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9)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이 정도로 함부로 말한 사람을 경험하는 건 처음이었다.
당장 달려들어 머리를 터트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참았다.
“넌 절대 곱게 죽이지 않는다. 제발 죽여 달라고 빌고 또 빌게 만들어주마.”
영서청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담아 말을 날렸다.
실제로 말에 영력을 담아 천추신의에게 쏘아 보냈다. 제대로 맞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큰 고통에 휩싸일 것이다.
영서청은 눈을 빛내며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천추신의는 갑자기 뭔가 기묘한 것이 온몸을 뒤덮자, 기겁을 해서 팔을 마구 휘저었다.
“으악! 으악! 으악!”
경박하게 팔을 휙휙 휘두르는 천추신의의 모습은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지켜보는 영서청은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천추신의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그를 감싸고 있던 영력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흩어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모여들긴 했지만, 그렇게 한 번 흩어질 때마다 영력의 양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내 모든 영력이 사라지자, 영서청의 얼굴은 더 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믿는 구석이 있었어.”
“뭔 개소리야?”
천추신의가 살짝 숨이 가빠서 호흡을 조절하며 영서청에게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서청은 천추신의의 분위기에 더 휘말려선 안 되겠다고 여기며 울컥 치밀어 오른 화를 꾹 억눌렀다.
“벽태산 뒤에 있는 놈이 너였느냐?”
영서청의 물음에 천추신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벽태산 뒤에 있긴 누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설혹 있다고 해도 그게 자신일 리 없지 않은가.
천추신의는 진지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아무래도 미친놈 같습니다. 더 상대하다간 분명히 물들 겁니다. 원래 지랄은 전염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서청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때까지 천추신의 옆에서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보던 일침괴가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저 영서청의 모습이 왠지 남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일침괴는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에이, 시발. 그지 같은 새끼.”
천추신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일침괴를 바라봤다.
“형님, 그 말을 왜 날 보고 하는 거요? 저기 있는 저 미친놈을 보고 해야지.”
일침괴가 또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벽태산이 손을 들어서 그걸 막았다.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끊는 건 벽태산의 몫이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입을 다물자, 벽태산이 영서청을 가만히 쳐다봤다.
“넌 무명에서 나온 것 같고······.”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정확히는 좌우를 포위하고 있는 흑의 무사들을 확인했다.
“저것들은 어디서 왔느냐?”
영서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그걸 왜 얘기해준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과 달리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왔다.
“구룡문이다.”
영서청의 대답에 벽태산 근처에 있던 화옥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금월상단이 보유한 세 문파 중 하나입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어쨌든 궁금한 걸 알았으니 됐다. 벽태산은 일행을 슥 돌아봤다.
다들 눈을 투지로 불태우며 벽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일렁였다.
“뭐, 어디 한 번 짓밟아 봐라. 앞에 세 놈은 내버려두고.”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알아서 양 옆으로 나뉘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구룡문의 무사들과 얽혀 들어갔다.
벽태산은 앞에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영서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벽태산은 이렇게 자신감을 가질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한데 혼자서 자신들 셋을 상대하겠다고 저렇게 다가오고 있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벽태산이 영서청 바로 앞에 도착했다.
벽태산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얼마 전 그 늙은이들이랑 비슷한 놈들이로구나.”
영서청은 그 말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다.
“늙은이들? 설마 월천득, 월천락을 말하는 건가?”
벽태산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 따위는 모른다. 아마 알았어도 기억에서 지워졌으리라.
“그래도 그 늙은이들은 피 냄새는 안 났는데 너희들한테서는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영서청이 심각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노려봤다.
그는 방금 벽태산이 한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월천락, 월천득과 비슷하다는 건, 무공 내력이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같은 계열의 무공을 익혔으니까. 또한 수련할 때 쓴 영약도 아주 똑같았다.
하지만 그 두 노인과 자신들 사이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력이었다.
영서청은 피에서 뽑아낸 막대한 영력을 받아들였다.
그는 혼자서 월천락과 월천득을 동시에 상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영서청과 함께 있는 두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그 정도 힘을 가졌다.
