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2)
일단 벽태산이 나섰으니 혁련균은 잡았다고 보면 된다.
적어도 화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다음은 무명의 근거지들을 찾아가는 일이로구나.”
화옥은 미리 그걸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혁련균은 짜증과 화가 뒤섞인 채 방안을 서성였다.
어제 분명히 일이 터졌다.
한데 너무 갑작스럽게 터졌고, 수하들이 모조리 사라지다시피 해서 바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머뭇거린 대가로 자신을 감시하는 놈들이 주변에 생겨 버렸다.
“저것들이 대체 내가 여기 있는 걸 어찌 찾아낸 거지? 아니, 그보다 내 존재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그래도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자신에게는 힘이 있는데.
솔직히 무한에 있다는 무림맹과 흑련 놈들이 전부 몰려온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한에 있는 날고 긴다는 모두가 달려든다면, 그놈들을 모조리 때려눕힐 수는 없겠지만, 몸 하나 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언제든 무한을 조용히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혁련균의 두려움을 덮어 버렸다.
게다가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신이 활동하던 곳과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무한에 왔는데, 고작 혈령대만 믿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혁련균에게는 혈령대 말고도 가진 힘이 많았고, 이번에는 직접 나선 만큼 무명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과 함께 왔다.
다만 그 강자들은 아무리 혁련균이라고 해도 손가락으로 부릴 수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점이 좀 문제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아주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데려온 것이기에 그들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르든 말든 지금까지는 별 상관도 없었고.
그렇게 잠시 서성이고 있자, 방문이 벌컥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는데, 눈빛이 어찌나 형형한지 혁련균조차 긴장을 풀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강렬했다.
“어르신들, 오셨습니까.”
두 노인, 월천득, 월천락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이 생겼다고 들었소이다.”
두 노인은 형제였고, 아주 어릴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이번에 혁련균의 요청으로 무한에 올 때만 해도 사실 유람이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한데 막상 이렇게 일이 터지고 나니, 그동안 억눌러왔던 또 다른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혁련균은 두 노인의 눈에 깃든 진득한 살기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모자라서 데려온 수하들을 전부 잃었습니다.”
그 말에 두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에 혈령대를 데려오지 않으셨소?”
“맞습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무한에 있기에 그들이 당했단 말이오?”
“아직 적의 실체도 명확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두 노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혈령대를 지울 정도라면 필시 보통 놈들이 아닐 테지. 정체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요. 아마 정체를 파악했더라도 그건 가짜일 가능성이 높소.”
두 노인은 그렇게 상황을 알아서 정리하고는 혁련균에게 물었다.
“하면 이제 우리가 어쩌면 좋겠소?”
혁련균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 이제 여길 빠져나가고자 합니다.”
두 노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무한을 좀 휘저어주길 바라는 거로군. 어렵지 않지. 특별히 원하는 방식이 있소?”
두 노인의 말투나 표정, 눈빛은 어딘가 살짝 들떠 있었다. 마치 지금 이런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일이 내분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지 않겠소?”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두 노인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때도 우리에게 일을 맡겨주시면 고맙겠소.”
“두 분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혁련균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그렇게 말했다.
두 노인이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소. 남세스럽게. 별달리 원하는 방식이 없다면 우리 방식대로 알아서 하겠소. 일단······ 이 주변에 있는 쥐새끼들부터 정리할 테니 상황 봐서 움직이시오.”
“부탁드립니다.”
혁련균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두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혁련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일단 시간은 좀 벌었고······ 상황 봐서 얼른 빠져나가야겠군.”
혁련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밖을 내다봤다.
두 노인이 벌써 저 멀리 있는 골목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난폭한 기운이 주변을 서서히 장악해 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 * *
월천득과 월천락은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각자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때 두 배 이상 강해진다는 걸 알기에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건 두 사람이 익힌 무공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공의 위력이 강해지고 육체 능력도 상승하는 특이한 무공이었다.
이 주변에 있는 쥐새끼들 정도야 각자 움직이면 훨씬 빠르게 정리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그럼에도 함께 움직였다.
이 주변을 감시하는 자들은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대부분 하오문 소속이었다.
