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3)
지금까지 금월상단이 버틴 세월이 얼마인데 고작 하오문 따위에게 상단의 일로 문제가 생기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아예 달랐다.
“하나하나 바닥부터 확실히 처리해. 난······ 혁련휘를 만나볼 테니까.”
총관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아무래도 금월상단의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무명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혁련휘가 과연 흔쾌히 도와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가 무너지면 무명도 아쉬울 일이 많을 테니 매정하게 내치지는 못하겠지.’
무명이 신경 썼던 도박장 일도 같이 얽혀 있으니 그래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공산이 컸다.
평자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회색 구름이 잔뜩 낀 것이 굉장히 불길했다.
* * *
포양호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제 벽태산과 함께 달리는 데에는 다들 이골이 나 있었기에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그동안 받았던 고된 학대를 견뎌낸 보상이었다.
“캬아. 절경이구나.”
천추신의가 감탄하며 포양호를 내려다봤다.
지금 벽태산 일행은 포양호변에 있는 높은 전각 위에 있었다.
어제 오후에 도착해서 하루를 푹 쉬고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하는 참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포양호에 있는 수채였다.
수채의 위치가 포양호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었기에 배를 타야만 했다.
배를 구하는 건 화옥이 맡았다.
화옥은 어제 도착하자마자 배부터 구했는데, 제법 크고 화려한 배였다.
배는 전각에서도 잘 보였다.
천추신의 옆으로 일침괴가 붙어서 배를 내려다봤다.
“저 배지?”
“맞소.”
“시발, 저번처럼 저 배 타고 막 그러는 거 아냐?”
천추신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왠지 말을 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였다.
“형님, 우리 그 얘기는 하지 맙시다. 말이 씨가 되면 곤란하지 않겠소?”
“그래도 이번엔 사람이 많으니 좀 수월하지 않겠냐?”
“배도 크잖소. 그리고 공자님이 안 도와주면 어쩔 거요?”
“어······ 우리 그냥 입 닥치고 있자.”
일침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불안한 눈으로 배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언제 출발한다는 얘기는 들었소?”
“몰라. 때 되면 부르겠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래층에서 천경완이 후다닥 달려 올라왔다.
“공자님께서 얼른 오시랍니다.”
공자님이라는 말에 두 의원이 화들짝 놀랐다.
“응? 공자님?”
“설마······ 우리 기다리고 있는 거냐?”
천경완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발.”
일침괴가 욕설을 툭 뱉고는 창문을 훌쩍 넘었다.
천추신의가 그걸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 역시 창문을 넘었다.
천경완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그 역시 창문을 넘었다.
* * *
배가 출발했다.
예전 금월상단의 선단을 박살 낼 때처럼 기운에 휩싸여 화살처럼 날아가지는 않았다.
그저 가볍게 기운을 뒤로 쏘아 미끄러지듯 물 위를 움직였다.
벽태산은 당시 그렇게 하고 나서 후유증을 경험했다.
여기에는 지금 연하린을 비롯해 그의 시비가 전부 타고 있다. 그 민망한 후유증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들에게 남겨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쭉쭉 배가 나아갔다.
벽태산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슬쩍 쳐다봤다.
유서연이었다.
그녀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왜 그때 그것을 하지 않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선을 약간 옆으로 돌리니 천경완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
벽태산이 화옥을 보며 물었다.
화옥은 잠시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고는 대답했다.
“지금 이 속도라면 이쪽 방향으로 한 시진 정도 가면 될 듯합니다.”
“방향은 정확하고?”
화옥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확할 리가 없지 않은가. 대충 이 방향으로 가다가 중간에 지형을 확인하고 몇 번쯤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몇 번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운을 살짝 뿜어냈다.
“그럼 슬슬 속도를 높여야겠구나.”
벽태산이 살짝 뿜어낸 기운이 배를 촘촘하게 감싸 안았다.
그걸 본 유서연의 얼굴에 짙은 실망감이 어렸다.
그리고 천경완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고마운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배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가속의 과정이 지극히 짧았다. 순식간에 빨라진 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쭉쭉 나아갔다.
화옥은 배가 빨라지자 긴장한 표정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가늠했다.
미리 위치를 확인하고 오긴 했지만, 호수 위에서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화옥은 아주 훌륭하게 그 일을 해냈다.
벽태산 옆에 붙어서 단 두 번의 방향전환만으로 정확히 수채가 있는 곳을 향하게 만들었다.
불과 반의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수채가 있는 섬이 눈에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다.
수채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섬 자체가 찾기 어려운 곳에 있었는지라 수채는 아주 대놓고 섬 가장자리에 큼직하게 세워져 있었다.
배는 정확히 수채를 향해 나아갔다.
한데 수채가 가까워 오는데도 속도가 줄어들지를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라졌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벽태산과 수채를 번갈아 바라봤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걸 본 사람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들 우르르 선미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배가 그대로 수채를 들이박았다.
꽈과과과광!
끝
동우엽은 무명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였다.
무명에서 자리를 잡은 고수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무명에서 나고 자라 고수가 된 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영입한 자.
동우엽은 후자였다.
무명이 외부에서 영입한 자들은 다들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니면 알려졌어도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거의 잊혔거나.
동우엽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우엽은 오랫동안 깊은 산속에서 무공수련만 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무공밖에 모르는 생활을 하다가 사부가 죽은 뒤 세상에 내려왔는데, 처음 만난 자가 수적 출신의 애송이였다.
