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
천추신의는 좀 신기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사실 벽태산은 냉정히 따지면 무례했다. 지금까지 천추신의인 자신에게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저러는 게 당연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겨 저런 태도를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천추신의는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았다.
‘몇 번 있었지. 몇 번.’
벽태산이 다시 물었다.
“제자는 열 명도 넘게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넷을 더한다고? 욕심이 과한 거 아냐?”
“오늘 같이 온 의원들은 제자가 아니오. 그저 날 도와주는 분들일 뿐이오.”
“그런 거 같지 않던데?”
천추신의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상하 관계가 아주 확실하던데? 그 정도면 제자 혹은 부하지. 안 그래?”
어디 부정할 테면 부정해 보라는 듯 씨익 웃으며 말하자, 천추신의의 표정이 조금 더 굳었다.
‘듣던 것과 너무 다르군.’
사실 천추신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벽태산은 그리 특별할 거 없는 인물이었다.
절맥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 뛰어난 재능을 가지는데, 벽태산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조사와 실제가 언제나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달랐던 적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내가 공자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느냐 아니겠소?”
“아니지. 그건 부차적인 거고.”
천추신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절맥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병 고치는 일이 부차적인 거라고?
“진짜 중요한 건, 내 것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지.”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사나워 보였는데, 천추신의는 그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요. 내 의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오.”
벽태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걔들이 네 의술을 왜 배워?”
천추신의가 뭐라고 대꾸하려 했지만, 벽태산의 말이 더 빨랐다.
“솔직히 의술 가르치려고 데려가는 거 아니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더 이상 날 모욕하지 마시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걔들 내 아이들이야. 그런데 내가 체질도 모를 거 같아?”
천추신의의 표정이 확 굳었다.
“설마······ 체질을 알고서 일부러 들이신 거였소? 내가 듣기로는 저들이 스스로 찾아와 몸을 의탁했다고······.”
벽태산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쟤들 데리고 뭘 하려는지가 더 중요하잖아. 안 그래?”
“다시 말하지만, 더 이상 절 모욕한다면······.”
“재료가 좋지?”
벽태산의 말에 천추신의가 입을 꽉 다물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거칠게 흔들렸다.
하지만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재료라니. 사람을 어찌 재료로 쓴단 말이오.”
“나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내가 언제 사람을 재료로 쓴다고 했어? 그냥 재료가 좋냐고 물었을 뿐인데.”
천추신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공자, 장난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오.”
“장난? 지금 내가 장난 하는 걸로 보여?”
천추신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불안했다. 대체 벽태산이 뭘 알고 있는지, 또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기서 죽이는 건 안 돼. 그럼 밤에 몰래 와서 죽일까? 아니야.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지. 그러다가 걸리면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져.’
계산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일이 처음인지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시기가 좋지 않았다. 만일 이와 비슷한 일이 일 년 전에 벌어졌다면,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천추신의가 고민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좀 신경이 쓰이더라고. 어쨌든 내가 허락해서 내 것이 된 아이들인데, 그걸 빼앗아 가려는 놈들이 나오면 귀찮잖아? 난 조용히 살고 싶은데 말이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천추신의를 위아래로 슥 훑어봤다.
“무공은 별로네? 밖에 있는 놈들도 그렇고······ 의술 말고는 딱히 쓸모가 없겠는데?”
벽태산의 중얼거림을 듣자마자 온몸의 소름이 올올이 돋아났다.
‘진짜 위험한 놈이다.’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섣부른 행동을 해선 절대 안 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면······ 난 이만 물러가도 되겠소?”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왜 어설픈 척 하고 그래? 패 들췄으면 결과를 봐야지.”
천추신의가 긴장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결과라 하심은······.”
“제일 쉬운 건 죽이는 거지. 쉽고 간단해. 다만 뒤처리가 좀 귀찮고.”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뭐······ 열세 놈 죽이기엔 충분하겠네.”
상대가 무림맹 장로쯤 된다면 모를까. 그 이하의 수준이라면 죽이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몸이 약간이나마 좋아졌으니까.
다만, 한 번 움직이고 나면 후유증이 심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천추신의는 갑자기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마치 호랑이 앞에 선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게 살기라고?’
천추신의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최소한 수만 명은 죽여야 간신히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살기를 저놈 혼자서 품고 있었다.
자신은 그 살기에 짓눌린 것이고.
그는 살면서 이런 살기를 딱 한 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갑자기 밀물처럼 뇌리를 꽉 채웠다.
천추신의는 자신도 모르게 넙죽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벽태산이 뺨을 긁적였다.
“내 것을 노린 놈을 살려준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긴 했는데······.”
천추신의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와 비슷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당시의 일이 떠올라서 하마터면 소변을 지릴 뻔했다.
물론 그때는 당사자가 아니라 죽는 놈을 옆에 서서 지켜보는 입장이었지만.
그놈은 처참하게 죽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변을 지릴 정도로 무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절대 죽기 싫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다.
“뭐, 귀찮은 일을 떠맡을 놈도 필요하긴 하지.”
천추신의는 몸을 옥죄던 살기가 줄어들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미소를 지은 벽태산이 보였다.
어찌나 무섭게 웃는지 떠올랐던 기억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시발 뭐야. 웃음까지 똑같은 거 같아.’
자신의 기억에 남은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안 그러면 기절할 거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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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금벽장의 총관인 가무진은 놀란 표정으로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안 놀라겠는가.