아무튼 벽태산은 그 영력의 근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피 냄새라는 말로.
말하는 것만 듣고 분위기만 봐서는 세상에 다시없을 고수 같았다.
하지만 영서청이 가진 모든 감각으로 파악해 봐도 영력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고, 심지어 단전을 중심으로 흐르는 기파도 평범했다.
“너,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영서청이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볍게 내지른 것 같지만 거기에는 내공과 영력이 적당히 버무려져 속도를 더했기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꽈득!
“커억!”
영서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움켜쥔 벽태산의 손목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분명히 자신이 먼저 손을 뻗었고, 벽태산의 목을 움켜쥐기 직전까지도 벽태산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한데 결과가 정 반대로 나왔다.
오히려 자신의 목이 벽태산의 손아귀에 잡힌 것이다.
영서청은 몸을 버둥거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에서 시작된 고통이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걸 본 영서청의 두 동료가 다급히 나섰다.
“그 손을 당장 놔라!”
두 사람이 벽태산의 양 옆을 파고들며 각각 옆구리와 허벅지를 노리고 손과 발을 뻗었다.
쩌정!
벽태산이 남은 한 손을 장난처럼 휘둘러 두 사람의 공격을 쳐냈다.
쿠당탕!
두 사람은 그 가벼운 일격에 나가 떨어졌다.
너무나도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군 다음, 얼른 일어서려고 했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팔다리와 허리가 부러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크으윽.”
지독한 통증이 올라왔다.
벽태산은 손에 들고 있던 영서청을 휙 던졌다.
쿠당탕!
영서청은 자신의 동료가 있는 곳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벽태산은 슬슬 움직여 따로 쓰러진 한 놈을 발로 휙 차올려 세 사람을 결국 한데 모았다.
그들 앞으로 가서 가만히 내려다보던 벽태산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영서청을 비롯한 세 사람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벽태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사실 자신들이 왜 이렇게까지 두려워하고 있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벽태산이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강자라는 건 방금 겪었기에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의 주군도 감히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지만, 주군 앞에서 이런 식으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저 경외할 뿐이지.
하지만 만일 생각을 바꿔서 주군과 싸울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굉장히 이상했다.
하지만 영서청은 그런 생각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너희들이랑 비슷한 놈을 봤던 기억이 나는구나. 이제야 익숙한 이유를 알겠어.”
벽태산의 말에 영서청과 나머지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랑 비슷한 두 놈을 봤다.”
영서청은 아까 벽태산이 한 말 때문에 저 두 놈이라는 것이 월천락과 월천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그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놈들이 괘씸하게도 자폭을 하더구나.”
그제야 영서청은 벽태산이 누굴 말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혁련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혁련소를 무한에 보냈는데, 전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혁련휘가 제대로 정보를 전해주지 않아서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차라리 좀 더 정확히 알아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혹시 너희도 가능하느냐?”
영서청은 얼른 대답했다.
“못 한다.”
자신은 못 한다. 하지만 남은 두 사람은 좀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자신은 자폭할 때 폭발의 위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영서청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상대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남겨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당하고 나서 다시 보니, 자폭은커녕 자폭 할아버지가 와도 벽태산을 어찌 할 수는 없을 듯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아니지.’
영서청의 시선이 벽태산 뒤쪽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자들에게 향했다.
‘대체 이놈들 정체가 뭐야?’
벽태산 일행이 구룡문과 싸우는 광경에 영서청은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구룡문이 어떤 놈들인가.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저 정도 수의 구룡문을 상대로는 승산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었다.
한데 지금 그 구룡문이 고작 저런 자들을 상대로 팽팽하게 싸우고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벽태산 일행의 구성을 확인했다.
아마 저기서 싸우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분명히 벽태산의 시비일 것이다.
한데 그 시비들이 왜 저렇게 잘 싸운단 말인가. 게다가 손발을 내뻗을 때마다 쏟아지는 저 힘은 무엇이고 말이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서 싸우는 저 여자는 또 뭐란 말인가.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홀로 구룡문도 열한 명과 싸우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중 하나는 사룡 같은데?’
