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6)
천추신의가 어이없는 눈으로 일침괴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형님 이기심이 아주 하늘을 꿰뚫겠소. 어찌 그리 한결같이 자기만 아는 거요?”
“닥치고, 일단 자라. 다들 잘 모양이니까. 체력이고 정신력이고 잔뜩 비축해 놔야지. 내일을 견디려면.”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설마 공자님이 내일부터는 또 그 지옥 같은 수련을 하신다고 했소?”
일침괴가 더없이 불쌍한 놈을 보는 시선으로 천추신의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모닥불 근처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천추신의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일침괴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자리에 눕고 있었다.
“설마 내일 또 이걸 겪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 *
다음 날, 천추신의는 사람들과 차근차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일침괴가 왜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봤는지도 알았다.
그렇게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점심 무렵이 되었다.
마차가 섰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벽태산의 시비들이 또 맛있는 요리를 잔뜩 준비했다.
그녀들의 요리 실력이 정말 대단했다.
평소에도 벽태산을 어떻게 모실지 고민하면서 이럴 때를 대비해 시간을 쪼개 요리를 연습해왔다.
안 그래도 벽태산이 혼백 세탁을 한 뒤로 재능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 요리를 연습하니 실력이 늘어나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맛있는 요리가 눈앞에 있는데도 천추신의는 젓가락으로 그걸 휘젓기만 했다.
입맛이 돌지 않았다.
“요리 앞에 두고 제사 지내냐?”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가 인상을 팍 썼다.
“아오, 말을 해도 꼭.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한테 굳이 제사 얘기를 해야겠소?”
“내가 널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말하는 일침괴의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죽음에서 일찍 깨어난 것과는 별개로 비명을 지른 두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직 별다른 말은 없지만 반드시 뭔가 불이익이 따라올 것이다.
일침괴가 그동안 보아온 벽태산이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았다.
아니, 그냥 넘어가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더 큰 함정이 준비되어 있거나, 아니면 벽태산이 가짜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그거 열심히 먹어두는 게 좋을 거다. 체력 모자라서 늦게 일어났다가 더 크게 당하면 너만 손해다.”
그 말을 들은 천추신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다고 벽태산이 봐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추신의는 갑자기 열심히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리를 전부 먹었을 때, 느닷없이 세상이 새까매지는 걸 느꼈다.
‘젠장, 말이나 하고 죽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대로 푹 고꾸라졌다.
천추신의가 쓰러지자, 벽태산이 일행을 슥 둘러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달라진 걸 느낀 사람은 없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벽태산은 별다른 말없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벽태산은 천추신의를 보며 말했다.
“마차에 실어라.”
몇몇이 달려가 얼른 천추신의를 마차에 실었다.
그러자 벽태산도 마차에 탔다.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야 멈췄다.
당연히 오늘도 노숙이었다. 마치 일부러 노숙을 하려는 것처럼 이동 중이었다.
* * *
“아니, 공자님. 이건 솔직히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천추신의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벽태산에게 말했다.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봤다.
천추신의는 벽태산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전부 안절부절못했다.
천추신의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벽태산에게 저렇게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저 둘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일침괴는 지금 당장에라도 천추신의의 뒤통수를 때리고 너 미쳤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연하린은 자신이 나서서 애교라도 부려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다들 비슷한 심정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벽태산과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천추신의가 이러는 건 이동하는 내내 벽태산이 시도하고 있는 그 묘한 수련 때문이었다.
아니, 그걸 수련이라고 해야 할지도 의문이었다.
솔직히 신기하긴 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오는 내내 하루에 한 번씩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그건 굉장히 힘들면서도 기묘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이 수련 하는 건 아니었다.
일단 일침괴는 이틀에 세 번 죽어야 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죽는다.
그리고 연하린은 이틀에 한 번 죽는다.
이런 식으로 다들 죽음을 경험하는 횟수가 달랐다.
문제는 천추신의였다.
천추신의는 아직도 하루에 두 번을 꼬박 죽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천추신의가 저렇게까지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모자라다고 여겼기에 받아들였다.
죽은 뒤 다시 깨어날 때까지의 시간이 그 누구보다 길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천추신의의 시간이 가장 짧다. 죽음 이후, 그 누구보다 빨리 다시 깨어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두 번씩 죽으라고 하니 당연히 반발하는 것이다.
“죽으면 얼마나 힘든지 아시느냔 말입니다!”
천추신의의 말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죽으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당연하다. 아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겪은 건 결국 가짜 죽음이다. 그건 진짜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직 진짜 죽어보지도 않은 것이 말은 쉽게 하는구나.”
벽태산의 말에 천추신의는 입을 다물었다.
왠지 꼭 자기는 그런 죽음을 경험해본 것처럼 말하지 않은가.
문제는 진짜로 그런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건 벽태산의 말을 들은 모두가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설마 정말로 죽어 본 거 아닐까?’
벽태산의 몸이 굉장히 약했다는 걸 다들 안다. 아마 그때 진짜 죽음을 경험한 것 아닐까?
그 이후 이렇게 달라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을 성장시키려고 이런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과 많이 다른 추측이었지만, 다들 굉장히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추측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사실로 변하기 시작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천추신의에게 벽태산이 말했다.
“뭐가 달라졌느냐.”
“예?”
벽태산은 더 묻지 않고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얼른 답을 해보라는 듯이다.
“어······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몸도 마음도 점점 위축되어갔다. 왠지 자신이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벽태산이 주위를 슥 둘러보다가 연하린에게 시선이 멈췄다.
