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2)
제위룡은 고개를 원래대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 그렇게 하고 말해라.”
“예?”
역시 자신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벽태산 때문이었다.
제위룡은 울상이 되어 투덜거렸다.
“불편하게 이런 자세로 무슨 얘기를 한단 말입니까.”
벽태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위룡은 몇 번이나 고개를 움직이려 낑낑대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말했다.
“상황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 말에 화옥의 눈이 반짝였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신교의 두뇌가 이분이신가요?”
신교의 두뇌라는 말에 제위룡이 우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좌우로는 못 움직이는데 위아래로는 움직일 수 있었다.
“바로 보셨습니다. 제가 바로 천뇌입니다.”
화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기로 천마신교의 군사는 마뇌라 불린다.
하지만 이름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곤란했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벽태산이 슬쩍 끼어들었다.
“오고 싶어서 온 거 아니다. 내가 끌고 온 거지.”
제위룡이 그 말에 인상을 팍 썼다. 꼭 그런 식으로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아······ 그래도 모든 능력을 다해서 도와주실 거죠?”
화옥이 약간 젖은 듯한 목소리로 묻자, 제위룡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아주 끝내주는 계책을 세워드릴 테니.”
벽태산은 제위룡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너 혼자서 할 수 있겠느냐?”
제위룡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공자님, 저 제위룡입니다. 천하제일지 제위룡.”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자기 얼굴에 금칠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놈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굴도 두껍구나. 하다 안 될 거 같으면 애들 기다려라. 괜히 나대다가 사고 치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 거다.”
벽태산의 말에 제위룡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 하하, 하하하. 공자님도 참. 무슨 농담을 그리 무섭게 하십니까.”
“내가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제위룡이 입을 꾹 다물었다. 싸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저······ 공자님.”
제위룡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개 좀 원래대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뭔지 몰라도 절대 공자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벽태산은 제위룡을 가만히 쳐다봤다.
말하는 꼴을 보니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 일이나 잘 해결해라.”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고, 공자님? 그냥 가시면 어쩝니까. 공자님! 공자님!”
제위룡이 아주 애타게 벽태산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리고 화옥은 그 모습을 보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며시 웃었다.
그녀의 시선은 밖으로 나가는 벽태산에게 꽂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 * *
벽태산과 제위룡이 도착한 후,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백 명의 책사가 도착했다.
아무래도 벽태산이 없으니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최선의 노력을 했다.
몸이 망가지는 걸 불사하고 달리고 또 달렸으니까.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함께 하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이 있으면 두 의원이 바로 조치를 취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이틀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이후 다들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다시피 하긴 했지만.
하지만 그들은 바로 쉴 수가 없었다.
하오문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위룡은 책사들이 도착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그들을 한데 모았다.
혼자서 이런저런 책략을 짜내긴 했지만, 그걸로 지금 상황을 벗어나 금월상단을 누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대로는 화옥에게 면이 안 선다는 생각, 그리고 벽태산한테 호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책사들의 피곤함을 외면한 것이다.
아무튼 책사들이 모였으니, 이제부터는 어떤 책략을 쓰든 무조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모든 변수를 상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마련할 테니까.
각월객잔에는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데 모일만한 큰 방이 없었기에 별채 후원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후원에서 수련하던 사람들은 당분간 수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련을 쉰다고 해서 그들이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벽태산의 방에 모여 있었다.
다들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며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뭘 할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 장사로 온 이유, 바로 무명을 털러 갈 때가 된 것이다.
벽태산은 억지로 이 자리에 참석시킨 제위룡을 쳐다봤다.
제위룡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곳에 아름다운 여인들이 너무 많아서였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목을 비틀어버리기 전에 눈 똑바로 떠라.”
벽태산의 말에 제위룡이 흠칫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간신히 원래의 자세를 되찾았는데, 또 그 못난 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똑바로 공자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 말씀 하시지요.”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끝내라.”
벽태산의 담담한 말에 제위룡이 자신만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끝
벽태산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뒤로 일행들이 따라갔다.
연하린이 벽태산 옆에 바짝 붙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녀는 벽태산의 얼굴을 슬쩍 확인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금 벽태산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는 사람들은 처음 이곳 장사에 왔을 때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화옥도 함께였다.
벽태산은 금월상단과의 일을 전부 제위룡에게 맡겼다.
실제로 만나서 확인한 제위룡의 역량은 기대했던 것에는 좀 못 미쳤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천뇌는 수장의 역량으로 힘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또한 제위룡은 아직 어렸다.
물론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이긴 했지만, 사마진이 천뇌의 자리에 오를 때가 거의 환갑에 가까웠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한참 남았다.
모자란 부분은 굴리고 또 굴려서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그러니 제위룡에게 한 번쯤 맡겨 볼 만했다.
어차피 하오문과 비천단이 보조해줄 테고, 원한다면 언제든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벽태산이 원할 때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개입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이번 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까지 그냥 내버려둘 작정이었다.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좋고, 실패해도 제위룡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고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면 충분했다.
또한 일이 아무리 뭉개지더라도 벽태산이 거기에 개입한 순간부터 얘기가 아예 달라질 것이다.
