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3)
화옥도 괜찮고 하오문주인 백화루주도 괜찮지만, 이 두 사람은 그래도 계책을 세운다기보다는 정보를 다루는 쪽에 훨씬 가까웠다.
“어딘가에 괜찮은 놈이 있을 텐데······.”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속도를 올릴 때가 되었다.
끝
“뭔가······ 느낌이 싸합니다.”
선수에 서서 앞을 바라보고 있던 금월상단의 행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표국의 표두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뱃길 자체는 굉장히 넓은 곳이었다. 배 열 척이 나란히 지나가도 충분할 정도였다.
한데 강가는 물론이고 강 안쪽까지 길쭉한 갈대가 촘촘히 나 있었다.
확실히 수적들이 기습을 한다면 좋은 지형이긴 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누가 감히 금월상단의 선단을 습격하겠습니까.”
오래전에는 금월상단의 선단을 덮치던 수적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 수적들의 끝은 좋지 못했다.
일단 달려든 놈들을 전부 박살 낸 후, 그들을 고문해서 본거지를 알아낸 다음, 아예 모든 걸 부수고 태워버렸다.
수채에 있던 자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렸고.
금월상단은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과하게 손을 썼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차츰 수적들 사이에서 금월상단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금월상단의 깃발을 달고 있는 것만으로 수적들이 오히려 피해가곤 했다.
앞을 가로막는 수적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적당히 용돈이나 좀 챙겨주면 알아서 물러났다.
가끔은 그런 수적들이 호위를 도와주기도 했다.
물론 필요는 없었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금월상단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방심했다면 지금처럼 각 배마다 청무방, 상천문, 구룡문의 무인들을 열다섯 명씩이나 배치하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두 개의 표국에서도 상당한 전력을 데려왔다.
일단 각 표국에서 표두를 두 명씩 배치했다.
그리고 표두마다 서른 명의 표사를 휘하에 두고 있었다.
보통 표행을 나갈 때, 표두 한 명에 표사 스무 명 정도로 구성을 한다.
그들이 이번 일에 얼마나 큰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에 운반해야 하는 표물은 정말 귀중한 물건이었다.
두 표국 다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금월상단의 힘까지 동원한 것 아니겠는가.
행수의 양옆에 각각 두 명의 표두가 서 있었다.
“미리 좀 확인을 해볼 수는 없겠습니까?”
행수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표두들은 그런 행수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이런 큰 선단을 책임지는 행수들은 항상 걱정을 달고 살았다.
특히 최근 금월상단의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더했다.
행수쯤 되는 위치에 있다 보면 상단의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위기가 이번 상행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걱정이 컸다.
“앞쪽으로 정찰을 보내겠습니다. 작은 배 몇 척에 표사 다섯 정도씩 태워서 보내면 충분할 겁니다. 여차하면 배를 버리고 탈출하면 되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표두가 다른 배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선단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배에서 작은 배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섯 척의 배가 좌우 앞쪽으로 출발했다.
배들이 갈대를 파고들자, 갈대가 어찌나 높은지 그들을 전부 삼켜버렸다.
그래도 갈대가 흔들리는 것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기에 다들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데 그러던 순간, 갈대의 움직임이 갑자기 격렬해졌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싸한 긴장감이 선단 전체를 감쌌다.
그 순간, 갈대밭에서 낡고 커다란 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총 열다섯 척의 배였는데, 그냥 보기에도 수적들이었다.
그들은 강을 가로막은 채 멈췄다.
표두 하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평범한 수적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표두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공을 담아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에서 나오신 분들이시오! 설마 우리 금월상단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건 아닐 듯한데!”
수적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우린 교룡채에서 나온 분들이시다!”
“어디 교룡채 말이오! 내가 알기로 장사 인근에는 교룡채가 없는데?”
표두가 아는 교룡채만 총 스물두 개였다.
강을 따라 가다보면 곳곳에서 교룡채라는 이름을 단 수적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교룡채라는 이름을 가진 수적들은 대부분 규모가 컸다.
수가 많긴 해도 아무나 쓸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새로 문을 열었다. 이 근처에 있던 놈들은 이제 전부 우리 아래에 있다고 보면 된다!”