두 노인도 감시자들에게 다가가면서 그 부분을 알아차렸다.
“하오문 같은데?”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한데 하오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설치고 다녔지?”
“최근 좀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군. 솔직히 관심도 없고.”
“하긴,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는데 그런 건 알아서 뭐해?”
“그렇지. 그리고 저기 우리가 죽여야 할 첫 번째 놈이 있고 말이야.”
두 사람의 눈에 좁은 골목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골목 끝에 몸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은 그쪽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감출 생각 따위는 아예 없기에 기세를 갈무리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난폭한 기세가 흘러나왔는데, 그 기세가 주변을 차츰차츰 장악해 나갔다.
그리고 골목에 숨어 있던 자가 움찔했다.
기세에 짓눌린 것이다.
“자아, 어떻게 죽여줄까.”
“내가 팔다리를 뽑을 테니, 네가 목을 뽑아라.”
“좋지. 오랜만에 즐겁겠어.”
두 노인은 어느새 골목에 들어섰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그곳에 숨은 자를 확인했다.
적당히 나이를 먹은 사내였는데, 당황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두 노인을 바라봤다.
“시간 없다. 얼른 뽑아라.”
두 노인 중, 먼저 나선 사람은 월천락이었다.
월천락은 사내의 양 팔뚝을 잡았다.
사내는 조금도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몸부림이라도 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조차 할 수 없었다.
월천락은 그런 사내의 태도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뽑았다.
단숨에 뽑지 않고 천천히 뽑아야 더 고통스러워하고 더 두려워하니까.
그렇게 막 힘을 주기 시작했을 때, 뒤쪽에서 굉장히 노골적인 인기척이 느껴졌다.
월천락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야 좀 재미를 보려는데, 어떤 놈이······.”
“그거 뽑는 중이었느냐?”
그들의 뒤에서 나타난 사람, 벽태산이 무심히 물었다.
월천락이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그래. 뽑으려고 했다. 아니, 이미 뽑는 중이라고 해야겠구나.”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뽑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월천락이 팔을 뽑으며 히죽 웃었다.
“좋아하지. 팔도 뽑고 다리도 뽑고 목도 뽑고. 가끔은 심장도 뽑는다. 재미있겠지?”
월천락은 제법 힘을 주었는데도 팔이 뽑히지 않아 좀 더 힘을 주었다.
“이놈, 왜 이리 질겨?”
더 힘을 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월천락의 눈에 근처에 서 있는 월천득의 얼굴이 보였다.
월천득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 걸 보니 뭔가에 놀란 모양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고 저리 놀란 걸까 궁금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팔뚝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있었다.
“어?”
손에 분명히 힘을 주고 있는데 팔뚝을 잡은 손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팔을 좀 움직여 봤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어어?”
월천락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의 팔이 빠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팔이 뽑힌 것이다.
벽태산은 놀라서 입을 벌린 월천락을 힐끗 보고는 그에게 팔을 붙들렸던 사내를 쳐다봤다.
“뭐 하느냐.”
사내가 화들짝 놀라 벽태산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월천락도 월천득도 사내를 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벽태산은 두 사람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나도 뽑는 거 좋아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월천득이 벽태산에게 달려들었다. 직감적으로 지금이 아니면 달려들 틈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벽태산이 파리라도 쫓는 것처럼 손을 휙 내저었다.
꽈득!
월천득의 뺨에 벽태산의 손등이 작렬했다.
꽈앙!
목이 부러질 듯 꺾인 채 바닥에 처박힌 월천득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벽태산은 그 광경을 현실감 없는 시선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월천락에게 성큼 다가가 그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막 혼백을 뽑으려는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빠르게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벽태산이 그쪽을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뛰어봐야 벼룩이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월천락의 혼백을 쑥 뽑았다.
끝
혁련균은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대체······ 대체 뭐지? 그놈은 대체 뭐야! 그 노인네들이 어떤 자들인데 그렇게 간단히······!”
원래는 월천락과 월천득이 무한을 한바탕 휘저을 때, 조용히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그냥 무작정 뛰었다.
