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9)
아마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정확히 무명의 조직원과 빈민들을 구분해서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의 관리는 하오문에서 맡기로 했다.
아무리 벽태산이 싹 정리했다고 하지만, 혹시 숨어 있던 자가 있거나,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실제로 무명의 조직원임에도 남았을 수도 있다.
하오문도들이 교묘히 그곳에 섞여서 그런 모든 것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촌을 암중에서 장악해 향후 적절히 써먹을 패로 만드는 중이었다.
오늘 이렇게 천추신의에 나헌탁까지 해서 그곳에 가는 이유는 하오문으로부터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빈민촌을 암중에서 장악하려는 자들이 생겼는데,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여러 패거리로 나뉘어 있었다.
하오문에서 파악하기로는 장사로 몰려든 외부 세력들 중 일부였다.
무림맹이나 흑련 같이 큰 조직에서는 아무리 유용하다고 해도 빈민촌을 뒤집어서 그들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그 아래에 있는 어설픈 놈들일 텐데, 워낙 여러 패거리로 갈려 있어서 하오문이 함부로 드러내서 그들과 대립하는 건 좀 곤란했다.
현재 하오문은 빈민들과 섞여서 그곳을 장악하려는 자들의 뒤를 은밀히 캐고 있었다.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간다고 해서 당장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가서 상황을 보면서 차근차근 방안을 생각할 계획이었다.
겸사겸사 가는 도중에 장사의 분위기도 한 번 돌아보고 말이다.
“아······ 느낌이 안 좋은데······.”
천추신의가 중얼거렸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대로에 사람이 우글거리는 와중에 그 길의 끝에 막 나타난 사람이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그는 방두립이었다.
“야, 뛰어.”
천추신의가 달리기 시작하자, 나헌탁이 따라서 뛰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그렇게 우글거리는데도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빈틈을 쏙쏙 빠져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두 사람은 어느새 빈민촌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추신의는 도착한 다음에도 계속 불안한 듯 뒤를 확인했다. 몇 번을 확인해도 방두립은 없었다.
아마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 괜찮은 모양이군. 들어가자.”
천추신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빈민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이 그 뒤를 따라갔다.
* * *
“왜 그러십니까?”
방두립은 자신에게 묻는 부단주를 힐끗 쳐다봤다.
천검단에는 부단주가 세 명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무한에 간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은 그 중 한 명이었다.
다른 한 명의 부단주는 지금 천검단의 조장들을 데리고 적당한 숙소를 찾는 중이었다.
“느낌이 묘해서.”
“예?”
“왠지 쫓아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할 일을 미루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지.”
부단주는 그냥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솔직히 방두립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까 그 사람들, 누군지 좀 알아봐.”
“예. 알겠습니다.”
부단주가 대답한 뒤에도 방두립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천추신의가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 *
빈민촌에 들어간 천추신의와 나헌탁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하오문도와 비천단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이쪽에서 연락을 했던 하오문도를 만나는 동안 각자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들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것이다. 애초에 그들만 이곳으로 보내려고 했었다.
천추신의가 갑자기 변덕을 부려 같이 가겠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나헌탁도 이렇게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고.
두 사람은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여기 조용히 온 것도 아닌데,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지?”
천추신의의 말에 나헌탁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오, 진짜. 내가 뭐만 하면 일이 꼬이네.”
천추신의는 인상을 구겼다.
“이거 함정 맞는 거 같지?”
“예. 확실합니다. 아무래도 여기를 감시하던 하오문도들도 전부 당한 것 같습니다.”
“누구일 것 같으냐?”
“무명이겠지요.”
천추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너무 공자님 덕분에 승승장구했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긴장감이 생기겠는가.
모든 긴장감은 벽태산에게서 비롯된다.
벽태산과 함께 하면서 천추신의를 조금이라도 긴장하게 만든 사람은 오직 벽태산뿐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빈민촌 중심부에 있었다.
그리고 사방이 술렁이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우리,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나헌탁이 담담히 말했다.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를 통해서 알고 싶은 것도 많을 테고, 미끼로 써먹을 수도 있으니, 목숨만큼은 소중하게 다뤄주지 않겠습니까.”
“그게 더 무섭다. 목숨 빼고 나머지는 함부로 한다는 말이잖아.”
아마 몸도 마음도 정신도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무명이라는 놈들은 반강시를 다루고 증혈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그러니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도 아주 다양하고 지독할 것이다.
“그동안은 우리 공자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시곤 했는데, 오늘은 안 되겠지?”
천추신의는 굉장히 후회스러웠다.
괜히 변덕을 부려서 나오는 바람에 이 꼴이 되었다.
그리고 나헌탁에게도 좀 미안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각월객잔에서 문서나 뒤적이고 있었을 것 아닌가.
주변이 술렁이는 것 같더니 검붉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 냄새가 확 풍기는 듯했다.
실제로 혈향이 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그랬다. 마치 다들 피에 몇 번 절였다가 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에 유독 피 냄새가 짙은 놈이 하나 있었다.
그놈은 옷도 다른 자들과 달랐다.
다른 자들의 옷은 전부 천으로 만들었는데, 유독 그 놈의 옷만 가죽을 촘촘하게 덧대 갑옷처럼 만들어 놨다.
천추신의가 그놈을 보며 인상을 썼다.
“더럽게 위험해 보이네.”
“더럽지는 않소.”
사내가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옷차림이나 특유의 혈향 짙은 분위기만 아니라면 굉장히 매력적인 사내였다.
“천추신의는 알겠는데, 같이 온 분은 정체가 어찌 되시오? 각월객잔의 주인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그 외에는 좀 모호해서.”
나헌탁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저 일개 객잔주인일 뿐이오.”
