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5)
누가 가장 힘드냐 하면 단연 화옥이었다.
그들은 금월상단의 선단을 박살 낸 이후, 무려 세 번이나 금월상단의 배를 찾아 부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금월상단의 선단을 부쉈던 곳 근처에서 하오문도들에게 지시까지 내리고 돌아왔다.
화옥은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벽태산과 대화를 나눠야 했으며, 배를 박살 낸 이후에는 특수한 소통법을 이용해 근처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하오문도에게 지시를 내려야 했다.
신호가 닿는 범위가 워낙 넓으니 분명히 누군가 지시를 듣긴 했을 것이다.
그들은 부순 배에서 재화를 빼돌리고 내상을 입은 자들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 제압하는 등의 일을 했을 테고.
아무튼 그렇게 많은 일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니, 당연히 가장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가진 기운을 모조리 배에 쏟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화옥이 제대로 걷지 못하고 심하게 비틀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벽태산이 걸음을 내디디려다가 돌아서서 그런 화옥을 가만히 쳐다봤다.
화옥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벽태산이 먼저였다.
“엄살이 심하구나.”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일행이 입을 쩍 벌리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벽태산은 그런 시선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옥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 아래쪽 등과 오금에 팔을 넣어 번쩍 들어 안았다.
화옥은 반사적으로 벽태산의 목에 팔을 감았다.
모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깜짝 놀란 화옥이 고개를 살짝 들어 벽태산의 얼굴을 바라봤다.
날렵한 턱선이 보였다.
화옥은 잠시 얼굴을 붉히다가 그냥 편안하게 벽태산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벽태산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늦었다. 가자.”
나머지 일행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분위기 뭐지?”
“그러게? 이거 뭐지?”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문득 분위기가 또 묘해지는 것 같아 천경완과 유서연을 쳐다봤다.
“저희는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유서연의 말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봤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경공까지 펼치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오늘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저렇게 달려가는 걸 보니 뭔가 기분이 요상해졌다.
한동안 서 있던 천추신의가 일침괴에게 말했다.
“형님, 나 이런 기분으로 그냥 못 가겠소.”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장사에 와서는 아직 기루에 한 번도 안 가지 않았소? 언제 날 한 번 잡아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이 그 날이다. 가자.”
끝
화옥을 안은 채 각월객잔에 도착한 벽태산은 곧장 별채로 향했다.
워낙 늦은 밤이었기에 객잔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고 각자의 숙소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객잔 일 층에는 혹시 밤에 올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 남은 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벽태산은 그들을 지나쳐 별채의 후원으로 들어섰다.
후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후원 끝에 있는 전각도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벽태산은 그대로 전각에 들어가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간 벽태산은 화옥을 침상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화옥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오늘 일로 금월상단이 얼마나 힘들어졌을 것 같으냐?”
벽태산의 물음에 화옥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안 그래도 본단을 중심으로 하는 자금의 흐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현천검 사태를 조장하느라 들어간 돈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화옥은 벽태산에게 안겨오며 차근차근 쌓았던 감정과 분위기를 조금씩 털어냈다. 아니, 억눌렀다. 이건 그냥 대충 털어낼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오늘 일로 받은 타격을 해소하려면 협력 관계에 있던 상단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협력 관계에 있는 상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금월상단이 소유한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분리했을 이유가 반드시 있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을 모두 안아야 한다.
화옥은 그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지금 상황에서 그놈들에게 가장 크게 한 방 먹이려면 어찌 해야 하느냐?”
화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본단을 더 흔들고, 다수의 상단들이 금월상단에 반기를 들면 됩니다.”
“더 자세히.”
“현재 사로잡은 자들을 치료하지 않고 금월상단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들의 내상은 굉장히 심각하다. 일반인은 몰라도 무인의 경우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무공을 제대로 쓰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숫자도 상당하니 금월상단은 그들을 치료하느라 골머리 좀 썩을 것이다.
“금월상단이 그들을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으면 내부에 분열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내부를 흔들면서 다른 상단을 움직여 금월상단을 견제하게 하면 아마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 와중에 저희가 나서서 상권을 조금씩 장악할 수 있습니다.”
금월상단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오겠다는 뜻이다.
“좋아. 그렇게 진행해라.”
“예.”
화옥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할 말을 다 하고 문득 보니, 자신은 여전히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벽태산은 바로 앞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상태로 벽태산에게 보고를 한 것이다.
화옥은 이제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화옥에게 벽태산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거의 다 사라졌다.
억지로 가라앉혔던 감정과 분위기, 감각이 다시 확 올라왔다.
억누르고 있었던지라 다시 올라오니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이는 모두 오늘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배를 기운으로 감싼 상태에서 벽태산이 거기에 개입할 때마다 파고들어오는 이질적인 감각은 굉장히 묘한 구석이 있었다.
특히 다른 배를 부술 때, 깊게 들어오는 벽태산의 개입은 더더욱 묘했다.
그 감각은 조금씩 화옥의 정욕을 건드렸다.
아마 자신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까 배에서 내릴 때 보니 천경완과 유서연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그 둘은 어쩌면 오늘 각월객잔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화옥은 벽태산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공자님도 그러신 거 아닐까?’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리고 벽태산에 대한 욕망이 더욱 깊어졌다.
