고 있는 놈들이 모이는 몇 군데 정도더구나.”
흑의 여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경백준이 그걸 말했다고?”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왜? 혼백에 박아둔 오물 때문에 입 다물고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지?”
흑의 여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그런 것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너······ 정체가 뭐지?”
“벽태산. 알고 있는 거 아니었나?”
당연히 안다. 벽태산의 얼굴이야 조사 과정에서 몇 번이나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확인했으니까.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너희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말이야. 천마신교랑은 무슨 관계인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흑의 여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확 굳었다.
머릿속이 갑자기 너무나 복잡해졌다. 설마 벽태산의 입에서 천마신교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벽태산 뒤에 있는 것이 설마 천마신교였다고? 그럴 리가!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천마신교는 지금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데 갑자기 여기서 천마신교가 왜 나온단 말인가.
“네가 모시는 사람이 하얀 장포를 입고 다니는 그놈인가?”
흑의 여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상대는 지금 모든 걸 알고 있다.
‘설마 배신자가 있는 건가?’
어쩌면 벽태산의 뒤에 천마신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배신자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 지금 어디 있지?”
흑의 여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그 얘기를 할 리 없지 않은가.
벽태산은 씨익 웃으며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일단 뽑고 시작하자.”
잔뜩 흔들었으니 아마 토해내는 사념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벽태산이 그녀의 혼백을 쑥 뽑아냈다.
* * *
모든 혈령대가 신호에 따라 장원에 집결했다.
그리고 그 장원 주변을 감시하던 자들이 더욱 범위를 확장했다.
혈령대는 혁련균이 직접 키운 조직이었다.
그들은 혁련균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 그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했다.
워낙 실력도 좋고 경험도 많아서 그동안 어떤 일이든 충분한 성과를 냈다.
당연히 이번 일도 그렇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의 일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혈령대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각 조의 조장을 모았다.
“아홉 조를 제외하면 전부 있는 거 맞나?”
“이상 없습니다.”
각 조의 조장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동시에 대답했다.
혈령대주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백 명 가깝게 잃어 버렸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소식은 없나?”
“없습니다.”
“연락책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돌아갔습니다.”
연락책이라는 것은 흑의 여인과 소통할 수 있는 자들로, 각 거점마다 한 명씩 배정되어 있었다.
한데 혈령대가 전부 여기 모였으니 한 명만 남고 전부 돌아간 모양이었다.
“확실히······ 뭔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로군.”
“그런 듯합니다. 주변이 너무 분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