벽태산의 물음에 연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여기쯤에서 뭔가 묘한 힘이 느껴져요.”
연하린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분을 짚었다.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라 연하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 시선의 마지막에 천추신의가 있었다.
“오늘부터 싫은 놈은 안 죽어도 된다.”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마차로 들어가 버렸다.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유서연이었다.
그녀는 연하린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가씨, 그 묘한 힘이라는 것에 대해 질문이 있습니다.”
연하린이 배시시 웃었다.
“나도 아직은 잘 몰라. 그런데······ 뭔가 굉장한 것 같긴 해. 선천지기보다 더 대단할 것 같긴 한데······ 모르겠어. 뭐, 나중에 공자님이 알려주시지 않을까?”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확실한 건,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그 힘이 더 커지고 있다는 거야.”
그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벽태산이 죽음의 횟수를 바꾼 건, 어쩌면 내부에 자리 잡은 힘을 보고서 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들 고민도 하고 논의도 하면서 벽태산의 수련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소소가 조금 목소리를 높이며 나섰다.
“그런데요.”
소소의 목소리가 좀 컸기에, 그리고 거기에 내공도 담겨 있었기에 모두의 시선을 집중하기에는 아주 충분했다.
다들 소소를 바라보자, 그녀가 조금 소심한 표정으로 눈을 살짝 내리며 말했다.
“우리 공자님······ 삐지신 거 아니겠죠?”
다들 멍하니 소소를 바라봤다.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들어갈 때 한 말이 마음에 턱 걸린다.
지금까지 벽태산이 수련을 가지고 저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벽태산에게 있어서 수련이란, 그저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데 싫은 놈은 말라니. 전혀 벽태산답지 않았다.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천추신의에게 향했다.
천추신의는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났다.
그런 천추신의 옆으로 일침괴가 다가갔다.
“하여간 내가 언젠가 사고 한 번 크게 칠 줄 알았다.”
“아니, 내가 뭘······.”
천추신의는 말을 하다 말고 주위 눈치를 살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말을 하다가 만 건 이번이 거의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아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소, 솔직히 공자님이 이런 거 신경이나 쓰시겠소? 아마 그냥 잘 넘어갈 거요. 암, 우리 공자님이 어떤 분이신데.”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날 밤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저기, 공자님?”
천추신의는 불안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불렀다.
벽태산이 돌아보자 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저는 왜 안 죽이시는 겁니까?”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전부 한 번씩 죽었다. 심지어 벌써 깨어난 사람도 여럿 있었다.
한데 자신은 아직까지 그대로였다.
“죽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라. 내 손에 피 묻히기 싫으니.”
“아니, 그게······.”
진짜 죽여 달라는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벽태산은 천추신의를 힐끗 쳐다보고는 휙 돌아서서 마차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천추신의의 옆으로 일침괴가 다가와 낄낄 웃었다.
“신경 엄청 쓰시는 거 같은데?”
천추신의가 휙 고개를 돌려 일침괴에게 눈을 부라렸다.
평소 같으면 어디서 눈을 부라리느냐고 한 마디 했겠지만, 오늘의 일침괴는 더없이 관대했다.
“눈알 튀어나오겠다. 얼른 자자. 어이구,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아주 피곤하구나.”
천추신의가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끝
금월상단의 상단주인 평자림은 호위무사 다섯 명만 대동한 채 장사에서 가장 큰 기루인 단향루에 방문했다.
단향루에 들어서자, 단향루주가 직접 그를 안내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평자림은 당연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단향루주는 단향루에서 가장 은밀한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평자림의 말에 기다리던 사내, 혁련휘가 빙긋 웃었다.
“처리하던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먼저 왔습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기다리면서 심심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혁련휘의 양 옆에는 이곳 단향루에서 미모로는 첫 손에 꼽히는 기녀 두 명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방안에 은은히 퍼진 열기가 조금 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평자림이 혁련휘 앞에 앉자, 두 명의 기녀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 피차 없는 시간 쪼개서 나온 거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혁련휘의 말에 평자림이 담담히 말했다.
“요즘 귀찮은 일이 아주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제법 일이 고약하게 꼬인 모양이던데, 괜찮습니까?”
“아직까지는 견딜 만합니다. 돈은 좀 들었지만, 심각한 사고는 터지지 않았으니까요.”
혁련휘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서 손을 보태달라는 겁니까?”
평자림이 고개를 저었다.
“손을 보태는 정도라면 돈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전 그보다 좀 더 깊은 개입을 원합니다.”
“깊은 개입이라······.”
평자림이 혁련휘를 똑바로 바라봤다.
“무한에서의 일이 넘어졌다고 들었습니다.”
혁련휘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아깝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깔끔하게 손을 떼기로 했죠.”
솔직히 그냥 아깝다고 하고 말기에는 손실이 제법 뼈아팠다.
무한에 보냈던 녀석들은 제법 쓸 만했다. 한데 그놈들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으니 속이 이만저만 쓰린 게 아니었다.
“원인은 좀 파악하셨습니까?”
“하오문 말입니까?”
평자림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하오문이 아닙니다. 그 뒤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을.”
하오문의 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거야 누가 모르겠는가. 그 정확한 정체를 아직 몰라서 그런 것이지.
“그리고 그 무언가와 하오문의 중간에 벽태산이 있습니다.”
혁련비광이 워낙 철저히 상황과 정보를 감췄기에 아직 혁련휘에게는 벽태산이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금월상단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혁련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