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1)
벽태산은 영서청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의 양옆에 있는 두 사람을 덥석 덥석 집었다.
그리고 하늘 위로 휙휙 던져 버렸다.
그저 가볍게 던진 것 같은데 정말 엄청난 높이까지 쭉쭉 올라갔다.
그렇게 위로 올라갈 만큼 올라가 다시 떨어지기 위해 딱 멈춘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은 성대하게 폭발했다.
내공과 영력, 진원진기가 깃든 육편과 피가 폭발과 함께 사방을 장악하며 퍼져 나갔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손을 위로 슬쩍 뻗었다.
콰아아아아아!
황금토시로 증폭한 영력이 하늘을 그대로 휩쓸어버렸다.
폭발로 인해 넓게 퍼져 쏟아져 내리려던 육편과 피가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영서청은 그 광경을 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일을 하려고 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대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 대체 왜 그랬단 말인가.
구룡문도들을 일행에게 던져준 건, 보아하니 수련의 일환이었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한 일은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저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자신과 동료를 쓸어버렸으면 끝인데 말이다.
“폭발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영서충이 억지로 끄집어낸 이유는 그 정도였다.
벽태산은 영서충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성큼 다가갔다.
“딱 알맞게 익었구나.”
씨익 웃은 벽태산이 영서충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혼백을 쑥 뽑아냈다.
지저분한 것들이 쫙 빠져서 그런지 혼백이 아주 깔끔했다.
벽태산은 혼백을 살살 돌려 구웠다.
“끄으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무수한 상념이 쏟아져 나왔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이렇게 스스로의 의지로 혼백을 쥐어짜니, 사념을 가리고 있던 혈흔도 함께 빠져나갔다.
예전에 피에 잠겨 구분할 수 없던 사념의 장면이 이젠 제법 명확하게 보였다.
다만 몇 마디를 더 섞어서 혼백을 좀 더 흔들어 놨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해서 효율이 좀 떨어지긴 했다.
마지막에 영서충이 생각한 것이 폭발에 관한 것이어서 그런지 그에 관한 기억들이 제법 많았다.
벽태산은 혼백을 살살 돌려 태우며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사념을 뽑아냈다.
비명과 함께 쏟아진 사념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본격적으로 혼백을 태웠다.
막대한 사념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중에는 굉장히 선명한 사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피에 잠긴 듯한 장면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영서청이 영력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괜찮았던 모양이다. 혼백을 쥐어짜는 능력도 제법이었고.
그게 아니었다면 피의 흔적이 이렇게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벽태산이 영서청의 혼백을 타우는 사이, 구룡문과의 전투도 끝났다.
장각우와 육태구가 맞서 싸우던 구룡문도 중에서 가장 강한 사룡의 사제를 연하린이 참살하면서 전황이 확 기울어 버렸다.
남은 자들만으로는 장각우와 육태구를 감당하는 것도 버거웠다.
거기에 연하린이 끼어들고 천경완과 유서연까지 끼어들었으니 싸움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야 말로 순식간에 싸움이 끝났다.
마흔두 명이나 되는 구룡문도 중에서 살아남은 건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극심한 부상을 입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자가 넷이었고, 나머지 한 명도 이대로 방치하면 며칠 이내에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하지만 이쪽에는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있다. 아무리 심한 부상을 입었어도 간당간당하게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었다.
일행이 사로잡은 적을 들고 벽태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장의 정리는 잠시 몸을 피했다가 동료들을 더 데리고 온 하오문도들이 맡았다.
그들은 능숙하게 싸움의 흔적을 지우고 시체를 불태웠다.
잠시 옮겨 놓았던 마차들도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왔다.
일행이 모이자, 벽태산이 그들을 슥 둘러봤다.
벽태산의 시선이 일행이 입은 상처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지나갔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벽태산의 시선이 그곳에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잠시 일행을 살피던 벽태산이 말했다.
“일단 적당한 장소로 이동한 다음 치료부터 하도록.”
그 말을 남긴 벽태산은 마차에 올라탔다.
나머지 일행도 얼른 각자 원래 탔던 마차에 올랐다.
포로로 잡은 다섯 구룡문도는 하오문이 알아서 챙겼고.
잠시 후, 마차가 출발했다.
전장에서 멀어질수록 피 냄새가 점점 희미해졌다. 갈대밭을 절반쯤 지나자, 더 이상 전장의 향기가 나지 않았다.
마차는 갈대밭을 모두 지나고 제법 넓은 공터가 나올 때까지 달렸다.
