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0)
사실 예전 천마이던 시절에도 그저 증혼마공을 수련하는 것만으로 영력을 쌓지는 않았다.
그때야 가리지 않고 혼백을 싹 태워서 받아들였으니 굳이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좀 달랐다.
그때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강력한 영력을 쌓고 있기 때문에 그냥 증혼마공만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벽태산의 성에 안 찰 뿐.
그러는 와중에도 화옥의 보고가 이어졌다.
“흑련과 오대세가 쪽에서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내일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은 무림맹과는 달리 좀 급이 떨어지는 자들을 보냈습니다.”
무림맹의 천검단과 비교하려면 흑련은 묵검대 정도는 와야 격이 맞다.
하지만 흑련은 이번 일을 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구색을 맞추고 혹시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하는 정도였다.
척 봐도 금월상단이 짜 놓은 판에서 놀아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면을 생각하면 무려 천검단주를 보낸 무림맹이 오히려 특이했다.
그 뒤로도 자잘한 보고가 이어졌다. 천검단주가 직접 왔다는 것 말고는 썩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그렇게 보고를 듣던 벽태산이 불쑥 물었다.
“수련은 잘 되고 있느냐?”
수련 얘기에 화옥이 즉시 대답했다.
“예. 최근 연하린 소저와 대련 위주로 수련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호오.”
벽태산의 눈이 반짝였다.
“나중에 한 번 보고 싶구나.”
화옥이 부끄럽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실 아직 연하린과 대련하기에는 자신이 많이 모자랐다.
연하린의 성장 속도는 그야 말로 무시무시했다. 대련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수준이 달라질 정도로 빨랐다.
“지금은 네가 좀 모자라겠지만, 그럼에도 둘 모두에게 분명히 득이 된다.”
벽태산의 어조에 깃든 확신에 화옥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명심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큰일입니다! 빈민촌에 갔던 신의와 나 대협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벽태산이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활짝 열었다.
비천단원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채 엎드려 있었다.
천추신의, 나헌탁과 함께 빈민촌으로 갔던 자였다.
“넌 치료부터 해라.”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화옥에게 턱짓을 했다.
“가자.”
화옥이 얼른 앞장서서 빈민촌으로 향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각월객잔을 나서자,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일침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공자님! 그 멍청이가 함정에 빠졌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안다. 너도 따라올 거면 따라오든가.”
일침괴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벽태산 옆에 붙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걱정, 한심함과 초조함이 뒤엉켜 굉장히 복잡했다.
“하, 이 등신 같은 놈! 그러니까 거길 왜 혼자서 가.”
* * *
쩌저저저저저저정!
검귀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검을 맞대고 있는 사내의 실력이 상당했다.
물론 아무리 그렇더라도 검귀의 상대는 아니었다.
다만, 함께 있는 사내의 부하들이 문제였다.
처음에는 검귀가 사내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사내의 부하들이 증혈단을 먹었다.
스무 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일제히 증혈단을 먹고 기운을 터트리자, 기의 폭풍이 사방에서 휘몰아쳐 난장판이 되었다.
검귀는 강하게 검격을 쏟아내 상대를 뒤로 물러나게 한 다음, 거리를 좀 더 벌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천추신의를 힐끗 쳐다본 후, 나헌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긴 나 혼자가 편하겠다. 넌 이만 객잔으로 돌아가라.”
나헌탁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천추신의가 먼저 나섰다.
“역시 우리는 있어봐야 방해만 될 게 뻔하니 빠져주는 것이 편하겠지요? 우린 이만 갑니다.”
천추신의가 나헌탁의 팔을 잡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장내에 있는 누구도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전부 검귀에게만 집중했다.
검귀는 피식 웃으며 주위를 슥 둘러봤다.
“내가 우습게 보이긴 한 모양이야.”
검귀의 검에서 새파란 빛이 흘러나와 검신을 촘촘하게 감쌌다.
그는 그러면서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어디쯤 갔는지 끊임없이 확인했다.
지금 쓰려는 검법은 상당히 강력하고 파괴력이 강하다. 그러니 주변에 아군이 있으면 좀 곤란했다. 아군까지 신경 쓰면서 쓸 수 있는 검법이 아니었다.
한데 두 사람이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다.
검귀는 힐끗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확인했다. 그리고 안색이 확 변했다.
두 사람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문제는 자신이 그자의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이 주변에 기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서 기척 파악이 어렵다고 하지만, 천추신의와 나헌탁의 기척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저 자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좀 충격이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희미하게 기척이 느껴졌다.
아니면 그자가 더 이상 기척을 죽이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그자의 뒤로 유령 같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그렇게 생겨난 자들이 수십 명이었다.
혈향이 더욱 짙어졌다.
새로 나타난 자들에게서 풍기는 혈향이 아니라, 검귀와 싸우던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혈향이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피 냄새에 검귀가 굳은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사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허술한 줄 알았어? 어차피 너희는 다 죽어. 저놈들만 뚫으면 될 거 같지? 과연 그럴까?”
검귀의 표정이 더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저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긴, 지금 이곳 장사는 복마전과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확실하게 하려면 더 강한 놈을 더 많이 데려왔을 것이다.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다시 슬금슬금 검귀에게 다가갔다.
“형님, 아무래도 쉽게 못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나헌탁의 말에 검귀가 차분히 대꾸했다.
“널 찾으러 오는 길에 네가 데리고 있던 녀석 하나를 내보냈다.”
그 말에 천추신의가 반색했다.
“그거 정말이오? 확실히 살아서 나간 거 맞소?”
천추신의가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자 검귀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살아서 나갔소.”
천추신의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버팁시다.”