“에이, 일개 객잔주인이 그렇게 고수일 리 없지 않소. 보아하니 객잔에서 일하는 점소이들 중에도 제법 고수가 섞여 있던데.”
사내의 눈에서 순간 뇌전이 번득였다.
“자, 피차 힘 빼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봅시다. 정체가 뭐요? 왜 벽태산이랑 같이 있는 거요? 하오문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나헌탁과 천추신의의 표정을 살피다가 이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이, 역시 나한테는 이런 게 안 어울려.”
사내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입가가 위험하게 일그러졌다.
“그냥 다 부수고 죽여 버리면 끝나는데 말이야.”
사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천추신의와 나헌탁을 거칠게 휘감았다.
그걸 본 천추신의가 나헌탁에게 귓속말을 했다.
“야, 튀어.”
두 사람은 즉시 돌아서서 냅다 달렸다.
사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내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꽝!
바닥이 움푹 파이며 사내의 몸이 벼락처럼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사내의 손이 천추신의의 등에 가볍게 닿았다.
꽈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천추신의의 몸이 앞으로 휙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천추신의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더니 튕기듯 몸을 일으켜 그 힘을 이용해 또 한 번 쭉 달려갔다.
사내는 폭발 때문에 잠시 멈춰서 천추신의를 노려보다가 다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끝
천추신의의 목표는 빈민촌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헌탁의 목표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벽태산에게 알리는 것이었고.
그래서 세운 계획이 혈향을 풍기는 더럽게 위험한 사내는 천추신의가 맡고, 나헌탁은 빈민촌을 탈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 계획은 생각보다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일단 사내가 너무 강했다.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려고 해도 그럴 때마다 사내의 몸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두 사람의 경로를 바꿔 버렸다.
또한 사내의 부하들이 사방에 포진한 채로 두 사람을 호시탐탐 노리며 함께 따라다녔다.
도망칠 경로를 대부분 막고 있으니 함부로 몸을 빼기가 어려웠다.
그 와중에 천추신의는 사내의 손에 세 번이나 추가로 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이 아니었다면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내가 두 사람을 사로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진짜 쥐새끼 같은 놈이로구나. 도망치는데 일가견이 있어.”
사내가 조롱하듯 말하며 손에 기운을 모았다.
천추신의는 도망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색깔로 따지면 네놈이 더 쥐새끼 아니야? 우리처럼 파란 쥐가 어디 있다고. 쥐새끼들은 다 너처럼 거무죽죽해.”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천추신의와 나헌탁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
사내의 이마에 살짝 핏줄이 돋았다가 사라졌다.
그런 사내의 귓가에 천추신의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 말은 왜 이렇게 많아? 말 많은 놈들은 주변에서 다들 싫어해. 너 솔직히 부하들한테 인기 없지? 저 봐, 저 봐. 방금 저쪽에 있던 네놈 부하 표정 봤어? 내말에 고개까지 끄덕이던데?”
“닥쳐라!”
도발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사내의 몸에서 난폭한 기운이 폭발했다.
꽈앙!
굉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쭉 늘어나더니, 어느새 천추신의 뒤에 바짝 붙었다.
사내의 주먹이 정확히 천추신의의 척추를 노리고 쏘아져나갔다.
천추신의는 기겁해서 몸을 살짝 비틀었다.
꽈앙!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며 천추신의가 휙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몇 번 반복된 일이었기에 천추신의는 아주 능숙하게 균형을 잡고 다시 달렸다.
여전히 나헌탁과 갈라지지 못했지만, 그리고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버틸 수는 있었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천추신의를 쫓아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이 저릿저릿했다.
“이상한 놈이야.”
벌써 몇 번이나 공격에 성공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폭발이 일어났다.
자신이 일으킨 폭발은 처음 딱 한 번뿐이었다. 나머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상했다.
방금 그 폭발은 정말 강력했다. 그런데도 천추신의는 겉보기에는 아주 멀쩡했다.
반면 자신은 공격하는 도중에 폭발했기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당장은 괜찮지만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사로잡으려는 것이 욕심이었나?’
죽이고자 한다면 좀 더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슬슬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고작 저 둘을 가지고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이거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지 않은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사내의 기세가 또 한 번 변했다. 그가 어느새 검을 뽑은 것이다.
천추신의와 나헌탁은 그 순간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잘 벼린 칼끝을 미간에 갖다 대는 것 같았다.
사내의 검이 초승달 같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부드럽게 갈랐다.
검기인지 검강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호한 기운이 기다란 호를 그리며 천추신의와 나헌탁의 뒤를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아니, 그렇게 될 뻔했다.
꽈아아아아앙!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사방으로 미친 듯이 기의 폭풍이 몰아졌다.
방금 나타난 자가 혈향 짙은 사내의 일격을 막아내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천추신의와 나헌탁은 비틀거리다가 균형을 잡고 그 자리에 멈췄다.
나헌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천추신의의 눈도 똑같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나헌탁과 나헌탁이 형님이라 부른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형님이라면······ 검귀?”
나타난 사내, 검귀 나충길이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왔다 갔더구나.”
검귀의 말에 나헌탁이 어느새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을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검귀가 피식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놈들 좀 정리하고 다시 얘기하자.”
검귀가 사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내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이내 두 사람이 그대로 격돌했다.
* * *
“오늘 무림맹 천검단이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천검단주 방두립이 직접 그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벽태산은 가만히 앉아 영력을 가다듬으면서 화옥의 보고를 들었다.
이제 슬슬 혼백을 뽑아 태울 때가 되었다.
그동안 각종 영약을 비롯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의 혼백을 태워 얻은 영력을 모두 정리해 받아들였다.
혼백을 태우지 않고 증혼마공을 수련해도 성장이야 하겠지만,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