* * *
공터를 빙 두르듯 마차를 세우고 노숙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제법 격렬한 전투를 치렀으니 지금부터 충분히 쉬도록 지시했다.
평소보다 이동거리가 훨씬 짧긴 했지만, 어차피 별로 급할 것도 없으니 여유롭게 쉬기로 한 것이다.
곳곳에 모닥불이 타올랐다.
벽태산의 시비들이 요리를 준비하려 했지만, 벽태산이 그러지 못하게 했다.
식사는 간단히 육포를 구워 먹는 정도로 때웠다.
그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나서서 치료를 시작했다.
급한 사람부터 순서대로 치료했는데, 가장 급한 사람은 사로잡은 포로들이었다.
그 다음으로 천경완과 유서연, 육태구와 장각우가 비슷하게 다쳤다.
시비들 중에도 다친 사람이 있었지만, 워낙 가벼운 부상이라서 사실 별다른 치료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벽태산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지켜보는데 천추신의나 일침괴가 그걸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부상을 치료한 뒤에는 다들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아무래도 치열한 전투를 치른 뒤니, 긴장감도 풀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피로가 쌓인 것이다.
오늘 싸움에서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딱 한 명, 벽태산뿐이었다.
벽태산은 공터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마차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고, 밖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하오문도들이 공터와 거리를 좀 두고 빙 둘러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새삼 거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태산이 다시 태어난 뒤 한 모든 일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한 일 중 하나였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갑자기 흥취가 일어났다.
벽태산의 기분에 따라 주변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기운을 지켜보던 벽태산이 증혼마공을 일으켰다.
흥취가 자연스럽게 수련으로 이어진 것이다.
예전 천마이던 시절에도 흔히 벌어지던 일이었다.
증혼마공을 수련하던 벽태산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짙은 농도의 영력에 빙긋 웃었다.
이 근처에 영력이 많은 것이 아니었다. 이건 다른 곳에서 흘러오는 영력이었다.
벽태산의 증혼마공이 영력을 빨아들이는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다른 지역에 농축된 영력이 이리로 흘러오는 것이다.
이 막대한 영력은 아까 싸웠던 곳에서 오고 있었다.
영력으로 싸워서일 수도 있고, 영서청이 혼백을 쥐어짜서 뽑아낸 영력을 터트려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제법 많은 영력을 받아들인 벽태산은 그것을 천천히 소화했다.
수련이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둠이 여명에 밀려나는 중이었다.
수련에 집중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벽태산은 수련을 마무리 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쪽을 쳐다봤다.
새벽같이 깨어난 사람이 있었다.
“어라? 공자님, 설마 안 주무신 겁니까?”
누구보다 일찍 깨어난 사람은 천추신의였다.
그걸 보고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어제 설렁설렁 싸우더니 별로 피곤하진 않았던 모양이구나.”
“아이구, 공자님. 설렁설렁 싸우다니요. 제가 어제 몇 번이나 명의의 하사품을 내렸는지 아십니까?”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벽태산에게 좀 더 다가갔다.
“그래도 이제 다들 한 몫 하니 기분 좋으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애쓰신 보람이 느껴지시죠?”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걸음마쯤 뗐더구나.”
“에이, 하여튼 공자님도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그냥 대견하다, 잘했다. 보람이 느껴진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는데 꼭 그렇게 걸음마니 뭐니 하셔야겠습니까?”
“걸음마니까 걸음마라고 한 거다.”
“예,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천추신의를 가만히 쳐다봤다.
천추신의는 그제야 분위기가 좀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어이구,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안 깨네. 공자님, 전 가서 조금만 더 눈을 붙이고 오겠습니다. 헤헤.”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잘 필요 없다. 어차피 여기서 죽을 테니까.”
“어이구, 무슨 농담을 그리 과격하게 하십니까. 우리 형님도 아니고.”
벽태산은 천추신의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천추신의가 실 끊어진 연처럼 풀썩 쓰러졌다.
벽태산은 잠시 쓰러진 천추신의를 쳐다보다가 다시 여명의 풍광을 즐겼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났고, 분주하고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가 끝나고 다시 마차가 출발할 때가 되어서야 천추신의가 간신히 눈을 떴다.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끝
“형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뇨?”
“내가 뭘.”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깨워야 할 거 아뇨.”
“죽어 있었잖아. 죽은 사람 깨웠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깨워?”
“아니, 사람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 무슨 큰일을 하겠소?”
“그게 겁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소? 형님, 실망이오.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을 줄은 몰랐소.”