수적의 말에 표두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런 큰일이 있었는데 아직 금월상단에서 그걸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문제였다.
상단의 정보력에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아무리 요즘 사정이 안 좋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데?’
표두는 수적들을 노려봤다.
주변 수적들을 통합했다면 한 번쯤 힘을 과시하고 싶긴 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로 금월상단을 고른 건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적은 수적일 뿐이니까.
“적당히 챙겨줄 테니 길을 열어주는 게 어떻겠소? 굳이 서로 피 볼 필요는 없을 듯한데?”
“뭐, 우리도 굳이 피를 안 보면 좋긴 하지. 그래도 명색이 금월상단인데 푼돈이나 던져주진 않겠지? 어디 성의를 한 번 볼까?”
수적의 말에 표두들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리고 각 배에 타고 있던 표사나 무인들의 얼굴에 분노가 살짝 깃들었다.
표두가 옆에 있던 행수를 바라봤다. 행수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피를 볼 생각이 없었다. 행수가 뒤쪽으로 눈짓을 하자, 뒤에서 대기하던 호위무사들이 안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한 커다란 주머니를 가져왔다.
그 안에는 금전, 은전, 그리고 여러 장의 전표가 들어 있었다.
전표를 굳이 섞은 이유는 저들이 전표를 쓴 순간, 그걸 역추적 할 방도가 생기기 때문이다.
각 전표에는 특별한 표식이 있었고, 그 표식을 가진 전표를 쓴 순간, 그걸 쓴 자에게 감시가 붙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저들의 수채가 어디 있는지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알아낸 수채의 수가 제법 많았다.
표두가 주머니를 받아 앞으로 나선 수적을 향해 휙 던졌다.
상당한 내공을 담았기에 날아가는 힘과 속도가 굉장했다.
하지만 수적은 그것을 너무나 가볍게 받아냈다.
표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보통 놈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적이 주머니 안을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이거······ 금월상단이 우리 교룡채를 아주 우습게 본 모양인데?”
표두가 그 말을 듣고 외쳤다.
“욕심이 너무 크면 화를 부르는 법이오!”
“도둑놈처럼 날로 먹으려 해도 화를 부르는 법이지. 이것과 똑같은 주머니를 두 개 더 넘기면 물러가겠다!”
표두가 발끈했다.
“저 미친놈이?”
하지만 행수가 손을 저어 그를 말렸다.
“더 줍시다.”
“예? 하지만 행수님!”
“느낌이 정말 안 좋아서 그럽니다. 아무래도 뭔가 일 하나가 터질 것 같습니다.”
표두들이 그런 행수를 살짝 못마땅하게, 아니, 한심하게 바라봤다.
물론 눈빛에 드러났던 감정을 얼른 지웠다. 이런 감정을 드러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어쨌든 상대는 금월상단의 행수였다. 이런 큰 규모의 선단을 책임지는 행수의 권력은 정말 대단했다.
자신들 같은 일개 표두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선단의 뒤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수상한 배 한 척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외침이 또 이어졌다.
“접근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들은 저 멀리에서부터 맹렬한 속도로 거의 날아오다시피 하는 배 한 척을 볼 수 있었다.
* * *
“시발, 더럽게 무섭네.”
일침괴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들을 태운 배가 말 그대로 화살처럼 날아가는 중이었다.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데, 가끔 허공에 슬쩍 뜬 채로 쭉 나아가곤 했다. 그 때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뭐가 무섭소? 재밌기만 한데.”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나아가는 것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만일 말을 타고 달리거나, 경공을 써서 달린다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배의 선수에 서 있기에 만끽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넌 참 단순해서 좋겠다.”
“뭐라는 거요? 나보다야 형님이 훨씬 단순하지. 내 머리가 형님 머리보다 한참 위인 거 같은데?”
“이 미친놈이 어디서 유언비어를 퍼트리려고 그래? 머리야 내가 위지.”
일침괴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동자를 슬쩍 돌려 그들의 뒤쪽 평상에 앉아 있는 벽태산을 힐끗 확인했다.
“넌 배가 빨리 가는 것만 생각하고, 이걸 그렇게 만드는 공자님의 힘은 생각 안 하냐? 그게 안 무서워?”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그쯤 되면 걱정을 억지로 만드는 거 아뇨? 공자님이 우리 편인데 뭐가 무섭소? 오히려 든든하지. 난 저기 보이는 저 배들이 이제 어떻게 될지가 기대되는데?”