제위룡이 책략을 세우고, 천뇌가 보조하며, 벽태산이 그 위에서 판을 휘저으면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예전 천마일 때는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래서 당시의 천뇌와 사마진이 그렇게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고.
변수가 자기 멋대로 날뛰는데 그걸 옆에서 끝까지 보조하며 상황을 통제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벽태산은 조만간 제위룡도 그런 마음을 겪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고난이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다.
‘그렇게 성장하고 나면 고마워하겠지.’
사마진이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물론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었지만.
아무튼 이렇게 일행을 다 데려오기도 했고, 앞으로의 일도 기대가 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표정으로 살짝 드러난 것이다.
“공자님,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요?”
연하린의 물음에 벽태산이 그녀를 슬쩍 쳐다봤다.
“멀리 있는 놈부터 친다.”
“멀리요?”
연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려 반사적으로 화옥을 찾았다.
일행의 모든 일정과 목적지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여기서 화옥이 유일했다.
“가장 먼 곳은 남창입니다.”
“남창이라고요? 강서 쪽에 있는?”
“정확히는 남창 근처에 있는 포양호입니다.”
“포양호······.”
남창 북쪽에 있는 거대한 호수였다.
“설마······ 호수를 샅샅이 뒤져야 하는 건 아니죠?”
“위치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지라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어도 파악이 어렵습니다.”
“감시가 어렵다고요?”
“수채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수채 자체가 워낙 민가랑 동떨어져 있기에 감시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목표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기도 하고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막상 갔는데 목표가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상관없다. 흔적을 찾아서 추적하면 되니까. 가봐야 쥐새끼지.”
벽태산의 결론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가는 곳에 목표가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또 찾으러 다녀야 하니까.
화옥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자가 머무는 수채는 규모가 상당히 거대했다.
그곳에서 왕처럼 지내고 있는 중이다. 아마 당분간은 거기서 계속 먹고 마시고 할 듯했다.
큰 변화가 없다면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오대세가 정도 되는 집단이 수채를 토벌하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서거나 하는 일 말이다.
* * *
금월상단주 평자림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총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달려오는 모양을 보아하니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최근 하오문 놈들이 같잖은 수작을 부려서 평자림의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 바람에 평대언에게 지시한 도박장 일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하오문 놈들이 금월상단을 흔드는 것이 잘 안 되니 그쪽을 건드린 것이다.
금월상단이 도박장을 이용해 자금을 수혈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슬슬 해결할 기미가 보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하오문은 고작 하오문일 뿐이다.
금월상단처럼 거대한 상단의 힘을 그들이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쪽에는 강력한 문파도 세 개나 보유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총관이 다급한 얼굴로 집무실에 들이닥쳤다.
평자림이 손을 들어 총관이 쏟아내려던 말을 막았다.
“일단 진정하고 숨과 마음을 가라앉히게.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말해.”
총관은 평자림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통운상단과 진행하던 일이 엎어졌습니다.”
평자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거 엎어지면 통운상단도 좋은 꼴은 못 볼 텐데?”
“통운상단이 배신했습니다. 상권을 잠식당했습니다.”
평자림이 어이없는 눈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이렇게 어이없이 당했다고? 통운상단 그 미친놈들은 이걸 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거야?”
“그거 하나만 문제가 아닙니다.”
총관의 입에서 줄줄이 상단과 상권에 대한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듣다 보니 묘하게 이름이 익숙했다.
“그거······ 전부 하오문 놈들이 우릴 견제할 때 써먹었던 것들 아닌가? 제대로 봉합 안 했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 번 실패했던 걸 또 시도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역시나 방심이 원흉이었다.
“하! 이놈들 봐라? 그거 어떻게든 다시 되돌려. 우리 뒤통수 친 놈들, 확실히 응징해서 감히 금월상단에 대항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총관이 머뭇거렸다.
“뭐해? 얼른 가서 일 처리하지 않고!”
“아무래도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너무 심각하게 당했습니다. 그걸 되돌리느니, 차라리 다른 곳에 그 힘을 쓰는 것이 낫습니다.”
총관은 그렇게 말하며 그제야 준비한 문서들을 내밀었다.
평자림은 문서를 빠르게 확인했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당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확실히 이런 식이면 굳이 여기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지부와의 자금 흐름 중 일부가 막혔습니다.”
평자림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두통이 밀려왔다.
“일단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부터 처리해. 아끼지 말고 싹 데려다 써. 내부 단속은 잘 했지?”
총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었는데······ 또 터졌습니다.”
“뭐?”
“이번에는 솔직히 여러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힘을 쓰는 부분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무슨 문제?”
평자림은 인상을 썼다.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이러다가 뒷목이라도 잡을 것 같았다.
“무림맹, 흑련이랑 지저분하게 얽혔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다. 등에 식은땀이 쫙 흘렀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무림맹과 흑련이 청무방과 상천문에서 파견한 무사들과 싸웠던 모양입니다.”
“싸워? 왜? 우리 애들이 굳이 무림맹과 싸울 이유가 없는데?”
“아직 원인 파악을 못 했습니다. 이제 알아봐야 합니다.”
뭔가 급박하게 일이 계속 터진다.
평자림은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을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하오문과 얽혔던 일은 솔직히 가소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