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6)
물론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시비들의 실력이 비교적 뒤쳐지고, 적의 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처음에야 당황해서 균열이 일어나겠지만, 결국은 다시 균형을 이룰 것이다.
그 사이에 원래 있던 여섯 사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상황이 결정되리라.
“잘 봐둬라.”
벽태산의 말에 연하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잘 보고 있어요. 제가 얼마나 부러움을 참고 있는 줄 아세요?”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벽에 막힌 것 아니었느냐? 그걸 깰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잘 봐라.”
연하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벽태산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담담했고, 여전히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하아. 답답해.”
“원래 벽에 막히면 그렇다. 그러니 잘 지켜봐라.”
연하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황천무관 쪽을 내려다봤다.
그녀가 지나가듯 툭 물었다.
“공자님도 답답할 때가 있어요? 아, 벽에 막히면 답답하다고 하셨지?”
“보통은 벽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지나가서 답답함을 겪어본 적이 없다. 아, 마지막에 잠깐 그럴 뻔했는데······.”
벽태산을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죽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것 역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죽음과 동시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지금은 그 깨달음을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한 번도 벽에 막히지 않았다.
지금도 벽태산은 꾸준히 강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연하린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벽태산을 바라봤다.
어떻게 저런 말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벽태산이 말을 이었다.
“내가 답답함을 느끼는 건 저런 것들을 볼 때다. 발전이 없지 않느냐.”
연하린이 흠칫 놀라 다시 황천무관에서의 싸움을 내려다봤다.
잠깐 균열이 일어났던 싸움판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아까와 달라진 건, 적이 차륜전을 펼치는 부분이 하나 더 늘어났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걸 본 연하린의 뇌리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는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공자님. 저······ 이제 가도 되나요? 싸워도 되나요?”
안절부절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연하린의 모습을 벽태산이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생채기 난 놈들은 각오하라고 전해라.”
“네!”
연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크게 대답했다.
일순 전각 꼭대기 층이 밝아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연하린은 그대로 창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가 황천무관의 담을 넘었다.
벽태산은 싸움터에 난입하는 연하린의 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 저 싸움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 * *
“후욱. 후욱. 아, 진짜 더럽게 힘드네.”
천추신의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어찌나 격하게 싸웠는지 호흡이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겼잖아. 그럼 됐지. 허억. 허억.”
천추신의 옆에 앉은 일침괴가 말했다. 그 역시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얼른 호흡이 정리되지 않아 힘겨워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근처에 앉아 다들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멀쩡한 사람은 그래도 연하린이었다.
연하린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는 가장 나중에 난입했지만, 가장 열정적으로 싸웠다.
영력을 최대한 덜 쓰고 싸우고자 했기에 더 힘들었다.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영력 때문에 벽을 깨기가 어려워진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공자님 말씀대로 아까 잘 지켜봤어야 하는 건데······.’
연하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좀 아쉬웠다.
아까는 벽태산과 딴 얘기를 하느라 싸움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싸움에 집중했을 때는 이미 균형 상태에 돌입해서 얻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벽을 깰 수 있었을까?’
연하린은 최근 수련을 할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땅 꺼지겠다. 뭐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냐?”
천추신의가 슬그머니 참견했다.
연하린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별 거 아니에요.”
천추신의가 그럴 리 없으니까 얼른 털어놓으라고 말하려는데, 연하린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어 먼저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공자님이 생채기 나면 각오하라고 했는데, 깜빡했네요.”
“뭐? 그런 중요한 걸 왜 이제 말해!”
천추신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정신없이 몸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몸에 생채기라도 하나 난 게 없는지 확인했다.
아까 싸울 때도 솔직히 생채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하지 못했다.
굉장히 방어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 지지부진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좀 있었다.
“으악! 이거 뭐야!”
갑자기 천추신의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천추신의의 허벅지 뒤쪽에 길게 베인 상처가 있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옷이 피에 물들었고, 찢어지기까지 했다.
천추신의가 전전긍긍하다가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얼른 품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그동안 천약방과 함께 꾸준히 연구해서 기존에 쓰던 금창약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난 금창약을 만들어냈다.
천추신의는 상처에 열심히 금창약을 펴 발랐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처가 바로 사라질 리 없었다. 아무리 금창약의 효과가 뛰어나도 상처가 아물려면 적당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천추신의의 모습을 아무도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볼 수 없었다.
다들 심각하게 자신의 상처를 찾았다.
당연히 다들 한두 개씩 상처를 입었다.
아무 상처도 없는 사람은 연하린이 유일했다.
이렇게 많은 적과 그렇게나 치열하게 싸웠는데 상처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방어적으로 싸웠다고 해도 말이다.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천추신의가 금창약을 모두 바른 다음 다른 사람에게 남은 약을 넘겼다.
일침괴도 자신이 준비한 금창약을 상처에 바르고 동료들에게 남은 약을 건넸다.
다들 금창약을 정성껏 상처에 발랐다.
이들의 걱정은 공포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벽태산이 자신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어떤 말도 안 되는 수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공포 말이다.
그때 벽태산이 그곳에 천천히 들어섰다.
다들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벌떡벌떡 일어나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일행에게 다가가 그들을 슥 둘러봤다.
