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4)
촤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던 배가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배의 양옆으로 커다란 파도가 일어났다.
배의 속도는 처음 출발할 때와 비슷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일행이 질린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다들 아무 말도 못했다.
방금 벽태산이 벌인 일은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다.
솔직히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왜 노를 다 떼라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알았다.
설마 혼자서 배를 화살처럼 날리고 배를 들이 박아서 박살을 내버릴 줄이야.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추신의였다.
“대체······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힐끗 쳐다봤다. 천추신의는 움찔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벽태산을 바라봤다.
“별 거 아니다. 기로 감싸서 날리면 된다.”
“예?”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 배를 기로 감싸서 날렸다 이거로군요.”
천추신의는 어이없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게 별 거 아니면, 대체 뭐가 별 거란 말인가.
“생각보다 간단하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일행을 슥 둘러봤다.
왠지 눈이 번득인 것 같았다.
벽태산의 시선을 받은 사람들은 왠지 모를 오한이 들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너희도 할 수 있다.”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자, 다들 왜 그렇게 한기가 들었는지 깨달았다.
저 말은 할 수 있을 거라는 뜻이 아니라, 결국은 하게 될 거라는 뜻이다.
“아니, 저, 공자님. 저희가 앞으로 배를 탈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거 그냥 못해도 괜찮습니다. 암요.”
천추신의가 필사적으로 말했지만, 벽태산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벽태산은 화옥을 보며 물었다.
“다음 목표는 어디쯤 있느냐?”
화옥이 처음 이 계획을 세웠을 때, 주 목표는 함께 출발하게 될 금월상단의 선단이었지만, 다른 목표도 있었다.
이 강 위에는 금월상단 소유의 배가 제법 많았다.
그 배들 역시 벽태산의 목표였다.
다만, 벽태산이 중간에 변덕을 부려 일찍 출발했기에 목표를 많이 찾아내지는 못했다.
“총 셋을 파악했습니다.”
화옥은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펼쳤다. 물길이 표시된 지도였다.
“지금쯤이면 이곳과 이곳, 그리고 여기를 지나고 있을 겁니다.”
화옥의 말이 끝나자, 벽태산이 천추신의와 일침괴, 그리고 천경완과 유서연, 그리고 화옥까지 차례차례 지그시 쳐다봤다.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출발하지 않고.”
다섯 사람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이 배를 기로 감싸야 한다니, 대체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얼른 시작하라는 듯 벽태산이 쳐다보자, 다들 어쩔 수 없이 내공을 움직였다.
왠지 얼른 안 하면 하고 싶게 만들어 주겠다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해서 더 버틸 수가 없었다.
다섯 사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배를 천천히 뒤덮었다.
하지만 도저히 이걸로 배를 감싸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아무리 뽑아내도 갑판과 선실을 덮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나마도 꼼꼼히 기운을 덮은 게 아니라 듬성듬성 구멍이 뻥뻥 뚫린 채였다.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기운이 쫙 퍼지면서 배를 촘촘히 감싸 안았다.
다들 화들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말했잖느냐. 간단하다고. 효율의 문제일 뿐이다.”
벽태산이 그들의 기운을 슬쩍 건드려 배를 감쌀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들은 그런 벽태산을 바라보며 소름이 쫙 돋았다.
“원래라면 기운의 질을 좀 바꾸고 회전도 시키고 해야 하지만, 그건 차츰 하면 된다.”
다들 기겁을 해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들의 눈빛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턱짓을 했다.
그러자 다섯 사람이 용을 썼다.
감싸는 건 벽태산의 도움으로 해냈는데, 이걸 움직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그 역시 벽태산의 가벼운 도움 한 방에 해결되었다.
벽태산이 가볍게 배를 건드려 추진력을 실어준 것이다.
배가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그걸 해낸 다섯 사람의 얼굴에 불안과 희열이 동시에 깃들었다.
* * *
달도 뜨지 않아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 옥천상단의 주인인 평대언은 호위무사 몇 명을 대동하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혁련휘가 시키는 대로 하면 결국 나중에 피 보는 건 옥천상단이다.
일이 터졌을 때, 과연 무명이 그걸 해결해줄까?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그러니 최선은 일을 맡지 말아야 한다.
평대언은 금월상단이라면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약속은 미리 잡았다.
오늘 밤에 찾아가서 만나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마음이 급해서 좀 서두르다보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금월상단에 도착한 평대언은 쪽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무사가 서 있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무사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평대언은 얼른 그 뒤를 따라갔다. 그의 호위무사들이 평대언 뒤에 바짝 붙었다.
평대언은 무사를 따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왠지 평소와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아서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늘따라 좀······.”
“어수선하지요?”
무사가 평대언의 말을 받아주자, 평대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밤이 늦었는데도 왠지 다들 바쁜 것 같고······.”
물론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나 기척 덕분에 분위기를 읽어내는 건 가능했다.
“오늘 일이 좀 많았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평대언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왠지 앞서가는 무사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궁금했지만, 이내 관심을 접어 버렸다.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말 일이 터져서 흑련이 나서면, 옥천상단이 무슨 수로 그들을 막겠는가.
아마 자신은 죽을 것이다.
목숨이 걸린 문제였기에 평대언은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금월상단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평대언은 무사의 말에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자림이 서탁에 있는 문서를 정신없이 살피는 중이었다.
평대언은 엉거주춤하게 서서 평자림이 자신을 볼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평자림은 십여 장의 문서를 읽고 처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평대언을 쳐다보지 않았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힐끗 쳐다보고는 턱짓을 했을 뿐이다.
