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6)
벽태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놈이 과연 진짜 자기 이름을 쓸까? 그럴 리가 없다.
“일단 나이는······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나이야 당연히 모른다. 자기 나이도 모르고 살았는데 딴 놈들 나이를 어찌 알겠는가.
“그래도 마흔은 넘었을 거다.”
도망쳤을 때가 이십 대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니까.
“뺨에 길게 검상이 있다. 두 줄.”
그놈은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도망쳤다. 가르치던 스승이 문제였다. 하긴, 그때 천마신교에서 제정신으로 제자를 키우던 놈들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어쩌면 그 검상을 감추려고 다른 상처를 일부러 냈을 수도 있다.”
그놈의 스승은 그놈이 도망쳤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잡아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은 그렇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특징을 지우려 했을 테고.
“그놈이 원래 쓰던 이름은 제위룡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쓰지는 않을 거다.”
화옥은 벽태산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얼굴의 흉터가 아니면 거의 찾을 수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일단 명령을 받은 이상, 어떻게든 완수할 것이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화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벽태산은 화옥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여전히 누워 있는 검귀를 발끝으로 툭툭 찼다.
“그만 자고 일어나라.”
다른 사람은 알아서 깰 때까지 기다려줬지만, 검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했으니까.
아마 이렇게 중간에 깨우는 충격을 주더라도 결국은 그것 역시 단련의 일환이 될 것이다.
“끄으으으.”
검귀가 앓는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온몸을 잘게 쪼개는 것 같은 고통이 일어났다.
그는 지금 상황을 기억해내고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검귀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눈빛이 썩었구나.”
검귀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마 검귀는 중간에 깨웠기 때문에 훨씬 더 지독하게 겪었으리라.
그래도 벽태산의 그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다시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더 할 수 있겠느냐?”
벽태산의 물음에 검귀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당연합니다. 더한 것도 견딜 수 있습니다.”
검귀의 말을 들은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걸 본 검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자존심과 분위기 때문에 해선 안 될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럼 일단 한 번 더 죽고 시작하자.”
이번에도 역시 검귀는 대꾸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으니까.
죽어 쓰러진 검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다른 건 몰라도 참고 버티는 건 제법 쓸 만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해도 될 듯했다.
검귀는 죽어 쓰러진 와중에도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느끼는지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끝
벽태산은 검귀와의 수련을 마무리한 다음 방으로 돌아왔다.
방은 말끔했다.
시비들이 다 치운 모양이었다.
벽태산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화옥과의 일을 떠올린 게 아니라, 배를 몰던 일을 떠올렸다.
일행이 배를 기운으로 감싸 날리는 것을 조금 개입해서 도와주었다.
사실 그걸 할 때만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건 예전에도 자주 해본 일이었으니까.
주로 그 일을 겪은 것은 호천대였다.
이번처럼 배를 이용한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훨씬 직접적이었다.
자신의 몸을 기운으로 감싼 채 돌격하는 것이다.
호천대 전원이 그렇게 하면 기운이 하나로 뭉치면서 거대한 기운의 덩어리가 된다.
그것이 돌진하면서 모든 걸 박살 내는 것이다.
벽태산은 천마이던 시절, 거기에 자신의 기운을 개입해 기운의 성질을 바꾸고 파괴력을 더 높였다.
천마가 개입하면 파괴력이 몇 배로 증폭한다. 또한 그걸 쓸 때마다 호천대의 실력이 쭉쭉 늘어났다.
물론 실력 증가는 한계가 있었지만, 일정 수준까지는 빠르게 강해졌다.
아무튼 그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사실 그때는 이번에 한 것보다 훨씬 더 막대한 기운을 썼다.
증혼마공의 조절 능력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투박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했어도 이번처럼 그들의 감각 깊숙한 곳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감각 깊은 곳을 건드리는 바람에 특정한 감정이 일어났다.