그런 화옥을 보며 벽태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은 돌아갈 필요 없다.”
화옥의 눈빛에 다시 기대감과 욕망이 뒤섞였다.
그녀는 고개를 든 채 촉촉해진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 * *
천경완과 유서연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걷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두 사람은 어젯밤 외박을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해가 중천을 지난 지금에서야 돌아가는 중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두 사람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각월객잔에 있어봐야 할일이라고는 수련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뭐라고 할 사람은 없어도, 그것 때문에 벽태산의 기분이 나빠진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의 눈빛 깊은 곳에는 지극한 만족감과 행복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이 온몸에 자르르 흘렀다.
어제의 경험이 두 사람에게 준 것은 정욕만이 아니었다.
늘어난 내공을 모조리 쏟아낸 경험과 벽태산의 개입으로 몸에 새겨진 감각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아예 다른 수준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두 사람은 늘어난 내공에 걸맞게 성장했다. 고작 하루 배를 몬 것만으로 말이다.
물론 잠깐이나마 엿봤던 경지를 떠올리면 여전히 까마득하긴 했지만.
자신감은 여유를 부른다. 그리고 여유는 시야를 넓혀준다.
“어? 저기 의원님들 아닌가요?”
유서연의 말에 천경완이 시선을 돌려 확인하니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민망하면서도 좀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젯밤에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닌 모양이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니, 벽태산과 화옥이 떠올랐다.
유서연이 천경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됐을까요?”
‘누가’가 빠졌지만, 천경완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뻔하지.”
“그랬겠죠?”
유서연의 눈빛이 또 어젯밤과 비슷하게 반짝였다.
천경완은 찔끔 놀라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이러다 늦겠는데? 좀 서두르는 게 좋겠어.”
유서연이 얼른 천경완을 따라잡으며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바라봤다.
천경완은 등에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며 걸음을 점점 더 빨리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따라잡았다.
“어? 뭐야, 너희도 어제 안 들어간 거야?”
“뭐······ 그렇게 됐습니다.”
천경완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번득였다.
“왜 그래?”
천경완의 변화를 눈치챈 천추신의가 묻자, 천경완이 턱짓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놈이 아무래도 저 사람 뒤를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천추신의는 별 신경을 다 쓴다고 생각하며 그쪽을 쳐다봤다.
“어? 한 놈이 아닌데?”
그런 놈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네 사람은 쫓기는 자들의 공통점과 쫓는 놈들의 공통점을 파악해봤다.
“쫓는 놈들은 다 같은 조직이거나 비슷한 놈들이야.”
“쫓기는 자들은 제각각이네요.”
네 사람의 눈이 번득였다.
“저놈들 쫓아가면 오늘 늦은 거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너희 생각은 어때?”
천추신의의 물음에 천경완과 유서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각자 한 명씩 목표를 정하고 흩어져서 그들을 쫓아갔다.
* * *
화옥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환했다.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늦잠을 잔 것이다.
그녀는 얼른 일어나 옷부터 챙겨 입었다.
몸에 남은 흔적을 보며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잠시 붉어졌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화옥의 표정이 평소와 마찬가지로 담담해졌다.
방에는 벽태산이 없는 걸로 봐서 여느 때처럼 수련하러 간 모양이었다.
이제 나가서 대충이라도 씻고 준비를 해야 한다.
방문을 연 화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문 앞에 아주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소소와 단영, 채월이 서 있었다.
화옥이 방문을 연 자세 그대로 굳어 있자, 세 사람이 빙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들은 물통을 들고 있었다.
아침에 벽태산에게 해주듯이 목욕 준비를 하러 온 것이다.
물론 벽태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화옥을 위해서였다.
커다란 목욕통에 따뜻한 물이 가득 채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화옥을 한 번 바라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화옥은 그때까지 굳은 채 서 있다가 멍하니 고개를 돌려 목욕통을 쳐다봤다.
화옥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얼른 옷을 벗고 목욕통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달아오른 얼굴에 연신 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왠지 마음은 좀 편안해졌다.
* * *
검귀는 죽을 맛이었다.
지금 벽태산이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어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이가 다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주 오래전 천마가 검마의 수련을 도와준다고 하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마 그때 검마의 모습과 아주 똑같을 것이다.
당시 검마는 천마와 수련한 뒤에 반드시 자신의 수련을 도와줬다.
당시 검마의 심정을 지금 아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수련이 끝나면 자신도 누군가 가르침을 줄 만한 사람을 찾을 생각이 물씬 들었으니까.
그래도 그때 검마가 자신에게 하던 건 지금 벽태산이 자신에게 하는 거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버텼다고?’
검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자신도 용케 버티고 있지 않은가.
“웃는 걸 보니 견딜 만한 모양이구나.”
벽태산의 말에 검귀의 안색이 확 굳었다.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더 지독한 꼴을 당할 테니까.
“그럼 한 번 죽고 시작하자.”
“예?”
검귀가 의아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검귀의 의식이 확 날아가 버렸다.
첫 번째 죽음이었다.
검귀가 쓰러지고 얼마 있지 않아 화옥이 그곳에 나타났다.
화옥은 벽태산에게 다가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라. 아, 그리고 사람 하나 찾아봐라.”
“누굴 찾으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