그게 인연이 되어 결국 수채에 들었고, 그 뒤로 그 사내를 도와 채주로 만들어 주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그 정도로 끝내고 말 생각이었는데, 막상 수적질을 해보니 적성에 아주 딱 맞았다.
그래서 어영부영 세월이 지나다보니 어느새 수채에 눌러 앉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동우엽은 자신의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극도로 조심했다.
포양호 주변에 있는 남창에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가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황보세가가 나서면 단숨에 눌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힘을 겪을 기회도 있었고.
그래서 원정 나가듯이 좀 멀리까지 가서 수적질을 했다.
힘을 쓸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적 수준에서는 그 누구도 동우엽을 막을 수 없었다.
동우엽은 실제로 혼자서 웬만한 수채 몇 개 정도는 단숨에 박살 낼 수 있는 수준의 고수였으니까.
그러던 중 무명의 손길이 그에게 닿았다.
무명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더 강해질 수 있는 수법도 몇 가지 전해주었다.
무명이 원하는 일은 계속 힘을 키우고, 때로는 수채를 이용해 자신들의 일을 은밀히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적 중 일부를 데려가기도 했다.
수채 안에서는 그 일을 영전이라고 여겼다.
이름조차 비밀인 조직에 영입되어 영약과 무공을 지급받고 비밀수련을 해서 그 조직의 일원이 되는 거라 믿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아무튼 무명과 동우엽은 그런 관계였다.
그리고 동우엽은 이곳 수채에서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여자를 품고 싶으면 품고, 요리를 먹고 싶으면 먹고,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렸다.
그는 이곳에서만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우엽은 오늘도 평소와 똑같은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불과 열흘 전에 무명으로부터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수적 스무 놈을 넘겼다.
동우엽은 침상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여자를 품은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무명에 수적들을 바치기 전날 그놈들에게 여자를 한 명씩 붙여주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아니, 동우엽이 그들에게 가지는 최소한의 미안함을 해소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그 여자들 역시 수하들과 함께 딸려 보냈다.
다른 수적들의 눈에는 정말 대단한 채주로 보일 것이다.
수하가 외부 조직으로 영입되어 가는데, 선물로 여자를 붙여주다니, 그런 채주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다들 그걸 보고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동우엽은 그 생각이 나 피식 웃었다.
“죽을 자리 찾아가는 줄도 모르고. 멍청한 것들. 이놈들아, 지금 남아있는 네놈들이 진정한 극락에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말을 하지 마라.”
그렇게 중얼거린 동우엽은 창가로 걸어가 창밖을 내다봤다.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이라 그런지 포양호의 물결이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호수의 전경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확 트였다.
이 장면은 매일 보는데, 그 때마다 새로웠다.
“응? 저게 뭐지?”
동우엽의 눈에 저 멀리 새까만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얼른 눈에 내공을 흘렸다.
시야가 확 열리며 까만 점이 크게 확대 되듯 펼쳐졌다.
“배?”
제법 크고 화려한 배 한 척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데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보통 배가 낼 수 있는 속도가 절대 아니었다.
배는 똑바로 이곳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까만 점이었다가 눈 한 번 깜빡이니 배의 형체가 보였고, 또 한 번 깜빡이니 배가 온전히 보였다.
그리고 동우엽이 뭐라고 대응을 하기도 전에 배가 그대로 수채에 틀어박혔다.
꽈과과과과광!
전각이 거세게 흔들렸다.
동우엽은 얼른 중심을 잡고 창밖을 향해 외쳤다.
“적이다! 꿈지럭대지 말고 무기 들고 튀어나가!”
그렇게 외친 동우엽도 얼른 자신의 무기인 거대한 도를 꽉 쥐고는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콰직!
바닥이 부서질 정도로 세게 착지했다.
동우엽은 얼른 수채를 덮친 배부터 찾았다.
“어어?”
배를 찾았는데, 상황이 좀 이상했다.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지?”
배가 수채 깊숙한 곳에 처박혔는데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수채 안에서 크게 선회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아니, 실제로 선회 중이었다.
크게 돌면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이곳 수채는 물 위에 떠 있었다. 물 위에 전각을 세우고 물 위에 집을 짓고 창고를 만들었다.
한 마디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선착장 같은 곳이었다.
한데 그 모든 구조가 배에 의해 뒤틀리고 부서지는 중이었다.
구조가 뒤틀리는 바람에 배가 닿지 않은 곳에서 무너지는 전각도 있었다.
동우엽은 이를 악물고 몸을 날렸다.
일단 저 배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동우엽이 든 거대한 도에 막대한 기운이 맺혔다. 그의 도가 찬란한 빛을 토해냈다.
“흐아아아압!”
동우엽이 몸을 날려 그대로 배를 향해 도를 내리찍었다.
콰콰콰콰콰!
놀랍게도 그 순간 배가 가속해서 동우엽의 도를 피해냈다.
그리고 동우엽의 도격은 오히려 수채 바닥을 부숴 버렸다.
“이런 젠장!”
동우엽이 인상을 썼다.
어느새 배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수채를 빠져나갔다.
동우엽은 멍하니 멀어져가는 배의 뒤꽁무니를 바라봤다.
“저 미친 배는 대체 뭐야?”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던 배가 크게 선회했다.
동우엽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배가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런 미친!”
배는 정확히 동우엽을 향해 날아왔다.
동우엽은 도에 기운을 최대한 응축했다.
그리고 배가 지척에 다가온 순간 그대로 내리찍었다.
꽈아아아앙!
동우엽의 도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동우엽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놀라운 것은 동우엽이 날아가는 속도보다 수채를 파고드는 배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었다.