어쩌면 그저 감각 깊은 곳을 건드렸기 때문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솔직히 아직 완벽하게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검귀를 서둘러 교육했다. 당분간 홀로 자신을 관조하면서 수련을 이어가기 위함이었다.
벽태산은 침상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그걸 쓸 것이다. 그 때마다 수하들이 정욕에 휩싸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따라 몸과 머릿속이 개운해서 아주 빠르게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 * *
검귀는 후원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직이 웃었다.
그걸 본 나헌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검귀가 불러서 오긴 했는데, 저 웃음을 보고 있으니 뭔가 꺼림칙했다. 웃음이 왠지 굉장히 음흉해 보였다.
“그런데 안 보이는 놈들이 있는데?”
검귀의 말에 나헌탁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후원을 바라봤다.
“두 분 의원님이 안 보이는군요. 그 젊은 호위무사 한 쌍도 안 보이고.”
“공자님이랑 어제 나갔던 사람들 아닌가? 화옥은 돌아왔잖아?”
“어차피 수련이 강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흥. 볼일은 무슨. 기루에 가서 몸이나 굴리고 있겠지. 애들 풀어라. 가서 당장 찾아와.”
나헌탁은 검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긴장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이 장사에서 벗어나지만 않았다면 찾는 건 금방이다.
비천단만 있었을 때도 그랬을 텐데, 지금은 하오문까지 있다. 아마 반 시진 내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네 사람이 막 후원으로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어딜 그리 한가하게 다녀오느냐?”
검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지금 막 도착한 네 사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검귀가 후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쪽으로 가라. 공자님의 명을 전할 테니.”
공자님이라는 말은 천추신의의 입마저 다물게 만들었다.
한 바탕 쏟아내려고 했는데, 공자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올라오던 모든 말이 거짓말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검귀는 그제야 다들 모인 일행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후원의 중간에서 약간 뒤쪽에 긴 선을 그었다.
다들 검귀가 하는 양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벽태산이 시킨 일이라니 허튼 짓은 아닐 테니까.
“이 선을 넘어가면 공자님께서 일대일로 수련을 봐주신다고 하셨다.”
그 말에 다들 표정이 살짝 굳었다.
검귀가 그걸 보며 히죽 웃었다.
“내가 한 번 겪어봤는데, 그거 사람 할 짓 아니더구나.”
검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공포가 어렸다가 사라지는 걸 다들 분명히 확인했다.
싸한 긴장감이 확 돌았다.
검귀는 일행을 둘로 나눴다. 전력을 대충 맞춰서 나눴는데, 사실 그리 크게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한 쪽이 공격이고 나머지가 방어다. 정확히 일 각마다 공방을 바꾼다. 어디, 잘 버텨 보아라.”
검귀는 그렇게 말하고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얼른 시작하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단체 대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검귀가 공격 쪽에 가담했다.
“으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천추신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이러다간 뒤로 밀려 금방이라도 선을 넘을 것 같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죽을힘을 다해서 덤벼라! 으하하하!”
검귀의 모습에서 보이는 광기에 다들 표정이 확 변했다.
그때부터 죽음을 각오한 진짜 전투가 시작되었다.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검귀는 언제나 공격하는 쪽에 있었고, 방어하는 쪽의 문제점을 몸으로 파악하고 익힐 수 있게 해주었다.
다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은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 * *
금월상단주 평자림은 총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지금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수적 놈들이 인질을 돌려줄 테니 돈을 달라고 했다고?”
말하자면 인질협상이었다.
“예. 한데 수가 제법 많습니다. 무인만 해도 삼백 명이 넘습니다.”
수십 척의 배를 부수고 거기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그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각 배마다 상천문, 청무방, 구룡문의 무인을 섞어서 열다섯 명씩 배치했다.
게다가 따로 고용한 무사들의 수도 제법 된다.
거기에 두 표국이 각각 예순 명의 표사를 동원했다.