“아니, 그거랑 인정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그래도 최소한 밥은 먹여야 할 거 아니오! 내가 지금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아쇼!”
일침괴가 멍하니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저 개소리를 지껄인 게 전부 배가 고파서였다는 말 아닌가.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었다.
“형님, 그 주먹 다시 푸시는 게 좋을 거요. 나 이제 안 참소. 명의의 하사품 맛을 보고 싶지 않으면 그 주먹 다시 활짝 펴는 게 좋을 거요.”
물론 일침괴는 그 어설픈 협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꽝!
일침괴의 주먹이 천추신의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끄악!”
천추신의가 머리를 감싸며 마차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분명히 피한다고 피했는데,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마차에 함께 타고 있던 육태구와 장각우가 그 광경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천추신의와 일침괴에 대한 선입견이 전부 깨졌다.
두 사람 모두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의였다.
그래서 고고한 인품과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가지고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저러고 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경직되거나 무거워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줄 알았다.
한데 계속 함께 있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
육태구가 품에서 손바닥만 한 육포 몇 조각을 꺼냈다.
“배고프시면 이거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에 든 육포가 사라졌다.
천추신의가 싹 낚아챈 것이다.
“고맙네. 내 나중에 또 다쳐도 아주 말끔히 고쳐주지. 아, 이참에 등판에 난 상처 좀 다시 봐줄까? 흉터 남으면 좀 그렇지?”
“아니, 괜찮습니다. 저야 흉터 몇 개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니 흉터가 생기면 안 되는 분들 먼저 봐주십시오.”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뭐, 그럼 그러든가. 이 육포는 잘 먹겠네. 이런 건 또 언제 챙겨둔 건가? 나중에도 이런 일 있으면 또 부탁하겠네. 미리미리 잘 챙겨두게나.”
그렇게 뻔뻔한 말을 쏟아낸 천추신의는 허겁지겁 육포를 뜯기 시작했다.
육태구가 금벽상단과 하오문을 통해 구한 육포였기에 맛과 식감이 아주 뛰어났다.
“오, 별미인데? 굉장히 맛있어.”
천추신의는 감탄을 거듭하며 육포를 열심히 씹어 삼켰다.
그걸 본 일침괴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움직여 천추신의에게 바짝 다가갔다.
“야, 혼자 먹을 거냐?”
천추신의가 육포를 감싸듯 감추며 몸을 휙 돌렸다.
일침괴가 천추신의의 등을 보며 인상을 썼다.
“벼룩의 간을 빼 드쇼. 밥도 자신 양반이 배고픈 아우의 육포 쪼가리를 꼭 빼앗아야겠소?”
“빼앗긴 누가 빼앗아. 그냥 혼자 먹을 거냐고 물어본 것뿐이다. 먹을 거 가지고 치사하게 진짜.”
천추신의는 대꾸 대신 육포를 입에 넣고 와구와구 씹었다.
“아우, 뭘 어떻게 말린 건지 맛이 진짜 끝내주는구나.”
쩝쩝 소리가 크게 울렸다.
“더럽게 소리 좀 내지 말고 먹어!”
“하, 안 줬다고 구박하는 거요? 밥도 드신 분이?”
일침괴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한 방이 더 필요할 듯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육태구가 다시 품에서 육포 몇 조각을 꺼냈다. 이제 남은 것이 별로 없었지만, 노인들이 육포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기가 좀 난감했다.
“여기 또 있으니······.”
육태구의 손에서 육포가 샥 사라졌다.
“야! 그걸 왜 또 네놈이 가져가!”
육태구의 손에서 육포를 쓸어간 사람은 천추신의였다.
배수도 저 정도 손놀림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눈 한 번 깜짝한 순간 육포가 사라지는 신기를 보여줬다.
“내 육포 내놓으라고!”
일침괴의 외침에도 천추신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웅크린 채 육포를 쩝쩝 먹었다.
일침괴가 육포를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천추신의는 그야말로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일침괴의 손을 피해 마차 안을 눈부신 속도로 누비고 다녔다.
“야! 싸울 때 그렇게 좀 해!”
일침괴는 천추신의를 잡으려고 빠르게 손을 놀렸다. 하지만 천추신의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일침괴의 손을 쏙쏙 피해냈다.
짜증과 화가 차곡차곡 쌓이자, 일침괴는 좀 더 확실하게 손을 쓰고자 했다.
더욱 많은 내공을 담아 비쾌하게 손을 내뻗었다.
천추신의가 그걸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마지막 남은 육포 쪼가리를 입에 쏙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