일침괴가 시선을 돌려 저 멀리 시야에 막 나타난 금월상단의 선단을 바라봤다.
“뭐······ 솔직히 기대되긴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배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갔다.
금월상단의 선단이 시야에 들어온다 싶은 순간 이미 급격히 가까워져 이제는 굳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선단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금월상단의 선단이 어수선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선단보다 더 먼 곳에 포진한 배들이 보였다.
“어라? 저거 수적 아니오?”
“그러게? 금월상단이 제법 수적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알기로는 그렇소. 수적들이랑 일만 생기면 끝까지 추적하고 지독할 정도로 보복을 하는 놈들이라서 웬만하면 수적들이 안 건드릴 텐데?”
하오문과 비천단이 수적으로 위장해서 길을 막기로 한 것은 화옥과 벽태산 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었고, 말을 안 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일도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러다가 충돌하겠는데?”
천추신의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 슬슬 속도를 줄여줬으면 하는데, 왠지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진짜로 더 빨라지고 있었다. 조금씩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다.
“으아악! 공자님! 부딪힙니다! 다 죽는다고요!”
천추신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물론 부딪힌다고 죽지는 않는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데 고작 배끼리 충돌했다고 죽겠는가.
그저 익숙지 못한 방식으로 빠른 속도를 경험하니 조금 무서워졌을 뿐이다.
한데 이쯤 왔으면 슬슬 속도를 줄여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었다.
선수에 서 있던 다섯 사람 중, 화옥이 얼른 움직였다.
그녀는 벽태산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었기에 바람을 다스리고 균형을 잡으며 움직이는 것이 좀 까다롭긴 했지만, 화옥은 능숙하게 그것을 해냈다.
화옥이 벽태산 뒤로 자리를 옮긴 걸 본 나머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화옥과 빠르게 가까워지는 금월상단의 선단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화옥이 있는 곳으로 냅다 달려갔다.
정확히 그 순간, 벽태산 일행을 태운 배가 금월상단의 선단을 덮쳤다.
꽈과과과과과광!
벽태산의 배에 스치기만 해도 지나칠 정도로 과격하게 배가 부서졌다.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당연히 배에 타고 있던 자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신기한 건, 무공을 익힌 자들, 즉, 내공이 있는 자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내공이 없는 보통 사람은 그저 온 몸을 벽에 쾅하고 부딪힌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말이다.
벽태산의 배는 선단의 중심부를 가르고 지나가지 않았다.
선단의 우측을 쭉 가르고 지나갔다.
우측에 포진해 있던 십여 척의 배가 산산조각 났다.
그렇게 쭉 나아간 배가 크게 선회했다.
정확히 수적들이 모인 곳에 닿기 직전이었다.
촤아아아악!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수적들을 덮쳤다.
수적들의 배가 휘청거리며 뒤로 쭉쭉 물러나며 흩어졌다.
벽태산의 배는 크게 선회해 선단의 좌측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꽈과과과과과광!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배들이 산산조각 났고, 거기 타고 있던 자들은 모조리 내상을 입고 물에 빠졌다.
그렇게 지나간 벽태산의 배가 다시 한 번 크게 선회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선단의 중심부, 그러니까 남은 배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끝까지 살아남았던 금월상단의 행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오는 배를 보며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꽈앙!
그리고 강한 충격과 함께 의식이 끊어졌다.
벽태산의 배는 그렇게 금월상단의 모든 배를 박살 내고는 유유히 간격이 벌어진 수적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남은 수적들, 그러니까 하오문도와 비천단원들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들이 예상했던 광경은 이런 게 아니었다.
좀 더 치열한 싸움을 예상했고, 벽태산 일행이 그 치열함에 조용히 파고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고, 그들이 그리던 그림이었다.
한데 막상 벌어진 일은 그런 계획을 모조리 쓸모없게 만들었다.
“자자, 서두르자!”
누군가 외치자, 다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물에 빠진 것들을 싹 건져야 한다.
다들 내상을 입고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도 모조리 확보할 수 있을 테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