구룡문을 이끄는 아홉 용 중 하나인 사룡이 분명했다.
영서청은 그들의 싸움을 멍하니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도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서청은 벽태산의 등을 가만히 보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몸을 슬그머니 움직여봤다.
어디 부러지거나 찢어진 곳은 없었다. 아까와 달리 팔다리, 허리가 잘 움직인다. 그리고 내공도, 영력도 아무 문제없이 원활했다.
여전히 벽태산의 등이 보였다.
영서청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의 눈이 결연하게 빛났다.
끝
구룡문과 싸우는 벽태산 일행 중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은 연하린이었다.
연하린이 벽태산에게 배운 무공인 쇄혼마검은 영력과 굉장히 궁합이 좋았다.
애초에 쇄혼마검을 수련하는 과정이 자신의 혼을 부수는 것에서 시작하기에 영력에 닿기가 쉬웠다.
그런 연하린에게 벽태산의 수련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첫 날 바로 영력을 받아들였고, 그 뒤로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급격히 영력이 증가했다.
거기에 천추신의를 통해 벽태산이 새로이 발견한 수련법 덕분에 몇 배나 되는 영력을 단기간에 얻을 수 있었다.
영력을 다루는 능력도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모든 능력을 쇄혼마검을 통해 쏟아내니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지금 연하린이 싸우는 상대는 사룡을 포함한 구룡문의 무사 열한 명이었다.
구룡문도들의 무기는 창이었는데, 각각의 길이가 달라서 처음 싸울 때는 정말 까다로웠다.
그리고 사룡의 창은 마치 뱀으로 만든 것처럼 창대에 비늘 문양이 가득했는데, 무슨 재료를 쓴 것인지 강도가 엄청났다.
게다가 창두 끝이 두 갈래로 살짝 갈라져 있어서 뱀의 혀처럼 만들어 놓았다.
창을 찌를 때마다 창에서 뱀이 쉭쉭거리는 듯한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는데,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였다.
쉬쉭!
쩡!
사룡의 창을 연하린이 가볍게 쳐냈다.
연하린은 충돌의 힘을 이용해 검을 반대쪽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슈각!
마침 가까이 다가왔던 구룡문도의 허벅지가 얕게 베이며 피가 퍽 튀었다.
그러자 다른 구룡문도 둘이 달려들며 창을 내질렀고, 그 두 사람의 틈으로 사룡의 창이 은밀하게 파고들었다. 이런 식으로 은밀함을 요구할 때는 예의 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쩌저정!
연하린은 빠르게 검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냈다.
계속 이런 식이었다.
연하린은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사룡을 비롯한 구룡문도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구룡문도들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새겨지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연하린의 체력이 떨어져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결국 연하린의 승리로 마무리 될 것이다.
“믿을 수가 없구나. 우릴 이 정도로 몰아붙일 수 있는 여자가 있을 줄이야.”
사룡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설사 십대고수라도 자신과 부하 열 명만 나서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실제로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한데 저런 어린 여자 하나를 상대로 밀리고 있으니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사룡은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연하린을 노려보며 빈틈을 살폈다.
특유의 합격진 덕분에 시간을 끄는 건 문제 없을 듯했다.
‘좋아. 누가 먼저 쓰러지나 보자. 내공이 무한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룡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다스렸다.
구룡문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내공이었다. 내공을 한꺼번에 쏟아내기는 어려워도 그 내공을 이용해 싸움을 질질 끄는 건 아주 능숙했다.
사룡과 구룡문도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연하린은 그걸 보고서 그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녀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인내력 싸움으로는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었다.
* * *
연하린이 혼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적을 상대한 덕분에 나머지 일행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나머지 적의 수가 서른한 명인데, 그 중에서 한 명만 실력이 월등했다.
그렇다고 구룡 중 한 명은 아니었고, 사룡의 사제쯤 되는 자였다.
그자 역시 혼자서 싸우지 않고 열 명이나 되는 구룡문도들과 함께 싸웠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하는 건 장각우와 육태구였다.
이 두 사람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