무인만 그 정도이니 일꾼의 수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렇게 따져보니 숫자에 압도될 지경이었다.
“심각하긴 심각하구나.”
그 정도 규모이니 금월상단이 휘청할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 아니겠는가.
“어쩌시겠습니까?”
평자림은 잠시 고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청무방, 상천문, 구룡문의 무인은 돌려받아야 한다.
그 세 문파는 금월상단의 근간이 되는 곳이다.
“우리 문파의 무인들만 돌려받는 걸로 하지.”
“예? 하지만······!”
“처음부터 버린다는 게 아니야. 다 구할 수 있으면 좋지. 하지만 안 될 가능성도 있으니 염두에 두라는 뜻이야.”
“예.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협상을 위해 그놈들을 만났을 때, 처리할 수 있으면 처리하고.”
“그 부분도 동시에 진행하겠습니다.”
바로 덮칠 필요도 없다. 협상에 나선 자들을 미행해서 근거지의 위치를 알아내기만 하면 토벌은 여반장이니까.
문제는 금월상단만의 힘으로는 토벌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었다.
무명의 힘이 필요했다.
“우리 배가 전부 박살 났다고 했던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배를 포획하는 건 위치가 드러날 염려가 있으니 그렇게 한 것 아니겠습니까?”
“대체 어떻게 우릴 이겼는지 혹시 알아내지 못했나?”
총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 인질을 되찾아 와야 뭐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협상 과정에서라도 알아낼 수 있으면 알아내보게. 뭐라도 알아야 그놈들을 털든 말든 하지.”
“예. 그것도 잘 해보겠습니다.”
평자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놈들은 결코 수적 따위가 아니었다. 분명히 배후가 있다.
그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진정한 복수를 할 수 있다.
이번 협상을 잘 이용해야 한다. 평자림은 이 일을 온전히 총관에게만 맡겨둘 생각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이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갔다.
“저······ 그리고 전표가 풀렸습니다.”
총관의 말에 평자림의 눈이 번득였다.
방금 총관이 말한 전표는 추적이 가능한 전표였다. 선단의 행수가 따로 보관하는 전표 말이다.
수채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였다.
한데 그게 풀렸다는 것은 이번 일을 벌인 놈들이 전표를 썼다는 뜻이다.
“추적은?”
“일단 전표를 쓴 놈들을 감시 중입니다.”
“그래? 어떤 놈들이지?”
“다들 평범합니다.”
겉으로야 당연히 평범할 것이다. 문제는 진짜 정체였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아직 모르고?”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일단 그놈들과 접촉하는 자가 없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듯합니다.”
평자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봐서······ 안 될 것 같으면 싹 잡아와도 좋고.”
총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평자림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가봐. 할 일도 많을 텐데.”
총관이 밖으로 나가자, 평자림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이거······ 무명에 아쉬운 소리를 하기 껄끄러운 시기인데······.”
평자림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며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렀다.
* * *
“작업 시작했습니다. 현재 인질 협상 중입니다.”
화옥의 보고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보했던 전표도 무작위 배포했습니다. 전표를 쓴 곳에서 감시가 붙었고, 감시자가 금월상단 소속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천추신의와 일침괴, 천경완과 유서연이 외박 후, 끝까지 쫓아가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금월상단의 인력을 한껏 분산시켰다. 특히 감시하는 자들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시선을 돌렸으니 앞으로 화옥이 하려는 작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벽태산은 화옥의 설명을 듣고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부터는 굳이 보고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진행하면 된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벽태산의 말에 화옥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담담해졌다.
“예. 중간에 상황이 변할 때마다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제 그 일은 벽태산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 일로 인해 막대한 돈이 들어오겠지만, 그 또한 벽태산은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돈이야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벌고, 자신은 그저 불편함 없이 지낼 수만 있으면 된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저 그것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끝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이제 슬슬 예전 그놈들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내가 전에 전해준 정보는 확인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