나머지 두 사람이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천추신의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공자님 오시면, 시발 다 뒈질 줄 알아.”
검귀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 공자님이라는 분, 확실히 오시는 거요? 그리고 오시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 맞소?”
천추신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니까 버틸 궁리나 하쇼.”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웠다.
앞을 보니 검귀와 싸우던 사내가 비웃음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아까 저놈한테 맞을 때마다 영력이 뭉텅뭉텅 잘려 나가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솔직히 영력이 그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위기 상황에서 뭔가 벽 하나를 넘은 기분이었다.
천추신의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영력을 손에 쥔 돌멩이들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시간을 끄는 데에는 힘을 쓰는 것보다 입을 터는 것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천추신의는 일단 되는 대로 말을 뱉었다.
“야, 솔직히 말해. 여기 있는 게 전부지? 안 온 놈들 없는 거지?”
천추신의의 말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바보 멍청이로 보이나?”
사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증혈단을 먹은 자들, 그리고 나중에 유령처럼 등장한 자들까지 전부 달려들었다.
마지막으로 짙은 혈향을 풍기는 사내가 검을 휘두르며 검귀에게 돌진했다.
천추신의는 일단 돌멩이부터 냅다 던졌다.
콰콰콰콰콰!
사방으로 돌멩이들이 쏟아져 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그냥 피할 수는 없었다.
다들 검을 휘둘러 돌멩이를 막아냈다.
꽈과과과과과광!
검이 돌멩이를 쪼개는 순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주변을 휩쓸었다.
아무도 죽지는 않았지만 돌진하려던 기세를 확 죽일 수 있었다.
“으아아악!”
천추신의가 괴성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달려드는 적을 향해 마구 주먹과 발을 쏟아냈다.
나헌탁도 목숨을 내던진다는 각오로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은 제법 강했다.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검귀는 적들 중 가장 강한 세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세했다.
하지만 얼른 싸움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검귀의 눈빛이 초조해졌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이들을 처리하기 전에 천추신의와 나헌탁이 먼저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에서 길쭉한 대침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야! 아직 살아있냐!”
그 외침을 들은 천추신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오! 저 형님은 왜 여기까지 따라왔어!”
말은 그렇게 해도 말투에는 반가움이 물씬 묻어 있었다.
끝
싸움이 잠시 멈췄다.
검귀, 천추신의, 나헌탁이 모여 있었고,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들을 포위한 상태였다.
포위망을 구축한 자들은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피 냄새를 풍기는 놈들과 유령 같이 존재감이 흐린 놈들, 그리고 강력한 투기를 뿜어내는 놈들.
어느 하나 만만해 보이는 자들이 없었다. 세 무리 전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각각의 무리를 이끄는 자들이 힘을 합해 검귀와 싸웠다.
그리고 한창 싸우는 와중에 쏟아진 대침이 싸움을 멈춘 것이다.
딱히 누군가를 노리고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대침 하나하나에 깃든 힘이 상당해서 그냥 무시해버릴 수는 없었다.
대침이 쏟아진 자리가 제법 교묘해서 싸움을 계속 이어가기가 껄끄러웠기도 했고.
아무튼 그렇게 싸움이 멈추고 나자, 사람들의 관심이 방금 대침을 날린 쪽으로 향했다.
포위망 바깥쪽, 담장 위에 서 있는 노인이 보였다.
바로 일침괴였다.
일침괴를 본 천추신의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니, 형님! 설마 혼자 온 거요?”
“그럼 시발, 내가 누구랑 같이 와야 하는데?”
일침괴의 말에 천추신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아오! 혼자 오면 어쩌자는 거요! 공자님을 어떻게든 데리고 왔어야지!”
“하여간 저건, 이 형님이 이렇게 와줬으면 감사하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입 놀리는 거 봐라.”
천추신의가 답답해서 한 마디 더 하려는데, 일침괴가 먼저 말했다.
“공자님 거기 계시잖냐. 넌 머리도 멍청한 게 이제 눈도 멍청해졌냐?”
“아오! 진짜 계속 장난할 거요?”
천추신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몰린 걸 보고는 흠칫 놀라 그들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 공자님! 언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벽태산은 이미 그곳에 있는 세 사람 사이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천추신의가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저 본지 얼마나 되셨다고 이러십니까. 한······ 사흘 됐나?”
벽태산은 천추신의의 말에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저 말을 하면 안 된다. 아직 저놈은 자신이 천마라는 걸 모를 테니까.
벽태산이 오랜만이라고 한 사람은 천추신의가 아니라 검귀 나충길이었다.
한편 검귀는 벽태산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 익숙함의 정체를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벽태산은 검귀와 천추신의, 나헌탁을 슥 둘러봤다.
아직 용케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천추신의의 영력이 제법 활발하게 움직이는 걸 보고는 눈빛이 잠깐 번득였다.
“벽을 부쉈구나.”
“예? 아, 헤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천추신의는 벽태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변화를 그저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바로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흐음.”
벽태산은 천추신의를 유심히 살폈다.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력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영력을 확인하는 것도 자주 해서 능숙해지면 결국은 수련에 도움이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벽태산의 물음에 천추신의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공자님,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저놈들부터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놈들 슬슬 움직일 것 같은데······.”
벽태산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추신의는 마치 무형의 기운이 온몸을 꽉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무형의 기운이 무언가를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벽태산의 기분에 따라 내려앉은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오, 무서워.’
차마 소리 내서 그 말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벽태산은 천추신의에게서 시선을 떼고 사방을 둘러싼 놈들을 쳐다봤다.
“꿇어라.”
벽태산이 한 마디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