단순히 월천락과 월천득이 간단히 쓰러졌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때 확연히 느꼈던 바로 그 힘 때문이었다.
혁련균은 자신의 존재가 지워질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당황했다.
월천락과 월천득 앞에 나타난 자가 벽태산이라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보를 통해서 본 벽태산과 직접 본 벽태산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달랐다.
한데 벽태산이 본격적으로 힘을 쓴 순간, 혁련균은 항거할 수 없는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그것은 혁련균이 가진 힘에 대한 근본이 흔들리는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혁련균은 자신이 이런 느낌을 받는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건 경우의 수가 극히 적은 문제였다.
혁련균이 아는 경우의 수는 딱 둘이었고, 그 중 하나는 혁련균에게 지금의 힘을 전해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혁련균이 가진 힘의 근원이 되는 자이기도 했다. 그가 원한다면 혁련균은 그 자리에서 힘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수는 바로 천마신교였다. 아니, 정확히는 천마신교를 다스리는 자, 바로 천마였다.
혁련균이 익힌 무공의 뿌리가 바로 천마가 익힌다는 증혼마공이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증혼마공이 뿌리라고 하기에는 혁련균이 익힌 무공이 너무나 많이 변형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근원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증혼마공을 익힌 자가 혁련균의 무공을 마음대로 거둘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어설픈 증혼마공을 익힌 천마라면 자신이 싸워서 이길 수도 있다고 믿었다.
누가 더 강한지는 비교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지금 혁련균이 느끼는 건, 그런 실질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막연하다고 해도 두려움의 크기가 너무 크면 올바른 대처를 하기 어려운 법이다.
지금의 혁련균이 바로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흥분이 좀 가라앉고 냉정을 되찾으면 다시 원래대로 바뀌는 법이다.
혁련균은 한참동안 도망치다가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속도를 늦췄다.
그래도 워낙 열심히 달렸기에 어느새 무한을 벗어났다.
“젠장. 다 버리고 몸만 나왔군.”
이번에 직접 움직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들고 왔는데, 그걸 전부 놓고 왔다.
그 중에는 막대한 양의 금도 있었고, 잘 정리해둔 전표도 잔뜩 있었다.
또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쓰려고 가져온 증혈단도 제법 많이 있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쓰려고 준비한 독도 제법 많았다.
그 모든 걸 놓고 도망친 것이다.
갑자기 그것들이 좀 아까워졌다. 하지만 혁련균은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더 아까운 것이 바로 목숨이었으니까.
살아남기만 하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뭐, 기반을 통째로 드러낸 건 아니니까.”
일단 근거지로 돌아가면 무한으로 들고 온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산이 남아 있었다.
또한 그곳을 철저히 지키고 있을 부하들도 잔뜩 있었다.
그러니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 아니, 재기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자신은 잠깐 발을 헛디뎠을 뿐이니까.
문득 자신이 무한으로 오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혁련비광 이 새끼, 분명히 이거 알고 있었어.”
어쩐지 그 능구렁이 같은 놈이 느닷없이 무한을 포기한다 싶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하들만 이곳에 보낸 혁련휘를 멍청하다고 욕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하니 그놈이 현명한 거였다.
“일단······ 벽태산에 대한 정보는 나만 알고 있어야겠어.”
벽태산이 천마신교와 관계되었다는 건 아직 누구도 모를 것이다.
또한 벽태산이 증혼마공을 익혔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 정보는 상당히 크다. 어떤 식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굉장한 가치를 뽑아낼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갑자기 등줄기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불과 반 시진도 되기 전에 똑같은 감각을 경험했으니까.
혁련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몸을 날렸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쫓아온 사람이 누구든 여기서 시간을 끌다간 호된 꼴을 당할 테니까.
혁련균은 일단 최대한의 속도로 도망쳤다.
그렇게 열 걸음쯤 달렸을 때, 갑자기 코앞에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혁련균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음과 동시에 휘둘렀다.
쉬아악!
반사적인 공격이었음에도 검에 충분한 힘이 실렸다.
그냥 힘이 아니라 혈기를 통해 뽑아낸 영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