평대언은 그의 턱짓에 얼른 서탁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평자림이 평대언을 가만히 쳐다봤다.
“왜, 왜 그러십니까?”
평대언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혁련휘를 만났다고?”
평대언이 흠칫 놀랐다.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평자림이 그걸 어찌 알고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제가 꼭 만나고자 해서 만난 것은 아니고 그쪽에서······.”
평자림의 눈이 번득였다.
“닥쳐라. 네놈이 쪼르르 달려간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평대언이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지금은 이래야 살 수 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놈이 절 죽이려 합니다!”
“후우우.”
평자림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설명해 봐라.”
평대언은 고개를 번쩍 들고 혁련휘와 했던 대화를 고스란히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 흑련에 의해 옥천상단만 죽어 날 거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평자림은 설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입을 꾹 다문 채 듣기만 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평대언은 설명을 모두 마친 뒤 다시 납작 엎드리며 외쳤다.
“일어나라.”
평자림의 말에 평대언이 얼른 몸을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눈으로 평자림을 빤히 바라봤다.
“혁련휘가 시키는 대로 해라.”
“예에?”
평대언이 화들짝 놀랐다.
“저, 정말로 도박장을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해라. 확실히 수익을 만들어서 가져와.”
평대언은 그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옥천상단이 원래 하던 약재 사업은 다시 우리 금월상단이 맡는다.”
평대언은 이제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평자림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평자림은 평대언이 대답할 때까지 빤히 쳐다보며 기다려 주었다.
결국 평대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면······ 저희 옥천상단은 이제부터 도박장이나 관리하라는 겁니까? 그 많은 일꾼과 상인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적당히 정리해야지. 쓸 만한 놈들을 추려서 나한테 보내라. 그리고 도박장 관리할 놈 적당히 남긴 다음, 나머지는 싹 내보내.”
평대언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옥천상단은 장사에서 약재를 독점하는 큰 상단이다.
한데 그런 상단을 굳이 이런 식으로 해체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큰 장원은 필요 없겠지? 금월상단의 판매망을 이용하면 되니까 약재상도 절반 이상은 필요 없어질 테고.”
평대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도 싹 정리해. 네 능력을 한 번 보자. 얼마나 비싸게 팔 수 있는지 확인해보마.”
평대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지금 평자림은 옥천상단을 해체하려 하고 있다.
멍한 표정의 평대언에게 평자림이 담담히 말했다.
“오늘 우리 상단의 선단이 수적에게 털렸다.”
“예에?”
평대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들었던 얘기보다 지금 이것이 더 충격적이었다.
감히 어떤 수적들이 금월상단을 노린단 말인가.
“문제는 털린 물건이 정말 귀하다는 거야. 배상금을 물어주고 나면 표국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어.”
아니, 반드시 닫게 될 것이다. 표국으로 끝낼 수도 없다. 물건을 맡긴 놈들이 워낙 거물이라서 금월상단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근방 수적을 통합한 교룡채라는 놈들이라는데······ 내가 좀 알아보니 그런 놈들은 없더구나.”
“하면······.”
평자림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떠올랐다.
“어떤 미친놈들이 내 금월상단을 노리고 작업을 한 거지.”
평대언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난 그놈들을 반드시 잡는다.”
평자림이 살기어린 눈으로 평대언을 노려봤다.
“그러니 너도 시키는 대로 해.”
평대언은 그저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혹 떼러 왔다가 혹을 더 붙이고 말았다.
* * *
“저 배인가?”
벽태산의 물음에 화옥이 간신히 신경을 한 가닥 분리해 저 멀리 떠 있는 세 척의 배를 확인했다.
“맞습니다.”
지금 화옥을 비롯한 다섯 사람은 배에 기운을 감싼 채 빠르게 나아가는 데에 모든 집중을 쏟고 있었다.
화옥은 그 와중에 벽태산의 질문에 대답까지 해야 하니 그야 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그 때마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코피를 흘릴 정도로 집중해서 도와줬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속도를 높여라.”
벽태산의 지시에 다들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바람이 얼굴에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며, 다들 이제 곧 닥쳐올 감각에 대비했다.
세 척의 배가 품자 형으로 위치해 있었다. 저 배들의 중심을 정확히 찌르면서 빗겨 나가야 모든 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당연히 지금 배를 감싸고 움직이는 다섯 사람의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배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섯 사람의 감각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슬그머니 파고들었다.
그 순간 배가 나아가는 방향이 미세하게 변했다.
배는 정확히 목표로 하던 경로를 따라 나아갔다.
다섯 사람의 감각이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배를 감싼 기운이 맹렬히 회전했다.
그냥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운의 성질이 끈적하게 변하기까지 했다.
금월상단의 배 세 척 사이를 벽태산의 배가 파고들며 지나갔다.
그리고 배를 감싼 기운에 닿은 금월상단의 배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꽈과과과광!
세 척의 배를 부순 벽태산의 배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배를 움직이는 다섯 사람은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눈동자만 힐끗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여전히 느긋하고 여유롭게 평상에 앉아 있었다.
“이제 아까 거기로 돌아가자.”
벽태산의 지시가 떨어지자, 배가 크게 선회했다.
촤아아악!
큰 파도를 일으키며 회전한 배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쭉쭉 나아갔다.
목표는 아까 금월상단의 선단을 박살 냈던 그곳이었다.
* * *
깜깜한 밤, 선착장에 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들어와 정박했다.
배에서 여섯 사람이 툭툭 내렸다.
벽태산과 그 일행이었다.
다들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비틀거렸다. 물론 벽태산을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