“다쳤구나.”
그 말을 들은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그러니 맞기 전에 박살을 냈어야지.”
다들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맞기 전에 박살 내라니. 말이 쉽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공자님이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천추신의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진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한테 그 말을 해서 뭐 하겠는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벽태산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약간 공허했다.
“맞기 전에 때리는 수련이 필요하겠구나.”
벽태산의 말에 모두 부르르 떨었다.
끝
나헌탁은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온 부하들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금월상단은 금월상단이로군. 이 와중에도 방비가 아주 대단해.”
나헌탁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하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여기 있는 부하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너희가 전부더냐.”
“예. 나머지는······ 전부 당했습니다.”
나헌탁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구나. 괜히 내 욕심 때문에······.”
“아닙니다. 저희도 이번이 아니었다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나헌탁이 살짝 미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자, 다른 부하들도 저마다 입을 열었다.
“빼돌린 문서들은 그때그때 상황과 위치에 맞게 임시 은신처에 감춰뒀습니다.”
“몇몇은 은신처 자체가 발각되는 바람에 은신처 째로 폐기했습니다.”
은신처 째로 폐기했다는 건 그곳에 보관하던 벽력탄을 이용해 쫓아온 놈들과 함께 자폭했다는 뜻이다.
“지금 금월상단이 발칵 뒤집혀서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중입니다. 우리도 서둘러야 합니다.”
임시 은신처를 쉽게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한다면 기껏 얻어낸 정보를 다시 빼앗길 것이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통해 얻어낸 것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이만 몸을 돌보고 당분간 푹 쉬도록 해라.”
부하들이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그들이 집무실에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나헌탁과 함께 이곳 각월객잔을 운영하는 비천단의 조장이었다.
나헌탁은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애들 보내서 임시 은신처에 보관한 문서들 거둬들이게.”
“그게 이번에 금월상단에서 빼돌린 것들입니까?”
“맞네. 어느 정도 답답함이 해소될 걸세.”
“예.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지금 금월상단 놈들 독이 바짝 올랐으니까 단단히 주의하라 이르게.”
“염려 마십시오. 다들 경험 많은 녀석들입니다.”
나헌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 각월객잔에 있는 비천단원들은 경험이 많다.
“그나저나 어르신, 이번에 새로 들인 녀석들의 피해가 너무 큰 거 아닙니까? 그 녀석들 키우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그래도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마음이 좋지 않네.”
사내가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데 어르신, 금벽상단에서 오셨다는 그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믿을 만한 분입니까?”
나헌탁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네.”
“예? 모른다고요? 한데 어찌 그런 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다른 객잔도 전부 참여하게 하셨잖습니까!”
“교와 관계된 분이라는 건 확실하네.”
“정말입니까?”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마신교는 지금 현천진에 갇혀있다.
그러니 교의 인물이 그 외부에 있으려면 비천단처럼 애초에 외부에서 활동하던 조직이거나, 아니면 임무나 혹은 다른 이유로 외부에 나와 있던 사람이어야 한다.
한데 사내가 알기로 그런 사람은 딱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벽태산은 결코 그 두 명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분과 함께 왔던 자들 중에서 천추신의가 있었네.”
“천추신의라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육태구가 함께 있더군.”
육태구는 사내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육태구는 자신을 모르겠지만.
월영단주가 아끼는 자였기에 육태구는 비천단 내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자였다.
물론 육태구를 직접 보고 그가 육태구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사실 육태구를 보고 바로 알아차린 나헌탁이 어찌 보면 더 대단했다.
또한 천추신의가 비천단 소속이라는 걸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내도 사실 몰라야 하지만, 나헌탁과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놀랍군요. 천추신의에 육태구까지 휘하에 두고 있다니.”
“놀랍지. 아마 직접 만나면 더 놀랄 걸세.”
그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 나헌탁이 보기에 사내의 안목 정도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일이 끝나면 이리로 오기로 했습니까?”
니헌탁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분께서 원하시면 그리 하지 않겠나?”
사내는 당황한 눈으로 나헌탁을 바라봤다.
평소의 나헌탁이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오시지 않겠나? 장사 내에서 우리 객잔만큼 지내기 좋은 곳을 찾기 어려울 테니까.”
나헌탁은 벽태산이 그냥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직 터질 일들이 남았으니까. 예를 들면 장보도라든가.
사내도 더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이만 물러가기로 했다.
“하면 전 금월상단에서 빼돌린 문서가 도착하면 다시 오겠습니다.”
사내가 물러갔다.
나헌탁은 가만히 뒷짐을 지고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붉은 물감을 붓으로 칠한 것처럼 노을이 쫙 펼쳐져 있었다.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는데······.’
그렇게 얼마나 노을을 감상했을까. 객잔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헌탁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드디어 벽태산이 돌아왔다.
* * *
혁련휘는 은밀히 금월상단에 방문했다.
그의 표정은 한껏 굳어 있었다.
금월상단의 내원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그곳을 지키던 무사 몇 명이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사 한 명이 혁련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가 혁련휘를 데려간 곳은 내원의 연못 위에 지어진 누각이었다.
혁련휘는 누각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누각 위에서 혁련휘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금월상단주인 평자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