“금벽장에 의탁하시겠다고요?”
천추신의가 그 말을 바로잡았다.
“벽태산 공자님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총관이 생각하기엔 둘 다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벽태산이 금벽장, 아니, 금벽상단의 사람 아닌가.
그런 벽태산을 위해 일한다는 건 다시 말해 금벽상단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총관의 상식 안에서는 그랬다.
“무조건 환영합니다.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우리 금벽상단이 비록 천하 구석구석으로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웬만큼 유명한 상단보다 훨씬 내실이 튼튼할 겁니다. 대우는 정말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천추신의가 고개를 저었다.
“벽태산 공자께서 알아서 해주기로 하셨습니다.”
천추신의의 말에 총관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건 선긋기다.
총관은 일단 한 발 물러났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둘째 공자님 밑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내리신 결정인 모양이로군요.”
“뭐······ 겸사겸사······ 사실 공자님을 치료하려면 제법 오래 걸릴 겁니다. 한두 달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 몇 년 동안은 제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공자님을 위해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신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무튼 따로 사례비는 충분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는 돈입니다. 어차피 드리려고 예산까지 짜 놓은 돈이니 그저 받으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총관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벽태산이 금벽상단 소속인데, 아무리 선을 그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무튼 조만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머무실 곳은 정말 이곳으로 괜찮겠습니까?”
“그래야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긴, 모든 역량을 집중하신다고 하셨으니······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물론 그렇게 말하는 천추신의의 속은 좀 달랐다.
이제 자신은 벽태산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여기서 머무는 것이 괜찮은 게 아니라, 반드시 여기서 지내야 한다.
총관이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가자, 천추신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였을까.
‘고작 금 백 냥 때문에······!’
물론 금 백 냥이 고작이라고 할 만한 돈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 자금줄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금 백 냥의 유혹을 어찌 버리겠는가.
일을 굉장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고.
설마 여기서 그런 무서운 놈을 만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나저나 대체 정체가 뭐지? 그냥 단순한 상단 공자님 같지는 않은데······.’
벽태산과의 만남을 떠올리던 천추신의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 * *
“공자님,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가?”
“천추신의 말입니다.”
천경완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천추신의가 데려온 열두 의원에게 일일이 금제를 건 것이 바로 천경완이었다.
그는 벽태산의 지시에 따르면서도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금제를 건다고 하는데도 순순히 협조하던 열두 의원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도저히 그의 상식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긴, 공자님과 제대로 엮인 이후, 상식 안에 있던 적이 없긴 했지.’
벽태산은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한 천경완에게 말했다.
“왜? 천추신의는 빼놔서?”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한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천추신의만 빼 놓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하려면 확실히 해라, 이거냐?”
“아니, 제 말은······.”
천경완은 뭔가 변명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벽태산의 말 대로였다.
예전 같았으면, 천추신의 일행에게 금제를 건 것 자체를 문제 삼았을 것이다.
한데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게 금제하지 않은 한 사람을 걱정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직접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예? 공자님께서요?”
“네 수준으로는 아직 안 되니까.”
천추신의는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다. 혈도를 비트는 일 따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한 혈도를 위장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고작 천경완의 수준으로 천추신의에게 금제를 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왜 제게······.”
직접 할 수 있다면 벽태산이 금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할 텐데 말이다.
“나 아직 환자야. 제대로 힘 한 번 쓰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천경완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 숙였다.
‘공자님께서 아프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픈 사람 같지가 않았으니까.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그래도 좀 아는 놈이라서 그런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하더구나.”
천추신의는 뛰어난 의원답게 자신의 몸에 어떤 금제가 가해졌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또한 그것을 결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잠시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대체 벽태산이 어떻게 그 금제법을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한데······ 앞으로 공자님을 치료하실 분인데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혹 독한 마음이라도 먹으면······.”
“병은 기루에 다니다보면 낫게 되어 있어. 그놈이 할 일은 날 치료하는 게 아니야.”
천경완은 솔직히 좀 황당했지만, 벽태산의 말을 그냥 받아들였다.
“하면 왜 굳이 그를 붙잡으셨습니까?”
“겸사겸사.”
천추신의를 붙잡은 이유 중, 병이 나았을 때의 핑계가 이 할쯤이었다.
천경완이나 소소, 단영처럼 자신의 것이 된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기루에 다니다보니 병이 나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머지 팔 할이 바로 천추신의와 함께 있는 열두 의원이었다.
“그놈들 그냥 평범한 의원이 아니거든.”
의아함을 가득 담은 천경완의 시선이 벽태산에게 꽂혔다.
* * *
금벽상단의 주인인 벽태수의 부인, 채미령은 무한 구석에 있는 작은 상단의 여식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금벽상단을 올려다보며 자랐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그녀의 목표가 되었다.
자신이 금벽상단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기에 그 주인의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금벽상단에 그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금벽상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면 진짜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아니면 주인을 손아귀에 넣거나.
채미령이 선택한 것은 아들이었다. 아들인 벽제혁이 금벽상단의 주인이 된 다음, 자신이 아들을 좌지우지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 일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오늘 들려온 소식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천추신의가 금벽장에 머물기로 했다고요? 정말로 벽태산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던가요?”
“예.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그 시간 동안 공자님의 몸이 버틸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채미령이 입술을 짓씹었다.
“천추신의는 한곳에 오래 머무는 의원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그러겠지요?”
“그게······ 천추신의가 둘째 공자님을 모시기로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